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화는 특유의 서정성과 감성으로 우리만화의 새로운 지점을 구축해낸 작가이다. '다름'에 대한 꾸준한 시도로 한국인의 얼굴과 자연을 순정만화적 필법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했고, 어른들을 위한 서사만화를 창작하면서 중장년층 만화독자를 형성해냈다.
약력
감성적인 것을좋아하던 김동화, 아내 한승원과 여자들의 감성을 그리다
김동화의 작품세계는 경이로울 만큼 다채롭다. 1975년 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데뷔했으나 이내 일본식 소녀만화의 전통을 받아들인 순정만화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순정명랑이라는 색다른 컨셉트의 작품을 발표했고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소년만화를 내놓기도 했다. 작가 생활 20년을 맞이하는 해에는 기존의 작화 형식을 통째로 바꾼 ‘한국형 순정만화’를 창안했고 중장년층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실버코믹스의 한국형 사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만화계 입문은 19살 때 했어요. 당시에는 약화 스타일이 유행이었죠. 등신비는 극화체와 같은데 선을 간소화 시킨 그림을 약화체라고 했죠. 김기백 선생님이 으뜸이었어요. 김선생님 댁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고 남자 순정만화가로 유명한 권영섭, 차성진 선생님 일을 돕기도 했죠. 차선생님은 순정극화 분야에서 빼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던 작가였어요. 연배 차이는 많지 않았지만 많은 걸 배웠죠.”
김동화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대한 열정이 컸다. 한 동네에 살던 만화가의 집 앞을 서성이며 작가가 될 것을 결심했고 만화계 입문 후로는 다양한 스타일을 지닌 만화 스승을 만나 그들이 지닌 장점을 흡수했다. 감성적인 것을 좋아했고 동경하는 마음이 컸던 김동화는 꿈꾸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끝없이 도전했다. 소녀 대상의 순정만화와 소년 대상의 활극만화, 성인 남성의 시대극과 중장년층을 위한 드라마는 저마다 다른 정서를 필요로 한다. 화풍은 말할 것도 없고 연출과 대사도 달라야 한다. 직업적으로 특정 형식의 작품 창작을 지속했던 작가가 이를 의도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동화는 이 같은 변신을 수없이 반복했고 매 분기마다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초기에는 감성적인 내용의 소년만화를 했어요. 그러다가 일본에서 발행된 소녀만화잡지를 보게 됐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그림과 스토리가 너무나 다양했고 무엇보다 아름다웠죠. 이런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당시 출판만화계는 여성독자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순정만화를 내지 않았다. “70년 초쯤 일본만화 [캔디]가 해적판으로 나왔어요. 일반 출판유통을 타지 않고 문방구에서 팔렸는데 굉장했어요. [캔디]가 인기를 끌자 순정만화를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생겼죠. 때마침 한승원(동료만화가이자 김동화의 아내)이 문하생으로 들어왔어요. 인기도 없는 만화가였던 제게 만화를 배우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죠.”
김동화는 한승원과 함께 79년 [우리들의 이야기]를 발표한다. 물방울 눈과 12등신 꽃미남, 꽃미녀로 대표되는 순정만화의 필치를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 김동화의 풋풋한 그림과 한승원의 감성적 스토리가 어우러졌던 첫 작품이다. “순정처럼 그릴 수는 있어도 쓸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진짜 여자의 가슴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승원이 그 역할을 해줘서 김동화의 만화가 된 거죠. 지금도 김동화는 패밀리네임이라는 생각을 해요.” 김동화는 곧이어 ‘평범한 소녀의 신데렐라 되기’를 테마로 한 작품 [내 이름은 신디]를 잡지 ‘여고시대’에 발표한다. 스승이기도 했던 차성진의 추천으로 파격적인 조건 하에 연재를 하게 됐고 연재 중 원고료가 네 번이나 올랐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아카시아]를 연재할 때는 더 굉장했죠. 월세 살다가 집을 샀으니까요(웃음).”
