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인터넷만화의 성과, 출판만화계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만화규장각, 2003.08.01


머리말-죽는다는 소리 그만하고 해피통신 좀 날리자


만화계의 구성원 모두가 역대 최대의 불황이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도 불황이라 했고 지지난해에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우리만화계에 불황 아닌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만화현대사`는 `불황의 역사` 속에 있었다.

해방 후 10년을 주기로 2~3년 간의 호황이 있었으나 호황은 곧 불길한 내일의 복선마냥 작용했다. 곧 이어 이런저런 유형의 `마녀사냥`에 쫓겨야 했으니 우리만화계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피해의식을 자신의 작품 수 만큼이나 지니고 있을 터이다.

(사)한국만화가협회, (사)우리만화연대 등 4개 만화가 모임의 소속 작가들은 저마다의 입장과 위치에서 `우리만화가 고사 직전에 와있다`고 외쳐왔고 현재도 외치고 있다. 이 외침이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살갑지 않게 들리는, 또는 좀 과장된 투쟁문구로 치부되는 이유는 익숙할 정도로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해에는 만화의 호황 속에 이른바 질 나쁜 만화가 넘쳐 나서 죽겠다고 하고, 어느 해에는 정부의 만화관련 법령 변화와 단속 탓에 죽겠다 했다. 또 어느 해에는 자신들의 동업자였던 출판사가 문제라고 하고, 자신들과 무관하게 자본가들이 구축한 유통 시스템이 뒤통수를 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PC방의 보급화와 게임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장르의 호황 탓에 경쟁력이 약해져서라고 하더니 이제는 인터넷에 제공되는 다양한 유형의 만화들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이제 됐으니 남 탓 좀 그만하자.


밥그릇은 불황에게만 뺏기는 것이 아니다


최근 출판만화의 장기불황과는 별도로 다양한 유형의 인터넷 만화들이 폭 넓은 인기를 구가하며 토종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기대치까지 높여 놨다. 이들 인터넷만화는 인터넷의 다양한 가능성만큼, 만화의 다채로운 기능성만큼 다채롭게 성장하고 있다. 이를 거칠게 나누자면 크게 3개 분야 정도가 될 것이다.

첫째로 PC통신시절부터 시작해서 초고속인터넷의 대중화와 포털사이트의 폭발적인 페이지뷰를 견인했던 이른바 `스캔만화(종이책의 형태로 유통되던 작품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여 전송하는 방식의 만화)`가 있다. 둘째로 `엽기토끼 마시마로`를 사회문화적 키워드로 등극시키며 인터넷의 중요한 콘텐츠 모델로 떠 올랐던 `웹애니메이션` 또는 동적인 구성의 웹만화(매크로미디어사의 플래시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제작한 애니메이션)가 있겠다. 셋째로는 제로보드 등 개인용 홈페이지 저작도구와 게시판 빌더의 일반화, 게시판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현상이 생기면서 등장한 `일기체 형식의 만화`를 들 수 있다. 이들 작품군은 기존 출판만화의 덕을 봤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것도 만화냐`라는 편향적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만화의 이름으로 불황의 긴 터널을 세차게 뚫고 나온 옥동자 임에 분명하다.

시쳇말로 출판만화의 반품시장 또는 재활용시장으로 치부되는 인터넷만화방의 스캔만화 서비스는 기존의 우리만화계가 구축한 자산을 헐값에 사들여 운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수익성에 있어서도 아직은 제로섬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출판만화의 대체제로 다가올 인터넷만화시장을 준비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색다른 미디어의 파급에 따라 점차 위세가 작아질 만화미디어의 가치를 인터넷을 통해 재확인 시켜주는 한편, 만화콘텐츠를 데이터베이스화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작업이다. 관련기업 입장에서는 여전히 힘든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형편이다.

잡지 중심의 연재만화나 소 화실 중심으로 작업되는 코믹스판형의 만화만을 창작만화의 영역에서 해석하고 이른바 대규모 화실에서 분업생산 되는 대본만화(또는 일일만화), 얼마 전까지 호황을 누렸던 학습만화는 남의 식구마냥 폄하하며 마치 이들이 우리만화의 평균점수를 깍아 먹기라도 하는 듯 선을 긋고 있는 것이 우리만화계이다. 이 측면에서 웹애니메이션(웹만화)이나 일기체형식의 만화(공식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마츄어만화 또는 동인만화 등을 포함)에 대해서도 그들의 생각은 하위 리그에서 터진 홈런 볼 정도로 평가한다. 손쉬운 장르의 무덤에 안주한 채 재탕과 삼탕을 즐기는 것이 그들임을 알고, 그들이 주장하는 `창작만화`가 얼마나 허울좋은 껍데기인가를 만화계 외부에서 조차 알고 있는 터에 새로운 장르와 형식을 개척하며 만화의 지형을 넓혀가는 그룹을 `창작만화의 서자` 쯤으로 여기는 것은 부당한 자세이다. 불황은 개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의 흐름 때문에 오기도 하지만 밥그릇은 결코 불황만이 뺏어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만화의 세가지 유형, 우리만화의 지형을 넓힌다


