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코믹판타지의 전형
까꿍, 이충호/엄재경
[그림 1] 이충호 그림/엄재경 글, 까꿍, 1995년 [아이큐점프] 연재 개시
■ 작품에 대하여 : 드래곤볼과 정면 승부를 펼친 코믹판타지
이충호와 엄재경의 <까꿍>은 1995년 [아이큐점프]에 연재를 시작해 1999년 완결된 작품이다. 명랑만화와 학원연애만화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던 전작 <마이러브>에 이어 이충호와 엄재경 콤비가 공들여 기획한 두 번째 작품이다. 대마왕을 부활시키려는 육마장군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 주인공 까꿍과 친구들의 모험을 다룬 코믹판타지물이다. 150만부 판매를 기록한 <마이러브>에 이어 이 작품도 100만부 판매를 기록했다.
[그림 2,3] 까꿍과 친구들
신족과 인간족에 의해 대마왕이 봉인된 후 세상은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일부 마족들이 대마왕의 봉인을 풀기 위해 등장하면서 세계는 긴장과 혼란에 빠져든다. 구름섬에 살고 있던 12살 소년 까꿍은 독특한 능력을 지닌 친구들을 규합해서 이를 막기 위해 대전을 펼친다. 까꿍의 애완견이자 취권에 능한 슈바, 각종 무예의 달인인 아자거사와 딸 민들레, 아자거사의 수제자인 왕자병 소년 박카스, 아이큐 160의 천재 소년 흑흑과 컴퓨터통신시대의 조력자 컴할머니 등이 등장한다. 이들과 함께 기발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마족이 수없이 등장하고 까꿍과 친구들 간의 유쾌한 대사와 함께 통쾌한 액션에 이어 상쾌한 엔딩이 펼쳐진다.
아동을 위한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까꿍과 민들레, 민들레와 박카스의 삼각관계는 소년의 순정을 자극했고 마족을 향한 까꿍의 투지는 성년의 소명의식과 공명심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폴>이 ‘주인공의 무모한 연정’으로 <드래곤볼>이 ‘독단적 리더십의 문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처럼 매일 적대자와 맞서야하는 성인들을 위한 우화로 읽혀도 좋을 작품이다.
[그림 4] 쿵푸정글보이라는 이름으로 출간 된 미국판 까꿍
<까꿍>은 90년대 한국만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망가계의 초대형 걸작 <드래곤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허영만의 <미스터손> 시리즈가 <드래곤볼>처럼 ‘서유기’를 콘셉트로 한 ‘한 핏줄 작품’이라면 이충호, 엄재경 콤비의 <까꿍>은 서사의 전개방식과 코믹판타지장르의 유사 문법이 적용된 ‘한 계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의 많은 만화가 <드래곤볼>을 모사하거나 주요 캐릭터를 본 뜬 것과 달리 <까꿍>이 구축한 세계관과 캐릭터성 그리고 사건의 주요 테마는 독창적인 요소로 가득했다. 특히 주인공 까꿍의 주무기인 ‘왕주먹’은 한국만화사 최대 걸작 중 한편인 김원빈의 <주먹대장>에 대한 오마쥬로 보이고, 스승인 최신오가 <원시소년 토시>에서 보여줬던 아동만화의 정서가 읽히기도 한다. 이 같은 요소는 한국적 코믹판타지를 재구축하기 위한 작가들의 고민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 것을 완전하게 새로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세계적 트랜드를 우리 입맛에 맞춰서 완성도 높게 만드는 것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다.
현재 단행본으로는 <까꿍> 1부 13권이 완결됐고 <까꿍 외전> 1권이 발행된 바 있다. 미국, 대만으로 수출되면서 코믹스만화의 해외 진출을 선도하기도 했다. <까꿍외전>은 인간계에서 대마왕이 부활하자 정령계에서도 암흑정령왕이 부활하게 되고 까꿍이 암흑정령왕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3권 이후의 이야기가 아닌 번외 이야기로 볼 수 있다.
■ 작가에 대하여 : 연 타석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이충호/엄재경
[그림 5] 이충호/엄재경
만화가 이충호(1967년, 경기도 의정부 출생)는 중학교 졸업 후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만화가의 길을 택했다. 허영만의 <무당거미>시리즈를 본 후 만화작가가 될 것을 결심했다는 이충호는 1985년 [보물섬] 신인공모에 입선하며 만화계에 입문한다. 검정고시를 거쳐 부천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만화가 최신오 문하를 거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92년 [소년중앙]에 단편 <고독한 전사>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몇몇 단편 작업을 하던 중 1993년 잡지사의 청탁으로 아내와 함께 준비한 <마이러브>를 연재하며 인기 만화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스토리작가 엄재경(1968년 생)은 이충호의 권유로 <마이러브> 스토리를 담당하며 만화계에 데뷔했다. <마이러브> 3권 이후부터 작품에 참여했고 후속작 <까꿍>을 함께 작업했다. 이충호와 엄재경은 두 작품의 연이은 히트로 90년대 가장 각광 받는 만화가 콤비가 된다.
