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2012 센디에고코믹콘 출장기, 부천타임즈, 2012.12.03

앙굴램과 센디에이고에는 있는데 부천에 없는 것


잘 자란 열다섯 살, 부천국제만화축제

제1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이하 BICOF, 8.15~19)가 열렸다. 5일간 공식 집계된 방문객은 9만2천6백7명(미등록 관람객 제외)이었다.

한동안 쓰지 않던 부천영상문화단지 내 무형문화엑스포 전시관은 기획전시전과 산업전으로 꾸며져 방문객을 맞았다.

프랑스 앙굴램국제만화축제의 디렉터 니콜라 피네는 기획전시를 보며 "진지하고 강한 한국만화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국내외 38개 회사가 참여한 산업전에서는 79억5천만원의 수출상담 실적이 기록됐다.

부천만화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는 90여 명의 만화가들은 부천역 일대와 새로 조성된 상상거리에서 자발적으로 '만끽' 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진행했다.

▲ 5일간의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찾은 공식 집계된 방문객은 9만2천6백7명(미등록 관람객 제외)으로 왕대박을 터뜨렷다

150여 명의 국내외 어린이들은 야인시대 캠핑장에 모여 만화실력을 겨뤘다. 방송인 호란, 탤런트 오연서, 케이팝스타 비스트 등 다수의 연예인이 축제 현장을 찾아 '만화사랑'을 외쳤다. 여당의 대선후보를 비롯해서 여러 정치인이 축제를 즐기며 '만화지원' 을 약속했다.

▲ 무형문화엑스포 전시관을 활용해서 진행된 기획전

축제 개최 전 "도시를 만화로 만들겠다"고 했던 김만수 부천시장은 "상상이 현실이 됐다" 며 만족감을 표했고 설훈 국회의원은 "폐막식 날에도 구름관객이 몰려오는 행사"라며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혹평보다는 호평이 많았고 지탄보다는 칭찬이 많았으니 올 해 BICOF는 행복한 축제로 기록될 것이다.

초기 BICOF가 모델로 삼았던 프랑스 앙굴램국제만화축제는 내년이면 40주년이다.

만화의 문예적 특징에 초점을 맞춘 이 축제의 반대편에 만화의 열혈 팬들과 상업적 특징에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의 센디에이고코믹콘이 있다. 이 축제는 내년이면 43주년이 된다. 중년을 넘긴 두 축제의 원숙함에 비할 바 아니지만 열다섯 BICOF도 내년이면 이팔청춘이다. '청춘 BICOF' 는 지난 15년간 좌충우돌하기도 했지만 세계적인 만화축제의 모델을 성실하게 학습했고 규모에 맞춰 수용해왔다. 만화가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와 이벤트부터 전문가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학술, 계약상담, 시상 행사까지 '만화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을 '고른 무게와 가능한 규모' 로 담아내왔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다 보니 어느 것 하나 해외 행사에 비해 월등하지 못했다. 어린이만화가대회나 디지털만화전 등을 통해 나름의 차별 요소를 강조해왔지만 '똑 부러진' BICOF만의 특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내년에 열리는 열여섯 살 BICOF는 성장소년의 모습을 넘어서 청춘의 정체성을 제시해야 한다.

▲ 센디에이고의 열성적 만화팬들


앙굴램과 센디에이고에는 있는데 부천에 없는 것

'청춘 BICOF'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BICOF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 지난 1월 프랑스 앙굴램국제만화축제에 갔다. 7월에는 미국 센디에이고코믹콘에 갔다.

앙굴램에는 한국의 디지털만화 홍보 부스 운영 차, 센디에이고에는 한국만화가의 미국 진출 지원 차 방문했다. 다른 목적을 지닌 출장이었지만 그 곳에서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생각했다. 앙굴램과 센디에이고에는 있는데 부천에는 없는 것이 무엇일까? 그 안에서 BICOF 의 발전방향 정체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앙굴렘국제만화축제 행사장 전경


앙굴램은 국가가 운영하는 만화영상단지와 만화박물관이 있고 만화가들을 위한 창작센터와 전문 교육기관 그리고 만화축제가 열리는 만화도시이다. 만화를 통해 도시 브랜드를 홍보하고 도시의 문화와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 하에 전략적으로 육성된 국제적 만화도시이다. 주어를 부천으로 바꿔도 될 만큼 앙굴램은 부천을 닮았다. 아니 부천이 앙굴램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BICOF의 여러 프로그램 역시 앙굴램국제만화축제와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행사장을 찾는 '관객들의 진지함' 일 것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찾아온 10만 명의 관객은 전시대 앞에 붙은 표식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바쁜 이방인의 눈에는 과도해 보일 정도로 한가롭게 전시된 만화작품을 감상한다. 작은 텍스트까지 꼼꼼하게 읽고 동행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앙굴렘의 축제가 시의 문화정책가들이 주도해서 만화가와 비평가, 출판인과의 만남을 의도한 것이라면 센디에이고의 축제는 만화팬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자랑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팬들의 자발성은 상업 출판사들을 흥분시켰고 만화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으며 행사의 외형을 확대시켰다. 관이 만화가들을 유치하여 의도적으로 성장시킨 앙굴렘과 부천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곧 '자발성에 기인한 열혈 팬' 들이다.