 1) 온라인으로 옮겨온 만화방, 만화방 식 소비 방식은 개선해야


스캔만화는 기존에 출판됐던 것을 디지털형식으로 유통한다는 측면이 강해서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부여된 분류명이다. 스캔만화 서비스 업체의 사이트는 인터넷만화방으로 불리며 20여 개의 전문업체가 있다. 이 업체들로부터 100위 권 이내의 국내 대표 사이트 80%이상이 만화 콘텐츠를 공급 받아 판매대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에서 만화콘텐츠는 콘텐츠 자체의 판매수익(현재로서는 온라인 상에서는 결제방식과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구매를 연습 시키는 측면이 강하다)과 함께 페이지뷰 수에 따른 광고수익 등을 담보해주고 있다.

만화소비의 일반적인 유형이 대여(대여점에서 관외 대출하는) 또는 입장제(만화방에서 관내 열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이들 업체의 운영방식도 1일 또는 1개월 이용요금을 내고 사이트 내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작품을 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많은 사용자를 끌어 모아 페이지뷰와 트래픽을 높여서 사이트 가치를 높이려는 인터넷기업의 마인드와 만화 시장의 고착화된 소비 형태가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스캔만화 서비스는 대량의 작품과 작품의 종수가 곧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작품의 우수성보다는 작품수가 곧 우수성을 대표하는 형국이 됐다(이는 대본만화계의 공장제 대량출판방식과 코믹스계의 일본만화 밀어찍기방식에 견줄 만 하다. 현재 인터넷에서의 대본만화 열풍이 곧 일본만화에 의해 꺽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영화콘텐츠의 인터넷 VOD서비스 등이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 당 소비 방식을 취하면서 작품 자체의 우수성으로 승부하는 것과는 다른 부분으로 소비시장 확대 등을 위해서는 지양되어야 할 부분이다.

코믹플러스 이코믹스 캔디33 점프스 등의 인터넷만화방 업체가 운영 중에 있고, 박봉성 이재학 황성 하승남 등 3천 여 권 이상의 작품을 생산해낸 대본만화계의 작가들이 독자적인 도메인을 통해 작품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인터넷만화방에 서비스되고 있는 한국어판 만화의 총수는 4만~5만 여권 정도로 추정되며 시장 규모는 연 3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스캔만화의 변용 된 형태로는 기존 출판만화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여 컬러링 작업을 한다던가 이미지 중간 중간에 동적인 개념이나 사운드 등을 삽입한다던가 하는 방식의 작품군이 있다. 주로 성인취향의 작품들로 컬러만화, 음성만화 등으로 불린다.

또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부분으로는 종이책 출판을 목적으로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발표되는 작품군이다. 엔포, 코믹스투데이 등 초기의 인터넷만화서비스업체들이 새로운 출판만화모델로 소개했던 부분이지만 과도한 제작비 등의 문제로 최근에는 중단됐다. 진짜 인터넷만화라는 의미에서 오리지널 인터넷만화, 인터넷으로만 연재한다는 의미에서 온니 인터넷만화 등으로 불린다.

이와 관련 출판만화의 장기불황과 함께 창작무대를 잃어가고 있는 기성작가들이 속속 인터넷을 무대로 독자와 만나고 있으며 새로운 작품 창작에 임하고 있다. 김준범 박희정 윤태호 등 젊은 작가그룹은 물론이고 장태산 김혜린 김광성 등 중견 작가그룹까지 이에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단순히 팬사이트 또는 자신의 일상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작품을 연재하고 홍보하는 등 독자적인 작품 유통망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는 기존 출판만화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인터넷만화방서비스 형식에 대한 반발을 담고 있다. 스캔만화 서비스업체는 인터넷을 기존의 만화전문 총판과 대본소 또는 대여점과 같은 거대 유통망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이는 여타분야에서도 쉽게 포착되는 부분으로 유통망으로서 인터넷의 기능은 입증된바 있다. 반면 만화웹진과 새롭게 작품활동을 시작하려는 작가들의 입장에서 인터넷은 미디어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더 고뇌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인터넷의 미디어 기능은 속보성(뉴스)과 개별성(개인적 관계지향성)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일기체 형식의 인터넷만화가 뜨는 이유와도 관련 있는 대목이다).


