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리뷰] 박무직 박석환 박성식 박창석 송년 대담, 2002년

2014. 5. 10. 18:16Focus/촌평

새해를 여는 송년 대담

분야별 전문가 4인이 말하는 '2001년 만화계가 배운 것'

연말 분위기를 일깨우는 반짝이는 거리의 장식들과 함께 송년회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어갈 즈음인 지난해 12월 19일, 코코리(KOCORI)에서는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 만화계의 소문난 '일꾼(!)'들, 열정은 물론이거니와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네 남자를 한자리에 초대해서 2001년 만화계를 결산하는 자리를 가진 것.

 

 

2001년 우리 만화계의 좌절과 성공, 숱한 실패와 그 속에서 걷어올린 값진 경험들을 그들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본다. 만화작가, 온라인기획자, 잡지편집장, 유통책임자 등 만화계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젊은 만화인들의 고민과 전망 속에서 새해 우리 만화계가 힘모아 일궈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다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방담일시: 2001년 12월 19일(수) 저녁 7시 ~ 9시
◆ 장소: 한국만화문화연구원(서울 서초동 소재)


◆ 참석자

-박무직
만화작가(온/오프라인 만화연재)
주요작: '하늘 속 파람 그리고 별' 'Feeling' '무일푼 만화교실' 등


-박석환(KOCORI 연구원)

만화평론가
온라인만화사이트 '코믹플러스' 기획실장


-박성식

만화잡지 '웁스'(2002. 1월 창간예정) 편집장
학산문화사 '찬스' '부킹' '해킹' 등 창간. 前 '부킹' 편집장


-박창석(KOCORI 연구원)

신생만화업체 'C&C레볼루션' 출판사업팀장
前 (주)초록배매직스 영업기획 부장

 

*진행 성은정(2기 연구원)
6기 연구원 김창균(X2Comix사업부과장)과 김상희(고려대 재학)가 패널로 참여.

 

◆ 방담주제
- 인터넷 만화의 도전과 실험, 무엇을 남겼나
-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
- 만화시장 불황의 원인?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 2001년의 주요 성과와 새해에 거는 기대


'인터넷 만화'의 도전과 실험, 무엇을 남겼나

진행: 박성식 편집장님, 박무직 작가님!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자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연구원이 12월초 사당에서 이곳(서초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두 분은 이사 후 처음으로 방문해주신 분들이시기도 합니다. 연구원으로서, 두 분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만화계의 많은 분들이 연구원에 오셔서 함께 얘기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자주 주어지길 바랍니다. 어렵사리 만화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골고루 자리한 만큼, 오늘은 형식에 구애됨없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많은 얘기들이 오가길 기대하겠습니다.

박석환(이하 석): 약간 어색하실 듯해서... 제가 먼저 얘기를 꺼내도록 하겠습니다. 각 분야별로 모인데다, 네 박(朴)씨가 모였으니 2002년 만화계가 대박이 될 수 있도록 풍성한 얘기 나눴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청탁 원고를 준비하는 중에, 2001년 신문기사들을 쭉 훑어봤더니 2001년 1월에 한 기자가 "2000년 잡지들이 줄지어 폐간됐고... 2001년에는 온라인 만화사이트들이 새로운 기대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온라인이 새로운 유통망으로 형성되었으면 한다"라는 내용의 글을 썼더군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해서 그 부분에 대한 의견 우선 나눠 보고 싶습니다. 연초에 이처럼 온라인 만화사이트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는데, 개인적으로 어떻게들 보셨는지요?

박무직(이하 무): 제 생각엔 온라인 만화사이트에 대한 기대치가 최고로 하락한 때가 2001년 초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온라인에 대한 기대치나 전망, 공포감... 이런 것들은 1999년말에서 2001년 초엽까지 발생하다가 이후로 하락했습니다. 시끄럽던 엔포(n4) 사건도 대충 정리되고 망할 데는 다 망하고 하면서... 2001년에는 온라인에 대해서 기대치가 높았다기보다는 거꾸로, 살아남으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기존의 무료 사이트 운영이나 단순히 코스닥 상장을 위한 장난질, 이런 것으론 더 이상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구체적인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각 사이트마다 '공짜'라는 광고를 슬슬 접어가면서 유료화를 준비하려는 자세, 노력들을 보이기 시작했죠. 그전까지는 '온라인 만화사이트가 생겼다' 정도였다면, 2001년에는 유료화 대세 속에서 실제 유료화에 성공한 곳이 몇 군데 생겼다는 점이 의의가 아닐까요. 후반기 들어서 최근 코믹스투데이(코투)를 중심으로 또 한차례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만....

