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열린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과 지난 5일(금) 개막한 부천국제대학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 등 잇달아 열리는 만화페스티벌이 보여주듯 만화는 단순 오락물에서 벗어나 상품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코드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에 만화 감상과 이해를 위해 장르별 특징과 대표적인 작품을 분석해 연재한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마루치와 아라치, 손오공과 해적 루피, 고독한 사무라이 켄신까지 위기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적과 사투를 벌여 결국에는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우리의 영웅들. 이액션 영웅들을 살펴보면 줄거리와 캐릭터가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액션 영웅들은 대체로 자기의 콤플렉스를 깨며 적과 싸워서 사람들을 구하고 동시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 또 이들은 대체로 심성이 착하고 정의로우며, 위대한 스승을 만나 일취월장한다. 액션 영웅들은 이와 같은 기본 특징을 바탕으로 독자의 구미에 맞춰 다양한 구성방식과 사건 요소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옥희 교수(순천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는 “적을 맞아 필살기를 쓰는 만화 속 영웅들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독자들에게 짜릿한 대리 만족을 경험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박인하 교수(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학과)는“만화는 과장된 구도와 인물의 초현실적인 동작을 실감나는 선으로 묘사해 액션 영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액션 영웅물의 고전으로 1930년대 후반 미국의 DC코믹스에서 만들어낸 슈퍼맨과 배트맨이 꼽힌다. 이후 이 작품을 토대로 ‘아톰’, ‘드래곤볼’, ‘바람의 검심’ 등 여러 종류의 영웅물이 발전한다. 만화평론가 박석환씨는 “슈퍼맨과 배트맨은 대표적인 영웅상의 시초지만 서로 다른 전형성을 보인다”며 “청도교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슈퍼맨은 적마저 용서하는 착한 영웅으로, 단정한 머리스타일에 예의도 바르며 출신마저도 외계에서 온 왕자”라고 설명했다. 반면 “배트맨은 어둠의 영웅으로 밤에 나타나서 사건을 해결하지만 언제나 구원해야 할 인류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며 좀더 인간적인 측면에 근접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주인공이 자기극복의 과정을 통해 악을 물리치는 것이 더 극적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복잡한 캐릭터를 선호한다.
한편 액션 영웅물은 작가의 국적에 따라 등장인물이 추구하는 가치나 만화의 배경 등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 영웅만화의 대표적 작가로는 박봉성, 이현세, 사마달, 하승남 등이 있다. 만화평론 웹진 두고보자(dugoboza.net)의 필진인 깜악귀씨는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인 ‘까치’는 하류계층을 대표하는 신분으로 태어나 무언가 이루려고 하지만 결국엔 좌절한다”며 “이는 시대와 국가의 낙후성에 대한 비하이며 이와 같은 비극적 결말을 통해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기헌 교수(밀양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는 “일본에는 세계 1위의 만화생산 국가답게 노동자, 농민들의 염원을 담은 영웅부터 사무라이 정신을 담은 영웅까지 다양한 형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만화는 인간내면의 고통이나 자기정체성을 고민하는 철학적 캐릭터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남미의 액션 영웅들은 쿠바의 혁명가인‘체게바라’다운 면모를 띄면서 제국주의에 맞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존의 액션영웅물에서 벗어나 악당처럼 잔인하고 심성도 꼬인 주인공이 영웅이 되는 줄거리를 갖는 ‘반영웅(anti-hero)’도 존재한다. 이는 영웅을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미우라 캔타로의 ‘ 베르세르크’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만화평론가 박석환씨는 “이상적인 영웅은 식상해졌다“며 “복잡한 심리상태를 가진 주인공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반영웅 작품은 그동안의 액션영웅 작품의 뻔한 결말과는 달라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서고 있다.
2004년 11월 06일 (토) 00:00:00 서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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