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한국형 코믹스계 만화의 현재와 미래, 코믹스만화의세계, 살림, 2005


만화에 대하여


흔히 ‘만화(漫畵)’라고 한다. 용어는 하나인데 지칭되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신문의 컷, 캐리커쳐, 시사카툰, 4칸만화, 1~6페이지 분량의 신문연재극화도 만화이다. 잡지에 실린 16페이지 내외의 단편만화, 연재만화도 만화이고 200페이지 내외로 묶인 만화책comic book도, 수 권에서 수 십 권에 이르는 만화책 시리즈도 만화이다(TV에서 방송되는 애니메이션도 만화이고 무언가 가볍고 유치한 것도 만화이다. 웃기는 것도 만화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도 만화라 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매체 개념을 포함해서 신문만화, 만화잡지 또는 잡지연재만화, 만화책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용에 따라, 대상에 따라, 발행주기에 따라, 생산방식에 따라, 유통형식에 따라서도 만화는 또 다른 세분화된 이름으로 불린다. 물론 나라마다 명칭과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자들의 입장일 뿐 수용자 입장에서는 다시 만화일 뿐이다. 

만화에 대한 정의도 매우 다양한데 간단하게 그 특징을 정리하자면 ①약화(略畵) ②연속화(連續畵) ③복제화(複製畵)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형식의 회화적, 명시적, 서사적 표현물이 곧 만화이다. 일본에서 이 조건에 준하는 작품은 토바에, 폰치, 우키요에 등으로 불렸다. 기록에 의하면 만화라는 용어가 첫 등장한 것은 우키요에(일본 풍속화)의 대가 호쿠사이가 1814년 발표한 ‘호쿠사이 만화’로 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대 인쇄술의 도입과 신문의 등장으로 이 같은 성격의 표현물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삽화(揷畵)’는 최초의 우리 만화로 평가된다. 이후 신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명칭이 등장했는데 철필사진, 다음엇지 등으로 불리다가 1930년을 전후해서 ‘만화’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만화소사


근대적 개념의 우리만화는 일제강점기의 저항정신과 신(新) 문물 도입을 주장하는 계몽정신을 보여줬다. 그러나 만화는 급속하게 진행된 근대화와 물질문명의 변화에 대한 표피적 세태풍자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해방에 이은 한국전쟁으로 이데올로기 문제가 대두되고 만화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1950년 대). 

미군정 치하에서는 미국만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유입되어 소개됐고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조장 했다. 이웃한 일본은 소년만화를 중심으로 전후(戰後)의 어린세대에게 경제 재건의 의지를 전달했다. 한국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의 문화는 암시장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고 일본만화는 어느덧 우리 어린이들의 꿈을 대표하기에 이른다(1960년 대). 

빈곤한 경제 환경 속에서 만화책을 빌려주는 만화방(貸本所, 대본소)이 호황을 누리자 일시적으로 만화가는 귀한 몸이 됐고 원본만 구하면 되는 일본만화의 불법출판은 더 기승을 부렸다. 이후 만화책 유통을 독점화하고 생산을 통제한 사업가가 나타나면서 만화계는 곪아가기 시작했다(1970년 대). 

군부통치와 강제동원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군사정권은 대중문화의 검열을 강화하여 엄숙주의 문화정책을 추진했다. 한편으로는 대중문화의 향락주의적 요소를 이용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다. 만화계에서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두 가지 시스템이 구축됐다. 엄숙주의 문화정책을 대표하는 교양주의적 입장의 학생잡지(‘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진영과 소비주의적 입장의 대본소 만화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진영이 나뉘었다. 결과적으로 80년대를 화려하게 맞이한 진영은 교양주의적 잡지 체제 하의 작가진영이 아니라 소비주의적 대본만화 체제 하의 작가진영이었다(1980년 대).

80년대 후반 대본계 만화의 주체들은 인기작가의 이름으로 월 100여 권 내외의 만화책을 뽑아냈고 만화방 업주는 이 작품을 저항 없이 구매했다. 만화 폭독자(暴讀者)들의 천국이었고 그야말로 작품에 이름만 박혀있으면 팔리던 태평성대였다. 자기 작품을 할 수 있는 만화가는 제한적이었지만 이 창작 시스템은 어느 해보다 높은 고용을 창출했고 2배수 가량에게 도제식 만화전문훈련을 제공하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공장제 분업창작’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심야만화방을 중심으로 청소년 탈선이 사회문제화 됐다. 무등록 출판사가 불법적으로 발행한 일본만화 해적판의 폭력성과 선정성도 우리 만화계의 신뢰도를 훼손시켰다. 만화방은 곧 퇴폐와 향락주의의 시작점처럼 논의됐고 엄숙주의의 철퇴를 맞는다. 양 체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현세와 허영만은 이 시기를 전후로 공장제 분업창작의 폐업을 선언하고 대본계 만화 창작을 중단한다. ‘창작 환경과 소비 트랜드’가 달라졌음을 강조하고 만화계에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변화는 주류 만화계로 성장한 대본계가 아니라 주저앉았던 잡지 쪽에서 도출됐다(1990년 대). 

