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반생, 작가미상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연재만화
[그림 1] 신문의 여성독자 확장에 불을 지핀 <마리아의 반생> 11회, 연애생활 편, [시대일보], 1925.11.01.
■ 작품에 대하여 : 전통적 윤리관을 타파한 여성주의 만화
<마리아의 반생>은 1925년 10월 20일부터 1926년 1월 31일까지 [시대일보]에 연재된 눈 목(目)자 형식의 4칸 만화작품이다. [조선일보]의 <멍텅구리> 시리즈, [동아일보]의 <허풍선이> 시리즈에 이어 대표 캐릭터를 중심으로 매 회마다 하나의 이야기 꺼리를 제시하되 소제목을 중심으로 전체 이야기가 연결되는 형식을 취한 ‘생활만화’이다.
주인공 마리아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부유한 아버지 아래서 신식 교육을 받고 성장한 여성이다. 우연한 계기로 어수선씨를 만나 결혼을 결심했지만 집안의 반대도 심하고 스스로도 결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자’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수선과의 사랑을 지키려했던 마리아는 격정적 ‘연애생활’을 거쳐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얻은 ‘신접살림’이 시작되고 망난이와의 만남을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가면서 ‘삼각관계’까지 펼쳐진다.
약 80여회가 연재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시대일보] 폐간 등으로 전체 이야기는 결말을 맺지 못하고 끝났다. 현존하는 [시대일보] 발행분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마리아의 반생>이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당대의 여성주의사상과 ‘신여성’이라고 불렸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 2] 신문물인 스케이트 타기에 푹 빠진 마리아, <마리아의 반생> 57회, 신접살림 편, [시대일보], 1926.01.06.
[그림 3] 결혼 후 망난이와 사랑에 빠지는 마리아, <마리아의 반생> 77회, 삼각관계 편, [시대일보], 1926.01.30.
‘신여성’이라는 용어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사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에서는 1910년 소설가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가 ‘새로운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여류문인 히라쓰카 라이쵸(平塚雷鳥)가 ‘신여성론’을 전개하면서 초기 여성해방운동이 전개됐다. 한국에서는 1920년 김원주(일명 김일엽)가 [신여자]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신여자 선언’을 발표한 바 있으니 이 시기를 전후로 일제강점기에 통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여성교육운동은 기독교 선교사들과 애국계몽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됐다. 여성들이 받은 신교육은 단순한 지식습득의 차원을 넘어서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서구사상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구실에 대해 눈을 뜨게 했다. 또 일제의 문화통치정책으로 인해 표면상으로는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넘쳤던 시기여서 전통에 대한 부정의식이 사회일반에 팽배해 있었다.
[그림 4] 자기가 살고 있는 집값보다도 비싼 옷을 입은 신여성을 비판하는 만화만문,
‘꼬리치는 공작’, 안석주, [조선일보], 1928.02.09.
<마리아의 반생>은 이 같은 시기에 여성들이 ‘남성들의 부당한 억압 아래서 노예적 지위에 있었음’음을 남자주인공 어수선이나 마리아의 아버지를 통해 강조했다. 그리고 마리아가 이 같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타파하고 전통적인 윤리관에 반하는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는 그대로 신여성들에게는 새로운 생활 규범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반면 일부 신여성들의 무절제한 사생활과 맞물리면서 이 시기 여성해방운동은 남성들의 가십 거리로 폄하되기도 했다. <마리아의 반생> 역시 읽기에 따라서 ‘자유연애를 외치는 여성에 대한 남성적 호기심’을 담은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림 5] 어수선과 야밤도주를 결심한 마리아, <마리아의 반생> 11회, 연애생활 편, [시대일보], 1925.11.02.
[그림 6] 아버지에게 결혼과 예물을 요구하는 마리아, <마리아의 반생> 16회, 연애생활 편, [시대일보], 1925.11.07.
[그림 7] 화려한 겉치장으로 기생으로 오해 받는 마리아,
<마리아의 반생> 68회, 신접살림 편, [시대일보], 1926.01.30.
■ 작가에 대하여 : 만화가 표기에 인색했던 [시대일보]
[동아일보]의 <허풍선이> 시리즈가 [조선일보]와의 대결구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유사 형식의 작품이라면 <마리아의 반생>은 [시대일보]의 전략적 기획에 의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시대일보]는 최남선이 주간지 [동명]을 통권 40호(1923년 6월 3일)로 종간하고 1924년 3월 31일 창간한 일간신문이다. 창간 즉시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3대 민간지로 평가됐다.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하던 [매일신보]를 어용지로 불렀던 것에 반하는 개념이기도 했지만 창간 시부터 매일 4면씩 2만부를 발행하며 양대 매체 체제를 단숨에 삼각 체제로 전환한 매체영향력이 작용한 결과이다. 다른 신문과 달리 1면을 정치면 대신 사회면으로 했고 3, 4면에는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흥미 위주의 기사를 집중 게재하는 등 특색 있는 편집 방침을 취했다. 양대 신문이 식자층들을 위한 정론지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시대일보]는 최초의 대중지(Penny Paper)로 만화를 적극 게재했다. 아쉬운 것은 [시대일보]가 만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폭넓게 활용함으로서 많은 효과를 보았음에도 작가 표기에 인색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마리아의 반생> 역시 작가미상의 작품으로 남았다.
