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터넷만화
만화2.0시대 개척한 웹만화
인터넷만화 효과에 주목하라
인터넷만화가 뜨고 있다. 아니다. 이미 높이 떴다. 만화가를 꿈꾸었지만 주류 만화계로부터 핀잔이나 듣던 이가 개인홈페이지를 통해 <지치지 않을 물음표>를 제기하면서 인터넷만화의 불길이 치솟았다. 강풀 표 만화로 대표되는 인터넷만화는 강도하라는 준비된 작가의 위대한 도발과 이미 주류 만화계의 슈퍼스타 중 한명이었던 양영순의 참여에 힘입어 큰 폭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강풀이 인터넷을 통해 발표한 <아파트>, <바보>, <타이밍>, <순정만화>, <26년> 등 대부분의 작품은 영화, 연극 등으로 제작됐거나 되고 있다. 강풀이 인터넷을 통해 얻은 만화사적 성과를 가장 세련된 모습으로 극대화 시킨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역시 드라마와 뮤지컬로 제작됐다. 후속작 <로맨스킬러>는 연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영화 판권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뒤질세라 주류 만화계의 천재작가 중 한명인 양영순도 ‘아라비안나이트’를 재해석한 <1001>로 인터넷만화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최근 소재기근과 스타마케팅의 역효과에 시달리는 영화계, 방송계가 만화작품이 지닌 독특한 세계관과 치밀한 서사구조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기존 만화계도 찾기 못했던 영역을 인터넷만화가 담당하면서 대중문화계는 다시 한번 ‘만화의 힘’에 놀라고 있는 눈치다.
그런데 ‘인터넷만화’는 10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녔고 특정 형식의 만화 또는 매우 다양한 형식의 만화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속편하게 ‘인터넷만화’라고 칭해버리면 정확히 어떤 형식의 작품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그간 등장한 용어들을 통해 인터넷만화의 현재 지형을 살펴본다.
인터넷만화는 웹콘텐츠가 아니라 유통모델이다
우리가 흔히 ‘인터넷 한다’고 할 때의 인터넷은 기실 월드와이드웹을 뜻한다. 인터넷사이트가 아니라 웹사이트, 인터넷잡지가 아니라 웹진이라고 했던 것처럼 인터넷만화 역시 ‘웹툰’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조금 다른 의미로 관용화 되어 있다. 웹+카툰의 약자로 카툰이 1프레임 만화를 대표하는 명칭인 만큼 웹툰 역시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동적으로 구현되는 만화, 즉 웹애니메이션을 뜻한다. 이 같은 개념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2000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엽기토끼 마시마로’, ‘졸라맨’을 들 수 있다. 지금 뜨고 있는 인터넷만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 형식이다.
인터넷만화의 출발지점을 찾으려면 좀 더 멀리가야 한다. 1993년 국내 IT업체들은 출판만화를 스캐닝해서 디지털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CD롬이라는 색다른 저장매체에 초장편 만화를 담기 위해서였다. 곧 이어 PC통신이 등장하면서 대용량 저장매체의 매력보다 실시간 전송 방식에 관심이 쏠렸고 만화라는 내용을 담는 형식과 소비패턴에 일대 혁신이 예고됐다. 이때 만화+책이 아니라 CD롬+만화, PC통신+만화라는 용어가 생겼고 곧이어 등장한 멀티미디어인터넷, 초고속 정보통신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인터넷만화’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 때의 인터넷은 오프라인 상에 존재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인터넷을 이용하도록 만든 사업개념을 뜻했다. 신문은 인터넷신문, 서점은 인터넷서점, 쇼핑몰은 인터넷쇼핑몰이라고 한 것처럼 인터넷만화는 새로운 내용이나 상품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가공해서 유통형식만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을 통칭했다.
이와 함께 웹 경제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나누는 사회적 담론이 무성해지자 만화계에서는 기존의 출판만화를 ‘오프라인만화’로 이를 그대로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한 만화를 ‘온라인만화’로 칭했다. 구독형식에 있어서도 만화책과 동일한 전통을 따르고 있었고 그 내용 역시 웹에 게재할 목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출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만화나 온라인만화는 웹콘텐츠라기 보다는 기존 만화계의 새로운 유통창구를 지칭하는 용어로 봐야 한다.
