박석환, 만화미학의 탐험가 만화가 강도하, 한국인, 네이버캐스트, 2009.05.01


강도하는 90년대 초 '만화'의 이름으로 설치와 행위, 연극과 뉴미디어아트를 선보였던 멀티 아티스트였다. 21세기 초입에는 웹과 만화 인큐베이팅 시스템의 결합을 제안했고 포털사이트에 [위대한 캣츠비]를 연재하면서 서사웹툰의 새 장을 열었다.


약력

1969  서울 출생

1987  <뛰어라! 빠가사리>로 만화잡지 ‘보물섬’ 만화공모전 입선

1990  <아버지와 아들> 연작(2001년까지 각종 매체에 연재)

1995  언더그라운드 만화잡지 ‘모던코믹스 봄’ 참여

1997  퍼포먼스, ‘발가락으로 그려도 이것 보단 났겠다’(일본 세이카대학)

1998  설치, ‘분리된 상처’(금호갤러리, 다다갤러리)

2001  만화문화웹진 ‘악진’ 기획, 운영

2001  <슬픈나라 비통도시> 발간

2006  <위대한 캣츠비> 발간(07년 TV드라마화, 뮤지컬화, 모바일게임화), <로맨스킬러> 발간

2007  <3M>, <바람개비 소년 하루의 꿈> 발간

2009  <큐브릭> 발간, <쎄브리깡> ‘다음’ 연재 중


올해의 예술상 독립예술부문 최우수상, 오늘의 우리만화상,

대한민국만화대상 대상, 독자만화대상 대상 등 수상



인디만화가 강성수, 인기 웹툰작가 강도하가 되다


강도하는 2004년 포털사이트 엠파스에 [위대한 캣츠비]를 처음 연재했다. 강성수라는 본명과 과거의 작품활동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강도하라는 이름은 가면이었고 [위대한 캣츠비]는 의식 없는 로맨스 만화에 불과했다. 어떤 이들은 상업만화계의 이면에서 우리만화계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상징하며 활동했던 ‘독립만화계의 기수’ 강성수의 변절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들은 달랐다. 2000년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있던 웹만화계의 새 얼굴 중 하나로 강도하를 맞이했다. [위대한 캣츠비]가 들려주는 청춘의 고뇌와 사랑에 열광했다. 엠파스가 웹툰 사업을 종료하면서 [위대한 캣츠비]는 포털사이트 다음으로 자리를 옮겨 연재된다. 캣츠비를 둘러싼 주변인물들 간의 삼각 연애가 절정을 향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은 배가됐고, 숨이 멈출 것 같은 반전에 인터넷은 온통 강도하의 이야기와 강도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강도하가 인기를 얻을수록 인디 만화가 강성수는 사라지기도 했고 다시 주목 받기도 했다.


“그 때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인디라고 불리던 시절이나 인기 웹툰작가라고 하는 때나 달라진 게 없어요. 제가 원하는 형태의 작품을 하죠. 과거에는 그런 형식과 의미를 담은 작품활동이 필요한 때라고 믿었어요. 저는 90년대 중·후반에 했던 그림작업이나 설치, 퍼포먼스 같은 것을 만화라고 생각했죠. 그것을 언더나 인디라고 주장하는 것, 그런 틀에 가두는 것은 원하지 않았어요.” 강도하는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생각과 입장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실험만화, 언더그라운드만화라는 타이틀로 <모던코믹스 봄>이라는 잡지를 냈어요. 같이 활동하던 작가들이 신일섭, 오영진 등이었어요. 후에 이경석, 박형동 등이 합류했죠. 만화에 대한 산업적 관심이 집중되고 정부가 만화를 육성하겠다고 나서던 시기였어요. 만화의 다양성이 필요했던 때였고 세계 만화의 여러 지점들이 한국형으로 제시되던 때였죠. 저도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고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 <모던코믹스 봄>이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 작업을 한 것이죠. 생각과 행동을 일체하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의도와 결과가 동일하게 나오지는 않았어요.”