 2) 토종 캐릭터의 급성장 웹애니메이션을 타고


웹애니메이션 또는 웹만화는 플래시라는 애니메이션 저작도구를 이용해서 제작한다는 의미로 `플래시`라 불리고 있다. 플래시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초대형 자본과 전문적 기술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에 개념전환을 요구한다.

인터넷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이 저작도구의 등장은 누구나 소규모로(지극히 개인적인 용도로도)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줬다. 이로 인해 하향식 구조를 이루던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 관계가 타파되고 수평 개념의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성립됐으며 개인이 콘텐츠의 생산 유통 소비를 포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엽기`라는 낱말의 의미변환이 개인의 다양한 창작물-의도한 모든 결과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상기하면 된다).

국내 웹애니메이션계의 첫번째 스타라고 할 법한 `엽기토끼 마시마로`가 이 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당시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번졌던 엽기라는 단어도 사전적 의미와는 별개로 `기이한 일이나 현상, 취미, 열정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웹애니메이션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이한 열정`의 생산물로 구체화된 것과 같이 이들의 유통과 소비의 과정도 집단최면에 가까울 정도로 기이한 방식이었다. 기존 문화콘텐츠의 유행은 미디어의 보도나 입소문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이들 콘텐츠는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한 시각적인 문자(이모티콘)와 해당 콘텐츠를 다른 사이트에 옮겨놓는 행위(펌글) 등 색다른 소비방식을 통해서 회자됐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오프라인의 캐릭터 시장으로 옮겨졌고 출판 방송 영화 등 원소스멀티유즈의 사례를 구축해냈다. 엽기토끼 마시마로의 성공이후 졸라맨(시기적으로는 엽기토끼 앞에 놓여야 옳다)은 CF모델로 출세하게 된다. 마시마로와 졸라맨이 무명 아티스트의 인터넷 매달리기에 의해 스타가 됐다면 우비소년은 인터넷 기업의 체계적 프로모션을 통해 스타가 된 케이스이다.

이들 외에도 웹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해 무일푼 성공신화를 구축한 그룹으로는 홍스구락부 청설모 등이 있고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자들이 이 바닥의 스타탄생을 노리며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창작도구로서, 유통도구로서, 소비도구로서 한치의 빈틈도 없이 엽기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함께 가는 법. 성격이나 행동이 좀 괴팍한 수준이었던 마시마로와는 달리 신예 스타그룹의 캐릭터들은 과도한 수준의 엽기성을 자랑한다. 마찬가지로 막대기 인간의 `열혈 모드`를 보여주는 것에 만족했던 졸라맨의 후예들 역시 난폭성과 선정성을 더해가고 있다. 참신하고 역발상적 아이템으로 승부했던 시절과는 달리 아이템의 반복을 과도한 표현의 반복으로 이끌고 있는 그룹들이 여럿 생겨나면서 웹애니메이션의 폭발적 인기가 점차 활기를 잃어가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플래시를 통한 웹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터넷 인구만큼이나 넓고 깊다. 플래시는 인터넷의 멀티미디어 기능을 만화적 수사로 뒤바꿔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 불고 있는 토종 캐릭터의 열풍을 견인한 주체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의 캐릭터상품에 전멸됐던 완구코너에는 웹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한 토종 스타들이 넘쳐 난다. 그러고 보니 캐릭터 비즈니스에 있어서 웹애니메이션은 이제 기본 사양이다.


 3) 멀티미디어게시판과 그림문자이미지로서의 만화가 만났다


속칭 감성만화군으로도 분류되는 일기체형식 인터넷만화의 첫번째 스타는 단연 스노우캣이다. 최근 새로운 캐릭터와 일기로 무장한 신인들에 의해 자리가 주춤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스노우캣으로부터 이들 그룹 만화의 모든 형식이 정형화됐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겠다.