90년대 초반 동시구독률을 극대화한 일본식 만화전문잡지가 창간됐다. 교양주의라기 보다는 건강한 오락성을 추구했다. 이 잡지에 수록되어 인지도가 높아진 작품은(잡지의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를 전제로) 2~3개월 주기로 단행본으로 발행됐고 서점과 문방구 등에 판매용으로 유통됐다. 대본계 만화를 중심으로 조직된 유통 체계는 일대 혼란을 겪게 된다. 대본계 만화 진영은 긴장했고 이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낸 만화출판물은 코믹스(Comics)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만화계의 주류로 떠오른다. 사륙판(B6) 크기의 코믹스계 만화가 국판(A5) 크기의 대본계 만화를 넘어뜨린 것이다. 우리만화는 코믹스계 만화의 등장으로 머리부터 바뀌기 시작한다(2000년 대). 


소년만화, 코믹스 만화


코믹스는 영어권에서는 신문연재만화인 코믹스트립(Comic-strip)를 뜻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만화 일반을 의미하는 영어식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 코믹스는 각 출판사의 총서명 개념으로 쓰인다. 국내 출판사들이 이 전통을 받아들여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의 연재작을 묶은 단행본은 ‘점프코믹스’ 시리즈, ‘소년챔프’의 연재작을 묶은 단행본은 ‘챔프코믹스’ 시리즈 형식으로 발행하고 있다. 개별 작품을 가리켜 코믹이라고도 한다. 현재적 의미의 코믹스는 사륙판 크기로 발행된 만화책을 지칭한다. 대개의 경우 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여성독자 대상의 순정만화도 코믹스로 불린다. 이 책에서는 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코믹스(작품), 코믹스계 만화(동일성향 작품군), 코믹스 만화계(동일성향 작품 생산 집단)를 다룬다. 각각 소년만화, 소년계 만화, 소년 만화계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 

코믹스계 만화의 등장은 만화계 내적 요인 외에도 다양한 외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경제적으로는 88올림픽 이후의 호황기였다.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비용에 대한 지출이 늘어났다. 이로인해 문화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높아졌다. 미국의 대중문화 세계화에 대한 반발로 출발한 영국의 문화연구(British Cultural Studies) 전통이 급속도로 번졌고 우리의 하위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신세대가 문화소비의 주요한 세력으로 등장했고 창작물에 대한 심의 완화와 일본문화개방이 논의됐다. 이런 문화사회적 변화는 변방의 문화였던 만화계도 변화시켰다. 80년대 대본계 만화의 주요 창작양식이었던 스포츠극화가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대립과 승리의 거대담론을 형성하다가 그 쓸모를 잃었다면 90년대 코믹스계 만화는 학원을 중심으로 한 현실과 가상세계의 판타지를 그려내며 만화계의 주류로 떠올랐다.  


만화책으로 발간되는 대부분의 만화는 스토리만화, 극화, 이야기만화 등으로 불리는 서사만화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서사만화는 형상을 단순화 시킨 약화를 칸과 페이지에 연속적으로 배치하고 시간 순에 따른 이야기(story)를 극적인 구조(plot)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를 책의 형식으로 만들어 대량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이 일반적인 서사만화의 창작과 제작과정이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서사만화는 내용을 기준으로 분류된 장르를 지니고 있다. 