석: 1999년 말경부터 작가들과 불거진 문제를 비롯 엔포(n4)가 여러 실망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코투의 모델, 다시 말해 만화판형을 그대로 유지한 신작을 업데이트하면서 그것을 출판과 연계하겠다는 전략은 적어도 만화계 내에서는 위협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엔포가 갉아먹은 온라인에 대한 작가들의 신뢰를 다소 상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무: 그나마 많이 회복했었죠. 작가들 사이에서 온라인 연재작가는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잡지기자들도 온라인 연재는 경력으로도 안쳐준다는 식의 얘기들이 오갔고 현재도 여전한 게 사실입니다만 많은 부분 상쇄되었습니다. 그 점은 온라인 사이트들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만화작품의 무분별한 (인터넷상의) 판매, 단순한 스캔 서비스, 무료 또는 와레즈 사이트의 문제, 만화시장 침체 등이 서로 맞물려서 코투의 유료화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무료의 잔재를 넘어야하는 난관과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인터넷 만화가 만화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박성식(이하 성): 오프라인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온라인에 대해 섣불리 말하기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만, 인터넷만화와 오프라인 만화는 애초에 서로 다른 길을 갔어야 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출판만화가 나름의 독자층과 그에 기반한 만화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면, 인터넷 만화는 애초부터 네티즌들을 상대로 한 독자적인 기획들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만화의 본질은 그대로 살리되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감동 자체는 틀리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작품 내적인 면에서의 고민이 선행됐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엔포가 '한국 인터넷 만화의 표준을 제시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장에 접근한 것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만화산업을 단지 IT산업으로 접근했고, 그런 흐름 속에서 정작 '만화는 문화다'라는 생각은 등한시 되어버린 면이 있습니다. 만화문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나 기여라는 측면보다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인터넷 과열열기에 편승한 불순한 의도들도 사실 있었다고 봅니다. 만화문화를 확장시킨다는 관점에서 온라인 사이트들은 그 매체적 장점을 활용, 만화는 아이들의 것 또는 유해한 매체라는 선입견들에서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만화문화의 혜택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분명 남습니다.

인터넷 만화의 문제점으로는, 첫째 대부분 만화사이트들의 주 아이템이 CP사업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만화컨텐츠들이 온, 오프라인 양쪽에서 판매된다는 것이 사업적으로 어떤 메리트가 있을까요. 다시 말해, 단순 라이브러리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스캔만화 서비스의 전망은 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온라인 CP기업들은 수십 년간 노하우를 축적해온 오프라인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둘째로, 웹진의 문제인데... 인터넷으로 오리지널 만화를 선보이겠다는 코투의 시도는 나름대로 참신했고 방향성도 좋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만화의 감동과 온라인의 감동이 구별 안되었고, 고유한 자기 작가를 확보하고 발굴하려는 노력이 부재했었다는 게 한계로 지적됩니다. 더하여 웹진들이 대거 등장, 라이브러리 경쟁을 하면서 '작가 데뷔' 자체의 인플레를 유발시켰습니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이 일정한 수련기간을 거치고 내공을 쌓은 뒤에 데뷔를 해야 안정적인 작가군이 확보되고 우리 만화의 작품 경쟁력도 확보가 될 수 있을 텐데, 대여점 만화와 인터넷 만화를 거치면서 작가 데뷔가 너무 가볍게 취급되게 돼버렸습니다. 20대 초,중반의 지망생들이 불과 어시스턴트 1,2년을 거친 뒤에 너도나도 데뷔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한국만화의 퀄러티를 하향 평준화시키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창석(이하 창): 시장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온라인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라고 봅니다. 첫째, 메이저 출판사들이 시장의 60-70%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온라인이 틈새시장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얘기는 주로 잡지 형식을 띤 엔포와 코투에 제한되는 것입니다만... 둘째는, 총판들의 의식구조를 변화시켰다는 것이지요. 오프라인 잡지를 해야 출판사다라는 고정관념에서 종이책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도 잡지가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엔포나 코투는 각각 한계가 있었습니다. 엔포의 경우는, 아웃소싱이라는 방법으로 오프라인 출판을 시도했지만, 수익분배를 놓고 서로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원고(작품)이 먼저냐, 유통이 먼저냐 하는 데서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만화유통이 현금 아닌 어음시장이기 때문에 적어도 6개월, 1년을 두고 봐야 하는 상황도 합의를 어렵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 오프라인 아웃소싱 자체가 불가했던 것이죠.