[그림 6] 수호지를 모티브로 한 웹툰 이스크라
이충호는 1999년 잡지사를 옮겨 <눈의 기사 팜팜>, <브라인드피쉬> 등 독자층의 연령대를 높인 작품을 시도하였으나 작화적 실험과 도전에 비해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2005년 황석영의 소설 ‘삼국지’를 만화로 옮기는 작업을 했고 2007년 웹툰 <무림수사대>에 이어 2009년 ‘수호지’를 모티브로 한 웹툰 <이스크라> 등을 발표하며 ‘깔이 다른 웹툰작가’로 재평가 되고 있다. 엄재경 역시 다른 만화가들과 함께 <주피터블루스> <초시공전사넥스트>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게임해설가,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아내인 만화가 최경아와 함께 커피를 모티브로 한 웹툰 <크레이지커피캣>을 발표하며 새로운 시대의 만화독자와 만나고 있다.
■ 주목할 사항 : 성장형 코믹판타지 만화와 캐릭터 산업 효과
<까꿍>의 미덕은 뭐니뭐니해도 이충호의 깔끔한 펜화에서 탄생한 주인공 까꿍과 등장인물들이 지닌 캐릭터성일 것이다. <까꿍>은 ‘성장형 코믹판타지’이다. 아이가 사물과의 접촉을 통해 성장하듯 까꿍은 정령과의 만남이나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 아이가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순진무구한 세상을 만들어 가듯 주인공 까꿍 역시 자신의 시선으로 본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냈다. 물론 작가들의 도움으로 구체화 한 것이고 그 것이 곳 <까꿍>의 세계이지만 독자들은 작품 속에 구체화 된 까꿍의 세계를 동경하고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만화와 캐릭터산업이 만나게 된다.
[그림 7,8] 까꿍의 천진난만함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주인공 까꿍은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하고 밝지만 정의를 위해서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꼬마 도령처럼 머리를 딴 까꿍은 윗도리는 입지 않고 반바지와 단화, 헤어밴드와 손목밴드를 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왕주먹을 통해 정의의 힘을 행사한다. 여러 시대의 코드가 혼재된 듯하고 추억의 만화주인공에 대한 존중도 읽힌다. 그만큼 다양한 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애완견 슈바를 비롯한 다양한 서브캐릭터들과 적대자 캐릭터 그리고 구름섬 등의 배경 역시 <까꿍>이라는 작품이 지닌 효용성을 높게 한다. 작품 속 세계에 대한 동경을 현실 세계에 끄집어 낼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것이다.
이 처럼 높은 캐릭터성으로 인해 <까꿍>은 PC게임으로 제작되어 3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고 애니메이션이나 다양한 캐릭터상품의 개발 소식이 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 업체와의 잘 못된 계약 등으로 인해 <까꿍>의 캐릭터성은 확장되지 못했다. 다양한 문화콘텐츠 상품이나 테마파크 등으로 선보일 기회가 단절된 것이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충호 작가에 의하면 최근 이 같은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되어서 2013년 경 <까꿍> 2부 연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림 9,10] 까꿍 PC게임
참고자료
이충호/엄재경, 까꿍, 서울문화사, 1998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36705
박석환만화연구소, 이 만화를 발견하다-이충호의 까꿍
http://comicspam.com/140035633545
밀리언셀러 작가의 진화, 만화가 이충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7&contents_id=490
이충호 홈페이지
http://www.king-choong.com/
이충호, 이스크라, 2009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iskra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후기] 시기가 그래서 그런 것일까. 주변에서는 아직 대선의 휴유증이 가시지 않았다. 물론, 년말년시는 많은 것들이 변화되는 시점이기도 해서 나 역시 그 같은 혼란 중에 있는 것 같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늘 자기중심적일 수 밖에 없고 나와 상대를 놓고 고민할 수 밖에 없다보니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면 늘 피아 구분부터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골랐다.
대마왕의 부활을 막기 위해 천진난만하게 싸우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누군가 막아야한다면 내가 막아보겠다는 괜한 공명심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직 철들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2013년 각자의 대마왕을 막아보자.
** 네이버 캐스트 게재 원문 보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6&contents_id=18116&leafId=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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