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만화나라
30년
만화가 허영만을 우리 만화계의 위대한 선두주자로 꼽는 것에 조금치의 두려움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허영만은 데뷔이후 30년 간 현업에 종사하며 무수한 히트작품을 창작해냈기 때문이다. 현대만화의 1세대이자 선구자라 할 수 있는 1950, 1960년대 활동 작가들은 이미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 1970, 1980년대에 활동하던 2세대 작가진중 아직까지 창작을 하는 이도 드물다. 무엇보다 1990, 2000년대. 만화의 매체적 환경이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고 독자 역시 달라지고 있는 터에 동시대적 방법으로 3세대 만화가들과 대중 앞에서 우열을 가리고 있는 작가는 허영만이 유일하다. 1세대적 감수성과 2세대적 방법론으로 3세대를 리드하고 있는 이 경이로운 작가를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대표 브랜드
허영만은 여는 만화작가들처럼 당대의 트랜드를 쫓지 않고 늘 한 발짝 앞서서 자신이 발견한 컨셉트 안으로 대중을 유인해냈다. 다수의 창작자는 작가의 이름 하나에 작품 하나, 시대상 하나가 한 묶음이 되어 평가의 선상에 오르고는 한다. 그러나 기실 허영만은 특정 작품을 대표작으로 꼽기 난감할 정도로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생산해냈다. 이를 만화계 내부의 협소한 지형 때문으로만 이해할 수도 없다.
허영만의 만화작품은 30년 전 초기작 <각시탈>을 시작으로 최근작 <식객>에 이르기까지 10여 편이 넘는 작품이 영화, 애니메이션, TV드라마로 제작됐다. 1990년 KBS에서 방영 된 <날아라슈퍼보드>는 42%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TV애니메이션 시리즈로는 최초로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1997년 개봉된 영화 <비트>는 서울 개봉관 관객만 35만명을 모으며 그해 흥행성적 4위를 기록했다.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좋은 영화’로 뽑히기도 했고 정우성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만들어냈다. 1998년 방송 된 TV드라마 <미스터Q>는 평균시청률 35.5%를 기록하며 그해 방송 3사의 시청률 집계에서 6위를 기록했다. 최근 한류 열풍과 함께 중국, 일본 등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70개 개봉관에서 상영된 <망치> 등이 모두 허영만 만화작품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최근 <타짜>가 영화로 제작되고 있고 <식객>은 TV드라마 판권 계약이 완료된 상태이다. 컴퓨터게임, PC게임, 모바일게임, 라디오드라마, 각종 캐릭터 상품 등을 더하면 ‘허영만표’가 붙은 문화상품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이는 허영만이라는 만화작가가 생산해낸 작품이 만화계 내부에서만 소비되고 사장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 시켜준다. 허영만의 만화는 허영만이라는 작가를 기점으로 문화계 전반에서 공동 소비되고 있다.
스승
허영만을 허영만이게 하는 요소 중 가장 뜻 깊은 것은 그가 우리만화계의 바람직한 스승이라는 점이다. 허영만 스스로도 당대의 만화작가 문하에서 10년간의 수련기를 거쳤다. 그리고 데뷔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을 문하로 받아들여 창작 방법론을 나누고 있다. 그의 문하 출신 작가들은 독특한 장르만화를 개척하고 있으며 재능 있는 젊은 작가에서 스승과 경쟁하는 중견작가로 성장해 있다. <기계전사109>의 김준범, <비천어>의 심갑진, <아웃복서>의 장태관, <파이팅바람이>의 김종한, <야후>의 윤태호, <해바라기꽃미남>의 김용회 등이 SF, 스릴러, 스포츠, 동물, 시대, 엽기 등의 장르에서 색다른 소재와 탄탄한 그림연출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허영만사단’ 또는 ‘허파’로 불리며 90년대 후반부터 우리만화계의 주요 작가로 등장했다.
만화나라
만화가 허영만은 30년간의 창작생활을 통해 동시대에 살고 있는 가족 3대를 독자층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생산해낸 작품은 만화라는 튼튼한 토양에서 자라나 문화산업 전반에서 제 몫을 하는 열매로 피어났다. 뿌리는 갈수록 강권해지고 열매는 한없이 탐스러워진다. 이는 그대로 허영만의 나라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허영만은 다른 작가들보다 한발 빠른 시대감각으로 매시기마다 우리만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 왔다. 허영만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우리 만화계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허영만 스스로 더 먼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구축한 이 아스팔트 위에는 그의 후배 만화가들이 제 능력을 다해 내달리고 있다.
지금 허영만은 또 다른 아스팔트를 만들고 있다. 아스팔트의 끝 마다 지금처럼 허영만의 만화마을이 생길 것이고 이 마을들은 이내 허영만의 만화나라가 될 것이다. 그의 나라에서 새로운 만화를 꿈꾸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부천만화축제, 부천만화정보센터 전시도록 2005 게재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