이런 문제들 때문에 코투는 자체 출판을 시도했습니다만, 코투의 문제는 온라인 작품을 가지고 기존 오프라인 유통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매체적 특성상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분명 다르고 독자층도 다릅니다만, 온라인의 특성을 살리는 적절한 유통을 구현할 여력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기존 오프라인 시장의 틀을 그대로 쫓아가다보니 온라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단행본은 독자들에게 외면당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

석: 몇 가지 입장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엔포가 '온라인 만화의 표준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실패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가로만화를 시도했다거나 플래시 '엽기토끼'를 발굴했다거나, GIF 애니를 만화 칸 속에 시도했다거나 하는 실험적인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93년경부터 시작되어 5년여 축적돼온 인터넷 만화의 노하우를 가지고 본격적인 활성화를 시도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철학 또는 사고체계일 수 있겠지만,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TV와 비디오가 다르지 않고 비디오와 영화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영화가 주는 만화가 주는 즐거움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책과 인터넷이 서로 상반되는 모델이 갖고 있다거나 대중과 접촉하는 기호가 틀리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기존에 오프라인이 받아내지 못하던 공간을 지금의 온라인이 메워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이 기득권을 가지고 큰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면 온라인은 그 외곽의 보이지 않는 작은 뜰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활동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세상에 유동적이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흐름, 문화의 유동성, 정책, 기업의 선택 등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것이 붐이다(설사 일시적인 붐이라 할지라도), 이런 형식의 만화 또는 장르가 뜰 것 같다 라면 그쪽으로 달려가고 열정을 쏟고 그것들이 산업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봅니다. 그것들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기존 기득권과 충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초 점프, 챔프 등 잡지들이 새롭게 창간될 때도 그랬고, 당시 새로운 작가군들로 만화판이 물갈이되는 것도 모두가 이러한 싸움과 순환의 결과가 아닐지...

성: 뺏고 뺏기고 하는 문제는 어느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있는 일이므로 그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로 인해 오히려 기존 인터넷 만화사이트들이 고전하는 원인도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우리 만화가 빨리 산업화되기 위해서는 출판만화를 근간으로 캐릭터 산업으로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고 누구나 얘기하는데요, 제가 보기엔 인터넷 만화가 그러한 산업적 토양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어보인다는 것이죠.

그리고 언급하신 내용 중에,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작가군 또는 그 때의 상황과 지금 섣부르게 등장한 작가들과의 비교는 전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90년대 초반 신인작가 공모전을 통해 등장한 역량있는 젊은 작가들은 '소년 중앙' '보물섬' 등을 보면서 성장한 만화세대들의 창작적인 잠재력이 주간 만화시장이라는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서 폭발된 것이기 때문에 창작적인, 질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등장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창작적인 에너지가 축적, 자연스런 표출이 아니라 시스템과 시장의 요구 자체가 준비되지 않은 작가의 무작정 등단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작가들의 등단 인플레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고, 독자들이 볼 때 우리만화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만화계가 자연스런 흐름 속에서 창작 에너지들이 축적될 수 있는 과정이나 시스템을 보장하지 못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무: 신인작가들의 손쉬운 작가 등단으로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작가의 수준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을 합니다. 순환적인 시대흐름이라고 해서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고, 용납해서도 안되지요. 데뷔는 어려워야 하고 성장은 쉬워야 좋은 환경인데 우리의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나 온라인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건 아니고, 우리 만화작가 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린 건 오히려 오프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여점 문제가 주요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작가를 놓고 싸우는 상황에서 정작 작가의 법적인 권리, 작가가 갖고 있는 주체성 등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온라인이 작가를 뺏아갔니 여기저기 작품을 뿌렸니 비난하지만, 실제로 뺏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온라인 전송권이라는 별개의 권리가 사용되지 않다가 사용되게 된 것일 뿐입니다.

저는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에 있어 '어느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다'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사용되는 과정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 다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이 정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침해되는 것은 만화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면 잘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니만큼 각 주체들의 반성을 기대합니다.

성: 그렇다고, 인터넷 만화시장의 미래가 어둡기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교집합도 있지만 별개의 독자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웹진 '해킹'의 연재작들이 기존 오프라인 작품들과 비교해 단행본 판매 부수가 확실히 높았던 점이 이런 사실을 일부 뒷받침해줍니다. 만화를 보지 않던 사람들을 만화에 눈돌리게 했다는 점에서 인터넷 만화는 큰 의의를 가집니다. 초기에 작가들 문제로 온, 오프라인이 갈등도 빚었지만, 컨텐츠 성격이 강한 출판만화에 비해 미디어적인 성격이 강한 인터넷이 유통과 마케팅 부분에서 역할을 분담하는 형태로 새로이 방향을 잡아나간다면 새로운 독자나 시장 창출에 기여하리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 제안하자면, 어떤 작품의 1권을 인터넷으로 무료로 보여주고 난 뒤 2권부터는 구입의사가 있다면 바로 판매와 연결하는 형태입니다.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나 리뷰 등의 정보 컨텐츠를 부가할 수도 있겠지요.

