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로봇 시대를 예고한 명랑만화 - 로봇찌빠, 신문수
작품에 대하여 : 한국형 인공지능 로봇을 등장시킨 아동명랑만화
신문수의 [로봇찌빠]는 1979년 [소년중앙]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 [도깨비감투]와 함께 ‘신문수 만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작가 연혁이나 인터뷰 기사 등에는 [로봇찌빠]의 발표 시기를 1974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발간시기는 1979년이다. 일본에서 1952년에 인공지능 로봇 아톰이 등장했고 1969년에 초능력 반려동물(?) 도라에몽이 등장했지만 거대로봇만화가 주류를 이루던 70~80년대에 인공지능 반려로봇이라는 발상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특히 아톰이나 도라에몽이 인간적이거나 헌신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줬던 것에 비해 찌빠는 ‘기능성은 높지만 자기중심적이고 말썽 많은 형’ 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로봇 찌빠는 미국에서 600만불을 들여서 제작된 인공지능 로봇이다. 지능회로에 문제가 생긴 하자품인데 한국에 있는 팔팔이가 처음 발견해서 주인이 된다. 로봇을 가지게 된 팔팔이는 반려동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처음에는 신나했지만 어딘가 모자란 찌빠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짜고 창경원에 놀러가자고 하고는 버리고 온다. 이를 알게 된 찌빠는 팔팔이보다 먼저 집에 와서 모르는 척 잠을 잔다. 이때부터 제멋대로인 ‘형’과 팔팔이의 한 많고 탈 많은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팔팔이는 ‘빵점 시험지’ 같은 감추고 싶은 비밀을 모두 폭로하고 다니는 찌빠가 못마땅했다. 바닷물을 많이 먹어 고장 난 찌빠를 고물장사에게 팔려고 내놓기도 했다. 자신을 버렸다가 이제는 팔려고 한 팔팔이가 찌빠 입장에서도 예뻐 보일리 없다. 제주도, 아프리카, 북극, 미국에도 같이 가고 과거와 미래, 심지어 우주여행까지 함께한 절친한 친구이자 생의 반려자였지만 둘 사이는 언제 갈라질지 모르는 긴장이 있었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즐겼다. 마치 형과 동생처럼 찌빠는 팔팔이를 등에 태우고 다녔고 팔팔이 아버지가 직장에 못 나가게 됐을 때는 직접 생활전선에 나서기도 했다. 찌빠의 이런 모습 그리고 팔팔이의 철없는 행동에서 당시 만화팬들은 미워할 수 없는 형의 모습을 찾았다.
[로봇찌빠]는 당대 최고의 소년교양지였던 [소년중앙](1969년 창간~1994년 휴간, 중앙일보사)의 별책부록만화로 연재된 작품이다. [소년중앙]은 ‘아동의 건전한 인격함양과 정서교육’을 목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한 교양잡지였다. 만화 게재 비중이 높아서 [어깨동무] [새소년] 등과 함께 70~80년대 잡지 연재만화 전성시대를 열었는데 [로봇찌빠] 같은 별책부록만화가 큰 역할을 했다. 본지 연재만화가 길어야 20페이지 미만의 분량이었던 것에 비해 ‘별책부록만화’는 한 달에 60페이지가 실렸다. 본지 연재만화에서 느끼는 감질맛을 해소해줬고 콩트 중심의 넌센스만화를 서사 중심의 명랑만화 또는 극화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로봇찌빠]는 [어깨동무]에서 [도깨비감투]와 [원시소년똘비]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신문수를 [소년중앙]이 영입하여 진행한 첫 작품이었다. [어깨동무]의 흥행이 [소년중앙]으로 이어지면서 신문수는 아동만화계의 절대강자로 선생님으로 모셨던 [꺼벙이]의 길창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만화가가 됐다.
별책부록만화였던 [로봇찌빠]는 1981년(중앙일보사) 단행본으로 처음 발행됐다. 2부격인 [신판로봇찌빠](문화출판공사, 1986년)를 비롯해서 다종다양의 찌빠시리즈가 잡지 연재, 단행본 발행, 홍보만화 등의 형식으로 발표됐다. 2002년 [로봇찌빠] 복간본이 바다그림판에서 발행됐다. 2009년 고구미프로덕션에서 동명의 TV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KBS에서 방영된 바 있고 2010년 찌빠와 기종은 같지만 다른 로봇이야기인 [로봇빠찌]가 리메이크 형식으로 제작되어 네이버웹툰에서 서비스되기도 했다.
작가에 대하여 : 한국적 상상력으로 만화세상을 날았던 신문수
신문수(1939년 생, 충남 천안 출신)는 1964년 대중잡지 [로맨스]에 ‘카이젤상사’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학창시절 만화를 즐겨 그렸고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지만 하늘을 나는 비행기 조종사를 꿈꿨다. 신문수는 공군사관학교에 가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공군에 자원입대해서 ‘비행기만 실컷 봤다’고 한다. 1962년 제대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 ‘만화를 그려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동아일보]에 독자만화를 보내기 시작했다. [고바우] [꺼꾸리군 장다리군] 등으로 시사만화와 명랑만화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김성환(1932년 생)이 심사위원이었다. 김성환은 신문수가 천안에서 보낸 ‘사이렌이 고장 나서(1964.01.22.)’에 대해 ‘아동만화적인 요소를 띤 만화로 가작’이라고 평했고, ‘자리가 나빴다(1964.02.06.)’에 대해서는 ‘기성작가의 모방을 하지 않는 개성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며 신문수의 등장을 반겼다.
