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02, 오규원-아내는 또 하나의 연을 잃었다 2007.2.6

시인이 되려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장사를 배우려 했다. 

궁핍이 주는 시를 걷어 올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때 한 여자를 만났다.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이 쬐그만 여자'


내가 군인이 되자 여자는 시인이 되겠다고 학교를 옮겼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95학번이 됐다. 


내가 민간이이 되었을 때 여자는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현역 문인 출신 교수들의 수업을 들으면서 

문지사 계열의 시집을 탐독했던 여자는 

다양한 사례연구들을 통해 자신의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만들고 부수는 과정을 반복했었다. 


김혜순의 시에 탐닉했던 여자는 졸업을 했고 

만화가의 꿈을 접고 시인이 되려했던 나는 만화평론가가 됐다. 


자신의 언어가 좀 더 선명해지기를 바랬던지 

여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로 자리를 옮겨 무대 위에 시를 쓰려했다. 

그리고 기회있을 때마다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이가 오규원 시인이다. 


만화평론가가 된 나에게 오규원 시인은 

김현의 서사기호학적 만화분석론과 궤을 같이 한 

선구적 만화비평 사례를 만든 선배 비평가였다. 


시인이 되려했을 때 그의 시를 접했고 

여자의 학교에서 마주했던 오규원 시인은 

좀 열려있으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날 선 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조련사였다.


가스등인가하는 명동의 호프집에서 

여자의 문우들과 함께 앉아 건배를 청해왔던 그 이는

그저 생맥주 잔 너머로 노란 이빨을 보이던 중늙은이였다.


날 것의 언어를 드러냈던 그의 시를 이해하기에는,

그의 시론을 받아들이고 시학의 발전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를 얻기까지는 

그 후로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여자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의 아내가 됐다.

나는 한 출판사의 직원으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만을 되뇌이는 

그저 그런 직장인이 됐다. 

내가 틈틈이 만화평론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내는 시인도 연출가도 아닌 두 아이의 엄마이자 내 아내로서 살고 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느라 우리는 가끔 아내의 선생과 문우들을 만나로 이천으로 간다. 


아내의 동문이자 선생이고 오규원이라는 뿌리에서 자란 이창기 시인을 만나로 가는 것이다. 

이창기 시인의 집에는 호방한 그의 성격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들른다. 

그곳에서 아내는 육아문제로 눌러둔 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때는 다 알아차리지 못했던 오규원의 시와 삶, 

그 이의 시도와 입장에 대해 취기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논한다.


그럴 때 아내는 행복해 했었다. 

나도 즐거웠다. 


2007년 2월 1일이었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더 

아이가 아닌 어른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큰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좀 더 빼려는 내 의지 탓에 관계가 냉랭해졌다. 


아내는 베란다에 겨우 꾸며둔 서가에서 오규원을 찾아 읽고 있었다. 


2월 2일이었다.

귀가 한 내게 아내는 시인의 부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가자, 가자하면서 찾지 못했던 시인의 집에 끝내 발을 들이지 못하고

영정 앞에 서야한다며 두아이를 두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엄마가 사라진 것을 안 둘째 아이는 쉬지 않고 울었다.

두리번 거리고 불안해하고, 어쩌지 못해 울었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를 만나 엄마가 된 아내의 속마음이 그랬을까. 

시를 놓고 무대를 놓고 불안에 떨며 

울기도 여러번이었다. 

이제 또 스승을 놓고 아내는 불안해한다. 


여자에게 꿈을 주고, 아내에게 꿈을 놓지 않을 만큼의 시력을 남긴 시인이 잠들었다.

아내는 또 하나의 끈을 잃었을 테다. 

또 한번의 상실감에 허덕이고 있을 테다.

첫째의 등교길을 챙기면서 

장지에 서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또 울었을 테다.


아이들이 크면 어렵더라도 놓았던 것들을 다시 찾겠다고 했던 아내다. 

그런데 자꾸만 놓았던 연들이 사라진다. 

아내만큼이나 그 이를 보내기가 힘겹다.  



-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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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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