석: 2001년 한 해 제 개인의 성과를 꼽으라면, 코믹플러스의 유통망을 내 머리에서 만들어내서 꾸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엔포나 코투의 사업방향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인터넷 DB 컨텐츠사업이라는 것은 (정부기관이 공공DB로 구축하지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신작(新作) 시장이 아닌 구작(舊作)시장이고 재래시장, 반품시장, 덤핑시장이라는 게 제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래시장은 TV의 주말영화 시장 같은 가치를 가지는, 소위 대체상품의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런 구작들을 가지고서 오프라인 시장에서 소외된 또는 참여하지 않는 독자들의 일부라도 불러들일 수 있다면 의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만화의 가치가 고작해야 0.×% 정도인데, 신,구작을 구분하고 신작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봤지요. 그런 관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별개가 아니고 오프라인이 있어야 온라인이 가능하고 오프라인의 경쟁력이 높아져야 그 재래시장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찌됐건 현재 코믹플러스는 온라인에 유통망을 만들어놓은 상태이고, 많은 분들이 비판해마지 않는 40여 군데 판매(CP)는 '판매'가 아니라 저로선 40개의 '대리점망 또는 지점'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의 온라인 구조나 유통망이 향후 어떻게 발전적인 방식으로 우리 만화계에 역할하게 될 지는 또다른 숙제가 되겠지요.

무: 글쎄요, 현란한 말이지만... 저로선 핑계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하시지만 온라인에서 저작권은 여전히 제대로 잘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고요.

성: 만화 재래시장 말씀하셨는데, 저는 오프라인 만화와 인터넷 만화는 반드시 다르다고 봅니다. 주말의 영화 얘기 얘기하셨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영화는 윈도우(window) 자체가 구분이 됩니다. 영화는 스크린이 있는 극장에 가야 되고, 비디오는 비디오데크, DVD는 DVD데크, TV는 TV수상기가 필요합니다만, 만화는 어느 루트로 구입이 되든 그 자체가 윈도우이자 컨텐츠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스크린 기간제라는 것이 있어서 개봉 후 몇 개월까지는 비디오를 출시 못한다 또는 비디오 출시 후 얼마까지는 방송을 할 수 없다는 식의 규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에서는 이 같은 기간 보장이 전혀 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독자들이 제값을 내고 만화를 보는 것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석: 제가 최근에 쓴 책 '잘가라 종이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룬 문제가 바로 '윈도우'입니다. 코믹플러스의 경우 현재 출판용 책 1권이 나오면 책의 발행일 3개월 뒤에 온라인 서비스를 하고 있고, 지점이나 프로모션 사이트에는 본점인 코플 서비스 3개월 뒤에... 하는 식의 일정한 룰을 가지고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작품, 이미 판매가치가 소진된 컨텐츠를 가져다가 죽은 자식 뭐 만지는 듯한 개념이라고 할까요. 저는 만화도 윈도우가 있고 그 윈도우마다 가치가 달리 매겨진다고 봅니다. 가령, 동인지가 다르고 잡지가 다르고 단행본이 다르고 인터넷 연재가 다르고 PDA만화가 다르고... 이것은 곧 제각기 다른 윈도우를 갖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미디어 분할은 각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독자들의 분할을 의미하는 것이죠.

(김창균: 97년부터 만화관련 IT 업계에서 일한 경험으로 몇 마디 거들자면, 박 작가님께서 코투가 유료화에 성공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결코 성공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코투는 1년 이상 잡지를 해오면서도 간판작품이 없는데, 오프라인 잡지와 비교해 봐도 그걸 성공이라고 하긴 어렵죠. 하지만 웹진 '해킹'의 시도는 의미있었고 온라인 만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 한양문고가 판매한 단행본 순위 50위안에 '유레카' '천추'를 비롯 온라인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해킹' 연재 작품이 4작품이나 들어있습니다. 오프라인과 경쟁해서 당당히 살아남은 것이지요.

그리고 여하튼, 인터넷 만화가 만화컨텐츠의 가치를 하락시킨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질낮은 작품을 여러 곳에 부분별 게재하면서, 공짜로 보는 만화, 싸게 보는 만화라는 인식을 심어줬으니까요.)

