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와 사파의 끝없는 결투 - 열혈강호
[그림 1] 양재현/전극진, 열혈강호, 1994년 [영챔프] 연재 개시
■ 작품에 대하여 : 누적판매부수 500만부, 구독 회수 10억회 기록한 인기 만화
양재현/전극진의 <열혈강호>는 1994년 만화잡지 [영챔프] 창간과 함께 연재된 작품이다. 90년대 만화계를 장악했던 코믹스 시대의 대표작으로 전통적인 무협만화의 형식적 틀거리를 바탕으로 코믹과 섹시 코드가 버무려져서 탄생한 혼성장르만화이다. 이 작품에 명명된 장르명은 이른바 ‘코믹섹시무협’이다. 영웅서사의 주인공에게 주어진 소명과 무협서사의 주인공에게 얽힌 혈족간의 운명적 대립, 게임서사의 주인공이 해결해야 하는 더 강한 상대와의 대전이 펼쳐지고 작가들이 밝힌 것과 같이 9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망가 <시티헌터>의 코믹과 허세까지 담아낸 초장편만화이다. <열혈강호>는 이전까지 발행됐던 모든 무협만화에 신선한 자극을 줬고 한국무협만화의 전개도를 새롭게 그리게 하는 역할을 했다. 선배만화가 문정후의 <용비불패>를 코믹스 무대로 불러낸 것 역시 <열혈강호>였다.
[그림 2] 초창기의 한비광, 열혈강호 속표지 컷
[그림 3] 최근의 한비광, 열혈강호 표지 일러스트
주인공 한비광은 사파의 신으로 추앙받는 천마신군의 여섯 번째 제자로 뛰어난 경공실력(도망치는 능력)에 비해 무술 실력은 형편없는 한량이다. 우연히 만난 남장여자 담화린을 좋아하고 무림 팔대기보 중 하나인 화룡도를 지니고 있다. 화룡도는 천마신군의 무기로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가 검을 잡으면 불살라 죽게 만드는 신물이다. 담화린은 정파의 지존인 검황의 손녀딸이다. 할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하던 중 한비광과 동행하게 된다. 모든 사술(邪術)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복마화령검을 지니고 있다.
[그림 4] 한비광의 특기인 경공술 묘사 컷
2012년 현재 58권의 단행본이 발행됐다. 사파와 정파 간 숙명의 대격전(33권)이 펼쳐진 후 기사회생한 주인공 한비광이 담화린과 함께 신비의 땅 신지(神地)에 들어가서 겪는 영웅서사와 러브로망이 전개 중이다. 결말을 예측할 수 없으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2년 여 정도 더 연재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힌바 있으니 만20년 간 연재된 작품이 될 전망이다. 누적 판매누수가 500만부를 돌파했고 만화대여점 등을 통해 10억 회 이상 구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화잡지를 통해 연재된 작품 중에서는 최장편․최장수․최다판매라는 3개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그림 5] 열혈강호 PC게임의 이미지 일러스트, 한비광
[그림 6] 열혈강호 PC게임의 이미지 일러스트, 담화린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15세 이상의 소년들은 학부모가 됐고 그 아이들은 여전히 <열혈강호>라는 무림의 세계에 새로 진입하고 있다. 그 사이 진입문은 계속 달라졌다. <열혈강호>가 담긴 만화잡지 [영챔프]는 종이잡지(1994년)에서 디지털잡지(2009년)로,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2012년)으로 변화됐다. 외형도 달라지고 소비자도 달라졌지만 한비광과 담화린이 걷고 있는 강호는 여전히 혼란하다.
[그림 7] 온라인게임 열혈강호2의 한 장면, 한비광의 아들 한무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인기상 등을 수상한바 있고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 미국 등 10개국 이상의 국가에 수출됐고 온라인게임으로 제작된 ‘열혈강호’는 전 세계 1억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원작의 30년 후 이야기로 세계관을 재설정해서 한비광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열혈강호2’도 서비스 중이다. MBC에서 라디오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했고 중국과 합작으로 영화 제작이 진행중이다.
■ 작가에 대하여 : 대중적 감수성과 열정으로 소통하는 만화가 양재현/전극진
[그림 8] 전극진, 양재현 작가, 한겨레신문, 2012.11.22
스토리작가 전극진은 1968년 생으로 경북에서 태어났다. 애니메이션동아리 애니메이션아트(AA)에 출신으로 1990년 [주간만화]에 <벼랑>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열혈강호> 외에도 박인수와 <재핑>, 황진웅과 <렛츠>, 박진환과 <브레이커> 등의 작품을 함께했다.
