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10월 1일 두차례에 걸쳐 한국과 호주의 웹툰 연구자 간 포럼 호주 시드니와 브리즈번에서 진행됐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추진된 이 행사는 한국의 웹툰가이드와 호주의 울런공 대학 간 협력으로 추진됐습니다. 자국 만화의 생산이 미흡한 호주는 일본망가와 미국코믹스의 소비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울런공 대학의 브라이언 교수님은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고 차세대 문화콘텐츠 생산에 주력하기 위한 방향으로 한국의 웹툰과 웹툰의 트랜스미디어 전략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주제로 호주 정부의 연구과제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저한테 주어진 주제는 한국 정부의 웹툰 관련 정책이었습니다만... 한국 웹툰의 생산시스템과 소비 문화를 수용하면 호주만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호주 연구자 중에서는 "웹툰에서 한국이라는 타이틀이 떨어지면 정부 지원이 줄고 국가 경쟁력에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견임을 전제로 "태권도는 한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전 세계인의 스포츠가 아니냐?"고 반문했고 "웹툰 창작이 세계인의 문화 창작 활동으로 확산되면 소비시장도 늘고 생산도 따라서 증가할 것이다. 국가 간 경쟁이 강화 될 수 있지만 동시대 생산과 소비를 막을 길은 없다. 상호 경쟁하고 발전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평소 소신이고 호주의 연구자들은 좋은 의견이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는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현실적 고민이었습니다. 물론, 결국 우리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더더더 연구하고 더더더 좋은 콘텐츠와 생태계를 강화해 나가야겠죠. 어찌보면 이제는 디퍼런스보다는 디테일이 중요해진 때 인 것 같습니다.
아래는 한국어 발표문입니다.
1.
안녕하십니까. 호주의 만화 연구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만화평론가 박석환입니다. 지금은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만화계는 디지털 기술과 매체 환경을 바탕으로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만화가들과 열정적인 기업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만화가들과 기업인들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기반을 구축한 한국 정부의 정책적 노력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정부가 웹툰을 포함한 만화산업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호주의 만화산업 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2.
한국 정부 중 웹툰을 관장하는 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입니다. 문화, 예술, 영상, 광고, 출판 등 문화산업과 예술 전반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한국하면 수도 서울을 떠 올립니다만 한국 정부의 행정기관들이 모여 있는 도시가 따로 있습니다. 세종시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공보처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현재는 64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콘텐츠정책국 대중문화산업과에 만화를 담당하는 사무관과 주무관이 있습니다. 정책 사업을 수행하는 관련 기관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대중문화본부 만화스토리산업팀이 있고 정부의 만화산업육성 보조사업자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등이 있습니다.
3.
한국의 문화산업 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 정책국이 총괄하고 웹툰을 포함한 만화는 영화, 방송, 게임, 음악, 출판 등과 함께 그 중 한 분야입니다. 정부 수립 후 한국의 문화산업정책은 대체로 규제 중심이었습니다. 미국, 일본 등의 문화가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국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공원>이 개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당시 <쥬라기공원>의 전 세계 흥행 수입이 9억1천만 달러라는 보도가 있었고 이는 한국의 대표적 수출상품이었던 현대자동차의 2년 간 매출과 같은 규모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화의 산업적 가치,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고 당시 문화관광부에 문화산업국을 설치했습니다. 그 때부터 정부는 영화 수익 등을 발표할 때 자동차 몇 대를 판 효과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의 문화산업 규모도 커졌고 현대자동차의 매출도 커졌지만 묘하게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10조원이니까 약 9억 달러 정도 됩니다.
4.
한국은 문화산업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작게는 특정 기업이나 장르를 전략적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넓게는 법률이나 제도적 장치를 통해 특정 분야의 문화산업을 성장시키거나 통제하기도 합니다. 스크린쿼터 제도 같은 것이 통상적으로 알려진 문화산업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영화의 상영 비율을 제한하고 시장 수요가 부족하더라도 특정 장르의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을 하는 경우입니다.
5.
물론, 문화적인 측면이라 하더라도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비판하는 쪽도 있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민간의 실패 요소를 보완해줘야 한다는 쪽도 있습니다. 특히, 통상 분야에서 선진국이지만 일부 부문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혁신이 필요한 분야와 시장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6.