성: 만화는 물론이고 어느 엔터테인먼트 사이트도 마찬가지이지만, 성인섹션에서 거둬들이는 수입이 60-70% 이상 되는 게 현 상황입니다. 현재 코투의 수익도 성인물 서비스가 주력인 것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코투가 지향하는 '만화포털 사이트로서의' 손익분기를 달성했느냐를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순익분기를 맞췄다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어려운 게 사실 아닌가요.

무: 한 가지 기준에서만 성공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코투의 청소년이나 순정잡지는 수익이 낮은 게 사실이지만, 잡지에서도 모든 작품이 떠야 성공인 것은 아니잖아요?

코투는 손익분기점에 거의 도달한 상태이고... 아직 넘어서진 못했습니다만(손익분기점을 넘어선 것이 사업적으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흑자가 어려운 우리 만화산업에서 적자의 폭이 어느 정도냐 하는 관점에서 보면 코투는 성공이라고 봅니다. 왜 인기작이 없느냐 하는 문제는, 코투뿐 아니라 우리 만화계에서 지난 2년 간 성공적인 신작이 없었고 메이저 출판사들도 히트작은 없었습니다. 인기작 없는 것은 인터넷 만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죠. 그런 점을 두고 볼 때 인터넷 잡지들의 사업방향이 틀렸다거나 유료화에 실패했다고는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화시장 불황의 원인?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석: 시장 구조가 문제다라는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시장 구조여야 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인터넷 만화에 대한 얘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이제 '불황'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었으면 합니다.

무: 그 문제는 저는 스콧 맥클루드의 새책 '만화의 미래'에서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맥클루드는 전 세계 만화가들에게 선배처럼 떠받들어지는데... '인터넷 만화의 성공과 발전방향 모색'에 관한 부분에서 우리 작가들이 봤을 때는 틀린 얘기가 하나 있는 것 같아요.

만화의 예술성과 상업성을 각각 반으로 봤을 때, 온라인의 다양한 가능성에만 몰입한 나머지 온라인 만화가 산업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 모색은 오히려 간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장의 발전이나 생존을 생각하자면, 엔포나 코투나 출판 단행본 부분을 너무 경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불황은 원인으로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대여점이나 청보법이 여전히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원래 자유와 권리, 미래는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지키고 위해서는 싸우고 쟁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를 비롯, 모든 출판사, 평론가 등 만화계 종사자들이 자신의 역할과 소임을 다했는지 반성하면서 서로 탓할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한번 더 드리고 싶습니다.

성: 약간 번외의 얘긴데... 최근 몇 년 사이 '만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우리가 너무 많이, 고민없이 써오고 있는데 좀 위험한 사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만화시장이 과연 산업화되어 있는가? 산업화의 메커니즘이나 걸맞은 인프라가 존재하는가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 만화의 수준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만화산업'이라는 용어가 자칫 나쁜 편향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첫째로, 정부 또는 기업, 투자자들이 부풀려진 '거품'으로 만화시장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만화로 돈을 벌어서 만화에 재투자하려는 입장이 아니라 산업화라는 말에 현혹되어 뭔가 돈벌이가 되지 않을까 들어왔다가 회수가 안되면 쉽사리 떠나버리는, 그리고 그런 유동성 자금에 기댄 무모한 정책들이 나오게 되는 빌미가 된다고 봅니다.

둘째로, 우리나라에 산업화되어 있다고 하는 장르라고 해봐야 최근의 영화계나 대중음반 시장 정도가 그나마 자체적인 발전전략, 마케팅전략, 시장의 파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우리의 문제를 얘기할 때 처해진 현실을 바탕으로 한 반성이나 대안 제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이미 산업화된 음반계, 영화계 등과 비교하게 됨으로써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창: 말씀의 뜻은 이해갑니다만, 낙후됐을지언정 그래도 분명 산업은 산업입니다. 유통이 있고 판매가 있고 연계사업이 있다면 분명 산업이긴 하지요. 안타깝지만...