똑 같은 것은 싫다, 순정만화가에서 소년만화가
순정만화가 김동화의 첫 변신이었다면 [요정핑크]는 두 번째 변신이다. 이 작품은 전설적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됐던 작품이다. 여고생 잡지 ‘여고시대’와 달리 ‘보물섬’은 아동 독자 중심의 가족 교양잡지였다. 여고생 독자가 아닌 아동 독자를 염두에 둬야 했고 로맨스보다는 유머가 필요 했다. “당시 ‘보물섬’의 인기는 대단했어요. ‘보물섬 연재작가’라는 것이 자랑처럼 여겨지던 때였으니까요. 저도 그곳에서 연재를 하고 싶었죠. 그런데 똑 같은 걸 하기가 싫어졌어요. 변화를 주고 싶었고 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죠. 그래서 [요정핑크]를 했어요. 순정만화 형식이었지만 판타지와 명랑적인 요소를 가미했죠.” 연재 매체의 성격에 따른 변화이기도 했으나 정통 순정만화의 장식적 연출과 탐미적 묘사를 배제한 깔끔한 펜화와 유머는 이전의 작품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김동화는 이 같은 변화의 즐거움을 만끽이라도 하듯 순정만화와는 정반대 정서를 담아야 하는 소년 활극 만화를 시도한다. “좀 활동적인 것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곤충소년]이에요. 몸이 허약했던 터라 어린 시절에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많이 당했죠. 그래서 땅바닥에 기어 다니는 곤충을 보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는데 그 때 했던 공상을 그대로 작품에 담았어요.” 곤충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초능력 소년의 이야기는 당대의 소년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곤충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곤충의 능력을 위기 상황에 사용하는 소년 히어로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김동화 만화에 대한 이전의 이미지를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여고생 독자를 향했던 김동화의 펜 끝이 소년 독자를 향했으나 [곤충소년] 이상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소년만화를 더 해보고 싶었는데 이후로는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당시 홍콩영화 중에 ‘강시시리즈’가 인기였는데 잡지사에서 이걸 만화로 해보자고 해서 한 적도 있어요. 안 해야 할 것을 하면서 많이 괴로워했죠. 밥 먹는 것 때문에 만화를 그려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만화는 접고 카페나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제주도에 내려가서 땅값을 알아보고 다닌 적도 있어요(웃음).”
영화 [서편제]에서 받은 충격, '찢어진 눈'의 한국사람을 그리다
김동화의 소년만화는 해를 넘기면서 시들해졌다. “슬럼프였죠. 그때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개봉했어요. 별 생각 없이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어요. 단성사에서 했는데 4일 연속으로 봤죠. 우리 것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충격을 받았어요.” 김동화는 [서편제]에서 받은 충격을 자신의 작품에 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창작과 표현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대의 순정만화는 이름만 한국사람이고 서양사람의 얼굴과 신체를 그리고 있었다. 아예 배경과 주인공이 유럽인 작품도 여럿이었다.
“남의 나라를 무대로 펼치는 로맨스나 공상으로 가득한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6개월간 그림 연습만 했죠. 그런데 아무리 해봐도 우리 느낌이 안 났어요. 마론인형에 한복을 입혀 논 것 같았죠.” 김동화는 연습을 통해 달라질 것이 없는 완성된 스타일을 지닌 작가였다. 그가 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성과를 부정해야 했다. 무의식적으로 내 뻗는 펜 선 하나까지 조율해야 기존의 순정만화나 소년만화의 느낌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동그란 눈을 찢어진 눈으로 그려봤어요. 눈이 옆으로 길어지니까 키도 작아졌고 전체적인 비례가 맞아 떨어졌죠. 당시 만화잡지 편집장으로 있던 황경태(현 학산문화사 대표이사)씨랑 같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성인만화잡지를 창간한다면서 작품 하나 달라고 하더군요. 순정하고 아동물만 했는데 어떻게 성인물을 하냐고 했더니 연습하던 그림을 봤던지 ‘그런 거’로 하면 된다고 했어요. [못난이], [황토빛 이야기], [기생이야기]가 그렇게 나온 거죠.”
[빨간자전거]로 할머니들의 팬레터도 많이 받았죠
[못난이]로 시작된 김동화의 어른만화는 물방울 눈으로 대표되는 순정체 그림으로 한국사람의 얼굴과 신체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특히 유럽의 귀족사회나 도시화된 현대를 배경으로 했던 순정만화의 세계를 한국의 역사 시대로 전환시켰다는 점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대목이다. 김동화는 일련의 한국형 순정만화의 창작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아시아 만화대회에서 최초 창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앙굴렘 만화 축제에 참가했다가 파리의 만화전문서점을 갔어요. 노부부가 만화가게에 와서 바구니를 하나 들고 만화를 고르고 있더군요. 70살도 더 된 사람이 만화책을 펼쳐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어요. 귀국길에 젊은 작가 양영순한테 한국가면 진짜 어른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죠. 원래는 ‘기생열전’을 그리려고 했는데 중장년층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만화를 하고 싶어졌어요.”
