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활용학습론과 만화의 교양주의, 2007.11.9

만화활용학습론과 만화의 교양주의


청소년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공간이었지만... 열악했던 옛날 만화방 풍경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만화관련 이론서는 1969년 대한성서회에서 펴낸 로버트 쇼오트의 <만화와 종교>이다. 박기준의 <만화작법>이 같은 시기에 발표됐지만 제목 그대로 만화작법 만을 다루고 있고 일본서적에 기대고 있다. <만화와 종교> 이후 종교적 관점, 교육적 관점에서 만화는 다양한 논의의 대상이 됐다. 다수의 논의 틀이 만화책 읽기가 아동과 청소년의 정서, 생활태도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만화방이 도시빈민의 숙소로 탈바꿈하면서 청소년 유해공간으로 내몰렸던 시대의 영화. 김홍준, <장미빛인생>

이 같은 논의는 만화산업에 대한 논의가 발전되기 이전인 90년대까지 그 위력을 떨쳤고 만화정책과 유통의 상당부분은 종교계와 교육계의 입장에 따랐다. 반면 <만화와 종교>를 비롯한 몇몇 논의에서는 만화가 아동과 청소년이 접근하기 쉽고 이해가 빠른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만큼 이를 성경학습 등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졌다.

일부 기독교 단체는 우리만화의 저급성을 알리기도 했지만 만화를 복음 전파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1) 만화를 활용한 학습 방법론

만화에서 ‘카투닝화’는 등장인물과 독자가 빠르게 자기동일시 되는 효과를 만들고 이야기에 쉽게 동화되도록 하는 표현형식적 기법 중 하나이다. 이를 토대로 학습자가 만화를 통해 사건과 내용을 경험하면 단순 나열된 지식과 정보보다 오래 기억 할 수 있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대리체험하면서 인간관계나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등의 지혜를 얻을 수 있고 그 같은 이야기를 교육보조재로 다양한 교수학습법을 전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교양학습만화라는 새로운 창작과 소비영역을 구축한 이원복의 <먼나라이웃나라> 

종교계와 교육계는 이를 토대로 만화를 활용한 다양한 학습방법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독서치료, 미술치료, 이야기치료 역시 이 같은 논의들이 발전되면서 전개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디어교육론도 이에 기초한다. 여기에는 최근 스토리텔링이라고 불리는 이야기하기의 근원적 힘이 작용한다.

만화적 재미보다 원작소설의 내용전달과 학습효과에 집중했던 기획 시리즈물

이야기하기는 ‘지식과 정보를 단순히 나열한다거나 논증, 설명 혹은 묘사의 양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등장인물, 배경이라는 구성 요소를 지니고 시작과 중간, 끝이라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 기술해가는 양식’이다. 지식, 정보는 특정 사건에 대한 단순 정보만을 전달하는 반면 이야기하기는 인물이 등장하여 정보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깨달음을 전달한다. 이야기하기의 인물은 독자가 되기도 하고 독자화 된 인물을 도와주는 영웅일 수도 있다. 즉 기록된 이야기가 사실 관계만을 전달한다면 해석된 이야기는 사실 관계의 이면이나 의미까지 이야기의 구조로 확대해서 전달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물론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논의는 인쇄매체보다는 영상매체와 게임, 인터넷 등 인터렉티브미디어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실제적인 성공 사례나 일반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콘텐츠를 형성해내고 있지 못하는 반면 만화는 교육목적, 방식, 내용별로 각각의 아이템을 구비하고 있다.

최근 아동학습만화 붐은 위인, 역사, 지리, 과학, 언어 등 전통적인 장르를 벗어나 아동용 처세서까지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 아동용 리더십 도서.


2) 만화로 쌓는 교양, 교양으로 읽는 만화

만화가 다른 표현형식 또는 창작형식과 대별되는 차이점은 인쇄매체이면서 글과 그림이라는 복합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영상매체가 지닌 연속성을 표현하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영상매체의 급격한 발전과 인쇄매체의 쇠퇴 속에서 만화가 두드러지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인쇄매체와 영상매체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격한 기술주의자들의 입장은 인쇄매체의 모든 장점을 영상매체나 뉴미디어가 흡수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설파하고 있지만 인쇄매체를 근간으로 한 사회문화적 구조가 일거에 뒤바뀌는 일은 없고 중간지점 쯤에서 상호보안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출판의 연성화와 만화의 지식전달 효과를 증명하는 기획 시리즈물