제가 이번 코코리뷰에 게재할 내용이기도 한데요, 지난 11월 '만화의 날' 대토론회에서 한창완 교수가 발표한 논문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너무 개념적이라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시장 불황의 원인으로 '출판세대에서 영상세대로의 전환'을 지적했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경기악화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실제 조사에서 중학생들의 용돈이 반 이상 줄었음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화소비 대상층의 양적 감소를 언급했는데, 그보다는 소비 대상층 자체가 변화했습니다. 만화 소비층은 지금 일반독자가 아니라 대여방 아저씨, 아줌마들입니다. 그 대여방에서 책회전율이 저조하므로 만화를 사지 않게 되는 것이고요. 셋째로, 총판의 마진율 경쟁으로 불황이 더욱 가중됐습니다. 만화총판에서 같이 취급되는 판타지나 무협소설류가 만화보다 가격도 더 높고 마진율도 더 크기 때문에 총판에서는 당연히 소설류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지요. 국내 또는 일본만화에 간판작이 없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판타지, 무협소설류가 메워주고 있는 것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작은 출판사들은 책을 아예 못 찍는 상황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 만화계 불황을 단적으로 예를 들면, 94, 5년경에는 잡지 연재 작품 15개 중에서 10위 정도면 기본 3만 부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인기작 최대 발행부수가 3만 부 정도입니다. 2000년 초 정도만 해도 잡지연재작 기본 발행부수가 1만 부 정도였다면 2001년에는 8천부 정도로 줄었습니다. 메이저 출판사에서 찍어내는 일본 만화들도 3천부, 2천부 찍는 것이 허다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만화소비층의 이러한 감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측면에서 만화문화를 즐기는 층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우린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만화인들 모두가 97년 이후 너무 시장 논리, 산업 논리에만 치우쳐 있는데, 그 이전에 왜 독자들이 만화를 찾고 보고 즐기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서 빨리 문화적인 관점으로 관심의 포인트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창균: 생산자(작가), 출판사, 유통업자, 독자를 만화시장의 네 요소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독자'를 가장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무얼 원하는지, 어떤 작품이 뜨면 왜 뜨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마케팅 기획이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한편으로 욕을 먹기도 하는 김성모 작가 정도가 그나마 마케팅 기획을 합니다. '짱'이 시장에서 뜨면 '럭키짱', '타짜'가 뜨면 '18세 타짜' 하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만 실제로 시장에서는 먹히고 있습니다. 소극적이고 시장이 커지는 마케팅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정도도 안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독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 대여점 문제를 비롯한 유통의 문제, 10대 위주의 시장문제 등 불황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물음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 만화에 '기획'의 개념이 존재하는가. 만화도 문화상품이고, 문화상품 존재의 본질은 '흥행'에 있습니다. 흥행이라는 건 경쟁을 통해서 좋은 컨텐츠는 살아남고 아닌 작품은 도태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시장 속에서 노하우가 만들어지고 공유되고 구매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IMF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실제로 우리 영화가 흥행을 달리기 시작한 건 IMF와 때를 같이 합니다. 같은 문화상품인데 영화는 치고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 만화는 계속 떨어지고만 있는 상황이지요. 영화의 경우, 88년 '결혼이야기' 이후 쭉 기획영화라는 흐름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잠재력을 축적해오다가 97년 이후 폭발하고 있다고 한다면, 만화는 똑같이 80년대 후반부터 성장 발판이 될 수 있는 잡지 경쟁 메커니즘을 받아왔는데도 불구, 아까 말씀드린 70년대 만화세대 작가들의 개인적인 창작능력에 의존한 에너지로 94,5년까지 안일하게 유지해오면서 정작 흥행사가 되어야 할 편집부가 만화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어서 빨리, 온,오프라인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우리는 흥행사'라는 개념을 재정립하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그런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재 10대 위주로 위축되어 있는 시장의 폭과 넓이를 확장하는 노력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가도 시장을 의식한 자기검열부터 하게 되고 출판사에서도 중고등학생에게 팔릴 작품만 쫓게 되는 시장 상황에선 새로운 기호나 스타일, 트렌드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오프라인보다는 인터넷이 유리합니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일본성인만화를 들여다가 올리는 기존 출판만화의 문제를 답습하려 한다거나, 준포르노 성의 옐로페이퍼 작품들로 채우는 문제들을 지양하고 드라마적인 완결성 갖춘 작품을 만든다면 네티즌들이 선택을 안 할 리가 없겠죠. 인터넷과 스포츠신문들이 새로운 독자층과 만화문화를 형성하는데 상당히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존 출판만화에서도 예를 들면, 영(Young)지에서 전략적으로 1-2작품 정도는 판매 부진을 감안하더라도 연령이 높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기획이나 투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잠재된 독자층이고 만화문화에 편입은 되어 있는데 실구매층으로 나서지 못하는 독자들을 빨리 끌어들이는 다양한 시도들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봅니다.

창: 결국 기획작품이라는 얘긴데요, 그동안 만화유통은 총판만 집중해 생각해왔는데 서점시장이 실제로 엄청 납니다. 출판사들이 총판에서 들어오는 자금(보증금) 때문에 그동안 서점 시장을 거의 포기하거나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최근 단행본 출판사를 중심으로 서점용 만화를 기획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습니다. 극화 시리즈 만화가 아닌 전쟁만화 같은 특정 장르만화, 경제만화, 교양만화 등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시도되고 있지요.

