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투니버스 확대, 매출 1조원 시대의 갈등
0. 들어가며
2017년 한국만화계는 1조407억 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11개 분야의 콘텐츠산업 총 매출 추정액(110조4539억 원) 기준 0.94%를 차지했다. 매출 비중은 낮지만 전년대비 성장률은 높다. 콘텐츠산업 전체 성장률이 4.47%인 반면, 만화산업의 성장률은 6.30%를 기록했다. 연관 산업이라고 볼 수 있는 출판산업이 △1.80%, 애니메이션산업이 4.20% 성장한데 그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이다.
△ 표1 2017/2018년 대한민국 콘텐츠산업 전망치(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18년 역시 이 같은 성장세가 유지되며 1조1천억 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만화산업의 수출 규모 역시 전년대비 15.0% 상승한 3천7백만 달러 규모. 2018년에는 18% 성장한 4천3백만 달러로 전망했다. 이는 2016년 결산, 2017년 상반기 실적과 경기 흐름 등을 토대로 도출됐다. 여러 요인이 있었다. 시장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 많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불안 요인이 될 사건, 사고도 많았다. 2017년 한국만화계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를 4개 꼽자면 디지털 우선주의, 분배의 재정의, 적정 생산의 위협, 역할 갈등을 들 수 있다. 웹툰 활성화와 함께 구축된 오늘의 만화 창작과 소비 생태계(웹투니버스, Webtoon Universe)는 기존의 모든 것을 퇴화시켰고 새로운 진화를 거듭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만들고 있다.
1. 디지털 우선주의
오랜 기간 동안 출판산업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지식과 감동이었다. 반면, 오늘의 출판산업은 포털사이트에게 지식을 빼앗겼고 감동은 다매체 시대의 다른 콘텐츠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전자책과 웹소설이 나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출판산업의 디지털화는 종이를 기반으로 작동했다. 포털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를 담은 출판은 역설적으로 출판산업을 더 위축시켰다. 그러나 만화는 달랐다.
△ ‘기다리면 무료’라는 유료서비스 정책에 이어 ‘독점 선연재’ 개념을 도입 디지털우선주의를 강화한 카카오페이지
△ 디지털 선연재 후출판 개념과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통해 사전 주문형 제작을 추진한 웹툰 킹스메이커
여전히 종이를 기반으로 한 출판만화 시장이 만화산업의 5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5할 정도는 종이를 버렸다. 만화와 책을 분리해낸 만화산업은 웹과 만화를 더하는데 성공했고 웹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이끌어 냈다. 책이라는 물리적 상품과 전통적 유통망, 소비행위에 기대지 않고 웹이라는 비 물리적 공간에 적합한 상품을 디지털 유통망과 소비행위에 맞춰 제공했다. 물론, 출판을 근간으로 했던 만화산업이 하루아침에 웹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다. 출판만화의 위축과 함께 자연스럽게 웹툰이 등장했고 일정 기간 상호 경쟁체제가 유지됐다. 한동안 어느 쪽에 먼저 유통시키느냐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장은 명확해졌고 소비자가 어느 쪽에 몰렸다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게 됐다. 웹툰제작사나 플랫폼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출판만화 기업들 역시 웹툰 플랫폼에 작품을 선연재하고 이를 묶어 만화책으로 발행한다. 유사 역할을 하던 만화잡지의 발행은 최소화하고 디지털만화잡지 발행을 강화했다. 만화책 발행 시에도 SNS, 클라우드펀딩 등의 디지털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사전 구매의향을 묻고 제작과 유통 규모를 결정했다. 산업의 모든 기반이 디지털을 우선 시하고 있다. 디지털적 사고에 입각한 새로운 만화미디어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2. 분배의 재정의
출판산업은 기본적으로 위탁판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출판에 기반을 둔 만화 역시 동일하다. 작가가 위탁한 원고를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어 서점에 배급하면, 서점이 출판사를 대신해 책을 판다. 서점의 판매 대금을 100%로 했을 때 출판사의 매출액은 70%, 책을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비 항목의 매출원가는 30%, 급여나 임차료 등 판매관리비가 30%, 영업이익이 10% 수준이다. 책이 많이 팔리면 초기 재료비 비중이 감소하면서 출판사의 영업이익이 상승하는 구조이다. 작가의 인세는 10% 수준으로 매출원가에 포함됐다. 만화책 1권이 팔릴 때 서점이 30%, 출판사가 10%, 작가가 10%의 이익을 얻는 구조이다. 반면 디지털만화 시장이 열리면서 이 같은 매출구조가 변화됐다. 초기 웹툰 시장은 광고 매출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플랫폼이 판을 깔고 광고주의 비용으로 소비자가 즐길 수 있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구독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광고주가 원하는 ‘많은 소비자가 찾는 콘텐츠’가 아니라 비용을 지불하고도 보겠다는 ‘특정 성향의 소비자를 위한 콘텐츠’를 공급해야 하는 시장이 됐다. 무료시장이었을 때는 분배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많은 소비자를 유인한 작품의 작가가 많은 수익을 얻었다. 인기 작품과 유사한 작품이 많아지면서 작품의 다양성을 감안해 최소 고료를 지급하기도 했다. 플랫폼 역시 작품을 통한 수익이 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2차 저작권 계약(영화, 드마라 판권 등)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료 웹툰 시장이 일반화 되면서 수익 분배 기준이 논란의 핵심이 됐다.
