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보다 더 기자같은 만화가 허영만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허영만의 만화는 모두 10개. 지금 진행되는 것까지 합치면 무려 12개다. 그 이유는 바로 탄탄한 취재에서 나온 치밀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10월 7일 저녁 10시 KBS1 `TV책을말하다`는 음식전문기자라고 말해도 손색없는 허영만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이날 다뤄진 만화는 현재 동아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식객`. 장편만화로서는 최초로 2년여동안 종합일간지에 실리고 있는 작품이다. 공동진행자인 고은주(소설가), 정재승(고려대 교수), 김용석(영산대 교수)와 함께 `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을 저술한 만화평론가 박석환과 저자인 허영만이 이날 무대를 꾸몄다.
화면속 장소는 충남 서산 갯벌. 낙지를 잡는 어부를 취재하는 허영만의 모습이 잡힌다. "오늘 낙지가 잘 안잡히는 것 같은데 이런 날도 있습니까" "비가 온 그 다음날은 잘 안 잡혀요" 이 말을 하는 순간 허영만이 부리나케 수첩을 펼쳐 필기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서도 허영만의 번뜩이는 눈은 여전하다. "항정이 어느 부위죠?" "이쪽이요" "앞다리, 아 전지" 카메라가 수첩을 살짝 비추자 `1마리 분해 5~10분`이라는 글이 언뜻 보인다. 상인이 한 마디 할 때마다 옆에서 사진작가가 열심히 셔트를 누르고, 허영만은 메모한다.
이처럼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식객`. "삼계탕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체질에 따라 양인과 음인이 다르고, 연계를 잡을 때는 하룻밤을 놔둬야 한다. 닭고기에 있는 불포화지방산은 포화지방산에 비해 빨리 산화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와 같은 대사들이 나올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2년동안 취재하면서 만들어진 자료는 A4 1만장이 넘으며 음식사진만 세 박스를 넘는다고.
식객 최연소 독자는 6살
잊혀진 옛맛을 찾아다니고, 삶의 애환을 진하게 녹여낸 `식객`은 성인독자들을 추억에 빠트릴 만한 내용들이 많다. 그런데 이날 `TV책을말하다`에서는 6살 독자 이야기가 나와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진행자인 고은주(소설가)가 허영만에게 인상에 남는 독자를 묻자, 나온 대답이 6살 독자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 "6살 독자가 있었어요. 당시 5권까지 나왔는데, 그 내용을 달달달 외우고 저와 만난 적이 있어요. 무엇이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술의 나라가 재밌었다고 하더라구요."
만화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노하우`도 살짝 공개됐다. 그 비밀은 바로 `간판`. 간판에 쓰여진 몇 마디 말이 그 지역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간판을 제대로 그려야 지방색이 잘 나타납니다. 광주 등 지방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 가서 자동차를 닦는데, 얼마 얼마라고 써놓았더라구요."
만화평론가인 박석환은 "허영만의 만화를 보면서 보수적이란 느낌을 받았다"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 옛것이 좋다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영산대 김용석 교수는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복원, 그런 생각이 강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허영만을 옹호했다. 본인은 이에 대해 "어릴 때 먹었던 음식중 요즘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곤 요즘 음식을 대표하는 조미료가 모든 음식맛을 똑같이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식객`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만화속 대사에서 고스란히 엿보였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 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래서 이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의 숫자는 이 세상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여러 사람이 본 허영만
양미경(탤런트) "단숨에 읽기 아깝다고 생각했다.…전에는 현장취재나 정확한 정보를 위해서 긴 시간동안 준비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상상에 의해서 쉽게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새삼스럽게 그런 작업을 통했구나 하는 걸 느꼈다."
한복선(요리연구가)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참 많은 사전조사를 했더라. 옛날 고문서까지 뒤져가면서…조금만 더 보태면 이 책이 정말 후세에 음식생활문화사 책으로 길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재동(한국예술종합원 교수) "한마디로 허영만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나이가 들어도 전혀 늙지 않는 만화가다."
김종휘(문화평론가) "먹는 사람, 하는 사람의 인생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녹아있다. 허영만 선생이 그런 점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고, 그것이 한국 독자들에게 다가간 것 같다."
정준영(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우리만화의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만화가로 끊임없이 자기변신해왔다. 다른 만화가들은 고정된 캐릭터를 가지고, 작은 변화에 그치는데, 허영만씨는 과감하게 자기 캐릭터를 바꾸고 변화해왔다."
데뷔 30년 맞은 허영만
허영만의 데뷔작은 1974년 신인만화 공모에 당선된 작품인 `집을 찾아서`. 이후 이 해에 나온 `각시탈`을 비롯 비트, 아스팔트의 사나이, 타짜, 미스터 Q, 날아라 슈퍼보드, 망치 등 대표작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TV 리포트 김대홍 기자]
방송시간 : 10월 7일 오후 10시
프로그램 : TV 책을 말하다
방송사 : KBS 1TV
방송보기 : 방송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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