석: 책 판매율이 저조한 것은 비단 만화판 내부만의 문제라기보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나 경쟁력있는 대체상품이 나와있는 것 등의 외부적 요인과도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을 헤치고 어떻게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입장들을 다시금 정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새해 소망하는 것 중의 하나는 천편일률적인 책의 판형부터 다양하게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코투나 엔포가 시도한 새로운 판형, 고급 장정 등 상품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다양한 노력들을 하면서 또다른 면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터넷 서점을 활용하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만화가 다가가는데 재래시장(온라인)을 적극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책의 고유한 상품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분리하려는 마인드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 만화책의 상품성을 높이는 디테일한 전략으로 판형 조정 등이 거론될 수는 있겠지만 만화 자체가 가지는 엔터테인먼트적인 특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빠진 상태에서 판형 얘기는 무의미한 것이지요. 지금 잘 팔리는 일본만화가 판형이 다양해서 잘 팔리는 것은 아니잖아요?

좀 추상적인 대안이긴 하지만.... 만화계에 서로 씹는 분위기가 많았는데 이젠 그럴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근거없는 얘기, 뒤에서 흠잡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 누가 하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제휴해야 합니다. 만화계 제 주체들이 서로 간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결합, 화합하려는 노력이 있어도 될까말까한 상황이 아니냐는 거지요.

창: 단적으로 말해서 유통 문제 해결은 정부가 대대적으로 개입해서 유통을 재개편하는 것 뿐입니다. 터무니없이 돈이 많이 들지만 결국은 가야 할 길입니다. 현재 돈만 들이고 무용지물인 책 뒷면의 ISBN 체제를 통일해서 만화 부수 자체가 투명해져야 합니다.

만화의 날 토론회에서 만난 문화관광부 관계자 얘기가 정책지원자금 100억을 들여 유통시장을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상황은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한 지역에 총판이 서너 개씩 자리하고 있어서 제살깎기 경쟁을 하고 있고, 출판사들은 총판으로부터 많게는 20,30억의 보증금을 받아두고 있는 상태, 말하자면 돈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복잡한 시장구조입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않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형식의 정책지원자금은 아무런 실효가 없을 것입니다.

성: 이런 문제들을 공론화시키기 위해서는 만화인들의 총의를 모을 수 있는 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화가협회가 아닌 만화계 많은 이해 집단들의 이해를 조정해줄 기구, 영화계의 영화인협회와 같은 기구가 필요한 것이지요. 내년에는 이러한 분위기의 단초라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말씀하셨듯이 총판의 보증금 문제는 크고 국가가 나선다고 해서 쉽게 해결이 안되죠. 방법은 기존 총판보다 더 위력적인 유통구조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이 온라인일수도 있고요). 정부는 유통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여기저기 쓸데없이 나눠줄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서 이런 문제를 진행시키고 있는 영화계의 노하우를 검토,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001년의 주요 성과와 새해에 거는 기대

창: 2001년의 주요 성과로 저는 두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로, 현실문화연구를 비롯 일부 단행본출판사에서 서점용 만화 출간을 시도했고, 아쉬우나마 서점에 다시 만화가 꽂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97년 만화사태 이후 교보문고에서 제일 먼저 만화책을 치워버렸는데 이젠 교보, 영풍 등 대형서점에서 만화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필자도 3년 간 애쓰고 공을 들였더랬죠. 둘째로, 만화이론서적이 어느 해보다도 많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만화문화 전반적인 측면에서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석: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봅니다. 한해 기사들을 일별해보니 실제로 많은 노력과 움직임들이 다각도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거의가 실효성은 없었고, 그저 이벤트 혹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작품'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불행입니다.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가 100만 부를 넘어선 기사를 보다보니 더욱 우울한 맘이 들더군요.

그래도 꼽으라면, 첫째로 저작권 문제가 한층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해 당사자간의 문제 또는 이벤트 차원의 이슈제기의 수준을 넘어서 만화계 전반에 공론화된 것은 큰 의의입니다. 하지만 아직껏 저작권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담긴 결과물이 나오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아쉬움입니다.(만화계 내에 '선수'가 없는 걸까요?)

