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허풍선이 모험기담(안석주 글그림), 한국만화정전, 네이버캐스트, 2012.10.30

허풍선이 모험기담, 안석주

신문 간 경쟁을 촉발시킨 만화


[그림 1] [시대일보]의 <엉석바지>와 [조선일보]의 <멍텅구리헛물켜기>에 대적했던 <허풍선이 모험기담> 1회, [동아일보], 1925.01.23


■ 작품에 대하여 : 허풍, 모험, 기담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무장한 ‘그림이야기’


<허풍선이 모험기담>은 1925년 1월 23일부터 5월 23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밭 전(田)자 형식의 4칸 만화작품이다. 시사성을 배제하고 해학성을 강조한 우스개 만화로 이삼일에 한 회씩 연재되면서 전체 이야기가 연결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회분은 ‘텬하에 둘도 업는 거짓말쟁이-허풍선이 모험긔담을 소개함니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밭 전(田)자 형식의 4칸 만화로 영감 셋이 모여 젊은 시절 이야기를 나눈다. 왼쪽 편의 영감이 아프리카 탐험 이야기를 꺼내자 가운데 영감은 지루한 듯 졸려하고 오른편 영감은 ‘나만큼 탐험을 한 사람’은 없다며 말을 끊는다. 왼편 영감이 ‘을마나 신통한가 이야기 해보게’라고 하자 가운데 영감이 눈을 번쩍 뜨고 오른편 영감은 ‘진작 그럴 일이지. 내 이야기 듯고는 놀나거나 우수면 안되네!’라고 한다.

[그림 2] 애인에게 배신당한 허풍, <허풍선이 모험기담> 2회, [동아일보], 1925.01.26.

[그림 3] 여행을 떠나는 허풍, <허풍선이 모험기담> 3회, [동아일보], 1925.01.28


이렇게 시작된 만화는 주인공 허풍 영감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인 방울이를 만나러 간 허풍은 방울이 다른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2회) 말을 타고 길을 떠난다(3회). 이때부터 청년 허풍의 기이한 여행담이 펼쳐진다. 일 만 년 간 내릴 눈이 한꺼번에 내린 날 말뚝인 줄 알고 말을 묶어뒀더니 다음날 눈이 녹아 교회탑 십자가에 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더라(4회)는 둥, 커다란 고래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 고래뱃속에서 밥을 해먹었다는 둥, 몇 달을 허공에서 지내다가 독수리를 만나 포식을 했다는 둥의 허풍이 이어진다. 지금은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익숙한 이야기가 세계 곳곳의 풍물과 함께 허풍과 방울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림 4] 눈 목(目)자형으로 형식을 바꾸고 제목도 바꾼 작품, <허풍선이> 33회, [동아일보], 1925.04.24.

[그림 5] 함정에 빠진 허풍과 방울, <허풍선이> 41회, [동아일보], 1925.05.23

32회(1925.04.22.) 연재 후 4월24일부터는 제목을 <허풍선이>로 바꾸고 눈 목(目)자형 4칸만화로 형식을 바꾸었다. 횟수표기 없이 9회를 더 연재해 총 41회까지 이야기가 진행됐다. 41회는 허풍을 사모한 여왕이 방울을 질투하여 두 사람을 함정에 가두는 것으로 끝났다. 이야기 전개상 후속 내용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어떤 이유인지 <허풍선이>는 연재가 중단됐고 허풍과 방울은 영원히 함정에서 나오지 못했다.

<허풍선이 모험기담>은 근대 만화의 형성기에 적잖은 의미를 남긴 작품이다. 그간 노수현 등이 작업한 <멍텅구리> 시리즈의 명성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작품의 설정이나 구성, 내용전개와 배경묘사 등에서 한 단계 진보된 양상을 보여준다.


■ 작가에 대하여 : 미술, 연극, 문학, 영화, 음악까지 망라했던 멀티크리에이터 안석주

[그림 6] 안석주 사진

[그림 7] 잡지 [어린이]에 게재된 최초의 어린이 만화 <씨동이의 말타기>, 1925

석영 안석주(1901~1950)는 서울 출신으로 1916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이 학교의 미술교사로 있던 고희동(1886~1965)으로부터 서양화를 배웠다. 졸업 후 일본 동경혼고 양화연구소에서 미술 수업을 받던 중 건강상의 이유로 1921년 귀국해 노수현, 이상범 등과 함께 최초의 근대미술단체인 서화협회에서 활동했다. ‘토월회’에도 가입하여 신극운동을 전개했고 ‘백조’ 문학 동인으로 문필활동도 했다.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 문학단체인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FF)에 참가하여 문예 운동을 전개했다.

