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20주년 맞이한 코믹챔프-잡지만화의 현실, 한국형 망가의 꿈, 주간동아, 2012.01.06

20주년 맞이한 코믹챔프-잡지만화의 현실, 한국형 망가의 꿈


소년챔프, 코믹챔프가 되다


1991년 12월 5일 만화주간지 ‘소년챔프’가 창간됐다. ‘뭉클한 감동, 통쾌한 폭소, 아찔한 스릴’을 테마로 창간된 이 만화잡지가 올 겨울로 20주년을 맞이했다. 20년의 세월을 상징하듯 제호도 ‘소년’이라는 딱지를 때고 2002년부터 ‘코믹’을 달고 있다. 여전히 소년들을 위한 만화잡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최근 연재되고 있는 작품의 면면을 보면 소년만을 위한 잡지라기보다는 ‘소년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청춘잡지로도 읽힌다. 또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만화독자들을 위한 잡지라기보다는 만화의 컨셉트와 서사를 새롭게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참고잡지 성격도 보인다. 20년. ‘소년챔프’가 ‘코믹챔프’가 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점프챔프, 일본만화 판에서 한국만화의 꽃을 찾다


‘챔프’의 출발은 1988년 창간된 ‘아이큐점프’로부터 시작됐다. 신세대 도시여성을 타겟층으로 했던 ‘우먼센스’로 대박을 기록한 서울문화사는 ‘어깨동무’, ‘보물섬’으로 대표되던 기존의 어린이교양지와 만화월간지 시장에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당대 최고의 만화가였던 이현세, 이상무를 투톱으로 내세우고, 1천원이라는 저가로 동네 문방구에서도 구매가 가능한 주간 연재주기의 만화잡지였다. 88서울올림픽과 함께 학교 앞이나 도로변 만화방이 사라지면서 새 활로를 찾고 있던 만화계와 경제 성장기의 대중 소비심리가 맞물리면서 빅뱅 수준의 흥행 폭탄이 터진 것이다. 고행석, 김형배, 장태산, 이우정 등 만화방과 어린이잡지를 통해 스타가 된 만화가들의 역할이 컸지만 이 같은 흐름을 이끌어낸 편집진의 노력도 컸다. 미술팀의 황경태(현 학산문화사 대표), 기자로 일했던 곽현창(현 서울문화사 국장) 등이 ‘점프’의 창간을 주도했다. 미술을 담당했던 황경태가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황민호(현 대원씨아이 상무)가 기자로 뛰어들어 ‘점프’의 대항마로 창간한 잡지가 ‘소년챔프’이다.  


‘독고탁’시리즈 ‘떠돌이까치’ ‘달려라하니’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주로 제작하던 대원동화가 ‘점프’ 천하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창간호는 ‘점프’의 컨셉트를 유지했으나 대원동화만의 특징이 가미됐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한국만화와 일본만화 각 1편씩을 투톱으로 내세운 전략이었다. 고행석의 ‘마법사의 아들 코리’, 타카다 유조의 ‘3×3아이즈’를 중심으로 배금택, 이원복, 김지원, 김대지 등이 참여했다. 국내 창작애니메이션 제작 및 일본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 등을 통해 구축한 네트워크가 십분 활용된 결과였다. 물론 이 시기에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이 ‘점프’에 연재중이었고 ‘슬램덩크’의 다케이코 이노우에가 ‘챔프’에 연재되면서 일본만화가들이 한국만화계에서 인기 싸움을 벌이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일본만화가 한국만화계에 대거 유입되는 환경이 조성됐고 ‘한국만화계는 일본만화의 소비시장’이라는 평가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프’ ‘챔프’로 불리던 두 매체의 뜨거운 라이벌 경쟁은 당대 소년들의 가슴을 뒤 흔들어 놓았다. 무엇보다 두 매체를 통해 등장한 신세대 만화가들은 전통적인 만화스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파괴력을 보여줬다.



