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꺼벙이(길창덕 글그림),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3.01.15

우리가 지켜야했던 모든 것 - 꺼벙이, 길창덕


[그림 1] 길창덕, 꺼벙이, 1970년 [만화왕국] 연재 개시(1979년 백제 발행본)


■ 작품에 대하여 :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가치를 전했던 명랑만화


길창덕의 <꺼벙이>는 1970년 [만화왕국]에 연재된 명랑만화이다. 1974년 [소년중앙]으로 옮겨 연재됐고 1977년 완결됐다. 꺼벙이네 가족을 중심으로 70년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크고 작은 고민들을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담아낸 걸작으로 <재동이> <순악질여사> 등과 함께 길창덕의 대표작이다. 1980년 이화여대에서 진행한 한 조사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로 선정된 바 있고 1999년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지정한 캐릭터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01년에는 꺼벙이 만화 우표가 발행되기도 했다.


[그림 2] 만화잡지 [만화왕국]에 게재됐던 ‘꺼벙이’ 1회분 속표지
[그림 3] 길창덕, 꺼벙이와 꺼실이, 백제, 1979년


주인공 꺼벙이는 머리에 기계충(두부백선 : 머리의 뿌리에 곰팡이균이 기생하는 질환) 자국이 있고 반쯤 졸린 눈을 한 초등학생으로 조금 모자라지만 여리고 착한 친구이다.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상경한 여동생 꺼실이, 엉뚱한 꺼벙이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 없는 부모님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잡지에 월 1회 연재된 작품으로 그 달의 이슈가 곧 중심 소재가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시추에이션 드라마 같은 식으로 3월이면 입학식, 5월이면 어린이 날, 8월이면 여름방학을 다뤘다. 이 같은 작품 형식은 자연스럽게 주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그 달에 있을 사회적 중대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고 그 시기에 지녀야할 자세나 태도를 알게 했다.

 

[그림 4,5] 대교출판사에서 발행한 꺼벙이 시리즈

휴일이면 어린이 대공원이나 창경원에 놀러가고 방학에는 시골 친척집에 방문했다. 여름휴가는 해수욕장으로 가고 방학숙제를 하느라 고민한다. 겨울에는 뛰어 놀기 바쁘지만 불조심도 해야 하고 불우 이웃도 도와야 한다. 물론 평일에는 학교에 가고 골목길에서 놀거나 주변 지역을 돌아다닌다. 아버지 회사에도 자주 가고 근처 상점을 비롯해서 병원, 은행 등에도 자주 간다. <꺼벙이>는 이처럼 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70년대 도시 중산층의 삶을 모델화하여 제시했다. 도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었고 이하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었을 터. 꺼벙이는 그들에게 도시화 된 삶의 보편적 기준과 생활방식, 어떤 사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신념을 매우 자연스럽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림 6,7] 어린이날을 소재로 한 꺼벙이, 얼굴이 지워진 꺼벙이의 한 장면


누구도 꺼벙이가 특정일(어린이날, 어버이날 등)에 펼치는 못 말리는 말썽을 따라하라고 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사태를 수습하고 교훈을 얻어가는 과정을 담은 만화 <꺼벙이>에 대해서는 독서를 권장했다. 그 작품 안에는 그 시절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것’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는 군부독재 하의 정치적 불행과 군사적 불안을 급격한 도시상공업화와 ‘잘 살아보세’라는 표어가 위안하던 시기였다.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그 같은 불행과 불안,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를 지니고 있었으나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있어도 조금 모자란 듯 ‘꺼벙이’가 되면 보편적 도시 삶의 질서 안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환상을 줬다. 만화 <꺼벙이>는 그 같은 불안과 희망을 흐린데 없이 밝고 환하게, 말 그대로 ‘명랑’하게 펼쳐보였다. 그것이 당시 정권의 통치철학이나 교육이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길창덕이 그려낸 꺼벙이는 ‘동의할 수 없지만 지울 수 없는 그 시절 우리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 작가에 대하여 : 한국적 캐릭터만화의 대가 길창덕


[그림 8] 길창덕


길창덕(1930년~2010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은 1955년 [서울신문]에 ‘머지않은 장래의 남녀상’이라는 한컷만화를 게재하고 1956년 [야담과 실화]에 ‘허서방’을 연재하며 만화계에 입문했다. 1966년 [소년한국]에 연재를 시작한 <재동이>, 1970년 [만화왕국] [소년중앙]에 연재한 <꺼벙이>, 1970년 [여성중앙]에 연재한 <순악질 여사> 등 연재 기간이 10여 년을 훌쩍 넘는 인기 만화와 장수 캐릭터를 여럿 만들어냈다. 길창덕은 아동에서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군을 동시대에 거느린 행복한 만화가였다.


[그림 9] 길창덕 만화의 주요 캐릭터들


길창덕은 15세 때 이른바 ‘이발소그림’으로 불리는 풍경화 등을 그리며 그림과 인연을 맺었고 군 복무 중 신병 훈련 교재를 만화로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코주부’ 김용환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일본만화 등을 구해 습작했다고 한다. 길창덕은 그 흔한 문하생 하나 없이 혼자서 작품 제작 전반을 진행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때 월 25개의 원고를 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고 그 덕에 매일 원고와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1987년 한국언론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80년대 발간된 잡지에 가장 많이 기고한 외부필자로 작가 이병주, 학자 유재천에 이어 만화가로는 길창덕’이었다고 한다. 길창덕의 전쟁은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일선에서 물러난 1997년 까지 계속됐다.
길창덕의 만화는 가족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종의 시추에이션 홈드라마 같은 형식으로 마루나 마당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런 이유로 길창덕 스토리만화에는 자상하고 합리적인 어른이나 믿을만한 안내자가 자주 등장한다. 이 같은 이유로 길창덕 만화는 건전만화, 착한만화로 불리기도 했다. 1981년 색동회상을 수상했고 2002년 대한민국출판만화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2003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고 2004년에는 ‘길창덕 만화세계 50년, 꺼벙이전’이 열리기도 했다. 2006년에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코믹어워드 대상을 수상했다. 2010년 1월 30일 향년 81세로 운명했다.