장르만화에 대해서


장르는 일종의 관습적인 이야기 소재 또는 구조를 이르는 것으로 연구자들의 편의에 의해 분류되기도 하지만 상업적인 제작 시스템 하에서, 또는 대량생산된 작품의 대량소비를 위한 광고나 홍보를 목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작화 과정에서의 특정 스타일이나 이념을 기준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우리 만화계에도 고정화된 장르가 구축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만화시장과는 별개지만 신문만화는 정치만평과 4칸 시사만화에서 생활만화, 연재극화 등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다. 대본계 만화는 스포츠만화로 출발해서 액션만화로 발전했고 기업만화로 세분화됐다가 시장이 위축되면서 무협만화로 통폐합됐다. 반면 코믹스계 만화의 경우는 학원만화로 출발해서 학원폭력, 학원스포츠, 학원로맨스만화로 장르 간 접변을 거듭하고 있으며 SF대전만화로 갔다가 무협판타지, 판타지서사, 판타지호러 등으로 전이됐다. 이와 다른 측에서는 순정만화와 명랑만화가 존재하고 순정만화는 독자적 전통을 형성하며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문소재 만화가 등장하면서 장르의 다양성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장르의 다양성은 시장의 성숙도를 증명하기도 하지만 불황기에는 시장의 불명확성을 강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시장은 독창성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형성된 시장에 참여한 다수의 관점을 단일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매번 다른 성향의 독자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주류 시장의 성향에 훈련된 독자가 시장입장에서는 더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 등을 통해 확인되는 인기 만화장르는 단연 교양학습만화와 웹툰(인터넷만화)이다. 장르의 번성을 주도했던 코믹스계 만화는 장르의 세분과 시장의 불황으로 중심 독자층을 잃어버렸고 소수 독자층에게 기대고 있다. 반면 교양학습만화와 웹툰은 교양과 감성이라는 단일 코드에 집중하면서 아동과 여성 중심의 독자층을 다른 연령대로 확장해가고 있다. 코믹스계 만화의 주체들은 이 대목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장르만화에 대한 논의는 이쯤에서 다른 기회로 미루고 코믹스계 만화가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특성들을 검토해 보자. 테마, 컨셉, 키워드, 코드 등과 결합하여 편의에 따라 조금씩 개념을 달리해 쓰이는 이 요소들은 장르만화가 지니고 있는 내용이나 소재 상의 구분점 만큼이나 중요하다. 코믹스계 만화는 이들 구성요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다. 


코믹스계 만화의 욕망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코믹스계 만화의 대표적인 특성은 폭력성과 선정성(성적인 묘사나 표현의 의미로만 제한해서)이다. 이는 코믹스계 만화의 주 독자층이 소년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소년 대상의 만화가 지니는 기본 속성은 성장이라는 테마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육체적 욕망의 지표라면 성적인 선정성은 정신적 욕망의 지표가 된다. 욕망은 추구를 낳고 추구는 도전과 근성을 만들어내며 근성은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다. 라이벌과의 대결에 따른 승리일 수도 있고 이성의 관심을 이끌기 위한 승리 일수도 있다. 여기서 폭력성은 이상, 모험, 라이벌, 희생자, 복수, 성공과 몰락 등의 플롯을 만나고 선정성은 비밀, 유혹, 변신, 금지된 사랑, 희생, 깨달음 등의 플롯을 만나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조율해 낸다. 또한 폭력성은 역동성을 추구하게 되고 선정성은 남성성을 이끌어내며 순정성과 만나게 된다. 이 같은 특성을 지닌 작품들이 시장을 주도하게 되면 이와 상반되는 특성을 지닌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특이성, 계몽성, 풍자성 등의 특징을 지닌다.  


코믹스계 만화의 미래를 위한 제언


코믹스계 만화는 일본만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코믹스라는 전통부터가 일본의 양식을 빌려 온 것이니 코믹스계라는 분류의 의미는 곧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은 만화작품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 30편의 작품들은 국내 코믹스계 만화를 대표하는 수작임에 분명하며 한국형 코믹스계 만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낸 걸작이다. 각 작품에 대한 소개문에서 때때로 혹평이 있기도 하지만 그 흠결이 작품의 가치를 저해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작품들에 대한 후속 연구와 재평가 작업을 통해 한국형 코믹스계 만화를 구성할 수 있는 입론을 마련할 것이다. 그것이 코믹스계 만화의 출발부터 현재까지를 주의 깊게 목격한 필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를 준비하기 위한 초석이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만화를 지켜온 만화가와 편집인에 대한 애증의 서이다. 만화가와 편집인들이  반갑게 받아주기를 기대하며 작품 기획과 창작을 중심으로 이즈음의 코믹스계 만화가 취해야할 입장을 제언 형식을 빌어 더한다.


색다른 시선을 가지고


우리는 김수용의 <힙합>을 보며 반가워했다(여기서 우리는 만화가와 편집자를 뜻한다). 아이들 간의 주먹싸움이 소년 독자의 욕망을 대리할 것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을 때 <힙합>은 우리의 시선을 환기시켜줬다. 아이들의 우정이 있었고, 노력이 있었으며, 승리가 그려졌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연재만화의 3대 테마가 모두 있었지만 <힙합>은 성대하의 주먹싸움에 집중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욕망은 폭력과 성으로 표출되고 그것을 우리는 쉽게 형상화하고 있지만 <힙합>은 아이들이 욕망하는 것이 거기에 있지 않음을 발견해줬다. 우리는 <힙합>이 보여준 참신한 시선과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대중과 만나는 점, 그것이 우리의 만화적 관습을 조정하라고 요구하는 점을 찾아내야 한다. 