서울에 올라 온 신문수는 당대 최고의 스타만화가였던 길창덕(1930~2010)과도 인연이 닿아 그의 추천으로 잡지 연재를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 영원한 라이벌이자 평생지기가 된 윤승운(1943년 생)과 함께 길창덕의 일을 돕기도 하고 [의사 까불이]로 유명한 김경언(1929~1996)의 문하에서 단행본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후 신문수는 [소년한국일보]에 [칠칠이모험](1968년), [어깨동무]에 [도깨비감투](1972년), [원시소년똘비](1976년), [소년중앙]에 [로봇찌빠](1979년)를 연재하며 윤승운, 이정문(1941년 생) 등과 함께 70년대 아동명랑만화 전성기를 주도했다.
신문수의 작품은 투명인간이나 인공지능로봇 등 기발한 발상과 한국적 상상력이 어우러진 소재에서 출발한다. 중산층 가족을 무대로 어린이 주인공의 꿈과 모험 그리고 밝고 환한 웃음을 주로 담아냈다. 1977년 한국창작만화가회 회장, 2002년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등을 지냈고 2003년 [도깨비감투] 만화우표가 발행됐다. 1996년 대한민국만화문화대상 출판상, 2001년 공로상, 2008년 고바우만화상, 2010년 SICAF 코믹어워드를 수상했다.
명장면 명대사 : 안 돼, 안 돼! 팔팔아 날 버리지마
[로봇찌빠]는 만화의 주 아이템이었던 로봇의 기계적 능력과 반려(‘짝이 되는 동무’를 뜻하는 한자어) 또는 애완동물이 주는 정서적 위안이라는 요소를 하나의 캐릭터에 담아낸 작품이다. 그 덕에 찌빠는 태생적으로 생활 밀착형 기능과 함께 기계적 소모품이나 애완동물 같은 운명도 함께 지니고 있다.
생활가전품이라고 할 만한 것은 텔레비전 정도가 전부였던 시절에 찌빠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반려로봇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른바 보육 및 감시 기능으로 찌빠는 팔팔이에게 ‘공부도 가르쳐주고 나쁜 버릇도 뜯어 고쳐’ 주겠다고 말한다. 물론 팔팔이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있어서 영상 입출력 기능은 물론이고 비행, 탐지,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기능도 갖추고 있다. [로봇찌빠]의 명장면이라면 찌빠가 팔팔이를 등에 태우고 멋지게 학교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이라던가, 팔팔이의 아버지가 탄 비행기 옆으로 찌빠가 날아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찌빠는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으면 제 기능을 상실하는 소모성 생활가전제품이라는 점이다. 매력적인 로봇이지만 주인을 잃거나 버려지면 제 한 몸 어찌할 바 없는 반려동물 신세이다. 외계인의 왕이 ‘이런 고철 덩어리를 어디에 쓰냐’고 했더니 찌빠는 ‘안 돼, 안 돼! 팔팔아, 날 버리지 마!’라고 울며 매달린다. 큰 인심이라도 쓴 듯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팔팔이가 얄밉기도 하고, 눈물 흘리며 졸졸 따라가는 찌빠의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다. 다시 읽은 [로봇찌빠]에서는 이 장면이 오래 남는다. 이런 소소한 장면에서 당시 아이들은 눈물지었고 그 뒤 펼쳐지는 찌빠와 팔팔이의 옥신각신 다툼에 웃음 지었다. 좀 더 큰 도전과 모험을 기대하면서.
참고자료
네이버 N스토어, ‘인공지능 로봇찌빠’
KBS, TV 애니메이션 ‘로봇찌빠’
네이버캐스트, ‘명랑사회의 산 증인 만화가 신문수’ 항목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동아일보, 1964.01.22.
네이버 만화, ‘로봇빠찌’
글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후기]
찌빠와의 인연은 남다르다. 어린 시절이야 당연히 '아는 형' 같은 포스로 함께 했었고 어른이 되고 만화쪽 일을 하면서 시시때때로 신문수 선생님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은 그 때마다 '찌빠'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했고 찌빠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모습으로 날아 다녔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 자리를 옮겼던 2009년 처음 추진한 일이 입주기업 모집이었다.
그때 섭외 대상이었던 기업 중 (주)고구미가 있었다. 업체에 방문했을 때 고구미는 신문수 선생님의 로봇찌빠를 TV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있었다. 좋은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고전명작만화리메이크사업을 담당하게 됐고 한 기업에서 로봇찌빠를 리메이크하겠다고 했다. 신나는 일이었다. 다른 리메이크 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았지만 찌빠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결과적으로는 여러 이유로 인해 '로봇빠찌'라는 모호한 제목으로 론칭됐고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끝났지만 찌빠의 환생은 미묘한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몇몇 영화사에서 실사영화에 대한 문의를 해오기도 했으니 그 것이 어느 해쯤인가는 소담스런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허영만 선생님의 <제7구단> 역시 그렇게 수차례 떠돌던 소문이 '미스터고'라는 영화로 이어졌으니 '로봇찌빠' 영화도 기대해 볼 법 하다.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