일반적으로 정부가 민간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는 경제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강조됩니다. 기술 발전이나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제품이나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초기 비용 투자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다른 국가나 기업이 정보를 독점해 소비자 비용이 과다하게 책정 될 때 등입니다. 또, 과도하게 상업주의 적이거나 표현 수위의 문제가 발생될 때,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등도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7.
한국 정부는 김영삼 대통령 이후 각 대통령마다 문화관련 정책을 선거 때 공약 사항으로 제시했고 대체로 지원 중심, 시장 개입 중심의 문화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정부 사상 최초로 정부 예산 중 1%를 문화 관련 예산으로 배정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정부 중 가장 큰 1.3%, 박근혜 정부는 문화 관련 예산 중 만화를 포함한 콘텐츠 분야에 수치상으로는 역대 가장 큰 19.6%의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현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사회 전반에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고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정부 예산을 수립했습니다. 문화 관련 예산과 콘텐츠 예산도 ‘슈퍼예산’이라고 불릴 만큼 큰 규모입니다.
8.
한국 정부의 문화산업 정책은 웹툰을 포함한 만화산업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문화산업발전방안을 발표하면서 문화산업의 한 분야로 만화를 명시했고 만화진흥기관 설립, 만화인재양성을 위한 대학 개설 등의 혁신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IT를 미래 전략 산업으로 육성했고 문화산업의 디지털화, 만화의 디지털화도 이 시기에 진행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제1차 만화산업진흥계획을 발표했고 이 시기에 한국형 디지털만화라고 할 수 있는 웹툰이 탄생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 한국 만화 정책의 상징적 기관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원했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습니다. 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한 김영삼 정부, 문화산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했던 김대중 정부의 혁신적 정책은 문재인 정부로 승계되어 유지되고 있습니다. 단, 웹툰산업이 출판을 근간으로 했던 만화산업을 대체하면서 출판만화 관련 진흥 정책은 위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9.
한국의 만화산업은 2000년 이후 본격화된 정부의 재정 지원 정책으로 현재 웹툰 중심으로 변화 했고 많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초기 정부의 만화정책은 유통 기반조성, 지원체계 구축, 대국민 인식개선, 우수만화 출판 및 보급, 해외 진출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1차 중장기 계획은 ‘만화콘텐츠 강국 실현’을 목표로 창작역량 강화, 유통 인프라 구축, 국제 교류 및 수출 활성화, 대국민 인식 제고, 법‧제도 개선을 5대 과제로 선정해 추진했습니다.
10.
2차 중장기 계획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만화’를 목표로 만화의 저작권리를 활용한 제품과 서비스 활성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상물 제작 지원 등의 과제를 추가했습니다. 3차 중장기 계획에서는 ‘세계가 함께 즐기는 한국만화’를 목표로 웹툰 시장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는 신규 과제를 추가했습니다. 웹툰이 만화산업의 중심이 되면서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의 방향성도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인재 육성의 경우 디지털 기술력이 주가 됐고, 유통질서의 경우 창작자와 기업 간 계약 관계, 불법복제에 대한 대응 등이 중요해 졌습니다. 해외 시장 진출 측면에서도 전통적인 만화소비국가가 아닌 신흥 웹툰소비국가를 발굴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올 해 한국 정부의 4차 만화산업중장기계획이 발표될 예정입니다. 참고로 2019년 한국 정부의 만화산업육성 예산은 210억원(약 1,728만 달러)로 창작지원, 기업육성, 인력양성, 유통기반조성, 해외진출 등에 지원되고 있습니다.
11.
한국 정부의 웹툰을 포함한 만화정책은 행정 제도 측면과 함께 법률적 지위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만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2년 만화계의 요구를 수용해 만화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제정 당시 만화계는 독립적인 만화진흥위원회 설립, 만화발전기금 조성, 한국만화자료원 설치 등을 요구했지만 정부 재정부담, 업무 중복 등의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한국 만화계는 정부와 입법부(국회)에 이를 수용한 법률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2.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웹툰산업 관련 된 이슈가 한국 정부의 만화정책에 모두 수용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물론이고 만화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몇 가지 정책적 이슈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기술 고도화에 따른 대응입니다. 둘째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방어입니다. 셋째는 국제적 유통 환경에서의 표준 확립입니다. 넷째는 창작과 소비문화의 국제적 교류입니다. 다섯째는 창작자 복지 문제입니다.
13.
이상으로 한국 정부의 문화정책, 그중에서도 만화정책과 웹툰관련 정책이슈 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혹시 질문이나 의견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