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7080세대와 만화영화주제가, 원대신문, 2007.11.26

과장된 희망의 노래 속에서 현실의 가치를 발견하다


박신양의 마법, 새롭게 해석되는 노래

몇 해 전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사랑의 연가를 불렀던 박신양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러브라인의 결정적 소재로 사용된 탓인지 드라마의 감동과 함께 더 오래 기억된다. 얼마 전에는 그 박신양이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파워레인저 매직포스’의 오프닝 곡을 불렀다.

정반대의 모습이었지만 극중 상황과 맞물려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아동용 TV 시리즈물(일명 전대물이라고 한다)로 큰 인기를 누린 작품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시청한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노래였다. 그런데 아이들 것 같던 노래가 박신양의 목소리로 들려지자 어른들이 함께할 수 있는 노래가 되고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가치가 됐다.

박신양은 극중에서 사채 빛으로 가정이 파괴됐지만 마법 같은 힘으로 현재 상황을 돌파하고 내일을 나의 손에 쥐겠다는 희망을 노래한다. 이처럼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는 노래는 단순히 내용을 보완하거나 극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한 장면과 함께 그 시대를 추억하게 하고 가사의 내용을 오늘의 현실에 맞춰 재해석하게 만드는 강한 힘을 지녔다. 이처럼 옛 것이 현재적 상황에서 새로운 의미소를 지니고 재탄생되는 것 중 하나가 만화영화(주인공 또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만화영화주제가는 옛 것이 전했던 메시지를 오늘의 의미로 재탄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시대 사람들의 감수성을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는 TV CF에서 다수의 만화주제가가 BGM으로 사용된 것도 그 같은 이유겠다.


만화영화주제가에 담긴 몹쓸 의도

박신양에게 사랑을 얻게 한 것이 대중가요고 희망을 얻게 한 것이 전대물 주제가였다면 7080세대에게 만화영화주제가는 꿈과 사랑, 내일에 대한 희망과 도전의 노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의 지배적 가치관을 대중문화에 심어 전파하려는 군사정권의 의도가 있었고 뚜렷한 메시지가 있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사회적 공적이 있었으니 첫 번째 메시지는 반공이데올로기였다. 개발독재 하의 성장정책과 급속한 산업화, 서슬 퍼런 군부의 대중문화 확산 정책이 이어지면서 반공은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었다. 붉은 돼지와 불여우가 ‘똘이장군’이 지켜야 하는 자유 강산을 위협했고 우리는 모두 함께 붉은 무리 소탕을 노래했다.

두 번째 메시지는 순종적 이데올로기다.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체제와 조직의 질서에 순응하면 ‘엄마 찾아 삼 만리’를 헤매는 마르코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들장미소녀캔디’ 신세가 되지 않았다. 착하게 노력하면서 살면 그리운 엄마도 환상적인 남자친구도 얻을 수 있었다. 고난이 있지만 굳센 의지로 내일을 위해 참자고 노래했다.

세 번째 메시지는 낙관적 이데올로기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찾아오는 ‘짱가’를 믿고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마징가’나 정의로 뭉친 주먹 ‘로봇태권브이’를 찾으면 됐다. 막강한 힘을 지닌 전투형로봇은 군사정권의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우리에게만 읽히는 문화코드였지만 전쟁영웅을 노래해야 하는 것이 우리만의 사정은 아니었다. 냉전시대였고 군비확산을 통한 대립과 긴장유지가 전 세계적 가치관이었다. 같은 작품이라도 나쁜 놈을 해석하는 기준이 달랐을 뿐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만화영웅을 노래하게 했고 공적을 물리쳐야한다고 가르쳤다.


의도는 사라지고 보편적 가치만 남아

대중문화는 동시대의 사회적 가치관을 담아 창작되고 당대의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배포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적 목적과 수단으로 활용된다. 물론 이 같은 해석과 무관한 순수(?) 창작물도 있다. 하지만 반체제적 창작물이 대중과 폭넓게 만나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7080세대가 기억하고 있는 대부분의 만화영화는 당대가 요구하는 어린이 또는 청소년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주로 수입해서 방송했던 TV시리즈 만화영화의 주제가는 원음은 그대로 사용하고 가사만 개사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창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당시 정치적 상황이 고려되거나 반영됐다.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 바뀐 후에도 그런 의도를 지녔던 주제가가 대중의 기억 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사회문화 전반에 불고 있는 복고열풍은 이 같은 추억상품의 양산과 소비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무슨 과거사 진상조사 하듯 하나하나 파헤쳐서 반성하고 변질된 가사를 복원할 수도 없다. 또 이 같은 대중문화사적 흐름을 과거의 재탕이나 퇴행으로 볼 일도 아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듯 과거의 문화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시대적 구분 없이 동시유통 되고 재평가 받는 이른바 디지로그 시대 아닌가.

만화영화주제가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적과 싸워서 이기자, 오늘은 참고 내일을 기다리자, 현재는 잊고 미래를 향해서 달리자’는 등 저 암울한 시대의 선동적 구호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에서 현재적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 즐거운 긴장과 흥분을 제공한다면 그것이 곧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가 될 것이다. 원재료는 미국과 일본의 것이고 요리는 군부가 했을지 모르지만 이를 맛 본 경험은 우리 이야기와 문화적 이미지로 남아 우리의 문화자원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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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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