▲ 센디에이고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수의 관객이 자발적으로 만화분장을 하고 행사장을 찾는다.

센디에이고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수의 관객이 자발적으로 만화분장을 하고 행사장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축제의 주인이기도 한 이들은 40년이 넘는 역사성만큼이나 다양한 연령대를 이룬다. 기업입장에서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이며 충성도 높은 12만명의 파워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매년 최고의 흥행 배우와 허리우드 유명 감독들이 행사장을 찾아 팬과 기업들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고 각종 영화와 게임 등의 시사회가 열린다. 기업은 팬들의 의견에 따라 제작 내용과 마케팅 방향을 정할 정도로 열혈 만화팬이자 파워소비자인 이들을 우대하고 신뢰한다. 올 해 행사에는 한국의 LG전자가 옵티머스뷰의 홍보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행사가 과도하게 상업적인 것만을 추구한다는 비판과 함께 과거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상업적 프로그램에서도 '팬 중심 사고' 가 유지된다. 만화가와 팬이 만날 수 있는 100여 개 이상의 작가부스와 팬과 만화관련 회사가 정보를 나눌 수 있는 300여 개 이상의 소규모 컨퍼런스도 센디에이고 코믹콘만의 특징이다.

▲ 높은 구매력을 지닌 센디에이고의 만화팬들


만화팬들을 중심으로 BICOF의 정체성 찾아가야

앙굴렘에는 있고 부천에 없는 것, 센디에이고에는 있고 부천에 없는 것은?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성급한 결론일 수 있지만 '진지한 만화팬, 자발적 만화팬' 이 아닐까. 두 도시의 축제에는 40년이 넘는 역사성과 전통성 그리고 그로인해 구축된 이미지와 이를 이해하고 즐기는 만화팬이 있다.

여러 만화가들과 만화작품을 경험하고 그들의 세계에 공감을 표한 만화팬들의 진지성은 연령과 거리를 초월한다. 자신이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취하고 표현하기 위해 축제의 빈공간을 채워가는 만화팬들의 자발성은 적극적 구매로 이어진다.

진지한 팬과 자발적 팬은 축제가 열리는 도시 외곽의 민박까지도 빈방이 없게 만들고 구매력 높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관련 산업계가 줄을 서게 만든다. 먼 거리에서 날아온 만화팬들과 그들을 맞이하러 온 산업계 관계자들은 축제 기간 중 '먹고, 자고, 즐기며'도시의 모든 기능을 최대치로 활성화 시켜 논다.

반면, BICOF는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계획하고 찾아온 '가족 나들이 관람객' 이 주축을 이룬다. 구매결정력이 있는 성년 만화팬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생경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축제를 찾는 이들이다. 도시의 기능은 일시적으로 작동하고 만화관련 산업계의 관심을 이끌기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센디에이고 만화축제

즉, 축제가 성공하더라도 축제의 파급효과는 낮다는 의미이다. 유명 만화축제의 형식과 내용을 모두 차용해서 그대로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 만화팬이다. 그들은 축제의 관람객이기도 하지만 축제의 적극적 참여자이다. 단순 이용자가 아니라 중요한 구성 요소이자 콘텐츠이고 서비스 제공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없는 축제와 그들이 있어서 빈공간을 채워가는 축제는 그 규모와 위상에서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화축제에는 만화팬이라는 구성 요소가 있어야 하고 이 만화팬의 성향과 축제를 즐기는 행동 스타일을 지원하고 변화 관리해 가야 한다. 그 속에서 축제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

열여섯 BICOF는 이제 '어떤 내용의 축제이냐' 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오느냐' 가 더욱 중요해진 축제가 됐다.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도 좋지만 다른 지역에서 많은 만화팬들이 찾아와서 시민의 눈과 귀는 물론이고 자부심과 주머니까지 채워주는 축제가 더 좋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 센디에이고 만화축제

▲ 도시를 꽉채운 센디에이고의 만화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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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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