첨언하자면 2000년 경쟁적으로 오픈했던 ‘N4', ‘코믹스투데이’, ‘코믹플러스’ 같은 만화포탈사이트들이 인터넷만화라는 유통모델과 사업군을 대표한다. 이들 업체는 대형 포털사이트 등과의 제휴를 통해 ‘무료만화’라는 서비스모델을 만들어내며 기존의 만화가들과 만화출판계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웹을 통해 만화를 보는 것이 낯설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모니터, 휠마우스 그리고 에세이만화의 등장
요즘 웹에서 뜨고 있는 형식의 만화를 ‘스크롤만화’라 칭하기도 한다. 이는 구독형식에 있어서 좌에서 우로 페이지를 넘기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에 휠마우스의 스크롤 기능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읽히도록 구성한 점을 강조한 명칭이다.
네티즌이 웹에서 만화를 구독하는 것에 익숙하도록 만든 일등공신은 대형포털사이트의 무료만화 서비스였다. 하지만 저작권 보호 등의 이유로 별도의 리더(Reader) 프로그램을 사용했던 만큼 스크롤이라는 지금의 구독 전통을 일반화시키는데 기여한 것은 아니다. 이 같은 형식에 대한 선언적 시도는 권윤주의 <스노우캣>으로부터이다. 첫 공개는 1997년이지만 개인 홈페이지 제작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던 2002년을 전후로 관심을 모았다.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의인화한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게재했다. 하루의 일상을 담담하게 일기체 형식의 작품으로 그려냈다. 웹페이지의 제작 방식, 게시판 프로그램의 기능적 특징 등으로 인해 눈목(目)자 형식의 4컷 만화와 유사하게 창작됐는데 신문의 생활만화 형식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승전결의 단순구조를 취했던 작품의 반응이 기대이상으로 증폭되면서 이 같은 형식을 차용한 만화가들의 홈페이지와 창작활동이 늘어났다. 이들 작품군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한쪽은 캐릭터를 정면으로 내세운 <마린블루스>, <퍼굴이>, <감자도리> 등의 작품으로 발전했고 다른 한쪽은 잠언적 성격이 짙은 <파페포포 메모리즈>, <완두콩>, <하루일기> 등의 작품으로 발전하면서 ‘에세이만화’라는 새 분류를 만들어낸다.
캐릭터 상품을 만들기 위해 만화를 그린다는 비난과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내용에 치우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홈페이지의 방문객은 줄지 않았고, 단행본으로 묶었을 때의 판매고는 상상을 초월했으며 현재도 연말연시에 캐릭터 다이어리를 내놓을 만큼 강력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스포츠신문 웹사이트의 스크롤만화
네티즌들은 에세이만화를 통해 ‘페이지 넘기기’가 아닌 ‘스크롤’이라는 색다른 구독형식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를 대중화 시킨 데는 스포츠신문의 웹서비스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스포츠신문에는 전통적으로 최고인기만화가들의 장편서사극화가 연재된다. 새로운 스포츠신문이 창간될 때는 인기만화가들을 앞세운 시장진입 경쟁이 벌어질 정도로 스포츠신문에서 연재만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만화가들의 작품이 스포츠신문의 웹사이트 오픈과 함께 웹에도 동시 게재됐다.
신문에는 대개 1일 6페이지 분량이 2단 또는 3단 구성으로 게재되는데 웹사이트에서는 이를 한 페이지씩 아래로 6페이지를 이어 붙여 게재됐다. 물론 허영만의 <타짜>(스포츠조선), 박봉성의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일간스포츠),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스포츠서울) 등의 작품은 출판을 목적으로 창작된 기존의 만화 형식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게재 형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고 만화가들의 지명도도 큰 역할을 했다. 두 쪽에 걸쳐 그린 엔딩 장면을 반쪽씩 잘라 봐야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네티즌들은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휠마우스의 스크롤 버튼을 쉴 새 없이 굴렸다. 그렇게 2004년이 지나면서 스크롤이라는 새로운 구독 방식과 관습이 일반화 됐다.
포털사이트의 뉴스 콘텐츠 경쟁과 웹연재만화
2004년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진다. 메일, 커뮤니티, 검색에 이은 포털사이트 간 경쟁이 일단락되자 업체들은 저마다 색다른 카드로 새로운 전선을 구축했다. 이 판을 흔들어 댄 이는 파란이었다. 파란은 5대 스포츠신문의 전송권에 대한 독점적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3위권으로 쪽 떨어진 다음은 미디어포털을 선언했고, 엠파스는 종합엔터테인먼트포털을 지향하며 다음 쫓기에 나섰다. 각각의 경쟁 카드가 조금씩 모양을 달리했지만 최전방에서 싸움에 나선 전사는 똑같았다.
