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박석환의 만화요만화,1998-09-02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박석환의 `만화요 만화`]
영웅만화
더 이상 우리에게 장밋빛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가.IMF 한파에 이은 물난리,기업구조조정의 본격화 등으로 지친 사람들.그들은 다시 영웅을 원한다.고통스런 세상의 해법을 지닌 영웅의 출현을 기대한다.혼란스럽고 무기력한 상황에 홀연히 등장하는 영웅이야기 속에서 우리 대신 앞장설 수 있는 누군가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긍정적 영웅을 바라는 심정,혹은 거꾸로 부정적인 행동가를 영웅시하는 태도는 곧 오늘의 사정이 어둡고 참담하여 불행하다는 사실을 증거한다”고 말하면서 `박정희 신드롬` 역시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영웅만화들은 단수 영웅 주인공에서 복수 영웅 주인공의 출현으로 복잡한 구성을 띠고 있다.복수 영웅이 출현하는 만화들은 `슬램덩크`식의 스포츠만화나 `드래곤볼`식의 판타지 만화에 이어 `삼국지`를 원전으로 한 무협 판타지 만화에까지 이르렀다.소설가 이문열과 김홍신의 `삼국지` 평역본이 히트하자 새로운 유형의 `삼국지`들이 만화라는 자유로운 장르의 문법으로 각색,출판되고 있다.
김학인 등 한국 일본 홍콩의 작가들이 공동작업하고 있는 `창전항로`는 남성적인 굵은 터치로 근육질 영웅들의 호방한 대륙 침략전을 묘사하고 있다.이 작품은 1인 영웅시대의 `삼국지` 만화들이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던데 반해 조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창전항로`가 화풍과 이야기 전개에서 전통적인 영웅물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면 정훈이의 `트러블 삼국지`와 박수용영의 `삼국장군전`은 개그맨들보다 더 웃기는 영웅들이 출현하여 독자의 `영웅바라기`에 애교넘치는 찬물을 끼얹는다.`두바닥 시네마`라는 영화 패러디만화를 발표했던 정훈이가 그리는 삼국지는 영웅들에 대한 조롱과 과감한 생략을 통한 경제적 만화그리기의 모범을 보인다.
박수용영의 `삼국장군전`은 `드래곤볼`의 삼국지적 재해석으로 가장 독특한 만화적 재미를 느끼게 한다.양아치 군주 유비,왕자병 수뇌부 제갈,다중인격자 조조,아름다운 팔등신의 여인 장비 등이 땅따먹기식 전쟁을 펼치는 `삼국장군전`은 과거와 현대를 구분짓지 않는 시대 설정과 대한민국 육군의 병력편제를 응용한 재기넘치는 설정 등이 돋보인다.
영웅은 만화 속의 단골 등장인물이다.독자는 만화를 통해 애절한 감동을 얻기보다 감춰둔 욕망이 작품을 통해 일반화되길 희망한다.그런 까닭에 만화방에는 유치하지만 멋스러운 영웅들이 떠날 줄을 모른다.우리 곁에 늘상 함께하는 영웅,근엄한 영웅이어도 좋고 장난끼 넘치는 영웅이어도 좋다.그러나 그들이 당신의 현실을 해결하진 못할 것이다.잠시 쉬게 할 수 있을 뿐.
* 오류수정(2007. 04. 10)
박수용-->박수영
간혹 작가 이름을 잘 못 적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는 신문사 편집과정에서 걸러지는데... 아마 당시 담당기자께서도 그러려리 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경우가 가장 난감한데... 정식이님이 지적해주셨습니다.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