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림이라, 김동성
밭 전(田)자로 그려낸 최초의 신문 4칸 만화
[그림 1] 신문에 연재된 최초의 4칸 만화로 밭 전(田)자 형식을 취했다. 김동성, <이야기그림이라>, [동아일보], 1920.04.11
■ 작품에 대하여 : 한국 최초의 신문 4칸만화
<이야기그림이라>는 1920년 4월 11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작품이다. 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를 홍보하는 내용으로 신문이 너무 재미있어서 ‘길 가는 사람이 넘어져도, 밥 먹을 틈도 없이, 아이를 보거나 이발 하는 시간도 참지 못하고’ 자꾸 보게 된다는 것을 우스운 그림과 지문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같은 해 4월 19일자에서는 제호를 <그림이야기>로 바꾸고 ‘동양과 서양’이라는 편명을 단 작품이 게재됐다. 부인에게 쩔쩔매는 서양 남자들은 신사의 모습으로, 동양 남자들은 부인에게 큰 소리 치는 불량배처럼 묘사한 작품이다. 5월 30일자에서는 ‘제각각 소원’이라는 편명 하에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과 젊어지고 싶은 노인, 장가가고 싶은 총각과 처녀총각으로 돌아가고 싶은 부부를 묘사했다.
초기 작품은 상황을 나열하거나 반대되는 상황을 대조하여 내용을 강조하는 형태의 단조로운 만화문법을 사용했다. 반면 제호를 다시 <이야기그림>으로 바꾼 7월 26일자 ‘서울은행장의 죽음’ 편에서는 깔끔하고 세련된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큰 부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남편에게 부인이 가족도 아닌데 왜 그리 슬퍼하냐고 하자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프다는 투의 역설적 유머를 펼친다. <이야기그림이라> <그림이야기> <이야기그림>을 통칭하여 ‘동아일보 이야기그림 시리즈’라 부르고 ‘한국 신문 최초의 4칸 만화’로 평가하고 있다.
[그림 2] 제호를 바꾸고 편명을 단 작품, 김동성, 동양과 서양 편, <그림이야기>, [동아일보], 1920.04.19.
신문의 4칸 만화는 1칸 만화 다음으로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구성양식이다. 하지만 동서양의 만화 전통이 극명하게 나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양의 경우는 알파벳 가로쓰기 전통에 입각해서 허리띠 모양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는 4칸 만화를 그렸다. 동양의 4칸 만화는 한자어 세로쓰기 전통에 따라 칸은 위에서 아래로 전개되고 칸 안의 내용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경우는 현재까지 인쇄물의 우철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서 이 같은 양식이 유지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서양식 좌철 원칙과 가로쓰기 전통을 받아드리면서 위에서 아래로 전개되는 4칸의 구성양식은 유지하고 있으나 칸 안의 내용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된다.
‘이야기그림 시리즈’는 동양적 4칸 만화의 전형성이 자리 잡기 전 선구적으로 제시된 양식으로 밭 전(田)자 모양이다. 칸의 전개를 초기에는 우상①, 좌상②, 우하③, 우좌④로 하다가 다음 편에서는 우상①, 우하②, 좌상③, 좌하④로 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미국 신문과 일본 신문에 게재됐던 만화의 형식에 익숙했던 작가가 이를 우리식으로 바꾸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다.
[그림 3] 그림 읽는 순서가 달라진 작품, 김동성, 서울은행장의 죽음편, <이야기그림>, [동아일보], 1920.07.26.
■ 작가에 대하여 : 만화가, 만화이론가 출신 공보처장(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동성
<이야기그림이라>의 작가 김동성(1890~1969)은 개성 갑부 집안의 3대 독자 출신이다. 한국언론사를 대표하는 초기 언론인으로 수많은 분야에서 ‘언론최초’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최초의 해외특파원, 최초의 국제기자대회 참석자, 최초의 민간기자출신 언론사 대표, 최초의 통신사 설립자, 최초의 언론학 개론서 <신문학(新聞學)> 집필자 등이다. 이중 특기할만한 것이 만화분야에서의 업적이다.
[그림 4] 한국 최초의 신문 4칸 만화가이자 최초의 만화이론가였던 언론인 김동성
1908년 유학길에 올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신문학 등을 공부했고 유학중이던 1917년 4월 5일 자 [신한민보](미국 센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던 교포 신문)에 만평을 투고한 바 있다. 1919년 귀국 후 [동아일보] 창간 멤버로 참여해 1920년 4월 1일 자 [동아일보] 창간호 만평을 시작으로 최초의 신문 4칸 만화인 ‘이야기그림 시리즈’를 연재했다. 창작활동 외에도 미국의 만화창작 이론을 번안하여 최초의 만화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만화 그리는 법’을 잡지 [동명](1923년2월25일자부터 11회)에 연재했고 1924년 조선일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한국 최초의 본격 오락만화이자 캐릭터만화라고 할 수 있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기획했다. 이 작품은 철저한 사전 기획과 역할 분담을 통해 창작됐고 이후 영화로도 제작되어 ‘한국 최초의 만화원작 영화’가 되기도 했다.
