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모던춘향전(김규택 글그림),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2.11.06

모던 춘향전, 김규택

한국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만문만화


[그림 1] 춘향전을 당대의 문화적 코드로 재해석한 <모던춘향전> 1회, [제일선], 1932년 11월호

■ 작품에 대하여 : 전근대의 내용을 근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


<모던춘향전>은 잡지 [제일선](1931년 5월 창간)에 연재된 김규택의 작품이다. 1932년 11월부터 게재되어 잡지가 폐간된 1933년 3월까지 연재됐다. 이 작품은 김규택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전래소설 <춘향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과 같이 조선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등장인물이나 소품, 시대상황 등은 1930년대의 생활상을 반영했다.

예컨대 조선 시대의 복식을 취한 이몽룡이 군사용 망원경으로 그네 타는 춘향이를 보고 호감을 느낀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이가 좋아지고 춘향의 엄마 월매를 처음만난 자리에서는 ‘3인 일제히 감바이’라고 외친다. 이 때 모던걸 춘향은 맥주를 달라고 한다. 몽룡이 춘향과 첫날밤을 보내는 대목도 압권이다. 서로 먼저 옷을 벗으라고 하다가 몽룡은 ‘에라 그러면 화투를 하자. 지는 사람이 먼저 벗기로’라고 말한다. 그 시기에도 이런 놀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림 2] 당시 만문만화와 달리 만화컷과 글의 비중이 많아진 <모던춘향전> 1회, [제일선], 1932년 11월호

두 사람의 로맨스 장면에는 기타가 자주 등장하고 춘향의 방에는 찰리 채플린 사진이 붙어 있다. 영화적 기법을 묘사한 장면도 여럿이다. 두 사람이 싸울 때는 화가 난 춘향의 얼굴이 점점 커지면서 ‘무서운 얼골의 클러스 업!!’이라고 외친다거나 싸우는 장면이 그림자로 묘사되는 장면에서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토키’라고 서술하는 대목도 있다. 다양한 스포츠 종목이나 용어의 등장도 흥미롭다. 춘향은 수영이 풍기문란 스포츠라 하고 ‘발레이볼’이나 ‘빠스켓볼’보다 그네가 운동에 좋다고 한다. 새로 사또로 부임한 변학도의 음란한 행각에 심통이 난 형방은 ‘곤투’로 ‘너크아웃’시키고 싶다고도 한다. 이밖에 유술, ‘뻑싱’, ‘라꾸비’ 등의 종목도 등장한다.

[그림 3] 영화의 클러즈업을 적용한 묘사, <모던춘향전> 2회, [제일선], 1932년 12월호

[그림 4] 신식 의사가 검진하는 장면, <모던춘향전> 3회, [제일선], 1933년 01월호

이처럼 <모던 춘향전>은 춘향이 이야기라는 전통적인 텍스트에 홍수처럼 밀려들어 온 모던 문화를 꼼꼼하게 접합 시켜낸 이색 작품이다. 요즘 개념으로 말하자면 문화원형 콘텐츠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작해 대중적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단순한 흥미주의 만화로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김규택이 그려낸 춘향과 몽룡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모던걸과 모던보이였고 아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학도는 일제 강점기의 부도덕한 지배계급을 상징했다. 두 사람의 사랑과 세 사람의 대립은 이른바 에로 그로 넌센스(Eroticism + Grotesque + Nonsense)시대로 불렸던 1930년대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선정적이었고 학도와의 대립은 엽기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갈구할 수 있는 것이 그 뿐이었다는 시대적 허망함과 상실감은 이 작품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 작가에 대하여 : 만화로 살고 만화로 죽은 일생(一生) 만화가 김규택


웅초 김규택(1906~1962)은 경상남도 칠원 출신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가와바다미술학교(川端美術學校)를 졸업했다. 화가를 지망했으나 귀국 후 해방사에 기자로 취직한다. 기자 김규택에 대해서는 잡지 [동광](제24호 1931년8월4일)에 김만이 쓴 논평을 참고할만하다.

[그림 5] 웅초 김규택

이 논평에는 ‘조선 잡지왕국의 총리’라 불렸던 개벽사의 방정환과 그를 도왔던 차상찬, 잡지왕국에 대립해 출판왕국으로 불렸던 해방사의 이성환 그리고 기자와와 만화가로 활동했던 김규택 등이 다뤄졌다. 김만은 김규택에 대해 ‘잡지기자로의 씨의 솜씨는 남의 코취를 받아 이것저것을 쓸 뿐이매 씨의 진정한 일면은 볼 수 없는 것이외다. 한 마디로 덮어버리면 씨의 전부는 明日에 잇는 것이요 금일에 잇는 것은 아니외다. 그러고 만일 금일에도 씨의 면목이 「해방」에 나타나는 것이 잇다하면 그것은 잡지기자로의 씨가 아니요 소질은 잇으나마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아니한 만화가로의 단편이 잇을 뿐이외다.’라며 혹평 했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온순한 성격에 정치 환경에 대한 감각이 무뎌서 기자 감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림 6] 초기의 만문만화 형식으로 그린 작품, 조선여자의 미, [별건곤], 1928년 05월호

