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불나비, 김민, 1973년 [한국만화정전 32], 2013.7.22

[후기] 나는 김민이라는 작가를 성인명랑만화가로 기억한다. 90년 초중반까지 이어졌던 성인주간만화잡지의 열풍 속에 그의 만화는 나름의 지분을 지니고 빛나고 있었다. 대본소 시절의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니다. 80년말 대본소 순례를 다닐때 재판본으로 나왔던 <불나비>시리즈를 목격했었다. 서가에 기대서서 몇 권을 읽기도 했었지만 그의 만화를 다 읽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찾던 극적 재미와 흥미요소를 발견하지 못한 것일테다. 그리고 또 몇해가 지나고 만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무렵 다시 김민을 만나게 됐다. 평론가 황민호 선배가 씨네21에 쓴 글에서 였다. 한줄 한줄 적어낸 김민과 불나비가 머릿속에서 살아났다. 물론 나의 불나비가 아니라 그의 불나비였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만화계 인사들은 김민을 당대 최고의 천재라 칭했다. 그러나 많은 천재들이 그렇듯 그 역시 성실이라는 멍애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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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정전]

싸우지 않고 이겼던 검객

불나비, 김민

 

 

[그림 1] 김민, <불나비>, 1973년 첫 발표

 

■ 작품에 대하여 : 자기성찰적 삶의 태도를 검술로 보여준 깨달음의 만화

 

김민의 <불나비>는 1973년 소년한국일보사에서 처음 발행됐다. 무협만화나 검술만화로 볼 수 있지만 격투 장면보다 고수들 간의 선문답이 더 많이 등장하는 잠언록 같은 작품이다. 첫 작품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으면서 <바람 속의 불나비> <불나비와 사제출두> 등 다수의 ‘불나비 시리즈’가 발행됐다. 소년한국일보에 ‘무사 불나비’가 연재되기도 했고 삼현출판사, 대룡사, 민들레문고 등 여러 출판사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판본으로 재발행 되며 걸작만화의 생명력을 증명한 바 있다.

 

[그림 2] 김민, <바람 속의 불나비>, 소년한국일보사, 1976년

[그림 3] 김민, <소림사의 불나비>, 동광출판사, 1980년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별칭인 ‘불나비’ 역시 독특한 의미가 있다. <불나비>는 춘추전국시대에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죽을 줄 모르고 불 길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 같다’는 의미에서 붙인 제목이다. 그런데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독자들이 이름 없는 주인공 소년을 ‘불나비’라 칭했고 후속 시리즈가 나오면서 소년은 자연스럽게 불나비가 됐다. 독자들에 의해 이름을 얻은 캐릭터가 된 것이다. 불나비는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가족을 잃고 폐허 속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외롭게 성장한다. 아버지의 부하였던 장수로부터 기본적인 무술을 배웠지만 그 보다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자연을 모방하며 고수로 성장한다. 고수가 된 불나비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나서지만 복수가 허망하다는 것과 검은 쓰임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천하제일검이 된다.

 

[그림 4] 김민, <영광의 불나비>, 소년한국일보사, 1976년, 3권 속표지

[그림 5] <영광의 불나비> 중, 스님이 무사처럼 소림사 무술을 쓰려하냐고 호통 치는 불나비

 

만화는 천하제일검이 된 불나비의 회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신이 최고가 되기 위해 아귀처럼 싸웠던 일이나 최고를 꺾고 최고수의 명성을 얻으려는 불나방 같은 도전자들과의 일전을 그려간다. 불나비는 자신이 처한 현재와 과거의 상황을 오가며 새로운 문제를 만나고 색다른 해법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불나비는 천하제일검으로서 누려야 할 승리감이 아니라 지켜야할 자세와 덕목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진정한 고수이자 강자가 된다. 이 같은 전개방식과 격투과정을 통해 전달되는 검과 삶의 상관관계는 이 작품의 정조를 무협액션활극이 아니라 성장문학이나 구도문학 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또 자신의 경지를 스스로 깨가며 득도의 단계에 이르는 불나비의 사유와 태도에서 독자들은 철학적 질문과 답변을 찾기도 했다.

 

 

■ 작가에 대하여 : 아동만화, 무협극화, 성인극화를 섭렵했던 만화천재 김민

 

[그림 6] 김민(네이버ID 노나리님 제공)

 

김민(1944년 생, 본명 김무웅)은 1968년 한 경제주간지에 시사만화를 연재하며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땡이 시리즈’로 유명한 임창 문하에 입문해 황재, 허영 등과 함께 수련기를 보냈다. 큰 눈의 단정한 5등신 캐릭터 ‘땡이’로 대표되는 임창의 만화는 <땡이의 사냥기>(1964), <땡이의 애견기>(1966), <땡이와 영화감독> 등 소년의 희망과 직업체험을 주 소재로 다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60년 대 말, 70년 대 초에는 <날개>(1968), <학병>(1968), <독박골의 의적>(1969) 등 운명적 주인공과 불합리한 사회를 다룬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는데 이 시기의 작품이 임창 문하에서 김민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로 추정된다.