당시 우리 만화계는 산업 규모의 확대와 함께 만화의 문화적 가치 확산이라는 과제를 지니고 있었다. 이른바 상업만화로 불리는 코믹스가 시장의 규모를 늘리는 역할을 했지만 폭력성이나 선정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면, 인디만화는 우리만화의 건강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각종 전시행사와 이벤트에 초대됐고 언론은 그들을 과도하게 포장했다. 이로 인해 인디만화는 내용의 성숙보다 형식과 이벤트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모던코믹스 봄>은 <히스테리>, <바나나> 등으로 발전했죠. 저는 내용을 채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2001년에 만화웹진 ‘악진’을 열었어요. 웹이라는 공간을 실험했던 거예요. 웹을 통해서 색다른 감성을 지닌 작가들을 만나고 그런 만화를 에디팅 하면서 네티즌을 만났죠. 그 때의 슬로건이 ‘만화인큐베이팅시스템’이었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포털사이트의 ‘나도만화가’나 ‘도전만화가’ 같은 것이죠.”


강도하가 이끈 ‘악진’은 김수박, 권용득 등 일군의 작가군을 등장시켰다. 여전히 상업만화와는 달랐지만 <모던코믹스 봄>과도 달랐다. 실험적 연출과 과격한 표현보다는 안정된 형식과 작가의 시선이 강조되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올 때쯤 강도하는 ‘악진’을 해산시킨다. “포털이 더 근사한 인큐베이팅시스템을 운영하게 됐어요. ‘악진’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했죠. 미련 없이 운영을 중지했어요. 대신 그 때의 에너지를 창작에 담았죠. 그것이 [위대한 캣츠비]가 됐어요.”


2004년 웹만화계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일상의 유머와 감성을 전하고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정치적 논평과 서사를 담아낸 강풀의 만화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기였던 셈이다. 강풀이 장대한 이야기 구조를 웹툰에 담아내면서 서사웹툰의 전형을 마련했다면, 강도하는 이를 토대로 웹 환경에 적합한 연출 방식을 구조화했고 서사웹툰의 미학을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고정된 것을 거부했던 강도하의 전복적 사고와 그것마저 경계하며 스스로의 틀을 파괴했던 강도하의 정신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보물섬'을 통째로 따라 그렸던 가난한 소년


“중2 때 낙서부터 시작했어요.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또래들보다 잘 그리지 못했어요. 좋은 자료가 없었죠. 친구들은 헌책방이나 외국서적 판매하는 곳에 가서 일본만화나 애니메이션잡지를 사왔는데…. 집이 가난해서 그런 자료는 구하지 못했죠. 겨우겨우 ‘보물섬’을 한 권 구해서 보고 그렸어요.” 강성수는 만화잡지 ‘보물섬’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그대로 모사했다고 한다. 당시 ‘보물섬’은 만화 형식과 장르의 보물섬이었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잡지를 통째로 모사하고 이를 반복했다면 수많은 작가들의 장점을 흡수했을 것이다. “그 때 ‘보물섬’에는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이두호 등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었어요. 너무 좋아했죠. 그래서 따라 그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후회하는 측면도 있죠. 그때 일본만화 보고 그린 친구들의 그림에서 일본 물이 빠지지 않듯, 저한테는 ‘보물섬’의 물이 빠지지 않는 것 같아요. 아내([풀하우스]의 만화가 원수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인데 어느 날 ‘언제까지 이렇게 크게 귀를 그릴 거냐’고 묻더군요. 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차’ 싶었어요.” 80년대 초반의 아동만화는 대체로 귀를 크게 묘사했다.


강도하는 자신의 그림 속에 과거에 훈련했던 부분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표현했다. 따라 그린 것이 과정이었다면 결과는 자신의 것으로 나와야 하는데 아직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자기 것’,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을 드러냈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요. 일관성이 없어요. 작품마다 그림체를 조금씩 달리 가져가는 것은 의도하는 것인데, 작품 내부에서 일관성 없는 선이나 형태가 나올 때가 있어요. 훈련했던 것이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거죠. 자기 것으로 이걸 틀어막아야 하는데, 아직 부족해요.”


