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면 더 무서운 호러물
“노약자나 임산부는 구독을 금합니다”
호러만화(공포만화)의 대표적 시리즈인 ‘이토 준지 시리즈’ 표지에 써있는 말이다. 스스로 독자를 제한할 만큼 호러물은 소름돋는 장면과 오싹한 내용으로 독자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호러만화는 다수를 위한 장르는 아니다. 독자가 쉽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있는 영웅물과 달리 호러물에서는 동일시할만한 주인공을 찾기 어렵다. 설사 주인공이 있다 하더라도 선보다 악에 가까운 캐릭터가 많아 독자가 주인공에게 동화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독자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인물에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만화평론가 박석환씨는 “일반 독자들은 대체로 수동적으로 한 인물에 동일시하기를 좋아한다”며 “그러나 호러물은 동일시의 대상을 바꿀 수 있는 능동적인 독자를 원하기 때문에 소수를 위한 장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1960년대 김종래, 박기당 등이 ‘한국전통호러물’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는 ‘전설의 고향’과 같은 호러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로는 한동안 한국에서 정통 호러물을 찾아 보기 힘들다. 호러물은 상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외면했고 따라서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서구의 고스트호러물과 환타지물, 이토 준지의 작품 등 일본 호러물이 수입되면서 폭력이나 살인이 한국 만화에 차용되는 등 조금씩 호러적 특성이 만화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박석환씨는 “국내에서 호러물이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타 장르에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공포’를 차용하는 경우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임광묵ㆍ최성현의 ‘교무의원’은 무협액션물에서 몽환적이고 괴기스러운 호러의 분위기를 차용한 대표적 작품이다. 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양경일ㆍ윤인환의 ‘아일랜드’는 한국형 ‘액션호러’의 수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독특한 그림체로 공포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는 형민우의 ‘프리스트’ 역시 한국 호러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만화시장의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큰 일본에서는 비교적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이 잘 보장돼 호러물도 꾸준히 창작되고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일본 호러만화 작가는 이토 준지다. 이토 준지는 온 몸이 잘려나가도 토막의 각 부분이 각각 한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토미에’, 소용돌이 형체를 한 모든 것들에서 공포가 시작되는 ‘소용돌이’ 등 독특하고 기괴한 상상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또 이토 준지보다 한 세대 위 작가인 우메즈 가즈오의 ‘무서운 책 시리즈’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일본 호러 만화계의 전설적인 작가로 잔혹한 묘사보다 드라마적 요소로 공포를 전한다.
만화는 다른 특수효과를 동반할 수 없는 흑백의 그림이기 때문에 실사에 비해 공포를 이끌어내기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박석환씨는 “영화에서 어설픈 특수효과를 사용하는 것보다 독자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만화가 더 큰 공포효과를 낼 수 있다”며 “몰입이 쉽지는 않으나 한 번 몰입하면 헤어나기 힘든 것이 공포만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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