[그림 5] 단군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선언한 창간 기념 만평, 김동성, [동아일보], 1920.04.01.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공보처장(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임명됐고 1950년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투신한 바 있지만 정치활동보다는 언론인이자 만화인으로서의 역할이 컸다. 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최초의 한국인 영한사전 편찬자, 최초의 원예학 및 라디오 관련 저술가, 최초의 코난도일 추리소설 번역가 등으로도 불리는 전천후 인간이었다.
■ 주목할 만한 역사적 장면 : 근대만화의 밭 동아일보에서 이뤄진 바통 터치
김동성은 미국에서 신문의 역할과 만화의 효용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귀국했다. [조선일보]가 [동아일보]보다 한 달 여 일찍 창간했지만 [조선일보]에는 김동성이 없었다. 김동성이 근대만화를 일군 농부라면 [동아일보]는 훌륭한 밭 역할을 했다.
[동아일보]는 창간호(1920.04.01. 자)부터 민족지로서 ‘단군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선언을 만화적 표현물로 했고, [동아일보]가 ‘시든 꽃’인 우리 민족의 물줄기가 되겠다는 의지도 만화적 표현물(1920.04.07. 자)을 통해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최초의 만화가로 평가받는 이도영이 [동아일보] 창간호에 축화(祝畵)로 보냈다는 점이다. 이미 서화가로서 명성이 있던 시절로 창간을 축하하는 서화가 2면에 게재되고 김동성이 그린 만화적 표현물은 3면에 게재됐다. 최초의 만화가 이도영이 최초의 신문4칸 만화가이자 만화이론가인 김동성에게 ‘만화’라는 바통을 넘겨준 형국이다.
[그림 6] ‘만화’라는 단어가 등장한 기사 ‘대성악가의 사후광경’ 전문, [동아일보], 1921.01.07.
이도영과 김동성의 바통터치 외에도 [동아일보]는 만화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다. 그중 하나가 ‘만화’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만화’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인쇄매체가 [동아일보]이다. [동아일보] 1921년 8월 7일 자 ‘대성악가의 사후광경’이라는 기사에는 이탈리아의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2.25.~1921.8.2)의 유고 기사가 실렸는데 기사 말미에 ‘씨는 만화(漫畵)도 잘 그리며 책으로 발간한 것도 있다더라’고 적었다. ‘만화’라는 단어가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일상용어처럼 기사에 쓰인 것이다. 이는 1922년 9월 24일 자 잡지 [동명]에 <배상불능의 만화전>이란 해외 작품이 게재되면서 처음 ‘만화’라는 단어가 우리 인쇄매체에 등장했다는 기존의 연구결과(손상익, <한국만화통사>, 시공사, 1999)보다 1년 이상 앞선 것으로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현재호까지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서비스하고 있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 확인됐다.
1920년 대 [동아일보]는 데일리익스프레스지에 게재된 해외만화를 소개(1920.05.31. 자)하고 현상공모를 통해 만화를 선발하는가 하면 독자투고 만화를 중심으로 <동아만화>란을 신설하여(1923.09.23. 자부터) 4년 여 간 고정 연재하기도 했다. 김동성이 [동아일보]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참고자료
김동성의 ‘이야기그림이라’ 작품보기, 동아일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1920.04.1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004110020920301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0-04-11&officeId=00020&pageNo=3&printNo=9&publishType=00020
‘김동성’에 대하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1998&mobile&categoryId=1642
김동성의 다양한 이력에 대해 논한 블로그‘번거들충이 한무릎공부’
http://bookgram.pe.kr/120096122757
‘천리구라는 이름의 대기자 김동성 선생을 추모함’, 동아일보(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1969.08.19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081900209206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9-08-19&officeId=00020&pageNo=6&printNo=14725&publishType=00020
김을한 편, 천리구 김동성, 을유문화사, 1981
http://www.eulyoo.co.kr/book/book_view.asp?bookid=1914&page=3&GC=Y&GCID=9&keyfield=&keyword=&sorttype=
이해창, 한국시사만화사, 일지사, 1982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3529209
박석환/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부장
세종대학교 대학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있고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이 당선된 후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화비평서 <만화시비탕탕탕>, <코믹스만화의 세계>가 있고 만화이론서 <디지털만화 비즈니스-잘가라 종이만화>, <만화리뷰쓰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 <만화>, <한국의 만화가 1, 2> 등이 있다.
[후기] 김동성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언젠가 꼭 평전을 쓰고 싶다.
그의 삶이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도 한두줄 더 아는 정도에서 멈췄다.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