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새로운 성향의 두 잡지 - 아디와 나인, 코코리뉴스레터, 1997.12.26


12월. 야심찬 사전홍보와 새로운 형식을 선언하며 출간된 두권의 만화전문지가 있다. 그 처음은 야설록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야컴의 순정 공포 매거진 《아디》였고, 나중은 서울문화사가 비주류만화(comix)지임을 제호 위에 공표하고 내놓은 《나인》이다. 


무협에서 순정으로


야컴은 대본소(만화방)시절에 만화 이상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던 무협지를 일반서점용으로 재생산하면서 나름의 인지도를 획득한 후 진취적으로 만화산업에 뛰어들었다. 만화스토리를 작업해오던 야설록이 자신의 출판사 야설록프로를 통해 스토리작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만화제작 시스템을 가동, 성공을(?) 거두자 일련의 무협물 출판사들과 공조체제를 거쳐 야컴이라는 새로운 출판미디어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아디》는 이들의 첫 번째 결과물로 숱한 사업 계획 중 하나에 불과하다. 야컴은 출판만화, 영상애니메이션, 캐릭터, 음반 등 미디어산업 전 분야에 걸친 당찬 기획안을 내놓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쇼비즘으로 끝날지 아니면 ‘다섯권의 정기간행물을 앞으로 더 만들어내겠다’고 발표한 야설록의 강한 성취욕을 통해 실행되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디》는 발표 전부터 호러라는 장르만화지를 만들겠다고 공표해서 화제를 낳았다. 야컴의 기획은 최근 독자들의 문화적인 성향 등으로 봤을 때 무척 성공적인 것이었다. 세기말 우리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악마주의와 퇴폐주의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각 매체를 통해 공포장르의 영상,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송도 이에 편승, 쇼, 코미디, 드라마 할 것 없이 공포분위기 제조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불사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시대의 만화보기 성향 중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는 순정을 이끌어냈다. 남성만화(?)와는 다르게 극의 연결을 위한 상황전개보다는 감성의 이동을 위한 장면전개가 특징으로 되어있는 것이 소위 순정만화라는 것이다. 순정만화는 독자의 감정이입 또는 완급을 통해 극전개의 속도를 지니게 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같은 장치들을 화면 위에 펼쳐두고 독자의 감정을 이끌어 낸다. 이 과정에서 여성 독자는 숱한 대리체험을 거치게 된다. 여성성중 하나라 표기되는 질투, 시기, 애증 등이 이와 맞물리며 아찔할 정도의 공포를 체험하게 한다. 무협물을 전문으로 하던 제작진이 그들 특유의 유혈공포가 아닌 무혈공포를 순정을 통해 이끌어낸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서울문화사의 comix


이진경을 중심으로 언더성향이 강한 순정작가들이 뜻을 모아 서울문화사에서 《MIX》를 발표했었다. 중철을 한 믹스는 이애림이라는 탁월한 인재를 일반에 공고했으며, 97시카프를 통해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들어냈다. 그 외 몇몇 신진작가들과 기존잡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가들의 단편을 실으면서 나름의 성공적인 모양새를 취했다. 이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을 서울문화사가 준성인 취향의 여성만화지 《나인》의 창간기획을 세웠다. 모두가 기대했었던 서울문화사의 작업은 외양상으로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도무지 만화잡지에서 볼 수 없었던 편집과 컬러지면의 확장, 유명작가들의 나열은 이 잡지와 서울문화사의 잠재역량을 맘껏 보여주고 있다. 《믹스》의 후신처럼 보여지는 이 잡지에서 이애림은 다시 한번 그 특유의 필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기대주임을 다시 한번 공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준범, 양영순 등의 남성작가들도 참여,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비주류 만화지를 만들겠다는 듯 제호 옆에 comix라고 잡지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작가진이나 내용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에 《나인》이 제9의 예술로서 만화를 부각시킨다는 뜻을 지닌다면 만화는 comix여야만 예술이 되는건가? 하는 묘한 의문점도 생겨나게 한다. 


무엇을 말하는가?


두권의 간행물 모두 공히 창간호라는 취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작업량이 많은 몇몇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한 이유일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두 잡지 모두 주류가 아닌 독자적인 장르만화를 공표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의 구현을 위한 노력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디》가 호러 장르만화를 공표하긴 했으나 도대체 그중 어느 정도의 작품에서 호러라는 개념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물론 잔혹과의 분별점은 확실하나 연재물인 경우 첫회 분량에서 다음 회를 기대할 근거지를 공포로 잡아야 할지 의문할 수밖에 없고, 단편인 경우 여운에 남는 것이 공포여야 할 것이라는 강박이 작용 작품 자체의 재미를 잊게 한다. ‘공포’에 대한 넓은 의미의 개념규정을 권두에 기획기사를 통해 알려주고 있으나 ‘프레디(『나이트메어』의 주인공)’에 의한 유혈공포만을 기대한 듯 통신을 통해 들려지는 《아디》에 관한 소리들은 회의적이다. 

《나인》은 유명작가들을 통한 ‘다른 만화 성향’의 제시가 주요한 동기가 되어질 듯 하다. 일견 그런 의도 자체는 합당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comix라 말하는가? 누가 인증하고 어느 작가가 자신하는가? 이진경을 비롯한 유시진, 박희정, 양영순 등이 무척이나 다채로운 형식을 취해 도전적인 작품들을 내놓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시진이 시도한 3D는 낯뜨거울 정도의 조악한 수준에 불과했다. 양영순의 엽기적인 4칸 만화가 기존의 것에 비해 확연히 다른 내용과 전개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기대한 ‘만화천재(?)’의 다른 모습은 너무도 가볍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온다. 《믹스》 홈페이지를 통해 그래픽아티스트로서의 탁월한 기술력을 선보인 이진경은 자신의 작품(「등화관제」)에서 기술력과 사유력을 혼합해내면서 만화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나인》이 여성잡지에서는 유일하다 싶은 청일점 기자를 유입, 카툰 등의 ‘쪽 만화’로 보는 재미를 높이는 등 편집과 기획에서만큼은 《아디》가 궁리하지 못한 부분까지 도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짤막한 유명작가들의 단편을 무작위로 실어낸 《나인》은 ‘서울문화사’의 영향력을 공표하고 있을 뿐 별스럽지 않은 것들로 그득했다. 반면 《아디》가 그들의 헤드카피처럼 ‘공포를 공포’하지만 않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디》는 그저 일반 순정만화가 지닌 극의 구성요소들을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만화의 기호 중 하나가 ‘공포’였음을 알게 한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새로운 관점 제시


두 잡지는 공히 정가 3,500원이다. 책값대비 경쟁력에서도 컬러지면을 대폭 늘려 잡고-광고가 많기도 하지만 요즘 독자는 광고에서도 정보를 찾는다-지질을 높인 《나인》이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화잡지로서는 드물게 《나인》이 재판을 발행하고 있다면 이미 대결구도는 깨진 듯하다. 

각개 작품에 대한 평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끝으로 두 잡지가 지속되어야 할 이유는 확연하다. 지면과 장르확장에 따른 작가와 독자의 수련을 위해서 다채로운 성향에 대한 공표와 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우리만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낼 것이 확실한 까닭이다. 우리만화의 키는 각개 만화출판사가 키워 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제기하고 수용하는 작가와 독자가 주체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


코코리뉴스레터, 한국만화문화연구원, 1997. 12. 26 게재

만화시비탕탕탕, 초록배매직스, 199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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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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