1922년 7월 잡지 [개벽]에 ‘나의 애인’ 외 1점의 그림을 발표했고 같은 해 11월 [동아일보]에서 신예소설가 나도향의 <환희> 삽화를 담당하며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24년 단기로 일본유학을 다녀온 후 1925년 잡지 [어린이]에 최초의 아동만화로 알려진 <씨동이의 말타기>를 게재했다. 그 해 [동아일보]에 입사해 이광수, 김동인 등의 소설 삽화를 전담했고 <허풍선이>, <엉터리> 등 연재만화를 그리면서 인기 만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1927년 6월 창간한 [신문춘추]에 <만문만화> 연작을 발표했고 1928년 [조선일보]의 학예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30년 신춘문예 공고문에 ‘만문만화’를 포함시키고 ‘시사, 시대, 풍조를 소재로 하되 글은 1행 14자 50행 이내’라고 내용과 형식을 정함으로서 새로운 만화장르의 개척을 알렸다. [조선일보]에서도 소설삽화와 만화, 수필, 단편소설, 미술평론, 문화시평 등을 발표 했다.

[그림 8] 잡지 [신문춘추]에 게재된 만문만화, <모던보이의 산보>, 1927

[그림 9] 잡지 [신문춘추]에 게재된 만문만화, <모던걸의 장신운동>, 1927

1934년 자신의 작품인 <춘풍>이 박기채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자 언론계를 떠나 영화계에 투신한다. 1937년 직접 시나리오를 쓴 <심청전> 연출을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을 내놓았다. 일제 말기인 1941년 참전을 조장하는 영화 <지원병>의 시나리오와 연출을 담당하고 황도학회와 조선임전보국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언론인으로서는 중앙일보사 고문(1946년), 민주일보사 편집위원, 문화시보 발행인을 거쳤고 문인으로는 전조선문필가협회 연예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1949)을 지냈다. 영화인으로는 대한영화사 전무이사, 대한영화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동요작곡가인 아들 안병원이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원래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이었다고 한다. 해방과 전쟁 이후 ‘독립’이 자연스럽게 ‘통일’로 바뀌었다.

“석영 안석주씨가 소설이나 시, 영화각본까지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지 말고 만화방면으로 전력을 하얏스면 그의 특재(特才)를 더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신문사의 사정이나 씨의 환경이 그럿케 허(許)치 안는데야 엇지하랴(‘경성 명인물’, 별건곤 1930년 11월호, 동아일보 블로그 재인용).”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도 안석주의 다재와 다능은 세인들의 관심거리이자 걱정거리였다. 너무 많은 일을 한 시기에 집중해서 추진한 탓인지 1950년 2월 24일 5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 주목할 만한 역사적 장면 : 한국 근대만화의 구축과 매체 간 경쟁을 통한 발전


<허풍선이 모험기담>은 당시 신문사 간에 ‘만화를 통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고 우리만화의 근대가 어디로부터 출발해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세 명의 ‘만화천재’가 등장한다. 먼저 국내 최초의 만화편집자라 할 수 있는 [시대일보]의 최남선, 국내 최초의 만화기획자이자 이론가였던 [조선일보]의 김동성 그리고 그야말로 ‘만화적’이랄 수밖에 없는 다재다능으로 근대의 문화예술을 살찌웠던 [동아일보]의 안석주다.

김동성이 미국에서 신문과 만화를 배우고 [동아일보]에 입사해서 이를 우리 스타일에 접목시키고 있을 때 최남선은 일본에서 체득한 서양의 지식과 문화를 잡지와 신문을 통해 실어 날랐다. 이 과정에서 최남선의 [시대일보]가 먼저 조지 맥머너스의 작품을 <엉석바지>라는 제목으로 선보였고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긴 김동성은 이를 바탕으로 노수현 등과 함께 맥머너스의 작품을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멍텅구리> 시리즈를 탄생시킨다. 두 신문이 만화를 통해 판매부수를 늘리고 있을 때 [동아일보]에 입사한 안석주는 김동성이 떠난 자리를 메꾸는 한편, ‘그림이야기’라 칭했던 새로운 장르를 계승 발전시켜서 경쟁우위를 지켜야 할 상황이었다.

