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리얼
휠체어 농구? ‘슬램덩크’보다 낯설지만 더 인간적인…
‘리얼’은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이다. 보통 농구가 아니라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다. 이노우에는 1996년 완결된 ‘슬램덩크’라는 농구만화로 1억 부 판매 클럽에 가입한 인기 만화가이다. 세계의 만화 마니아는 그가 그리는 후속 농구만화를 손꼽아 기다렸다. 5000여 쪽에 펼쳐지는 ‘슬램덩크’의 코트에서 주인공과 함께 뛰었던 독자들은 다시 한번 땀 흘리며 만화 읽기에 빠지는 즐거움을 기대했다.
하지만 ‘리얼’은 뛸 만하면 쉰다.
2000년에 첫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제 겨우 6권이 발행됐다. 여느 만화가 1년에 3, 4권이 나오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늦다. 그런데 일본 현지 주간 판매 순위는 2위(11월 29일 기준)를 기록했다. 독자들이 기다려 준다는 증거다.
‘리얼’은 휠체어 농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휠체어 농구는 1.0∼4.5의 장애등급을 지닌 선수 5명이 총 14등급 이내가 되도록 팀을 구성해서 상대와 겨루는 경기이다. 하늘 위에서 내리꽂는 사쿠라기(한국어판 이름 강백호)의 덩크슛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바닥에서 올려 넣는 기요하루의 휠체어 농구는 낯설 것이다. 작품 속 장애우의 대사처럼 휠체어가 곧 재능이 되는 농구는 사회면에 실리는 미담일 뿐 스포츠면에 실리는 흥분 요소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1억 부의 감수성을 지닌 이노우에가 장애라는 특수한 공간으로 내디딘 ‘거대한 걸음’을 쫓아가다 보면 다르면서도 같은 저 세계의 열정과 흥분을 만나게 된다.
1 대 다수의 승부를 즐겼던 육상 천재 기요하루는 골육종으로 다리를 잃고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 휠체어 농구선수가 된다. 모든 면에서 최고였던 농구선수 다카하시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방탕하게 세월을 낭비하는 최하의 인간이 된다. 이들을 코트로 이끈 노미야는 처음 만난 여자를 오토바이에 태웠다가 다리를 잃게 한다.
세 명의 연인과 가족, 라이프 코치 역할을 하는 다양한 이들이 ‘리얼’에 등장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장애인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는 미쓰루 등이 뭉치면서 독특한 역할과 임무를 부여 받은 팀이 꾸려진다. ‘슬램덩크’에서 설익은 재능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열정을 노래했던 작가가 ‘리얼’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하고 장애를 지니게 된 이들의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 스스로의 처지 때문에 승부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포함시켰다. 주인공들은 휠체어 바퀴가 바닥에 녹아 붙을 만큼의 속도와 열정으로 문제를 풀어 간다. 아직 기다려야 할 뒷이야기가 더 많지만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만화 읽기를 경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장애를 가진 등장인물들에게 전력을 다하라는 작가의 거센 요구가 난처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처지 때문에 승부를 피하거나 성취의 목표가 낮을 수 없다는 이노우에의 주장은 공감할 만하다.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인 승부가 없듯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인 삶 역시 없다. 살아야 한다면 지금 상태에서 목표를 세우고 승부해야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동아일보, 2006.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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