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생각
1997년 대표적인 보수언론으로 통하는 「조선일보」는 혁신적인 지면편성 전략을 수립한다. 이른바 테마신문. 시사뉴스와 생활정보를 별도로 분리하고 신세대 주부 직장인을 대상으로 기존의 신문지면에서 담아내지 못했던 심층정보를 요일별로 수록한다는 것이었다. 문화 생활 여가 육아 컴퓨터 등의 컨셉 지면은 보수언론 「조선일보」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신문사 편집방향의 변화에 따라 담당 기자들에게 던져진 과업은 ‘이건 조선일보가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의 아이템 찾기였다고 한다.
박광수(1969년 생)의 『광수생각』은 1997년 4월 4일 전혀 「조선일보」 같지 않은 레인보우 지면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1회 원고의 내용은 주인공 신뽀리가 바퀴벌레를 퇴치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말 많은 바퀴벌레 한 마리를 잡아다가 뒤 꽁지를 라이터불로 3일 밤낮 지진 후에 풀어주면 집에 있는 모든 바퀴벌레가 이주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엄숙함을 버리자고 했다지만 결코 가벼운 농담도 아니었다. 2000년 말이나 되어야 발칙한 상상력 또는 금기를 파타하는 재치라고 답했을 엽기적인 내용이었다.
박광수는 90년대 중후반 거리문화의 이정표 구실을 했던 대표적 무가잡지 「페이퍼」에 일러스트 느낌이 강한 짤막한 만화를 연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보고 「조선일보」 문화부가 혁신지면의 임자로 그를 기용했다. ‘광수만가’라 이름 붙인 작품을 『광수생각』으로 조정하고 그림 아래 짧은 글을 넣는 형식으로 1일 연재에 돌입했다. 가장 「조선일보」 같지 않은 만화 『광수생각』은 이렇게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인기만화가 됐고, 신문만화의 전혀 새로운 지형을 구축했다.
『광수생각』 이전까지 1칸 정치만평, 4칸 생활만화, 도서 기준 2~6페이지 분량의 연재만화를 수록하는 것이 신문만화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광수생각』은 이런 기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방법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광수생각』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고 유행을 만들어냈다. 먼저 주인공 신뽀리와 동물 캐릭터 작화법 및 성격 설정은 수 많은 만화가들에 의해 재사용됐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직사각형 박스를 자유롭게 분할하여 네레이션 형식으로 이야기를 처리하고 그림 밑에 작가의 코멘트를 다는 작품 구성법은 이른바 ‘광수생각 스타일’이라는 갈래를 만들 수 있어 정도로 많은 작품에 활용됐다. 굵은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쓴 듯한 만화 대사의 서체는 컴퓨터 디자인용 폰트로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다. 또 작품의 컬러 작업에 쓰인 색깔과 전체적인 색감은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고,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표현해낸 갖가지 효과 사용법도 수많은 시작이미지에 응용됐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은 단행본으로 발행되어 100만부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고, 주인공 신뽀리는 PC게임은 물론 각종 영상물과 광고에 등장했다. 『광수생각』은 지면 위에 올려진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지면 밖에서 거리를 채색하고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거름이 됐다.
『광수생각』을 기존 만화의 갈래로 본다면 비주류만화 만화일러스트 신문만화의 영역에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주류문화가 아닌 거리문화를 다루고 있었던 잡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작품의 내용이 일상과 신변잡기를 다루고 있다. 그 진행 방법에 있어서는 다소나마 금기의 영역을 넘나들었고 사회 비판에 적극적이었으나 그 해결 방식에는 냉소적이다. 이런 특징은 90년대 초중반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만화운동세력 또는 만화동아리 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의 대개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서 만화적 일러스트 작업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신문만화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했다. 또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하는 이들의 노선도 분명하게 나뉘어서 셋은 전혀 다른 영역으로 인식됐다. 『광수생각』은 이 각기 다른 지형을 크게 흔들어 하나로 묶어 버렸다. 「조선일보」의 『광수생각』이 빅히트를 치자 「동아일보」가 홍익대 만화동아리 네모라미 출신의 이우일을 이끌어내면서 『도날드닭』으로 대응 편성 전략을 수립했다. 이후 다른 신문들도 비슷한 성향의 작가와 작품을 수록한다. 네모라미 출신인 홍승우 이관용 등이 뒤를 이었고 독립만화를 내세웠던 『화끈』의 김경호, 만화실험 『봄』의 강성수 등은 이후 스포츠신문에 자리를 잡았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또디』 등도 동일선상에서 논의 될 수 있다. 디자인을 전공한 비주류만화작가가 색다른 신문만화를 지탱하는 축이 되는 전형을 마련한 것이다. 이 같은 전형 구축의 선례를 굳이 찾는 다면 『한겨레그림판』의 박재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재동식 시사만평의 인기는 운동권 성향의 장봉군 손문상 등을 이끌어 냈다.
만화가라는 직함을 부담스러워하는 박광수는 단국대학교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디자이너에 가깝다. 그런 그의 작품 『광수생각』 역시 100%로 만화로 여기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않다. 『광수생각』은 97년 디자인계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선정됐다. 박광수는 이 작품으로 98년 한 잡지가 선정한 차세대 디자이너 15인 중 한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광수는 작품의 인기와 함께 개인적인 유명세를 자주 치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은 98년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경찰에 입건 된 것과 2000년 부인과 이혼 전 여자관계가 밝혀지면서 도덕성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로인해 『광수생각』은 2000년 11월21일로 연재를 중단했다. 연재 중단작인 1095회에서 박광수가 던진 코멘트는 산의 정상에 오른 산악인이 ‘태극기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이만 하산하겠다’는 것이었다. 2001년 9월3일부터 「조선일보」에서 다시 연재되고 있다. 단행본은 소담출판사에서 신문 연재분 3권이 묶여 나왔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부천만화정보센터, 2002. 11. 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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