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싸우면서 성장한다
진짜사나이, 박산하
[그림 1] 박산하, 진짜사나이, 1992년 11월 [아이큐점프] 연재 개시
■ 작품에 대하여 : 신세대 극화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 학원액션물
박산하의 <진짜사나이>는 1992년 11월부터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에 연재된 작품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과 패션 그리고 신세대 담론이 유행하던 그 시절. 기성의 모든 것이 신성으로 대체되던 때 한국만화도 신세대 주인공을 등장 시킨다. 80년대 한국극화의 전통 하에 태어났으나 90년대 일본망가의 거대한 흐름을 충분히 흡수한 ‘한국형 코믹스’의 주인공이 바로 ‘진짜사나이’ 제갈 길이다. 80년대적인 것과 90년대적인 것 간의 사소한 충돌, 사방을 꽉 채우고 있는 산업화의 망령과 매일매일 싸워서 이미 획득한 민주화를 확인해야 했던 때. 제갈 길은 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져있는 견고한 시스템을 하나씩 부셔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그 시절의 소년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냈다.
[그림 2] 박산하, 진짜사나이, 1권 중 남희와의 만남
[그림 3] 박산하, 진짜사나이, 1권 중 선배의 충고
조직 폭력배 소탕 수사를 하던 경찰관 부부가 방화에 의해 살해되고 세 명의 아들은 난데없이 고아가 된다. 첫째는 경찰관이 되고 둘째는 폭력조직의 보스가 된다. 당시 유행하던 홍콩느와르 영화의 설정 같지만 주인공은 중학생 싸움꾼 출신으로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셋째. 당연히 이야기는 회색도시가 아니라 푸릇한 학원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간 연재만화의 속성상 이야기의 기초설정은 뒤에 있고 매회 제시되는 상황과 새로 등장하는 인물이 전면에 부각된다. 아직 청춘이지 못한 소년들에게 학원생활이 제공하는 상황은 여선생에 대한 선망, 여학생에 대한 관심, 어른들의 과도한 기대에 따른 좌절, 오토바이‧스포츠‧격투에 대한 동경, 친구와의 우정을 위한 이탈 등등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친구와의 우정과 동료의식,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과 그로부터의 좌절·성장 또는 성공이다. 우정‧노력‧성공은 당시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의 3대 테마였다.
[그림 4] 박산하, 진짜사나이, 2권 표지 중
제갈길은 그 시절의 소년이 선망하고 동경하던 것에 동감을 표하고 이를 대리수행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미국식 슈퍼히어로처럼 전신타이즈를 입지 않고 교복을 입었을 뿐이고 아직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나이가 어린 학생 신분이었을 뿐, 그가 행한 폭력과 <진짜사나이>에 담긴 폭력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했다거나 학교폭력의 사례가 됐다는 당대의 부정적 시선과는 무관하다. 제갈길의 폭력은 ‘괴롭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의 같은 것이었다.
[그림 5] 박산하, 진짜사나이, 5권 중 제갈길의 격투
<진짜사나이>는 잡지 연재 당시부터 높은 인기를 얻으며 박산하라는 신예만화가를 단숨에 주목받는 만화가로 만들었다. 서울문화사에서 전11권으로 발행된 단행본(1993년~1995년)이 200만부 판매되면서 90년대 초중반 한국만화시장을 리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본망가 <캠퍼스블루스>(원제 ‘로쿠데나시블루스’)와 비교되기도 했고 연재 중 큰 인기를 얻었던 <슬램덩크>의 영향력이 스며있기도 하다. 1999년 시공사에서 전11권이 재간됐고 2부 전31권이 전작 단행본으로 발행(1999년~2001년)됐다.
■ 작가에 대하여 : 200만부 판매신화를 지닌 슈퍼셀러
[그림 6] 박산하
박산하는 1967년 경남 출신으로 고교 졸업 후 애니메이션 쪽 일을 하다가 1992년 [월간만화챔프]에 <하늘마왕>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같은 해 잡지사를 옮겨 [아이큐점프]에 <진짜사나이>를 발표했고 단숨에 인기 만화가가 됐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있었던 일’과 ‘기대했던 일’을 <진짜사나이>에 담아냈다고 한 바 있다. 사실적인 배경묘사와 입체적인 인물연출 그리고 과장된 묘사와 역동적 컷 구성 등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축구만화 <레드붐붐>, <미들맨>을 발표하며 학원액션물에 국한된 작가적 지형을 확대시켰고 <무사의 노래>, <색마반고> 등의 무협판타지물을 발표하기도 했다. 게임 소재의 만화 <데카론>, 성인 취향의 만화 <딱 한잔만> 등의 작품으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으나 2000년 이후 장르만화시장 전반의 위축과 함께 의미있는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04년 이후에는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아동만화 시장에 참여해서 김훈의 <칼의 노래>,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발표하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 명장면 명대사 : 건드리지 마세요. 이렇게 학교가 싫어진 것은 처음이니까요.
[그림 7] 박산하, 진짜사나이, 5권 중 제갈길의 대립
[그림 8] 박산하, 진짜사나이, 10권 중 교사와 대립하는 제갈길
1980년대의 만화가 대중문화의 황제였던 영화를 흡수해서 ‘극화’라는 장르를 만들었다면 1990년대 만화는 게임서사를 흡수해서 이른바 횡스크롤 액션게임을 이식한 ‘학원폭력만화’ 또는 ‘학원액션만화’라 불리는 장르를 구축했다. <진짜사나이>는 재갈길을 주인공으로 무수하게 등장하는 적과의 싸움을 매주 펼쳐보였다. 제갈길의 적은 학생·교사·교장·학부모회 등으로 이어지는 서열화 된 폭력, 써클·학급·학교·지역으로 이어지는 조직화 된 폭력, 폭력조직과 결부된 경찰·고위 관료에 의한 폭력이었다. 푸르러야 할 학원생활은 갈수록 음습해졌고 제갈길은 그 같은 부조리를 처단하기 위해 나선다. 진급을 목표로 학생들을 훈육하며 폭행을 일삼는 교사에게 제갈길은 ‘건드리지 마세요. 이렇게 학교가 싫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진짜사나이’의 갈망을 담은 마지막 싸움이 펼쳐진다.
참고자료
박산하, 진짜사나이, 만화보기
http://nstore.naver.com/comic/detail.nhn?productNo=43047
박석환, <코믹스만화의 세계>, 살림, 2005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85217
진짜사나이를 꿈꾸며-만화<진짜사나이>
http://blog.naver.com/lucas0213/40039446254
이 만화를 발견하다-박산하의 <진짜사나이>
http://comicspam.com/140035633245?Redirect=Log&from=postView
김윤덕, 10대에 한없는 애정 '진짜사나이', 경향신문, 1998.04.03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40300329122003&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4-03&officeId=00032&pageNo=22&printNo=16397&publishType=00010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후기] 박산하의 <진짜사나이>를 읽던 시절 나는 주인공과 같은 고등학생이었다. 내게도 벌어지는 일들을 멋지게 해결해내는 제갈길을 보면서 사나이에 대한 동경이 깊어갔다. 겉멋만 들게 했던 홍콩느와르 영화와는 다른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물론 제갈길의 판타지를 실생활에서 재현해보겠다는 무리한 욕망도 있었다. 될리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중 몇몇 대사는 여자친구에게 사용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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