햇빛이 들지 않던 반지하방 시절을 '청춘 3부작'으로 완성시키다


강도하는 ‘고교 데뷔’를 이룬 만화 천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서 스토리에 주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받아보고 싶다는 이유로 바쁜 고교 시절에 120페이지나 되는 원고를 그리는데 투자한다. “응모는 ‘보물섬’에 했는데 겨우 입선을 했어요. [뛰어라! 빠가사리]라는 작품이었는데 본지에 발표되지는 못했죠. 그래서 공식 데뷔작은 [아버지와 아들]이 됐습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자신이 뭔가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이 작품도 ‘아빠가 나의 친아빠일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예요. ‘보물섬’, ‘아람’, ‘보이스클럽’에 각 1년씩 연재했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테마를 생의 작업으로 이어갈 생각이에요.”



그 때나 지금이나 강도하는 생각이 있으면 집중했고 결과와 상관없이 목표했던 것을 하나씩 수행해 갔다.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당당한 태도다. “당당하게 살았어요. 정말 가난해서 당당할 수 밖에 없었어요. 잃을 게 없어서 아쉬운 것도 없었고.” 강도하는 어린 시절을 반지하실 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햇빛의 소중함을 알았고 [위대한 캣츠비]에서 등장인물들이 햇빛과 하늘을 보며 희망을 얻는 대목은 자신의 삶이 반영된 것이라 했다. “월계동에 산 적이 있어요. 지하실을 벗어나서 부모님이 처음 얻은 집이었는데 장마로 강물이 범람하면서 집이 떠내려갔어요. 거짓말 같았죠. 집이 떠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어요. 사람이 집을 떠나는 것인데 집이 가족을 떠났죠. 집이 부유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 정착하지 못하고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꼈죠.”


강도하는 ‘청춘3부작’이라고 명명한 세 편의 작품 [위대한 캣츠비], [로맨스킬러], [큐브릭]에서 배경이나 공간이상의 의미를 지닌 집을 등장시킨다. 절망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한 집, 한없이 포용하는 어머니이기도 하고 과감하게 단죄하는 아버지이기도 한 집이 등장한다. 그 집에서 관계를 맺으며 등장인물들은 가족이 되기도 하고 가족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래서 ‘청춘3부작’은 행선지 없이 떠다니는 가족에 대한 드라마로 읽히기도 한다.


위대한 강도하, 만화계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


가난한 만화가 지망생이 얻었던 ‘보물섬’처럼, 강도하는 위험천만한 이 시대의 연인과 가족을 한 페이지씩 따라 그리고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이 도발적인 상상력을 동원하게 하고 그것이 과한 욕망의 변주로 들려서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만화를 보는 인식의 틀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만화를 보면서 불편한 진실이나 결론을 기대하지 않고 편한 것만 찾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독자들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조금만 진지해지려고 하면 ‘만화는 그러면 안 된다’라고 쏘아 붙여요. 저는 그런 기준이 더 부담스러워요. 제게 만화는 모든 것이죠. 제 삶이니까 그만큼 진지하고 한계가 없어야 됩니다. 어떤 ‘형’도 ‘식’도 정해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게 만화죠.”


강도하는 한계가 없어야 한다는 자신의 만화철학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웹툰을 그리면서 작품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펜과 종이를 버리고 디지타이저에서 그림을 그렸고 스크린톤과 칼 대신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색상을 입히고 효과를 넣었다. 페이지 단위의 연출도 웹브라우저의 속성에 맞춰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형태로 바꾸었고 스크롤 마우스의 이동 속도에 맞춰 컷의 크기와 위치, 색상의 농도 등을 조정해 갔다. 극의 전개에 따라 주인공의 외형을 강렬한 극화체로 묘사해가며 독자의 몰입도를 조율하기도 했다. 전체 서사의 긴장과 생명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기막힌 반전을 감춰둔 채 흔들림 없이 극을 주도했다.


그렇게 [위대한 캣츠비]라는 강도하의 도전이 마무리되었을 때 독자들은 환호했고 만화계는 기꺼이 기립박수를 쳤다. 만화미학의 위대한 탐험가이자 파괴자이며 도전자였던 강도하는 이 작품으로 그 해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대표적인 만화상 3개를 독차지했다. 누구도 이루지 못한 만화상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이다. “강성수라는 이름이 어떤 한계가 됐던 적이 있어요. 벗어나고 싶었죠. 새로운 작품으로, 새로운 이름으로 나서고 싶었어요. 지금은 강도하라는 이름이 서서히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것에 불안감이 있어요. 고착화되는 것. 벗어나야죠. 제가 하는 일, 만화가는 10년 하는 장사가 아니니까요.”