[그림 8] <멍텅구리> ‘연애생활’ 편에 맞서 ‘부부생활’ 편으로 응수했던 [시대일보]의 <구리귀신>, 1925
[그림 9] 만화와 글을 합친 만화만문, 1930년대 유행하던 이 형식도 [시대일보]가 가장 먼저 시도했다,
‘만화로 본 경성1’, 1925.11.03.
■ 주목할 사항 : [시대일보]의 만화 대조편집 방식
[시대일보]는 창간과 함께 미국만화 <엉석바지>를 게재했고 이후 이와 흡사한 구성을 취해 영감님을 주인공으로 한 <구리귀신>을 연재했다. <마리아의 반생>에서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조선일보]의 <멍텅구리> 시리즈가 ‘연애생활’ 편으로 당대의 급변하는 성풍속도를 그려냈다면 [시대일보]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구리귀신> 시리즈 ‘부부생활’ 편을 통해 해체 된 ‘남존여비사상’을 풍자했다. 또 <마리아의 반생>에서는 여성의 입장이 부각된 새로운 ‘연애생활’ 편을 그렸다.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의 ‘멍텅구리’와 반대되는 ‘허풍선이’를 내세워 대립했다면 [시대일보]는 그 틈새로 ‘신여성’을 등장시켰다. ‘멍청하거나 허세뿐인 남자 캐릭터’의 생활 태도와 방식에 거부감을 느낀 독자라면 ‘마리아’의 이야기에 더 매력을 느꼈을 법하다. 이처럼 [시대일보]는 매우 전략적이고 공격적으로 다른 매체와 대조되는 편집 방식으로 승부했고 이를 통해 기존 신문의 독자층을 확장해냈다.
■ 명장면 명대사 : 아~ 죽기 전에 결혼! 피아노! 양옥
어수선씨와 사랑에 빠진 마리아는 가족을 버리고 야밤도주를 계획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하는 마리아의 속마음은 편치 않다.(그림1, 네 번째 컷)
‘아~ 다섯시! 언제나 오나. 다섯시면 나는 간다! 아~ 세월아 가지마라. 시계가 섰으면. 가지 않치… 그러나 갔으면….’
마리아의 속마음을 모르는 어수선씨는 장밋빛 희망을 노래한다.
‘아~ 다섯시. 나의 행복의 문이 열리는 때다. 아~ 다섯시. 이 지옥에서 벗어나서 동정녀 마리아와 영원한 꿈을 시작하는 때다.’
이 컷은 야밤도주를 눈앞에 둔 두 인물의 서로 다른 내면을 한 칸에 배치해 앞으로 펼쳐질 사건에 긴장을 더해낸 명장면이다.
마리아와 어수선씨의 야밤도주는 이를 눈치 챈 마리아 아버지에 의해 저지당하고 마리아는 부상을 입게 된다.(그림6, 두 번째 칸)
‘아이고 이렇게 아프면 십분 안에 죽어.’라며 신음하던 마리아는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마지막 소원이라도 되는 냥 한 마디를 던진다.
‘아~ 죽기 전에 결혼! 피아노! 양옥’
마리아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사랑(결혼)과 일(또는 신문물에 대한 취향-피아노) 그리고 부와 편의(양옥)까지 얻으려고 한다. 이는 신문물에 대한 교육과 경험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자각하게 하고 기존의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음을 드러낸 대사이다. 이후 마리아의 욕망은 더욱 강해진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시대일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9651&categoryId=1642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마리아의 반생’ 작품 보기
http://db.history.go.kr/front2010/dirservice/NP/viewSearchResultNP.jsp?pSetID=&pSearchType=1&pClassCode=np&pSearchSetId=&pTotalSearchCount=&pTotalCount=&pSearchName=%EB%A7%88%EB%A6%AC%EC%95%84%EC%9D%98+%EB%B0%98%EC%83%9D&pTotalSetID=-1&pTotalTotalCount=3&pQueryVal=%28BI%3A%28%EB%A7%88%EB%A6%AC%EC%95%84%EC%9D%98+%EB%B0%98%EC%83%9D%29%29&pQuery=%28BI%3A%28%EB%A7%88%EB%A6%AC%EC%95%84%EC%9D%98+%EB%B0%98%EC%83%9D%29%29&pMainSearchType=
한국여성연구소, ‘마리아의 반생’ 플래시애니메이션 보기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3&cp_code=cp0423&index_id=cp04230129&content_id=cp042301290001&search_left_menu=5
한국여성연구소가 제작한 ‘한국근대여성교육과 신여성문화’관련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09303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후기] 근대만화가 현대만화의 틀거리를 마련하는 초기 신문 캐릭터 연재만화 삼총사의 막내는 <마리아의 반생>으로 했다.
시대일보가 당시 3대 민간지이기도 했고 다른 두작품과 달리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등 획기적인 대응 편성 정책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또 한 측면에서는 마리아를 쓰고 나혜석을 다룬 뒤 안석주의 신여성 관련 만문만화를 다루고 최영수의 만화만문와 안과 최의 캐리커쳐를 다루면 당대의 시대적 풍경을 가늠해 볼 수 있고 근대만화가 현대만화의 장르에 끼친 역사적 흐름을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깐 만화를 그렸던 나혜석까지 가는건 토픽으로서의 의미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닐 거라는 판단에 새 출구를 찾았다. 그 부분은 다음 회에.
여튼 마리아를 쓰느라 당대의 신여성에 대해 살펴봤다. 만화가 현실 자체가 아니라 과장된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만화가 다루고 있던 신여성들은 생각보다 더 울트라갑이었다. ^^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