그 때문인지 김규택은 잡지왕국 개벽사로 옮겨 만화가와 삽화가에 전념한다. 김만의 혹평은 냉정했지만 제 길에 오른 김규택은 1932년 잡지 [제일선]에 연재한 만문만화 <모던 춘향전>과 잡지 [조광]에 연재한 <모던 심청전>(1936년), <억지 춘향전>(1941년) 시리즈로 명성을 쌓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안석주의 만문만화가 그림 한 컷에 짧은 단상을 서술해서 순간적 자극에 중점을 두었다면 김규택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컷의 만화를 배치했다.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이는 근대의 만화가 현대적 의미의 연재만화극화로 발전하는 초기 단계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화가로서 그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하는 [매일신보]에서 일제의 구미에 맞는 만화를 그려야 했고 6.25 때는 북한군의 선전대원이 되어 반미만화를 그려야 했다. 가까스로 부산으로 피난 가서는 UN군사령부에 채용되어 일본 도쿄로 건너갔고 이번에는 반공만화를 그려야 했다. 일본에서는 안정적 생활을 누렸으나 간장염으로 1959년 귀국했다.

김규택은 에로와 그로 그리고 넌세스가 농축된 만문만화로 명성을 얻었다. 이는 한국 만화가 성인들을 위한 신문 정치만평으로 출발해서 신문 생활만화로 진화한 뒤 취미오락만화로 전개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반면 시대상황은 그를 시대적 책무와 고도의 정치 감각을 필요로 하는 시사만화와 선전만화를 그리게 만들었다. 그가 재능이 없어 그만둬야 했던 잡지기자의 역할과도 같은 것이었다. 유순한 성품처럼 유순한 그의 시사만화는 결정적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김규택은 잡지기자 시절을 빼고는 죽을 때까지 만화 그리는 일만 했다. [한국일보] 1961년 12월 21일자 만평을 마지막으로 펜을 놓았고 1962년 4월 5일 간장염으로 별세했다. 근대의 만화가들이 소싯적에 만화를 그리고 한창 때는 화가, 언론인, 영화감독 등으로 직업을 바꾼 반면 김규택은 일생(一生) 만화가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후배 만화가들인 안의섭, 신동헌, 김성환, 김경언, 박기정, 이상호 등이 ‘웅초묘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묘비를 세웠다.


■ 주목할 사항 : 일제의 탄압에 만화는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림 7] 차상찬이 발행한 잡지 [제일선], 개벽사, 1932년 06월호

일부 평자들 사이에서 1930년대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 만화 특유의 비판과 풍자정신이 사라졌던 시기라고 하는 이도 있고 이를 기준으로 당대의 만화가들을 문화통치기 일제의 유화정책에 넘어가 온당치 않은 작품활동을 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전래소설이나 해학을 만화로 재창작하는 작업이 많았는데 이를 일제의 탄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정치사적 평가를 기준으로 만화사와 만화작품을 예단한 것일 뿐 당대의 만화와 만화가들 그리고 민족매체들은 결코 일제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탄압은 지속됐으나 비판과 풍자정신은 살아있었고 포기나 회피가 아니라 늘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는 잡지의 변화 발전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당대의 ‘잡지왕국’ 개벽사에서는 [개벽] [별건곤] [혜성]이 줄줄이 폐간되었음에도 [제일선]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폐간이 되더라도 새로운 잡지를 냈고 만화 게재 역시 지속했다. 정치적 현실과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서 테마가 바뀌었을 뿐이다. 가령 [개벽]이 평등주의에 입각한 사회개조와 민족문화 창달을 목표로 했다면 폐간 후 나온 [별건곤]은 취미잡지를 표방하고 만화를 적극 활용해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정치적 이슈가 금지 당하자 모던 문화로 인해 자칫 방탕해 질 수 있는 사회상을 풍자하고 자정을 요청하는 것으로 편집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마저 금지 당하자 개벽사는 또 다른 테마를 제시했다.

[그림 8] 김규택, <만화풍자해학가열전>, 1946년, 한국만화자료원 소장

[별건곤]이 안석주(필명 석영, 안生 등)라는 만화천재의 등장으로 모던 경성과 당대의 주요 인물들을 풍자하면서 ‘만문만화’ 열풍과 ‘캐리커처(인물풍자화)’라는 형식으로 어필했다면 [제일선]은 김규택을 찾아냈다. 일제가 문화통치를 마감하고 민족말살통치를 선언한 시기에 김규택은 전래소설 속에 담긴 전통성을 들고 나왔다. ‘전근대와 근대를 조합한 한국적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테마를 제시한 것이다. 즉, 적어도 30년대에 등장했던 일련의 전래소설을 다룬 해학만화들은 일제에 길들여지지 않았다.


