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열혈강호 천랑열전 남자이야기, 국민일보, 1998.08.26

국민일보, 박석환의 만화요만화, 1998-08-26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박석환의 `만화요 만화`] 


무협만화 


요사이 무협물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물론 그 근원지는 만화방이다.한때 만화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박스판(작품 한질이 한 상자로 묶여 나온데서 유래) 무협지의 인기는 대단했다.이현세가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만화방을 점령하기 전까지 무협지는 만화방족에게 필독서 중 하나였다.만화시장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무협지 작가들이 만화스토리 작가로 자리를 옮겼고 서점용 무협소설(김용 등 외국작가 작품)이 히트하자 만화방에서 무협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대중문화에 복고 열풍이 불어닥친 90년대 중반 무림 고수들이 재등장했다.요즘 등장하는 무협만화들은 기본적으로 과거 무협물(무협소설·영화·만화)의 전형적인 특징인 `문제 해결을 위한 여정`이라는 기본축을 고수한다.문제 해결의 담당자 역시 예전의 무협지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이 인정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로 설정된다.물론 이들은 세상 물정엔 어둡고 여자나 연장자에겐 무례하며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최근의 무협만화는 이런 설정을 유지하면서 1회성 활극을 보여주는 데 충실하다.매회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 잡지 연재만화의 특성 때문이다.문제는 이같은 잡지 연재만화의 형식이 장대한 서사극을 이끌어가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예전의 무협물에 비해 한결 가벼워진 요즘 무협물의 경향은 잡지 연재만화라는 형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양재현·전극진의 `열혈강호`와 박성우의 `천랑열전` 등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무협만화들이 가벼운 로맨스를 버무린 것도 이런 이유다.`열혈강호`는 `오렌지빛 무협만화`라는 선전문구대로 무술 천재와 여장 남자의 여정을 코믹한 연애공방으로 풀어가고 `청량열전` 역시 고구려를 구하기 위해 중원의 고수에 맞서는 청년들의 혈전을 주축으로 애틋한 로맨스를 전개한다. 


`해와 달`이라는 독특한 무협만화로 등장했던 권가야의 작품이 잡지 연재 당시 버림받은 걸작이 됐던 이유도 비슷하다.최근작 `남자이야기`까지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삶에 대한 정복적 사유다.삶을 `주어지는 것`과 `형성해가는 것`으로 나눠 이에 정진하는 거친 사내들의 논리를 이끌어가는 데 1회 단위로 끊어지는 잡지 연재만화의 형식이 부적절했던 것이다.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행본으로 접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무림,그곳은 정파와 사파의 대립이 끊이지 않고 권선징악의 절대명제가 흐트러지지 않는다.국적·시대 불명의 혼란과 혼돈 속에서 전개되는 지배권 쟁탈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 무림이고 무협물이다.우리의 정치 사회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동양적 판타지와 폭력적 묘사를 통해 속 시원한 해결을 모색하는 무협만화.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갑갑한 현실에 대한 몸부림을 뒤로 하고 무림으로 향하고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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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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