 

[그림 7] 임창 글/ 김민 그림, <나는 외톨이>, 우수문고, 1971년

[그림 8] 김민, <골목안 무법자>, 소년한국일보사, 1974년

 

김민의 본격적인 데뷔작은 1971년 임창 글, 김민 그림으로 우주문고에서 출간한 <나는 외톨이>로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지명도를 지닌 스승이 제자의 데뷔를 지원하거나 추천하는 의미에서 저자 명기를 병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스승의 화풍과 유사한 작품을 발표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후 김민은 해외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외투> <데미안>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당대 만화에서 찾을 수 없는 어두운 소재와 기이한 극화풍의 작품을 선보이며 ‘불나비 시리즈’의 탄생을 예고했다. 당대의 액션활극 만화에서 찾을 수 없었던 ‘불나비 시리즈’의 자기성찰적 주제와 거친 펜선은 머리 굵은 만화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김민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성인 취향의 만화 <인간 제로지대>(1974) <1시의 탈출> <2시의 탈출> 등을 발표하며 마니아 독자그룹을 형성했다. 한편, 같은 시기에 ‘땡이류’의 만화 창작도 지속해 아동만화, 무협극화, 성인극화 3개 영역에서 각기 다른 화풍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림 9] 일본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알려진 성인극화 <인간제로지대>

[그림 10] 성인만화잡지에 연재한 <헬로우 놀부형>

 

전방위 만화가로 70년대를 풍미했던 김민은 80년대 중반 또 한 번 화풍을 바꿔 성인명랑만화 <여어 이몽룡>(1982), <접시물에 빠진 사나이>(1984)를 발표한다. 이후 만화계를 떠났다가 ‘걸레방자전(1990)’ ‘헬로우놀부형(1995)’ 등 고전소설을 넌센스만화로 재해석한 작품을 성인만화잡지에 연재했지만 달라진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김민은 자신이 소비한 세계문학, 허리우드영화, 일본소설 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조하는 천재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시대적 변화에 맞춰 화풍과 형식, 주제의식까지 필요에 따라 바꿔낼 수 있었던 만화천재였다. 그러나 <불나비>에서 보여준 자기성찰적 삶의 태도가 ‘천재만화가의 삶’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만화계 후배들은 김민을 만화에 대해 진지성이 부족했던 천재로 기억하고 있다.

 

■ 명장면 명대사 : 강하다는 건 약한 상대가 있기에 성립되는 것

 

캐릭터의 조형적 측면에서도 김민의 천재성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외형만으로 보면 불나비는 검을 쓰는 검사(劍士)라기보다는 힘 좀 쓰는 역사(力士)에 가깝다. 떡 벌어진 어깨와 육중한 상체 그리고 두꺼운 허리는 날렵함이 필요한 검객이라 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스님과 분재를 자르며 ‘검은 다루는 사람에 따라서 그 쓰임새와 베임의 효력’이 다르다는 가르침을 받고 ‘강하다는 건 약한 상대 있기에 성립되는 것이오.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무리 강한 자라도 상대할 수 없소.’라며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육중한 외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검객 불나비’에 매료됐던 것은 김민이 이야기 속의 인물 설정과 외형적 묘사를 의도적으로 구성해냈기 때문이다.

 

[그림 11] 검은 다루는 사람과 쓰임에 따라 효력이 달라진다

[그림 10] 아무것도 없는 것 … 보다 더 강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소

 

천하제일검이 되려고 불나비에게 도전장을 낸 무사가 불나비 앞에서 검을 들고 있을 때도 불나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차갑구나! 날씨가 흐리더니만 눈이 오는 구나.’라고 말한다. 모멸감을 느낀 무사는 날렵한 동작으로 불나비에게 달려들고 불나비는 내리는 눈송이를 잡으려는 듯 손을 들면서 ‘아! 아름답구나’라고 읊조린다. 손에 든 칼과 눈 위로 무사의 피가 한 줄 난초처럼 그려지고 쓰러진 무사는 불나비의 정제된 검술을 보고 ‘아름답구나’라며 눈을 감는다.

불나비의 검술을 빠르고 가벼운 것으로 설정하고 외형을 날렵하게 묘사했다면 이처럼 여백이 깊은 연출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육중한 체력의 검사가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한 번의 움직임으로 대결을 끝내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극적 충격과 깊은 여운을 남겼고 불나비를 무게감 있고 진지한 자기성찰적 캐릭터로 각인시켰다. 이런 기초설정 속에서 불나비가 스님이나 대가들과 벌인 선문답이 더욱 의미 깊게 전달 된 것이다.


 

참고자료

네이버책, 황민호, 목탁대신 검을 든 구도자, 내인생의 만화책, 2009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95279

네이버카페, 불나비 김민 팬카페, 김민에 대하여

http://cafe.naver.com/boolnabi/47

디지털만화규장각 매거진, 장상용, 청계천 속 네오리얼리즘과 헐리우드

http://www.kcomics.net/Magazine/column_view.asp?CateCode=3340015&Seq=1569&Vol=102&intBnum=414_13&page=3&mode=column_photo

네이버카페, 만화와 추억, 불나비

http://cafe.naver.com/oldcomic/1918?social=1

티스토리, 까브드맹 블로그, 불나비-구도하는 검객

http://aligalsa.tistory.com/entry/%EB%B6%88%EB%82%98%EB%B9%84-%EA%B5%AC%EB%8F%84%E6%B1%82%E9%81%93%ED%95%98%EB%8A%94-%EA%B2%80%EA%B0%9D

코베이, 김민, 영광의 불나비

http://www.kobay.co.kr/servlet/wsauction/item/itemView;jsessionid=POFLMGHBNNPH?item.itemseq=1101ONQ6395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창작과 교수

1997년 일본만화 범람에 따른 ‘우리만화의 대중 이탈’ 문제를 지적하며 만화계에 입문했다. 2001년 우리가 디지털만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잘 가라 종이만화>를 선언했고, 2008년 개인미디어시대에는 리뷰어가 많아야 한다며 <만화리뷰쓰기> 방법론을 제시했다. 한국만화의 디지털화, 글로벌화, 컨버전스화를 개인 비전이자 역할로 규정하고 관련연구와 집필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www.parkseokhwan.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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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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