■ 명장면 명대사 : 자 ~ 고문이거든 물버틈 먹이


<모던 춘향전>의 춘향은 자기주장이 명확하고 아는 것도 많은 신여성이며 연애 감정이나 표현에 있어서도 개방적인 모던 걸이다. 몽룡이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과거를 보러 혼자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니 ‘악마! 색마! 네 애비가 그러케 무서울진대 왜 내 몸을 버려주엇니!’라고 외치며 멱살을 움켜쥔다. 몽룡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길에서 만난 여자가 ‘엡부다고 탐내시’면 춘향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 ‘눈알을 ㅽㅐ 먹겟’다고 하고 변학도가 사랑을 구걸하며 껴안으려 하자 걸상으로 면상을 내려칠 정도로 강한 여성이다. 춘향은 몽룡이라는 남성권력과 변학도라는 지배권력 앞에서 겁이 없을 정도로 당당하다.


이 중 명장면은 춘향이 수절을 거부하다 변학도로부터 매를 맞는 대목이다. 전래소설에서는 곤장이 나와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물고문이 등장한다. 당시 시대상에 비춰 일제의 억압통치를 풍자한 것이다. 이에 춘향은 ‘자~ 고문이거든 물버틈 먹이’라고 큰소리친다. 춘향은 먹인 물을 기세 좋게 창살 밖으로 뱉어내면서 물고문으로 대표되는 일제의 억압통치를 무력화 시킨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웅초 김규택’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1804&mobile&categoryId=1634

네이버 지식백과 ‘잡지 제일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8169&mobile&categoryId=1642

신명직, 만문만화에서의 웃음에 대하여-웅초 김규택의 <모던춘향전> <모던심청전> <억지춘향전>과 근대적 웃음, 만화문화연구1, 부천만화정보센터, 2003

김주리, 모던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근대적 패션의 풍경, 살림출판사, 2005

고은지, 1930년대 대중문화 속의 <춘향전>의 모던화 양상과 그 의미: 「만화 모던 춘향전」을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 2007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 중에 있다.


[후기] 일본에 있습니다. 연재원고를 마감하고 온다고 나름 노력했는데... 결국 한판 쉬기로 했습니다.

다음주에 네이버 캐스트 만화대백과-한국만화정전 '복남의 탐험' 편 연재 계속 됩니다. ^^;

현재까지 진행된 원고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http://navercast.naver.com/list.nhn?category_id=196&category_type=series&list_type=

[2012년 11월 18일 추가]

기실 김규택편은 해방 후 김용환, 김성환의 뒤쯤에 위치 시키려했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만화사의 서술과정이기도 했거니와 김규택의 삶이 이념적으로 변신을 거듭했던 김용환의 삶과 일치하는 대목이 있어서 당연스럽게 여겼었는데 자료 수집과정에서 조금 다른 포인트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바로 한국적 상상력이라는 요소였는데 20년대 극일을 외치던 신문이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정치만평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생활만화와 넌센스 만화로 여성과 아동으로 카테고리를 넓혀갔습니다. 

탄압으로 인해 정치만평이 사라졌지만 또한 탄압이 있었기에 장르적 다양성이 만개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상황이니 이를 어떻게 기술해야 할지 고민되기도 했습니다.

30년대 중후반 일제가 문화통치에서 민족말살통치로 정책을 바꾸면서 신문만화는 특유의 비판과 풍자정신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신문만화의 암흑기라고도 했지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처럼 만화는 쭈그러 들지 않고 더욱 더 팽창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일부 논자들 사이에서 고대소설이나 구비문학을 소재로 한 각색 만화가 탄압에 의해 등장한 그렇고 그런 만화라고 폄하한 대목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과연 그런가?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던 일제에 맞서 우리의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재해석해서 읽고 보게 하는 것 또한 운동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당시 그 같은 작업을 했던 노수현이나 김규택이 40년을 전후로 친일에 준하는 작품활동을 했다는 것도 구비 문학 각색만화를 폄하하는 이유가 됐겠지만 적어도 그 같은 작업을 했던 시기에는 친일보다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김규택을 복원하고 걸작 모던춘향전을 재해석해보고자 했습니다. 특히 근대의 만화가들이 대부분 만화가를 한 때의 직업으로 택했던 것과 달리 김규택은 일생을 만화가로 살았던 진짜 만화가였다는 점에서 해방 후의 대표만화가가 아니라 해방전의 진짜 만화가로 재자리를 찾아줘야 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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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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