이는 우리 출판계의 경향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출판의 연성화가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는 비판적 논조를 최근 자주 접했을 것이다. 책은 갈수록 시각화되고 쉬워진다고 하면서 책을 찾는 독자는 갈수록 늙어간다고 한다(아동서는 논외다. 그런데 이 분야도 첫 아이 출산연령이 높아지면서 젊은 엄마보다 늙은 엄마의 구매비중이 높아가는 추세다). 독자는 옛날 독자 그대로인데 책은 시각화되고 가벼워진다. 이는 연성화의 핵심이 책을 찾는 연령대나 지적수준의 변화라기보다는 책에서 찾는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영상매체가 지니지 못한 가치가 새로운 경향의 연성화된 출판형식을 통해 나름의 모양을 잡아가고 있는 과정인 셈이다. 물론 출판 연성화의 핵심적 형식은 만화이다.

만화가 단순 킬링타임용 문화에서 지식과 감동의 전달매체 임을 코믹하게 항변하는 영화. <위대한 유산>

반면 만화 분야에서는 21세기의 진입 전부터 만화가 흥미나 재미만을 추구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일궈지기 시작했다. 세계 출판만화산업계의 전략본부격인 일본의 만화잡지 편집자들은 만화의 서사형식 안에 교양, 즉 지식과 정보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군의 만화가들은 교양주의를 선언하며 만화가 기존 서적출판(인문사회과학)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퍼뜨렸다. 이렇게 출간된 다수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우리 출판만화계는 이런 유형의 작품을 전문소재만화, 전문직업만화라 불렀고 최근에는 지식만화라는 개념으로 국내 만화가에 의한 자체 창작물이 다수 발표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발 전문소재만화의 붐이 문화적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국내에서는 교양만화라기 보다는 학습만화 붐이 재현됐다. 신화읽기, 한자학습 붐, 전세계적 재난피해가 사회문화적 이슈가 되면서 만화독자에게 다양한 직업의 세계와 교양을 전달해야 한다는 ‘신만화역할론’이 수학능력교육을 위한 ‘참고서만화론’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3) 만화계의 지형도를 흔들어 버린 학습만화 붐

아동용 학습만화의 구매자가 주부라는 점에서 출발한 순정만화풍의 학습만화.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마법천자문>, <살아남기시리즈> 등 연이은 대작 기획 학습만화 붐은 우리 만화계에 새로운 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출판사들은 이 같은 대형 히트작에 고무되어 그간의 모든 인류유산과 지식정보를 ‘만화로 보는’ 시리즈로 발간할 태세다. 만화가들은 갑작스런 호기에 놀랐다. 문제는 전문 만화잡지와 만화대여점을 중심으로 구축됐던 오락성 청소년만화, 이른바 코믹스계 출판만화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성인취향의 액션, 무협만화를 생산하고 소비해왔던 만화방, 이른바 대본계 출판만화 시장이 빠른 속도로 인터넷으로 흡수되면서 발생했다. 창작만화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 만화가들마저 일거리를 잃고 기획만화를 쫓기 시작했다.

한자학습열풍과 테러위협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신속하게 받아드리면서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른 우수 학습만화.

오락과 교양을 겸비한 일본산 창작만화는 밀려들어오고 국내 창작진영은 급속하게 위축되면서 어린이용 학습만화 기획에 맞춰 그림작업을 돕는 형편에 이르렀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개인창작 능력이 없는 어시스트들까지 학습만화가로 데뷔하기 시작하더니 일손이 늘어나면서 고료가 하향 평균화되자 작품의 질도 급격하게 저하됐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보다 아동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집중 부각시킨 기획만화

소재 측면에서도 사극열풍에 편승한 역사, 근현대사, 세계사, 한자, 영어, 논술, 과학, 물리, 수학 등 교과 영역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어서 상호 표절과 유사작품이 범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내외부에서 비판과 자정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한국적 교양만화주의-참고서만화론’은 과거 만화유해론 만큼이나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큰 성공을 일군 일련의 학습만화가 지식과 정보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거대 서사구조 안에 지식과 정보를 배치하는 방식을 취한 것과 달리 후속 작품들은 지식, 정보 과잉 현상을 보이면서 이야기하기의 학습적 효과마저 흔들어 놓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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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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