■ 명장면 명대사 : 꺼벙이를 자라게 했던 아버지의 잔소리와 허한 눈


[그림 10] 꺼벙이, ‘키 크는 작전’ 편, 14~15p


<꺼벙이>에는 산수를 푸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엉뚱한 계산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부모님께 필요한 용돈을 받기 위해 계산을 하는 장면, 용돈을 저금해서 먼 미래에 큰돈을 만들거나 시간을 초 단위로 따져가며 살기 위한 계산까지. 돈과 금전거래를 소재로 한 장면이 많아서 너무 ‘돈돈돈’ 거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그 시절 아이들에게 산수는 꼭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부모님 심부름으로 상점에 갔다가 거스름돈을 잘 못 받아오거나 나쁜 물건을 사오면 ‘꺼벙이’ 소리를 들었을 만큼 <꺼벙이>는 전 국민 교과서 역할을 했고 실생활에 필요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법과 금전거래 방식을 알려주는 생활 산수 사례집이기도 했다.


[그림 11] 꺼벙이, ‘키 크는 작전’ 편, 16~17p


바다그림판에서 발행한 <꺼벙이> 1권에 실린 ‘키 크기 작전’편은 돈과 관련 있으면서 국가적 가치관과 사회적 이슈, 만화적 발상이 어우러져 있는 가장 ‘꺼벙이’다운 에피소드이다. 헐레벌떡 아버지를 찾아 온 꺼벙이는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만원을 달라고 한다. 이유를 묻는 아버지에게 콜라를 잔에 따라 마시고 나서는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동메달을 탄 배구 대표팀의 키가 외국의 장신 선수와 비교하면 ‘잔과 콜라병 차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만원을 주시면 ‘먹고 싶은 것 뭐든지 다 사먹고’ 키가 부쩍 커져서 금메달을 따오겠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아버지는 ‘까먹을 생각만 말고 키 크는 운동’을 하라고 잔소리와 함께 모범 답안을 내놓는다. 꺼벙이는 아버지의 말씀과 동네 형의 조언으로 농구를 한다.


[그림 12] 꺼벙이, ‘키 크는 작전’ 편, 18~19p


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꺼벙이는 신발에 스프링을 달고 점프력을 극대화한 꺼벙이식 농구를 한다. 점프는 멈추지 않고 꺼벙이는 ‘꺼벙이 살려’를 외친다. 아버지는 뒷목을 잡고 ‘맙쇼’라며 탄식한다. ‘맙쇼’는 꺼벙이가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내 뱉는 아버지의 대사로 ‘맙소사’의 준말이다. 사고 치는 꺼벙이를 보며 ‘맙쇼’를 외쳤던 아버지들의 허한 눈, 그 눈이 지금의 꺼벙이 세대를 응원하고 성장하게 했을 것이다.



참고자료
길창덕, 꺼벙이, 바다그림판, 2010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5319
네이버캐스트, 명랑사회를 이끈 명랑만화가 길창덕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7&contents_id=7378&leafId=27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색동회상 받은 어린이만화가 길창덕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50200329209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5-02&officeId=00032&pageNo=9&printNo=10950&publishType=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만화가 길창덕씨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50700329206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5-07&officeId=00032&pageNo=6&printNo=11570&publishType=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어린이잡지 효과분석-학습에 별 도움없지만 유익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72400329205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7-24&officeId=00032&pageNo=5&printNo=10713&publishType=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잡지 최다 기고가는 이병주씨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1160032920603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7-11-16&officeId=00032&pageNo=6&printNo=12965&publishType=00020
만화의 숲 블로그,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를 분석하다
http://blog.naver.com/mice3nyc?Redirect=Log&logNo=90028819458




박석환/ 만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한국만화정전을 시작하면서 될 수 있으면 발행년도 순으로 작품을 소개하고자 했지만 낯모르는 작품들이 너무 길게 등장하면 이용자들이 흥미를 잃을 수 있을 것이라는 편집자의 의견을 존중해서 특정 시기의 작품들을 10편씩 묶어서 소개하기로 했다.

1차분은 1940년 이전에 발표된 근대만화 10편이었다.
2차분은 1990년을 전후로 발표된 코믹스만화 10편이었고
3차분은 1970년 이후 발표된 명랑만화와 90년 이전까지 발표된 장르만화 16편을 골랐다. 순정만화4편을 포함해 20편으로 잡았는데 이 작품들은 따로 카테고리를 묶기 위해 뒤로 미뤘다.

3차분의 첫머리는 당연스럽게 길창덕 선생님의 <꺼벙이>였다.
73년 생인 내가 실시간으로 소비하지는 못했지만 동시대의 독자로서 만화를 찾던 내 눈길에 언제나 함께 서있었던 선생님의 작품이다. 그들을 만나며 그 시절을 되 살펴본다.

초심이 필요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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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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