관습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서


물론 이를 위해서는 코믹스계 만화가 지닌 관습에 대한 학습이 필수적이다. 나는 김환의 <바람의 전학생>을 읽으면서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그 안에서 숨쉬는 코믹스계 만화의 전통과 관습을 만났다. 그것은 <힙합>에서 느낀 반가움과는 다른 것이지만 이 익숙함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어떤 천재 만화가는 ‘나는 만화를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만화를 창작하지만, 어떤 천재는 모든 만화를 분석하면서 만화를 창작한다. 어떤 천재는 자신을 찾아 온 독자를 만나지만, 어떤 천재는 스스로 찾아가 독자와 교우한다. 나는 후자의 천재를 더 존귀하게 여긴다. 그의 균형 잡힌 사고가 우리만화계 전체를 이롭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바람의 전학생>은 우리가 만들어낸 코믹스계 만화의 전통을 지닌 작품으로 매우 뛰어난 무엇도 없지만 부족함도 전혀 없는 작품이다. 나는 이 같은 준작이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새로운 콘텐츠와 미디어를 찾아내고


우리는 우리의 것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 새로운 도약을 전제로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것에 대해 좀 더 높은 자긍심을 지녀도 좋겠다. 형민우의 <태왕북벌기>를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가 있을 때 다시 읽으면서 우리가 참 많이도 파고들어 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작품이지만 좋은 소재였다.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문화콘텐츠 시대의 만화, 만화계, 만화가에 있어 생명 줄과도 같다. 이를 잘 찾은 사람은 금맥을 갖게 될 것이고 이를 잘 찾지 못한 사람은 도화선을 들고 있는 것과 같게 된다. 특히 시의성 있는 작품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 세상의 변화를 1년 정도 앞서서 예측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기르는 것은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이다. 그 기술은 인문 사회과학분야에 대한 폭넓은 관심으로부터 길러지는 것이다. 또 미디어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책이라는 전통적 미디어가 사라질지 말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디지털마인드와 디지털기술에 대한 이해 역시 필수적이다. 우리는 만화를 너무 그리고 보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만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만화는 많은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그 변신의 과정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가치 관리를 더욱 충실히 하고


이미 많은 수의 코믹스계 만화가 온라인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문정후의 <용비불패>도 그중 하나가 됐다. 또한 많은 작품이 영화화 되고 TV드라마화 됐다. 최근 많은 매체들이 색다른 캐릭터와 소재, 긴장감 넘치는 시나리오를 만화에서 찾고 있다. 신영우의 <키드갱>은 피해 사례 중 하나가 되겠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만든 작품에 대한 관리에 게을렀다. 제목, 줄거리, 소재, 인물설정, 그림연출 등 모든 것이 새롭게 창조되어지는 만화라는 힘겨운 매체에 매달려있으면서도 우리의 창조물에 이름을 붙이고 권리를 부여하는 일에 무관심했다. 또한 그들이 자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그들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무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만드는 만화는, 만화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객체는 무형의 가치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개별 요소들이 따로따로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며 그 같은 사례를 매뉴얼화 해서 다른 작품의 프로모션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요구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세계무대에 우리의 작가를 소개해왔고 다수의 코믹스계 만화를 수출하는 쾌거를 올리고 있다. 일본에서 장기 활동 중인 양경일의 도전과 성취는 우리 만화계에 새로운 모델이다. 동남아의 여러 국가에서 수출 실적을 올린 <소마신화전기> 역시 우리를 흥분시켰듯 세계인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Manhwa라는 우리의 브랜드로 세계무대에 입성한 것이 사실이고 우리는 이에 대해 기쁨을 감출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계가 Manhwa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Manga의 대체상품을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Manhwa가 담고 있는 한국적 문화에 대한 경이감과 동경인지, Manga 스타일의 작화법을 지닌 Manhwa에 대한 애정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성과를 낮추기 위한 언급이 아니다. 우리가 지닌 카드 중 세계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들어가 저변을 확보할 작품이 따로 있고 성립기에 들어가 집중도를 높일 작품이 따로 있다. 폭을 넓힐 작품이 따로 있으며 호황기에 들어갈 작품이 따로 있다. 그리고 이제부터 만들어 가야하는 작품이 따로 있다. 

세계의 요구가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만화계가 일본만화에 점령당해 있음을 부인 할 수 없지만 다른 어떤 나라의 만화계보다 높은 자립도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한 국가의 만화를 접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보다 앞서서 세계로 갈 수 있고 세계의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의 것을 세계화 하는 것도 좋겠지만 세계의 것을 우리가 만드는 것도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이미 국내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만화 스튜디오가 미국 등지에 설립되고 있다. 이들 스튜디오는 국내 작가진과 미국 시나리오 작가의 공동 작업을 지원하고 있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원작만화의 라이센스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 출판사가 라이센스를 지닌 영어판 만화가 세계 시장을 목표로 제작되고 유통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코믹스계 만화의 계보를 따르는 새로운 작품군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더욱 긍정적으로 코믹스계 만화의 미래를 설계해가야 한다. 코믹스계 만화의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러 가야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코믹스팸닷컴, <코믹스만화의 세계>(살림, 2005) 출간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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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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