스노우캣은 자기가 갇혀 사는 세상이 전부인줄 아는 인터넷세대(누에고치족)를 대표한다. 자신들의 모호한 열정과 게으른 일상, 생활과 사고의 모순을 스노우캣이 대신 경험하고 다시 보여주며 함께 반성하자고 했다. 무명의 작가가 독백 형식으로 그려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이 작품은 매일매일 일기 형식으로 인터넷에 올려졌고 몇몇 이들을 통해 여기저기 떠돌기 시작했다. 전혀 새로운 만화창작 형식과 편집형식, 유통형식, 소비형식이 생성된 것이다.

일기체형식 만화의 성공을 이끈 일등공신은 단연 미디어로서의 인터넷이다(최근 개인형 대안매체로 각광 받고 있는 블러그의 개념과 일기체형식 만화의 홈페이지는 매우 흡사한 구성을 취한다). 여기에 일등공신을 하나 더 꼽으라면 게시판이 포함될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의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이들 게시판은 가장 최근 게시물이 맨 위에 올라있는 형식을 취한다. 책 등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목록에 익숙한 이들마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터넷 상의 목록집이 곧 게시판이다.

각각의 목록은 그 안에 담겨있는 콘텐츠와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는 파일을 첨부하거나 답글을 달고 점수를 줄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게시판의 종류도 다양해서 일반적인 목록 형식에서부터 다이어리 형식, 달력형식, 메모장 형식, 방명록 형식 등이 있다. 이들 게시판은 일종의 웹프로그램으로 호스팅업체(웹사이트를 만드려는 이들에게 저장공간 등을 임대해주는 업체)에서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유료 또는 무료로 제공해준다.

게시판 용도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제로보드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게시판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스노우캣을 비롯한 다수의 일기체형식 만화의 주인공들이 하이퍼이미지 기능을 손쉽게 만들어주는 이 웹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웹상에 작품을 올리고 있다. 이들 작품은 그림연출을 주가 되고 대사를 음성문자 형식으로 부가 배치하는 기존 만화와는 다르다. `그림으로 설명할 것을 글로 설명하지 말라`는 만화계의 원칙과는 반대로 이들 만화에서 글은 그림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 된다. 그림이 컷을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문자메시지를 강화하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만화의 문법을 소화하지 못한 초보적 형식이라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인터넷만화의 문법을 덜 소화한 이들의 주장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일기체 형식의 인터넷만화에 무슨 정형화된 문법이 구축된 것은 아니겠으나 이들 작품은 한결 같은 흐름이 존재한다. 이를 조금만 유심히 보다 보면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진 여는 텍스트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일기체 또는 서간체 형식으로 구성된 이들 만화의 구성방식은 게시판에 올려진 네티즌들의 문자화된 사담과 동일하다.

이 그룹의 작품군으로는 앞서 소개한 <스노우캣>을 필두로 화사한 이미지와 따듯한 감성으로 남과 녀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대박 신화를 창조한 심승현의 <파페포포 메모리즈>,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기간 지배하고 있는 정헌제의 <포엠툰>과 <완두콩>, 엽기성에 사회성을 보태면서 참여만화적 작품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강도영의 <지치지 않을 물음표>, 엽기에 이은 폐인 신드룸과 함께 떠오른 김풍의 <폐인의 세계>, 강력한 캐릭터성으로 이 바닥 최고의 상업성을 확보하고 있는 <마린블루스>와 <문스패밀리> <퍼굴이의 푸른 공작소>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인터넷의 개인홈페이지 또는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소개됐던 것으로 작품의 외형이나 구성, 소비형식에 있어서는 스노우캣을 따르고 있다(책으로 출판됐을 때와는 별도로 이들 작품의 경우 홈페이지의 구성방식과 운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스노우캣이 단아한 그림체와 철학적 메시지와는 별도로 작품형식에 있어서 당대의 빅히트작이었던 <광수생각> 유를 답습하고 있는 반면, 이들 작품은 여기저기 떠도는 잠언 유의 감상적 문구와 아주 개인적인 우스개 이야기를 팬시 성향이 높은 이미지와 함께 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일종의 그림일기 형식으로 메시지가 쉽고 빠르게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글과 그림을 통한 만화의 메시지 전달방식이 감성적 호소성에 있어서는 영상미디어나 문자미디어를 앞선다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만화가 단순히 영화의 출판본으로서가 아니라 보는 그림과 보는 문자로 이루어져있음을 상기시켜준다.


감성만화 베스트셀러시대, 우리만화계는 출판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게시판의 문자가 보는 개념이 강한 것과 같이 일기체형식 만화는 `보는 문자`의 개념 안에 있다. 게시판의 문자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에 능한 이들은 만화라는 이름을 빌어 더욱 효과적인 문자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일기체 형식 만화문법을 새롭게 구축해 냈다.