김동화는 힘겹게 얻어낸 한국형 순정만화라는 세 번째 변신을 과감하게 중단하고 또 다른 변화를 모색했다. “한국의 중장년층이 그리워하는 것이 뭘까? 이런 걸 고민하다가 고향, 부모, 자식을 테마로 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빨간 자전거]라는 작품을 신문에 연재했어요. 6개월이면 성공이라고 했는데 3년 넘게 했죠. 이 작품으로 만화를 처음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펜레터도 많이 받았는데 어디에서 누구누구 할머니로 끝나는 것이 많았어요(웃음).” 김동화는 잊혀진 직업이라 여겼던 우편배달부를 되살려 냈고 주인공의 이동경로를 통해 아름다운 한국의 전원과 그 속에서 서로 위로 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무엇보다 서사만화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던 중장년층을 새롭게 우리 만화의 독자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 만화의 영토는 전 세계로 넓어질 것
김동화는 현재 한국만화가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만화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몸이 두 세 개 있어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협회장이 된 후 세가지를 이야기하고 다녀요. 먼저 만화가 고급화되어야 해요. 소재 선택은 물론 외적으로도 고급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어요. 요즘은 사정이 좀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우리 만화는 너무 싼 종이와 장정으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다음으로 독자의 다변화가 필요해요. 아동과 청소년만 만화의 독자는 아니잖아요. 청년층, 중장년층이 볼 수 있는 만화가 있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세계화를 생각해야죠. 우리 작가들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죠. 내수 시장의 안정화가 선행되어야겠지만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현지사정에 적합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야 해요. 내보내주면 우리 만화, 우리 문화와 상상력의 영토를 넓힐 수 있어요. 이를 하나씩 현실화 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죠. 이 과정에서 포털사이트와 웹툰의 역할이 강조될 것으로 생각해요. 포털과 만화계가 좋은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죠.”
김동화는 자신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한 어조로 우리 만화계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즘 우리 만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깊어지고 있어요.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로 수출되고 있죠. 그래서 이전과는 좀 다른 고민으로 창작에 임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앨범 형태로 내고 싶어요. 고급화죠. ‘소년과 병사’를 가제로 생각 중인데 현재 캐릭터를 잡고 있어요. 한국전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 이야기예요. 소재와 독자의 다양화죠.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할 거니까 세계화네요(웃음).”
글 박석환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콘텐츠비즈니스팀 수석, 만화규장각 필자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대중문화를 전공했다. 97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으로 등단한 이후 [잘가라 종이만화], [코믹스만화의 세계], [만화리뷰쓰기] 등 다양한 만화평론서를 발표했다.
사진 김덕화
발행일 2009.05.15
[인터뷰 후기]
이번엔 김동화 선생님입니다.
http://navercast.naver.com/korean/cartoonist/461
예정대로라면 다음주 예정이었는데... 마감일정이 급박하게 조정되면서 금주에 게재됐습니다.
다른 일정과 마감 독촉 사이에서 좀 버벅거리기도 했는데... 엔딩을 화사한 일러스트로 정리했더니 뭔가 있어 보이는 군요^^
그나저나 개인적으로는 활짝 웃으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데 입술 꼭 다문 사진이 실려서...
당일 인터뷰에는 네이버에 <러브판타지 페이퍼>를 연재하시는 단우님과 네이버 만화담당 김준구님이 함께 했습니다.
인터뷰 앞 부분에 하셨던 말씀을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 관련 내용은 다음에 정리하기로 결심했었는데 마치 합의하기라도 한 듯 단우님께서 그 부분을 흥미롭게 정리해주셨네요^^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3456&seq=7&menuType=&weekday=
한국인 인터뷰는 인터뷰이, 인터뷰어, 네이버만화가, 만화담당, 사진작가, 동영상촬영팀 등이 한꺼번에 매달리는 프로젝트인지라... 언제나 뒤에 기다리는 분들이 계셔서 늘 마무리는 허둥지둥하고 자리를 뜨게 되는데...
"촬영팀이 계속 기다리고..."있다는 없어 보이는 멘트의 주인공이 저인 듯^^
여튼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편은 천호동에서 만난 웹툰계의 초특급 에이스 K작가입니다.
비가 많이 오던 몇 일 전, 강력한 포스를 발산하는 작가와의 인터뷰를 치뤘습니다.
원고가 잘 정리되어야 할텐데...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