다음은 미디어다음이라는 뉴스 섹션 안에 ‘만화속세상’을 오픈했고, 엠파스는 게임 섹션과 함께 만화웹진을 창간했다. 파란도 스포츠연예 뉴스 섹션에 카툰 코너를 운영했다. 마치 스포츠신문이 만화가들의 연재만화를 통해 부수 경쟁을 하듯 포털사이트들도 뉴스섹션에 ‘연재만화’ 코너를 오픈하며 트랙픽 경쟁에 나선 것이다. 연재만화는 그 속성상 서사적 흐름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완결편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쉽게 구독을 끊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다음에 계속’으로 이어지는 상업적 전략에 철저한 장르이다.
다음은 온라인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던 강풀을 연재만화의 카드로 택했고 파란은 젊은작가 그룹 중 오프라인에서 최고의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던 양영순을 택해 연재만화를 그리게 했다. 엠파스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강도하를 재발견해 연재만화를 맡겼다. 이들은 ‘포털 연재만화 삼국지’ 구도를 형성하며 네티즌을 발길을 잡아두는데 성공한다[그림7].
이 대리전의 최종 승자는 다음이었다. 다음은 강풀을 네티즌이 주목하는 만화가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러로 키운 토양이 됐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비운의 걸작이 될 뻔한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도 엠파스의 연재중단 통보를 받은 후 다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양영순은 ‘이야기치료’라는 새로운 테마를 제시하며 파란에서 <1001>의 연재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강풀, 강도영, 양영순으로 이어지는 3인의 작가가 담당한 연재만화는 그간 디지털, 온라인, 에세이, 스크롤 등의 이름으로 불렸던 만화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였다. 그중 대표적인 차이점으로 개인 홈페이지가 아니라 특정 매체의 연재 지원을 받았다는 점, 주기성을 지닌 연재만화로 웹에 게재할 목적으로 창작했다는 점, 신변잡기나 엽기소재가 아니라 장대한 서사적 이야기구조와 핵심 테마가 있었다는 점, 스크롤이라는 화면 이동 방식을 적극적으로 작품 연출에 적용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웹만화, 꼬리만 빼고 다 바꿨다
요즘 웹에서 뜨고 있는 만화는 순수하게 웹에 게재할 목적으로 웹의 구독 환경에 적합하게 창작한 콘텐츠이다. 이들 만화는 기존의 출판만화가 담고 있던 서사성을 담아내는데 성공했고 오랜 역사성이 만들어낸 출판만화작법과 문법을 새로운 매체 환경에 맞춰 재편해냈다. 이를 웹+스크롤만화, 웹+연재만화, 웹+서사극화라는 점에 비춰 공통분모를 지닌 ‘웹만화’라고 칭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이미 그간의 개념 전개 과정 검토와 의미화 노력과는 무관하게 동일 개념의 만화를 ‘웹만화’로 지칭하는 이들(언론)도 많다.
인터넷만화와 웹만화를 구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와 구분점이 상징하는 의미는 명확하다. 인터넷만화가 기존의 만화계와 만화적 전통을 대부분 수용한 것이라면 웹만화는 창작, 제작,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 부분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또 인터넷만화는 전송권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출판만화계의 최하위 매출을 담당했다. 반면 출판만화 바깥에서 성장한 웹만화는 오히려 출판만화계에 출판권을 판매하고 있다. 인터넷만화가 이른바 원소스멀티유즈나 윈도우효과의 마지막 상품화 수준에 머문다면 웹만화는 그 시작이자 원심력이 된다.
최근 강풀, 강도하, 양영순은 다음의 ‘만화속세상’에서 각각 <순정만화> 시즌 3 <그대를 사랑합니다>, ‘청춘3부작’ 중 완결편인 <큐브릭>, 베일에 쌓여있는 <란의 공식>을 차례로 공개했다. 만화라는 꼬리표만 달고 있을 뿐 웹만화는 기존의 출판만화지형과는 별개의 공간에서 성장해서 자기들만의 지형과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일부러라도 그들을 위한 명칭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만화의 개척자이자 챔피언인 그들을 이제부터 만화2.0세대라 칭해도 좋겠다.
Tip
베스트 일기체 만화, 스노우캣 http://www.snowcat.co.kr/
만빵 감성만화, 파페포포 http://www.noonbee.com/
확실한 캐릭툰, 마린블루스 http://www.marineblues.net/
웹만화 1세대, 강풀 http://www.kangfull.com/
만화2.0천국, 미디어다음_만화속세상 http://cartoon.media.daum.net/
종합선물세트, 파란_미디어_카툰 http://media.paran.com/scartoon/
디지털만화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http://comicspam.naver.com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기획회의, 출판마케팅연구소, 2007. 05. 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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