만화가 양재현은 1970년 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만화동아리 아트워크(AW) 출신으로 1990년 [소년챔프]에 <몽몽정녀유혼>으로 데뷔했다. 초기 작품으로 <외로운 검객> 외에 몇몇 단편이 있지만 1994년 이후 <열혈강호> 작업에만 전념해왔다.
[그림 9] 애니메이션아트워크의 약자인 AAW 워드마크가 찍힌 열혈강호 표지
두 작가는 1989년 각자 활동하던 동아리가 ‘AAW’라는 명칭으로 통합되면서 처음 만났다. 김용의 무협소설과 쓰카사 호조의 <시티헌터>를 유별나게 좋아했던 두 작가는 쉽게 의기투합했다. 만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문하생 수련기간을 거치지 않았던 두 작가는 90년대 초 만화잡지 창간 붐과 신예만화가 수요 급증 시기가 맞물리면서 독자들과 만났다. ‘문하생에게도 배웠다’고 밝힐 정도로 수련되지 않았던 시기에 데뷔했지만 두 작가가 지닌 대중적 감수성과 동아리 시절부터 품어왔을 만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은 두 작가를 국내 최고 인기 작가로 만들었다. 두 작가와 함께 AAW도 만화명문그룹으로 급성장하며 홍성혁, 김태형, 박인수, 김민수, 주성윤, 윤경중 등을 배출해냈다.
■ 명장면 명대사 : 사람이란 때론 질 줄 아는 싸움도 해야
<열혈강호>는 1만 여 페이지에 이르는 초장편 만화이고 강호의 협객들이 즐비하게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가 존재한다. ‘열혈강호 팬카페’ 회원들은 ‘진상필이 천마신군의 품에서 명을 달리 할 때’, ‘담화린을 방어하기 위해 천운악에게 한비광이 당할 때’, ‘이성을 잃은 한비광이 지옥화룡과 동화되어 엽민천을 단칼에 벨 때’ 등을 꼽는다.
[그림 11] 열혈강호의 한 장면, 사내의 행복이란 꿈을 쫒을 때만 존재한다
명대사 역시 독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중 ‘사내의 행복이란 꿈을 쫒을 때만 존재한다’, ‘사람이란 때론 질 줄 아는 싸움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원래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생각하는 게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 등의 대사는 <열혈강호>라는 세계를 이끌고 있는 남자들의 사상과 철학이고 생을 받쳐 얻게 되는 교훈이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송무문주 유원찬이 소년 시절 ‘사파는 모두 나쁜 놈들이어서 정파가 싹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자 그의 아버지가 다독이며 전한 말이다.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강호이고 그 곳에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혈을 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곳이 ‘열혈강호’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나는 지점이다.
참고자료
양재현/전극진, 열혈강호, 대원씨아이
http://nstore.naver.com/comic/detail.nhn?productNo=44682
열혈강호 팬페이지, BJ열혈강호 http://www.koreahome.kr/v3/html/main.php
열혈강호 온라인게임 http://yulgang.mgame.com/
열강-용비 지존을 다툰다, 한겨레, 1999.05.1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51100289122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05-11&officeId=00028&pageNo=22&printNo=3499&publishType=00010
박석환만화연구소, 이 만화를 발견하다-전극진/양재현의 열혈강호
http://comicspam.com/140035850387
코믹, 섹시무협 열혈 18년…, 한겨레, 2012.11.2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165610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후기] 대선이 몇일 안 남았다. 만화 외에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블로그나 집필활동, 대외활동 등은 극히 꺼리는 입장이다.
그래도 어떤 사회적 관심사가 있을 때 '만화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얼마 전 베르베르가 '소설이 과학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한 바 있는데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만화가 신문보다 많은 것을 알고있다' 정도.
신문이 매일 아침 쏟아내는 사건사고나 각종 주장과 전망보다 만화가 담아낸 수 많은 이야기 속에는 이미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인물들이 캐릭터화 되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어떤 상황을 겪게 되고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시나리오가 담겨있다... 고 하는 생각에서 파벌 간의 대립을 다룬 작품을 소개했다.
때가 되서 이기도 하지만.
물론 누가 누구고, 누가 어떻게 되고 하는 것들은 각자가 알아서^^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