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20세기 기사단, 김형배, 1981년 [한국만화정전 33], 2013.7.23

[후기] 우리 또래의 많은 소년들이 <20세기 기사단>을 즐겼을 테다. 나 역시 매달 이 작품의 연재호를 손꼽아 기다렸고 표지 그림을 따라 그리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기실 내게는 <최후의 바탈리온>이 진짜 김행배의 만화였고 워너비 아이템이었다. 매호 속표지만 찟어서 모으기도 하고 트레이싱 페이퍼로 따다 그린 그림에 색깔을 입혀서 코팅을 하기도 했다. 그 때 내게 김형배의 만화는 김완선과 이지연보다 매력적이었다. 


 

 

 

[한국만화정전]

21세기에도 나오기 힘든 SF밀리터리물

20세기 기사단, 김형배

 

 

[그림 1] 김형배, <20세기 기사단>, 게임문화사 2002년 판(1981년 첫 발표)

 

■ 작품에 대하여 : 냉전시대의 정의와 낭만적 소년

 

김형배의 <20세기 기사단>은 1981년부터 3년간 아동교양지 [새소년]에 연재된 작품이다(1979년에 발표됐다는 기록도 있으나 [새소년] 연재는 81년 1월이다). 연재 당시 SF공상과학만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으나 이후 만화팬들 사이에서 근미래 밀리터리물의 첫 사례를 제시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이 연재되던 시기는 ‘한국전을 경험한 세대로부터 탄생한 군사정권 세대가 성장하던 때’였다. 남북분단의 위기 속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냉전시대였고 충(忠)과 호국(護國)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다. 이런 분위기 탓이었는지 다양한 유형의 군인·장군·스파이 등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유행했다. 초중고교생들 사이에서는 사관생도를 선망하는 이들이 많았고 특수한 ‘명령’과 ‘임무’가 ‘정의’와 ‘평화’라는 동기부여를 통해 선(善)으로 행해졌던 때이다.

 

[그림 2] 김형배, <20세기 기사단> 1권 표지, 주인공 훈

[그림 3] <20세기 기사단> 초반부의 주요 등장인물

 

<20세기 기사단>은 근미래물답게 작품의 배경을 냉전시대가 아닌 탈냉전시대, 냉전이후 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완전히 멸망했을 때 그 분신들이 범죄 단체 스펙터를 조직’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국가의 수뇌들이 ‘정의의 불사신 20세기 기사단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각국의 용감한 소년소녀들을 선발해서 군사훈련을 시키고 최신 과학 장비를 들고 세계 각국에서 스펙터 조직과 싸우게 한 것이다. 왜 공산진영의 어른들과 자유진영의 아이들이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하고 자유진영의 어른들은 명령만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하지만 ‘기사단의 이름으로 정의 수호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작품 속 기사들은 흥분했고 당대의 독자들 역시 열정적으로 공감했다.

 

[그림 4, 5] 고단한 전장의 친구이자 적으로 결국 피해자가 되어야 했던 아이들

 

주인공 김훈은 20세기 기사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국지부에 찾아 간다. 선발대회에서 만난 창안과 함께 각종 테스트를 통과하고 여성 기사단 보라 등과 함께 팀을 이뤄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 중동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사단과 스펙터의 첩보전을 비롯해서 대륙간 미사일의 위기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잃거나 빼앗아야하는 기사단과 조력자들의 모습이 세계 각국을 돌며 실감나게 전개된다. 여러 에피소드에서 영화 ‘007시리즈’의 영향이 드러나는 점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지만 1986년 [만화올림픽]에 후속편 격인 ‘21세기 기사단’이 연재될 정도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클로버문고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된 바 있고 2002년에는 게임문화에서 전9권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다.

 

 

■ 작가에 대하여 : 공상과학물의 고증에 매달리다 현실을 찾은 만화가 김형배

 

[그림 6] 연재 당시의 김형배

 

김형배(1947년 생)는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고교시절부터 그림에 두각을 보였던 김형배는 1965년 필명으로 대본소용 만화를 그리면서 만화계에 입문했다. 서부활극 등으로 일가를 이룬 오명천의 작품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군 제대 후인 1976년 첩보활극으로 유명했던 이종진의 작품을 돕다가 <기타스토리>라는 작품이 가판용으로 발매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세련미 넘치는 펜화가 인상적인 연예계 소재의 성인 취향 작품이었지만 후속 작업은 극장판 만화영화를 출판만화로 각색하는 일이었다. 김청기 감독과 팀을 이룬 조항리 작가 등의 청탁으로 이뤄진 작업이었고 그 결과가 곧 만화 <로보트태권브이>와 <황금날개>였다.