한국만화의 뉴타입, 길을 잃다


20~30만부가 판매되던 두 매체의 일본 만화 게재 비율이 높아지자 일군의 만화스타들은 매체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연재를 거부하고 지면을 떠났다. 이 자리를 색다른 이력의 신세대 만화가들이 채워가면서 ‘점프챔프’는 만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고교생 출신 만화가 이명진(‘어쩐  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공모전을 통해 등장해서 일약 만화계의 서태지가 됐고, 백댄서 출신의 만화가 김수용(‘힙합’)은 ‘춤’이라는 소재를 만화에 끌어들이면서 전문소재 만화의 길을 열었다. 애니메이터였던 박산하(‘진짜사나이’)는 학원액션물이라는 병합되기 어려운 요소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고 양경일/황용수(‘소마신화전기’)은 판타지라는 색다른 무대를 만화에서 펼쳐 보였다. 만화왕국 일본에서도 선별된 최고의 작품들과 한국의 신예 만화가들이 한 자리에서 경쟁했지만 이들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도전과 성과는 시간이 갈수록 폭풍우처럼 밀려오는 일본만화의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렁처럼 깊었던 IMF 경제위기와 뉴미디어 환경의 도래 그리고 청소년보호라는 미명하에 만화의 상상력이 통제되면서 승승장구했던 한국만화의 신세대들도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1990년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만화잡지는 딱 10년 만에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고 일본만화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만화잡지들의 폐간 소식이 줄을 이으면서 신세대만화가들의 ‘밥줄’도 끊어졌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다. 경제위기는 벗어났고 청소년보호를 이유로 지나치게 통제되던 상상력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 인터넷, 케이블TV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매체에 오락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지금의 ‘소년’들은 만화잡지가 보여줬던 상상의 세계를 온라인게임, 3D영화, SNS, 앱스토어 등에서 찾고 있다.


한국형 망가, 망가노믹스를 꿈꾸다


소년들을 위한 주간만화잡지라는 컨셉트에서 ‘소년’을 때고 ‘주간’을 ‘격주간’으로 바꾸면서 ‘점프챔프’는 타겟층을 넓히고, 몸집을 줄였다. 그리고 뉴미디어를 쫓는 새로운 소비자층에 걸 맞는 방식으로 만화콘텐츠의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영화영상,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분야로 만화가 상품화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재정비했다. 즉, 만화책을 만들기 위해 연재만화를 게재하는 잡지가 아니라 다양한 만화관련 콘텐츠(상품)을 만들어가기 위한 터전이 된 것이다. 현재 ‘챔프’에는 얼마 전 TV드라마로 방송됐던 ‘무사백동수’의 원작 ‘야뇌백동수’, 미국 시장에서도 선풍적인 판매고를 기록한바 있는 ‘마제’, 게임 등 다양한 파생상품이 만들어졌던 ‘짱’, 일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다크에어’ 등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다. 이처럼 지금의 만화잡지기자는 과거와 달리 어떤 만화작품이 다양한 콘텐츠 상품이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만화가와 함께 이를 구현해가는 파트너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시절의 만화가들 역시 변화된 환경에 따라 변신하고 있다. 고교생 만화가 이명진은 ‘라그나로크’라는 자신의 작품을 인터넷게임으로 만들어 대박 신화를 이어가고 있고, 김수용은 작화 환경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포털사이트에 ‘좌우’라는 제목의 웹툰을 연재하는가 하면 방송드라마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산하 역시 잡지가 아닌 학습만화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다수의 소설과 인터넷게임을 만화화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양경일/윤인완은 망가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한국적 정서를 담은 망가를 그려 100만부 신화를 이어가는 한편, ‘암행어사’라는 한국적 제목의 작품을 일본 자본으로 애니메이션화하는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만화작품의 다양한 상품화 전략은 일본만화, 즉 망가(manga)로 불리는 일본식 만화스타일과 산업이 주도해온 전략이다. ‘점프챔프’로 대표되던 만화잡지시스템 역시 일본식 운영체제를 도입한 것이었다. 만화계 일부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점프챔프’의 왜색과 일본화 된 만화가들의 작화 스타일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망가는 세계 만화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한 스타일로 인정되고 있다. 또 일본만화가 정비해 온 상품화 전략은 망가노믹스(Manga-nomics)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점프챔프’는 어쩌면 한국만화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코믹챔프’의 20주년은 한국형 망가, 망가노믹스를 꿈꾸어왔던 이들의 도전과 좌절 그리고 또 다른 출발의 상징이다. 20살 청춘. 무엇을 해도 불안해 보였던 사춘의 시절과 지난 이야기들은 이제 접어도 좋다. 무엇을 해도 멋스러운 20살 ‘챔프’를 기대해보자.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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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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