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애 절필선언`에 붙여, 2003


<한겨레>신문의 만화지면에 온라인만화사이트 코믹스투데이와 관련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내용은 이 회사가 경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작가들의 원고료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급기야는 ‘작가파업’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만들었다는 것. 이어 이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영화정보지 <씨네21>은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입을 빌어 온라인 만화서비스 사업 모델의 실패가 작가들의 파업과 절필을 불러왔고 불황의 만화계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는 투의 칼럼을 실었다. 


최소한 ‘한겨레의 독자’들에게서 코믹스투데이는 작가의 고료를 지불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갈취한 악덕 업체이며 폐업 직전의 업체가 됐다. 원고료 체불과 관련 연재작가들과 함께 게시판 ‘점거 농성’과 가두시위를 진두지휘한 박무직은 만화가들의 권익보호를 대변하는 투사가 됐고 만화판은 가장 기본적인 생산 질서도 잡혀있지 않은 소꼽놀이판이 되버렸다. 그리고 또. 작가 이정애는 원고료 때 먹히는 것이 분하고 생활고가 극심해 빚을 지면서까지 창작을 할 수가 없어 절필을 선언한 작가가 됐다. 

이정애는 <열왕대전기><소델리니 교수의 사건수첩>등 우리 순정만화계에 다수의 걸작을 제출한 중견 작가이다. 철학적 사유가 듬뿍 담긴 문어체의 대사와 동성애 취향을 짙게 풍기는 파격적인 성의식 등으로 소수 독자층을 열광시켰으나 그것이 이유가 되어 작품의 부분 삭제 및 수정 요청(심의 기관 및 출판사 자체 심의)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 연재 운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연재잡지가 잇따라 폐간되는 등의 심적 고통을 자주 겪었다. 


다작 성향이 아니어서 한 작품의 연재가 중단되면 함께 일했던 서너명의 어시스트 급여를 감당할 수 없었다. 물론 어시스트를 두지 않고서는 잡지의 연재주기를 맞출 수도 없다. 결국 동성애 코드가 자주 등장하는 작품 성향은 청소년 보호법과 음란성 시비를 이겨내지 못했고, 출판만화산업의 급속한 불황 국면에 따른 잡지 폐간과 잇단 연재 중단은 작품 창작 라인의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작가는 스스로 즐겼던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창작을 하기 전 단계와 하고 나서의 단계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어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절필은 프로작가로서의 절필이다. 다시 말해 만화잡지에 연재를 하고, 장편 작업을 하기 위해서 어시스트들을 두고, 화실을 운영하던 생활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절필은 프로작가로서이며 아마츄어 작가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프로작가 이정애라는 이름을 잊을 만큼 깊숙하게 숨어있을 것이고 이정애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새로운 작품, 심의나 연재중단의 외압과 관계없는 작품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적은 글의 뒷면에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정애의 모습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의 선언이 절필이나 생활고 등에 가린 `밥그릇 싸움`으로 격하되는 것이 더 두렵다. 


이정애의 선언과 절필은 현 상업적 시스템과의 결별이다. 마치 원칙처럼 지켜지고 관습에 따라 관례적으로 이뤄지는 만화창작과 그 창작인이 지녀야하는 고통에 대한 단절이다. 스타만화가 이현세가 만화공장식 창작의 문제를 `후회`하며 내린 절필, 정부차원의 단속대상으로 그의 만화 <천국의 신화>를 보는 사회에 대해 선언한 절필과는 격이 다르다. 또 같은 매체에 연재를 했던 일부 작가들이 농성 중에 `화염병` 던지듯 내뱉은 `절필`과도 다르다. 

나는 그가 선언한 `절필`을 응원한다. 그가 16년간의 프로작가 생활을 마치겠다고 눈물핏물 찍어 써내려 간 자기고백과 약속을 기대한다. 그는 분명 말했고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자신의 흔적을 찾지도 못할 정도로 새로운 작품을 하겠다고. 다행히 우리 만화계에는 현재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시스템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스템만이 만화가 아니고 그 곳에 있어야지만 만화가인 것도 아니다. 그것이 무슨 수준과 격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만화의 드넓은 벌판을 포기하고 울타리 쳐진 오두막집 한 채를 얹으려는 자들의 우매한 패거리 만들기에 불과하다.


그는 아마츄어 창작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창작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절필은 분명한 반격이고 개혁을 준비하는 자의 주장이다. 이미 프로의 무대에서 비주류적 감수성과 진보성을 대변했던 작가이다. 그는 프로의 무대를 향해, 작가의 창작이 아닌 시스템의 생산물만 넘실대는 그곳과 결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응원하고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그가 우리 만화계를 떠나지 않을 것임에 `그대 잘 가라`가 아니라 `그대 이 편으로 어서 오소`라고 외칠 것이다. 그가 온다면, 그의 천부가 담긴 창작이 비주류의 영역에서 나온다면 우리 만화계는 더 다른 작가를 얹을 것이고 그가 이룩한 더욱 새로운 영역을 가질 것이다. 


주류를 떠난 스타작가가 비주류의 영웅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런 꿈을 이정애를 통해 꾸어본다. 

제발 어서 오라. 

어서 와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획일화된 이 판에 

댁의 향내가 진동하도록 하라.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코믹스팸닷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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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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