△ 웹툰인사이트 주최로 열린 웹툰업계의 불공정계약에 대한 간담회 (출처 : 웹툰인사이트)
△ 올 한 해 가장 많은 부정적 이슈를 양산한 레진코믹스. 급기야 블랙리스트 사태로 확산되고 있다 (출처 : 레진블랙리스트 반대연대)
디지털만화 시장은 서점과 출판사를 일원화 시켰고 재료비와 물류비를 최소화시켰다. 웹툰플랫폼(출판사+서점)의 작품 판매 대금을 100%로 했을 때 공제되는 비용은 과금수수료 등 20% 수준에 불과했다. 재료비를 작가가 전담함으로 판매관리비와 영업이익 40%를 감안해도 40%를 작가에게 지급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초기 웹툰플랫폼 업체들은 작가와 계약 시 매출액 기준 50 : 50, 또는 수금액 기준 50 : 50의 계약을 체결했다. 어떤 업체의 경우는 작가의 몫을 매출액 기준 70%로 정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기위한 신규 플랫폼의 경쟁도 있었다. 회당 원고료를 지급한 후 작품을 게재하고 유료 매출 시 지급된 원고료를 초과한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분배하는 곳이 일반적이다. 회당 원고료를 높이고 수익배분율을 낮추는 곳이 생겼고, 회당원고료 없이 수익배분율을 극한으로 높인 곳도 있다. 창작 장려금 형태의 월비용을 지급하고 초과하는 매출이 있을 때 수익을 ??배하는 곳도 생겼다. 문제는 오래지 않아 불거졌다. 작가 입장에서는 저마다 다른 고료의 책정 기준과 수익 분배에 따른 기업의 역할 등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커지는 비용 구조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통상적인 출판사의 비용구조와 달리 IT기업의 형식을 취한 웹툰플랫폼의 판매관리비는 높은 편이다. 이제 플랫폼은 손익계산을 다시 할 것이다. 어떻게 창작 노동에 대한 단가를 책정하고 어떻게 창작 권리에 대한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그리고 그로인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특히, 콘텐츠를 중개하는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를 직거래하고 저작권리에 대한 정산과 분배를 재정의 하고자 하는 신생 기술 기업의 등장이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
3. 적정생산의 위협
유료 웹툰 시장이 열리면서 웹툰 플랫폼이 한 때 40여 개 이상 운영됐다. 웹툰플랫폼의 일반적 특징은 주기성에 입각한 요일제 작품 편성으로 소비자를 반복 유입시키고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웹툰 플랫폼은 요일별로 통상 10편 이상의 작품을 주간 연재했다. 웬만한 플랫폼 1개가 70여 편의 작품을 게재했다. 상위 20여 개 업체만 합산해도 140여 편이다. 웹툰가이드에 의하면 2017년 12월 현재 연재중인 웹툰은 총 2,182편이다. 세계 최고의 만화대국이라고 하는 일본만화 시장에서 2017년 발행되고 있는 만화잡지 수는 173종이다. 잡지당 15편의 작품이 연재된다고 가정하면 2,595편 규모. 소비시장 규모만 따져도 수치상으로 4배, 체감상으로는 10배 가까이 차이 나는 일본의 만화시장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생산시장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시장 붐에 편승한 일시적 상황이라 하더라도 과도한 생산 규모가 아닐 수 없다.
△ 플랫폼별 연재작품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웹툰가이드
△ 웹툰인사이트가 새롭게 선보인 세계웹툰서비스정보
전통적인 출판시장에서는 경기가 위축되면 종수가 늘고 경기가 좋을 때는 부수가 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출판사들이 통상적인 판매부수를 맞추기 위해 신간 종수 발행을 늘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디지털로 바뀐 웹툰 시대에도 유효하다. 주력 작품의 연재가 종료되거나 판매가 위축되면 주력화 하고자 하는 작품의 생산을 늘리거나 작은 매출을 늘려 큰 작품의 매출을 감당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 웹툰의 과도생산은 붐에 편승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질적 수익성을 강화하지 못하고 있는 플랫폼 내부요인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 즉, 과도생산 체계에 대한 경험과 반성은 적정생산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고 플랫폼 별 작품편성에 있어서 재검토가 이뤄지게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과정에서 우리 만화계는 한 번 더 뼈아픈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지점은 웹툰 시장이 산업계의 콘텐츠 기획개발 의지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작가들의 자발적 참여를 촉진해 구축됐다는 점이다. 현재는 기업의 기획개발 의지, 즉 원고료가 작가들의 창작을 촉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자면 매우 당연한 방식이지만 기업의 의지가 강화되면 개방과 참여의 폭이 제한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혜롭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4. 역할 갈등
올 한 해 우리 만화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를 한 개의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역할 갈등일 것 같다. 특히, SNS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과 생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대여서 개인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은 그 자체로 모순을 만들어 내고 심리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다. 가령, 한 웹툰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문제시됐을 때, 선배작가이자 학부모인 한 작가는 ‘일부 웹툰으로 인해 웹툰 전체가 사회적으로 저평가 받게 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가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올 해 다수의 만화인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또는 개인적 발언이 자신의 다른 역할과 모순되는 상황에 빠졌고 이는 SNS를 통해 폭넓게 회자됐다. 같은 작가이지만 인기작가여서, 남성향 만화를 하고 있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니고 있어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직원이지만 만화계 전체를 생각하는 만화인이어서 등등등. 현재의 만화계 종사자들은 단순하게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 된 사회적 관계가 불특정 다수의 SNS를 통해 형성되어 있다. 이는 수많은 설화의 진원지가 됐다. 어떤 측면에서는 정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개방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악의적 루머나 부메랑이 되어 발화자와 관계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이슈는 초연결 사회의 일상일수 있다. 또, 매 해 반복될 일이기도 하다. 만화인 내부에서 차이를 인정하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글. 박석환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 교수)
출처. 디지털만화규장각 (https://www.komacon.kr/dmk/manhwazine/zine_view.asp?Seq=3357&nowPage=1)
게재일. 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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