일기체 형식 만화는 그 자체로 독자의 답변과 질문을 끄집어 내고 직간접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 작품 내에서 작가 또는 캐릭터는 늘 독자와의 대화나 참여를 갈망하고 있고 이들은 담당편집자 하나 없는 무명의 작가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다음 작품을 이끌어낸다. 열혈독자가 보낸 소량의 엽서에 의존해서 일반적 독자의 반응을 살피려 했던 만화계의 의사소통 시스템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수한 독자의 반응을 일반적으로 해석하며 마니아성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었던 것이 우리만화계의 시장조사 능력이었다. 그 실패를 본보기로 대중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마니아 시장 마저 잃어버렸던 것이 또 우리만화계이고 보면 이들이 매 작품마다 게시판을 통해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을 거쳤던 것은 분명하게 한 수 배워야 할 부분이다.

최근 서점 판매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작품들 중 상당수가 일기체 형식 인터넷만화 모음집이다. 우리만화계가 한번도 점령해 본 적 없는 대형서점의 판매순위표에 이들이 장기 집권을 했거나 하고 있다. 전반적 출판불황과는 별도로 베스트셀러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너무도 당연하고 멋스럽게 열려있다. 그러나 우리만화계의 빅리그 편집자들은 근무 시간을 쪼개서 이 작가들의 작품을 모니터로 훔쳐볼 줄만 알았지 누구 하나 나서서 출판하겠다는 이는 없었다. 이 작가들의 후일담은 더 기가 차는 수준이어서 몇몇 만화전문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것도 만화냐`라는 투였다고 한다(그나마 학산문화사의 경우는 졸라맨과 마린블루스를 접수했다).

스캔만화가 1차적 생산과 소비시장을 경험하고 2차 시장(험하게 이야기하는 쪽에서는 반품시장 또는 중고품시장이라고도 한다)에서 재가공 소비되는 형식을 취하면서 3차 시장 생성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면, 웹애니메이션은 1차 생산과 소비 자체를 2차 시장 창출(가수들이 방송출연을 음반 홍보용으로 하듯 인터넷을 홍보 창구로 활용하고 실물 캐릭터 상품을 개발하겠다는)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일기체 형식 만화의 경우는 그 형식상 스캔만화 분류의 오리지널 인터넷만화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탓에 출판을 목적으로 하거나 출판물의 형태로 2차 소비시장이 창출된다. 1차 생산과 소비 시장을 곧 소멸로 받아들였던 기존 출판만화계가 놓치고 있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1차 소비가 곧 소멸로 연결되는 것이 출판만화계의 관습이다. 인터넷에서 1차로 소비된 작품은 상품성이 소멸된 것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명백하게 빅리거들의 시대착오적 오류로 판명이 났다. 인터넷에서의 1차 소비가 2차 소비시장을 여는 홍보 무대였음을 간과한 것이다. 별다르게 만화작품의 홍보도 하지 않으면서 이미 홍보가 끝난 작품을 무시한 꼴이다.