안석주의 재기는 <허풍선이 모험기담>이라는 제목에서부터, 1회분 원고의 구성에서부터 발동했다. 정치만평이나 시사만화가 아닌 ‘그림이야기(만화)’의 재미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들의 바보 같은 행동이나 슬랩스틱 코미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허풍’ 섞인 ‘모험’과 ‘기담’ 안에 있다고 선언한 격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1회분 원고에서 세 명의 영감을 의자에 앉혔다. 이는 그대로(1회 원고 중 왼편부터) 엉석바지, 멍텅구리, 허풍선이였고 최남선, 김동성, 안석주로 해석될 수 있다. 엉석바지는 ‘하든 이야기나 다 맛치세’라며 허풍선이의 등장을 저지하려했고 김동성은 허풍선이가 꺼내 든 ‘탐험’이라는 키워드에 흥미를 보인다. 허풍선이 안석주는 놀라지나 말라며 김동성에게 배운 만화에 새 살을 더해 자신만의 만화를 만들어 보였다. 이렇게 <허풍선이 모험기담>은 우리 만화를 한 걸음 성장시켰고 세 명의 만화천재와 세 신문사들 간의 긍정적 경쟁을 촉진시켰으며 동업자 간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이른바 ‘만화계’의 기초를 제시한 것이다. 안석주는 그 해 이 같은 고민을 실천에 옮겼다. 김복진 등과 함께 최초의 만화가모임인 ‘조선만화가구락부’를 결성(1925년 5월)했고 [시대일보]를 거쳐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참고자료

‘허풍선이 모험기담’ 보기, 동아일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http://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Keyword.nhn#%7B%22mode%22%3A1%2C%22sort%22%3A2%2C%22trans%22%3A%221%22%2C%22pageSize%22%3A10%2C%22keyword%22%3A%22%ED%97%88%ED%92%8D%EC%84%A0%EC%9D%B4%EB%AA%A8%ED%97%98%EA%B8%B0%EB%8B%B4%22%2C%22status%22%3A%22success%22%2C%22startIndex%22%3A1%2C%22page%22%3A1%2C%22startDate%22%3A%221920-04-01%22%2C%22endDate%22%3A%221999-12-31%22%7D

‘허풍선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566&mobile&categoryId=1642

‘동아일보를 빛낸 당대의 화백들-석영 안석주, 2011.10.28.

http://dongne.donga.com/2011/10/28/d-story-119-%eb%8f%99%ec%95%84%ec%9d%bc%eb%b3%b4%eb%a5%bc-%eb%b9%9b%eb%82%b8-%eb%8b%b9%eb%8c%80%ec%9d%98-%ed%99%94%eb%b0%b1%eb%93%a41-%ec%8b%ac%ec%82%b0-%eb%85%b8%ec%88%98%ed%98%84/

‘일제시대 만문만화’, 한국미술산책, 네이버캐스트, 2009.09.1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102

‘안석주’, 발굴한국현대사인물, 한겨레신문, 1991.03.22.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32200289107001&ed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3-22&officeId=00028&pageNo=7&printNo=880&publishType=00010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작사한 안석주’, 우리힘닷컴, 2005.12.15.

http://www.woorihim.com/him_col/?cate_2=100380&uid=4167&start=50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있고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한국만화정전을 연재하기 위해서 전체 목차를 사전에 잡아뒀다.  

될 수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도 그 리스트를 변경하지 않아야한다는 1차적 목표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연재를 진해하면서 바뀌는 마음도 있고 빼먹은 것을 자각하게 되기도 한다.

시대별 대표작 111작품을 뽑았지만 작가의 중복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뒀다.

작가소개 부문에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순서상 놓치는 대목이 있다. 

<멍텅구리 헛물켜기>에 이어서 안선주의 <허풍선이 모험기담>을 택했다. 신문만화가 캐릭터성과 정기성을 지니며 현대만화의 틀거리가 마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조선과 동아라는 역사적 라이벌 매체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안석주가 너무 아깝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천재 만화가이자 전방위 아티스트였던 그를 <허풍선이 모험기담>안에서만 다루자니 아깝다. 따로 책 한권이 나와도 될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러데 작품 발표 연도상 안석주가 먼저였다. 그 뒤로 안석주의 만문만화와 캐리커쳐가 있는데... 이는 30년대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최영수에게 넘겨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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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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