만화영화의 흥행과 함께 만화도 인기를 끌었다. 만화영화가 시리즈로 개봉되면서 만화도 인기를 모았고 독립적인 시나리오로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후일 김청기 감독이 ‘만화영화보다 만화책 태권브이가 더 유명한 것 같다’고 했을 정도로 김형배의 ‘태권브이’는 독자적인 매력을 보여줬다. 극장 스크린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강하고 단아한 펜선은 로봇에 생명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과 달리 김형배는 ‘상상력’과 ‘작화력’으로만 그렸던 공상과학만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림 7] 김형배의 걸작 SF 만화 중 한 편인 <헬로팝>

[그림 8]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황색탄환>

 

1980년 여학생 교양지 [여고시대]에 <꿈꾸는 아뜨리에>를 시작으로 <하얀 파도의 노래>, <작은 민들레> 등 순정만화로 볼 수 있을만한 작품을 여럿 선보이면서 멜로 드라마적 감수성과 낭만적 취향을 맘껏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형배의 스토리텔링은 그가 선보였던 비쥬얼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김형배는 다시 공상의 세계로 와야 했고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수많은 자료를 모았고 과학적 고증에 충실을 기한 밀리터리물을 선보였다. <20세기 기사단>으로 시작된 작업은 <최후의 바탈리온>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공상과 과학이 빠진 현실과 이데올로기로 옮아갔다. 1987년 성인만화잡지 [만화광장]에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투이호아 블루스>를 시작으로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고 1992년 [스포츠조선]에 <황색탄환>을 연재하면서는 베트남전쟁 전문만화가로 불리기도 했다. 새로운 작품이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전쟁에 대한 김형배의 관점은 넓어졌고 인식은 깊어졌다. 김형배는 그렇게 공상과학과 군사만화의 고증에 매달리다 역사적 현실과 만났고 바른만화, 우리만화를 찾으며 이데올로기를 그리는 작가로 거듭났다. 현재는 역사와 전통, 종교와 철학을 특유의 펜화에 담고 있다. (사)우리만화연대 회장(1998년)을 지냈고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장(2013년)으로 활동하고 있다.

 

 

■ 명장면 명대사 : 당신의 명령을 신은 저주할 거요

 

[그림 9] 스펙터의 기습 침공으로 시작하는 <20세기 기사단>의 첫 장면

[그림 10] 대륙간 탄도미사일 요격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

 

<20세기 기사단>은 김형배 만화세계의 중심부에 위치한 작품이다. 공상과학만화와 전쟁이데올로기만화 사이에 있고 나름의 자료수집과 고증을 바탕으로 전개한 작품이다. 재발행본이 발매됐을 때 작가의 말을 통해 ‘촌스러운 그림과 스토리의 부끄러움에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라고 적기도 했지만 ‘김형배’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20세기 기사단’을 꼽니다. 당대 주류 만화의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김형배만의 펜화가 지닌 매력과 SF만화라는 소재적 특이성은 이 작품을 20세기에 등장한 21세기 스타일의 만화로 꼽게 만든다.

 

[그림 11, 12] 적의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 마을을 향해 포를 쏘는 훈

 

많은 이들이 추억하는 이 작품의 명장면은 기사단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자일이 스펙터의 전차를 파괴시키기 위해 마을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는 발포 명령을 내리자 이에 항명하다가 발포하며 울부짖는 훈의 모습이다. 훈은 ‘당신의 명령을 신은 저주할거요’라며 마을로 토우 M12포를 발사한다. 스펙터의 막강한 전차가 파괴됐지만 마을에서 만났던 소녀 쟈스민과 마을 주민들도 함께 몰살됐다. 쟈스민과의 추억을 교차 편집한 이 장면은 전쟁의 비극과 군인의 현실을 극명하게 전달했다. 적을 죽이기 위해 민간인을 보호하지 않았던 전시 상황에 대해 자일과 훈 일행은 군법회의에 서게 되고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자일은 다른 이름으로 살게 되고 훈 일행은 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난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스펙터의 흑색선전을 우려한 ‘민심수습용’ 선고였던 셈이다. 마을 폭파에 울분을 표했던 성숙한 훈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김형배는 이 장면에서 훈을 상황윤리를 앞세우는 어린아이처럼 묘사했다. 자일을 사형시키면 안되고 자신들도 죄가 없다는 것이다. 발포 명령 시 자일이 ‘내 진심을 모르느냐’라고 곁눈질하며 물었던 것처럼 작가의 진심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때 이미 김형배는 ‘전시상황이라는 이유로 적을 사살하기 위한 모든 행위가 선이 될 수 없다’는 자세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아동만화라는 이유로, 냉전시대이고 군사정권 하에 있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을 터. 이를 좀 더 우습고 낭만적으로 묘사함으로서 반어적 의미를 감췄던 것 아닐까. 그래서 더 다시 보게 만드는 장면이다.

 

 

참고자료

네이버스토어, 김형배, 20세기 기사단 작품보기

http://nstore.naver.com/comic/detail.nhn?productNo=50396

코믹플러스, 김형배 만화 작품보기

http://www.comicplus.com/검색/?tab=1&keyword=김형배

네이버블로그, 로봇광, 20세기 기사단 리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jh7164&logNo=60020341137&categoryNo=13&viewDate=&currentPage=1&listtype=0&from=postList

네이버블로그, (김형배 팬 블로그)바벨3세가 헬로팝을 만났을 때, 김형배 작품목록

http://blog.naver.com/kckpc3/30145262772

오마이뉴스, 김형배 인터뷰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66651

 

 

글. 만화평론가 박석환(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유년시절 이두호의 만화로 한글을 깨우치고 이상무의 만화로 울지 않는 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현세의 만화를 보며 도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았고 허영만의 만화를 통해 현명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을 찾았다. 스포츠서울 신춘문예로 등단해 만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고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친다. 저서로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자료협조 한국만화영상진흥원(www.komac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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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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