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상무의 비둘기합창, 코믹플러스, 2008.6.24

'독고탁 아버지'로 통하는 만화가 '이상무'는 70~80년대 중반까지 우리만화계가 쌓아올린 보물섬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 '독고탁'은 역대 만화캐릭터 중 가장 정감 있는 캐릭터 상품이고 최고의 추억상품이다. 이 작품 <비둘기 합창>은 그 이상무와 그 독고탁을 대표한다. 

탁이네 가족은 모두 7명이다. 부잣집 운전기사로 일하는 노령의 아버지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큰누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큰형과 고교 권투선수인 둘째형 그리고 문학소녀인 둘째누나가 있고 마지막으로 초등학생인 탁이와 덩치 큰 잡종개 누렁이가 있다. 탁이네는 가난 때문에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이고 식구가 많아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들어가 보면 탁이네 가족은 모두 '문제적 인간'들이다.



노령의 아버지는 빠른 순발력을 요하는 운전기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해직됐고, 마음씨만 착한 큰누나는 소아마비로 발을 절룩거려서 살림 외에는 할 자신이 없다. 고졸인 큰형은 사법고시로 가족의 신분상승을 이끌어 보려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우직한 성격에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둘째형은 집안의 사고뭉치 싸움꾼. 둘째누나는 공주병이고 탁이는 소심한 성격으로 매번 동네 친구에게 당하고 다닌다. 

이 문제적 인간들이 집 안의 유일한 생산자인 아버지의 해직 사건을 겪으며 시끌벅쩍하게 자신들의 문제를 꺼내놓는다. 천성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기준으로 보자면 대부분은 '무기력한 개인'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당대의 인기작이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보낼 동정이 없는 세상이니 독자의 감동 역시 쉽지 않다. 

< 비둘기 합창>의 미덕은 그런 '진부한 느낌'으로 책을 덮고 싶어질 때쯤에 쏟아진다. 모자라고 부족한 이들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된다. 주변의 힘을 빈 해결은 문득 바람직해 보이지 않지만 이상무가 이야기하는 '주변의 힘'은 가족이고 집 안의 사람들이다. 부족하고 모자라도 부끄럽지 않고 서로가 보듬어야 하는 '가족 안의 내밀한 에너지'. 이 작품이 당대의 걸작으로 지금도 읽힐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족 안의 힘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한 때문일 것이다. 무슨무슨 동창회나 커뮤니티, 길드의 조작된 힘이 아니라 태생적이고 해체될 수 없는 가족이라는 그룹의 에너지가 곧 <비둘기 합창>이다. 

< 비둘기 합창>은 1978년 어린이 교양지 '소년중앙'에 연재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작품은 그해 도서잡지윤리위원 제정 우수만화상에 선정됐고, 작품이 완결됐던 1980년에는 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1988년에는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고 수차례의 재간을 거쳐 2002년 새로운 판형으로 복간됐다.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추억뿐만 아니라 컴퓨터게임에 빠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소년중앙'의 발행을 손꼽아 기다려 본 적이 있는 30대, 4인 이상 가족의 따듯한 저녁 밥상이 그리운 20대, 그리고 부모님과의 깊이있는 대화는 메신저와 문자메시지를 활용하는 10대가 꼭 읽어야 할 작품이다.


코믹플러스, 2004. 02. 18, 이상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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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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