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만화산업 호황 ‘만화가는 불황’,2008.01.31

드라마·영화화로 판권경쟁 치열하지만 스타작가 빼곤 수입 오히려 줄어
 
운암정을 무대로 천재요리사 성찬과 라이벌 봉주가 펼치는 요리대결이 주되 줄거리인 영화 '식객'.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300만 이상의 관객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드라마로 제작해 4월에 시청자와 만날 예정이다. 
만화의 전성시대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쉼없이 나오고 있다. 2003년 MBC 드라마 ‘다모’를 시작으로, ‘풀하우스’(2004), ‘불량주부’(2005), ‘궁’(2006)에 이어 ‘쩐의 전쟁’(2007)까지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성공을 거뒀다. 올해도 이 같은 드라마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허영만의 ‘식객’ ‘사랑해’ ‘타짜’가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고,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도 제작 중이다. ‘쩐의 전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박인권 화백의 ‘대물’은 4월에 시청자와 만날 예정이다. 이밖에도 ‘바람의 나라’ ‘비천무’ ‘일지매’ 등도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영화 쪽은 좀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노래가사를 흥얼거리게 했던 이현세 원작의 ‘공포의 외인구단’(1986)을 시작으로 박봉성의 ‘신의 아들’(1986), ‘지옥의 링’(1987), ‘비트’(1997), ‘비천무’(2000), ‘타짜’(2006) 그리고 지난해 큰 인기를 얻었던 ‘식객’까지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바보’ ‘아파트’ ‘순정만화’ ‘26년’ 등 온라인 만화가 1세대로 꼽히는 강풀과, ‘비트’ ‘타짜’ ‘식객’ 등을 쓴 허영만이 요즘 영화계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만화가로 꼽힌다.


만화잡지·단행본 출간 감소 추세 


올해 허영만의 '식객' '사랑해' '타짜'가 연이어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만화의 판권료도 치솟고 있다. 예전부터 사랑받았던 중견작가의 판권료는 5000만~6000만 원이라고 알려져 있고,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만화가는 판권료로 1억 원 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만화와 만화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증거다.

만화평론가 박석환씨는 “예전부터 충무로와 방송가에 ‘스토리가 부족하네’ ‘창의성이 없네’라는 말이 돌았다”면서 “만화는 텍스트에 비해 영상으로 만들 때 훨씬 편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영상매체는 공동작업을 해야 하는데 만화는 서로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어서 제작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또한 “요즘 만화 판권을 사려는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유명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만화산업은 호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만화산업의 호황은 영상매체에서만 두드러진다. 만화가의 고단한 삶은 여전하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펴낸 ‘만화산업백서 2006’의 자료를 살펴보면 만화산업의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다.

2001년 만화단행본은 6978종이 출간됐지만, 2003년 6283종, 2005년 4558종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빅3 만화출판사인 서울문화사, 학산문화사, 대원씨아이의 출판 현황도 2000년 이후부터 계속 줄고 있다. 서울문화사를 예로 들면 2000년 1300여 종의 만화단행본을 출판했지만, 2005년에는 1000여 종으로 급감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 30여 종이나 나왔던 만화잡지는 현재 10여 종으로 줄어든 상태다.
그 대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만화 장르가 있다. 학습만화 시장이다. 2001년 405종이 출간됐던 것이 2005년에는 685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온라인 만화시장과 만화가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2003년 심승현의 ‘파페포포 메모리즈’가 밀리언셀러에 오르면서 김풍, 고필헌, 정철연 등의 젊은 작가가 대거 등장했다. 특히 강풀은 온라인 만화의 가능성과 성공을 알려준 바로미터였다. 온라인 만화 ‘위대한 캣츠비’는 2005년 대한민국 만화 대상을 수상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 만화작가들은 스타급 작가를 제외하고는 오프라인의 60~70% 수준의 원고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온라인 불법 복제로 인한 만화가들의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만화저작권보호협의회의 ‘불법스캔 만화파일 공유실태조사’에 따르면 2005년 하반기부터 2006년까지 불법복제 피해액이 ‘최소 400억 원 이상’이라고 발표했을 정도. 만화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실상 만화가들은 여전히 힘든 현실을 맞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김동화 회장은 “만화산업이 호황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불황이다”라면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만화를 무료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김 회장은 만화잡지의 전멸도 큰 어려움이라고 털어놓는다. 1권의 만화잡지에는 20여 명의 작가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뜨는 학습만화 원고료도 하락


또한 출판사에서도 한국만화 시장이 줄어들면서 단행본 출판을 꺼려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만화작가들의 원고료도 낮아지고 있다. 김 회장은 “요즘 만화 단행본은 3000~5000부 정도만 찍는다”면서 “인세를 따지면 수백만 원 정도인데 화실 운영을 하는 것도 벅차다”고 설명한다. 화실 운영비와 문하생 월급 등을 제하고 나면 거의 마이너스다.

박석환씨는 “요즘 출판사는 스타급 작가들에게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출판사는 전 연령대를 커버할 수 있는 만화가를 선호하지, 과거처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화는 출판을 꺼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허영만, 강풀처럼 전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만 살아남는 것이다.자연스럽게 만화가들은 돈이 된다는 ‘학습만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학습만화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작가의 원고료도 많이 떨어지고 있다. 예전에 받았던 고료의 ‘반토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한 만화가는 저작권 문제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만화가 중에는 자신의 작품이 도용됐다는 정황 때문에 방송국이나 영화제작사와 법정 소송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화가가 승소한 경우가 없을 정도로 만화가는 저작권 측면에서도 소외당하고 있다. 만화저작권보호협의회의 주재국씨는 “만화 저작권 분쟁은 대부분 3심까지 가는데, 대부분 만화가가 패소한다”면서 “만화가 개인이 자본과 싸우는 것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만화산업의 호황 이면에는 만화가의 불황이 숨어 있다. 하지만 만화작가들은 대개 생활이 어렵다고 그만두기보다 정공법을 택한다. 만화 ‘휴머니멀’(2005)의 김순구 작가는 “만화에 대한 사회적인 제도나 관습의 범위 역시 부딪혀 싸워나가야 하는 쟁취의 몫이지, 어려움은 아니다”면서 “더 근본적인 어려움은 창작이다”라고 털어놓는다. 김동화 회장 역시 “정부의 지원이나 시스템이 부족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가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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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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