이 그룹의 작품군이 출판물로 변하면서 보이는 공통점을 찾다 보면 기존 코믹스만화 출판물과 대본만화계의 출판물이 지닌 장정 자체의 허무맹랑한 일관성과 마주하게 된다. 만화출판 관계자들은 무슨 큰일 날 소리냐고 하겠지만 대본계 만화를 제하고 판매용이라는 코믹스계 만화조차도 마치 대여점에 많은 양의 책을 꽂을 수 있도록 규격화를 시켜 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필자는 여러 채널을 통해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디자인하지 않고 그저 규격화와 관행에 따라 동일한 규격의 책을 생산하고 있는 코믹스계 만화출판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때 이를 문제시했다가 만화출판의 문외한 취급을 받은 적도 있다). 규격이 정해진 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업활동에 생산력을 향상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규격화가 제조업이 아닌 출판이라는 흥행사업에 있어서까지 철두철미한 원칙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책이 무슨 극장의 스크린도 아니고 TV브라운관도 아닌데 크기가 같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일기체 형식 만화가 그 알맹이 뿐만 아니라 소장 가치에 있어서도 평가 받는 부분은 책 자체의 장정과 편집이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다. 복간작 열풍이 긍정적 평가를 받았던 측면도 바로 이 장정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팔겠다고 하는 상품이라면 팔릴 수 있게 상품화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여점에 팔 수 있게, 대여점이 관리하기 쉽게, 출판사가 만들기 좋게 만들어서는 뻔한 답변 밖에 들을 수 없다. 가령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만화출판계의 빅리거 편집자에게 주었다면 이들은 후다닥 코믹스계 만화의 규격에 맞춰 무슨무슨 코믹스시리즈 몇권째라는 번호표를 단 누구누구 단편집으로 찍어 놓고 홍보는 언감생신이고 언제 찍었는지도 잊어 버릴 것이다(실제로 그런 작품도 여럿 있었다). 물론 칼라 원본과는 별도로 만화지(일명 똥지)에 시커먼 단도로 인쇄했을 것이 뻔하다. 이런 경우를 `줘도 못 먹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만화계는 창작에 대한 인식적 편가르기와 유통 방식에 따른 자기 밥그릇 챙기기, 만화의 기능성과 가능성을 스스로 폄하하는 동족 헐뜯기 등에 매우 능숙한 편이다. 창작만화의 영역은 이른바 코믹스에 존재하고 대본만화는 공장만화이며 학습만화는 끈 떨어진 작가의 마지막 무대이고, 인터넷만화는 데뷔도 못한 아마츄어의 만화라는 식이다. (사)한국만화가협회는 대표성을 인정하지만 대본만화계와 중견만화가들의 이익집단이고 (사)우리만화연대는 민족진영의 이념성이 너무 강해 일반성을 지니지 못한다고 난리다. 그래서 대체제로 젊은작가모임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본계 작가군 안에서도 다작과 작가주의를 나누고 출판사도 대본계와 코믹스계를 나눈다. 코믹스계 출판그룹에 있어서도 언론 바탕과 딴따라 바탕을 나눠야 한단다. 이렇게 나누고 저렇게 나누고 담쌓고 쪽방에 앉아 세상이 너무 좁다고 투정 된다.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전혀 다른 부류와도 연합하고 한 식구 대접을 하려는 여타 장르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다. 폭은 넓혀야 하고 깊이는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만화계는 많은 것들을 바꿔가야 한다.


다리말-인터넷 중심의 시대변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한 때


인터넷은 우리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넷이 있어서 편리한` 것은 더 이상 인터넷을 설명하지 못한다. `넷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생겼고 `넷에서 만 가능한` 일들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넷에서 불가능한 것들은 넷 밖에서도 존재성을 찾지 못한다. 넷이 곧 생활이고 넷 안에서 역사가 진행된다. 전대에 느낄 수 없었던 이러한 변화는 넷과 생활을 하나의 영역에서 해석하게 만든다. 넷과 생활이 동일시되는 국면을 인터넷 일기체형식 만화를 축으로 거칠게 살펴보면 이렇다.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우리는 넷을 통해 일기를 쓰고 일정을 체크하고 주소록관리를 하고 업무파일 등을 관리하게 됐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을 몇 가지 뽑아낼 수 있다. 첫째는 저장공간으로서의 역할이다. 플로피디스크의 이동성, 하드디스크의 넉넉한 공간과 폐쇄성이 무시되고 원격 접속이 가능한 서버의 공간이 필요해 진 것이다. 불안한 저장매체보다는 언제 어디서라도 접속도구만 있으면 확인할 수 있는 웹디스크가 더 요구됐다. 둘째는 이를 원격지에서 활용하려다 보니 생겨난 개인적 공간이다. 비공개형일 수도 있지만 공유가 필요할 때도 있어서 홈페이지가 만들어진다. 자신의 일상을 가상공간에서 불특정다수에게 노출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광역성이 더해지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터넷과 일기체형식 만화의 상관관계를 확인 할 수 있게 된다. 저장공간은 콘텐츠를 모으거나 생산하게 하고, 공개봉?사이트의 외형을 꾸미게 하며, 접속도구는 다른 사용자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다.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던 홈페이지가 곧 개인형 미디어가 되고 독자적인 형태의 유통망이 된 것이다.

인터넷 일기체형식의 만화가 우리 출판만화계의 걱정과는 전혀 반대로 승승장구한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득하고 실천한 집단에 의한 것이다. 작가의 창작은 더 이상 골방의 작업이 아니고, 지식의 저장과 축적 또는 배포는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콘텐츠는 콘텐츠 자체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넷은 이들을 살찌우고 성장시키며 전혀 새롭게 진화 시켜가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던지 적극적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꿈이 여전히 꿈으로 존재한다면 그것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꿈 이후는 황폐함만 반복될 것이다. 꿈꾸고 있다면 실행해야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부천만화정보센터,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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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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