둘째는, 신문만화의 가능성이 보였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30대가 가장 신뢰할 만한 만화독자층이라는 믿고 있는데요, 성인만화시장이 위축되고 그들이 볼만한 꺼리가 없는 상황에서 신문들이 주력작가들을 포진하고 새로운 형식의 만화들을 선보이면서 성인독자들을 충족,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몇몇 만화업체들이 신문을 작품의 프로모션 장(場)으로써 활용한 것(스포츠투데이와 하승남씨, 굿데이과 코플의 기획 연계)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셋째로는, 만화관련 공공DB를 만들겠다는 입장이 표명됐다는 것입니다. 부천만화정보센터의 '코믹스넷' 오픈 노력이나 서울애니센터의 애니관련 DB화 노력 등등 아직 성과는 미흡하지만 그것으로도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성과들이 밖으로 보여질 것으로 봅니다.
무: 첫째, 인터넷 만화사이트의 유료화의 가능성이 검증되었다는 점입니다. 미완의 성공이긴 하지만, 무료, 와레즈 사이트와 대여점이라는 엄청난 산을 뚫고 여기까지 온 건 대단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돈내고 보냐 하는 생각에서 이만큼의 가능성을 일궈낸 것은 분명 값진 일입니다.

둘째, 만화창작환경과 만화산업을 보존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4명의 만화가지망생에서 출발한 '자유의 검은 리본', '만화 사보기 운동' 등등 인터넷을 중심으로 만화가 지망생들과 열렬한 만화독자들이 중심이 돼서 우리 만화계의 문제를 헤쳐나가려는 노력을 전개한 것은 대단히 가치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자극이 되어 거꾸로 프로작가들이나 평론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지요.

세째는, 중단되었던 '천국의 신화' 연재가 재개되고,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것입니다. 2002년에도 만화 표현의 자유와 볼 권리를 계속 보장해나가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고, 그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쟁취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요즘 '만화쿼터제'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가고 있는 중인데, 이것을 일궈내고 홍보하는데 많은 투자를 기울일 생각입니다.

성: 언론에서 선호하는 작품들 혹은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작품들과 현재 흥행의 중심에 있는 소년만화들과 필(feel)이 맞지 않아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01년에도 김병진, 황숙지, 이영후 같은 주목할 만한 신인들이 여전히 발굴되어왔고, 그러한 노력과 투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희망으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잡지가 엄청 나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 인터넷 사이트들의 급격한 흥망, 작가들이 인터넷과 대여점에 편입했다가 빠지는 상황 등의 혼란은 아프긴 하지만 만화시장에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새해에도 그런 아픔이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까지도 이어질 것 같습니다. 낙관적인 것은, 거품들이 빠지면서 메이저 3사를 중심으로 국내 고유 캐릭터를 이용한 미디어믹스 전략 구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됩니다. 지금껏은 오리지널 캐릭터를 이용한 연계 사업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지만 시장 상황을 통해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인식 전환을 하게 된 것이고, 이런 움직임은 빠르면 내년 하반기, 늦어도 2003년 상반기에는 가시화되지 않을까 전망합니다. 출판사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긴 안목을 가지고 투자하겠다는 마인드를 가져준다면, 우리 만화시장이 갖는 수익구조의 한계를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새해는 월드컵이라는 국가적인 이벤트가 열리는 해로, 문화부문이 붐업되고 전반적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분위기를 적극 활용한다면 하반기에는 어떤 전환점이 마련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 예상컨대, 2002년도 매우 추운 한해, 더 추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할 가장 좋은 대안은 어느 대작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게 가장 쓸만하고도 실효성 있는 대안이 아닐지....핵폭탄에 쓸려간 다음 새 출발하는 것이죠.(후훗)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모두가 만화판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 그게 가장 큰 희생이고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도(正度)를 걸어가면 될 것입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먼저 자기반성을 거친 다음에는 눈치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비판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창: 경기 회복이 중요한 외부 변수가 되겠지만, 새해는 2001년보다는 분명 밝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원칙론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출판사들의 국내 작가 육성노력과 함께 시장 나눠먹기를 지양하고 만화계 전체가 '공존공생(共存共生)'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김창균: 2001년 만화계 전체가 잘 쉬고 잘 공부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실험, 시도, 실패가 있었습니다만 이것들이 앞으로 밑거름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온라인에서 실험과 가능성 타진의 시기는 지났고, 이젠 실제로 잘된 작품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봅니다. 2002년에서 2003년 넘어가는 시기가 인터넷 만화의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진행: 말씀 감사합니다. 더 많은 얘기 나누고 싶습니다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 방담은 이것으로 마무리짓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02년에도 더욱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방담 내용을 가능한 그대로 반영하고자 했습니다만 의미상 물의가 없는 선에서 부득이 생략이 있었으며, 독자를 고려해서 실제와는 배열 순서가 다소 바뀐 부분이 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