나의 도전은 질투에서 시작된 것, 새로운 것을 위해서라면 넘어져도 괜찮다


강도하는 새로움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저는 과거에 우수한 작품을 쏟아낸 작가보다 지금 신작에 매진하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나이 때문에 손이 떨리는데도 요즘 신작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하는 원로 만화가들을 만날 때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죠.” 또 자신의 도전이 질투로부터 출발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에 빠져요. ‘어떻게 이렇게 그리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같은 질투심에 빠지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밤새도록 고민해요. 그리고 또 밤을 새워서 집중합니다. 내 것을 찾기 위해서. 그래야 맘이 편해져요. 제게 자유는 새로워지는 거죠. 내가 만든 것으로부터도 새로워지고 싶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전 작품에 대해서도 멀어지려고 합니다.”


강도하는 최근 발간한 [큐브릭]에서 방황하는 10대들을 이야기했다. “약한 영혼이 너무 많아요. 영혼이 약한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강한 영혼이란 것이 뭘까 싶은데…. 저는 용기 있는 선택과 결정 그리고 지금이 아닌 새로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 좋은 결정, 지금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은 결국 손 쉬운 결정이고 회피일 때가 많죠. 그래서 길게 봤으면 좋겠고, 뭘 해도 괜찮으니 부끄럽지 않게 용기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요.”


강도하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듯, 마치 자신에게 또 하나의 확신과 신념을 심듯, 담담하게 ‘용기 있는 선택’을 이야기 했다. 새로움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성과마저 파괴하고 또 다른 새 것을 찾아 나섰던 강도하. 만화미학에 대한 그의 탐험이 또 한번 우리를 저 너머의 세계로 안내하길 기대해 본다.


글 박석환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비즈니스팀 수석, 만화규장각 필자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대중문화를 전공했다. 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으로 등단한 이후 <잘가라 종이만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 다양한 만화평론서를 발표했다. 블로그_ 


사진 김덕화 

발행일 2009.05.01



[인터뷰 후기]


제가 두번째로 인터뷰를 진행한 '네이버 한국인 만화가편'의 인터뷰이는 강도하 작가입니다.

강작가님과는 97년 언더그라운드만화잡지를 표방했던 '히스테리' 창간 파티 때 처음 뵈었습니다.

이후 이런 저런 분기점이 있을 때마다 평론가 또는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만나왔는데...

어느 덧 우리 만화계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셨습니다.

강한 자존감을 지닌 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좀 여성지스러운 부부만화가의 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신작 <세브리깡>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기도 했는데...

원고분량이 넘치는 것 같아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작가의 창작행로와 전작에 대한 평가에 집중한 원고로 정리했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korean/cartoonist/386



이 날 인터뷰 자리에는

네이버웹툰에서 <쎈놈>이란 작품을 연재하고 있는 박용제 작가와 중용 작가가 '만화가가 만난 만화가'의 작업을 위해 동참했습니다.

저를 사이에 두고 강작가님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해 줬네요^^

진짜 저러고 계셨습니다 ㅋㅋㅋ

연우 작가의 뽀샤시 서비스컷에 이어서

박용제 작가의 날카롭고 역동적인 필치로 표현된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ㅎㅎㅎ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3456&seq=5&menuType=&weekday=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신작에 등장한 코스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과거 웹진 <악진>을 낼 때 '악걸'로 등장했던 체샤님이죠.

우린 좀 더 진지하게 이 문화와 그들의 '표현'이 지닌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해 논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저 역시 체샤님의 팬 중 1인으로^^

만화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순기능적 맥락에서

코스프레를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뜻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많이 관찰하고 고민해야겠습니다.  


* 어제는 홍대 근처에 계시는 또 다른 K모 작가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작품만큼이나 맵시있는 말솜씨로 토크쇼를 펼쳐주셨던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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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com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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