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인을 위한 추천! - ‘지식정보 만화’
21세기의 기준으로 보자면 만화책이라는 미디어의 형식은 동굴 벽화쯤 될 듯하다. 탐사나 순례의 대상이고 추억의 대상이지 체험과 활용의 대상은 아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이 지식정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으면서 우리 생활의 곳곳에 풍성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고전과 역사에서부터 인문철학까지, 실용학습부터 전문이론까지. 텍스트로 쓰여졌던 모든 것이 만화의 옷을 입고 있다. 그 중 특별한 작품 4편을 소개한다.
<재즈 잇 업>(남무성, 고려원북스)
만화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론은 급조된 음모일지 모른다. 밤잠 설치며 만화만 보고 있는 자식을 둔 학부모와 글자책은 죽어도 읽기 싫다는 학생. 출판사업자들은 이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비상품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교양학습만화’이다. 그러나 탄생배경과는 별개로 이 장르는 우리만화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급조된 음모는 이내 사실이 됐다. 이 작품은 재즈잡지 발행인 출신의 작가가 재즈감상의 이론과 실제를 만화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재즈의 문턱 앞에서 배움에 목말라있던 이들에게 이 작품은 입문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만화가 교양 수준이 아니라 고도의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음을 확인시킨 최근 사례 중 하나.
<식객(食客)> (허영만, 김영사)
만화만이 소년의 꿈을 대변하던 시절, 만화가 허영만은 가상의 영웅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컴퓨터그래픽이 모든 것을 현실화시켜내자 허영만은 일상 속 주인공을 찾기 시작한다. <식객>은 청과물장사 성찬의 이야기. 요리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맛과 멋 그리고 사람들의 드라마가 담겨있다. 숨겨진 맛의 비결과 음식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 작가의 열정이 이 작품을 ‘음식문화백과사전’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에 소개된 음식 정보가 사실 그대로이듯 이 작품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 역시 사실 그대로이다.
<남쪽손님 빗장열기> (오영진, 길찾기)
전통적인 개념의 만화가 허무맹랑한 꿈을 전달하는 도구였다면 최근의 만화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실어 나르는 초고속 통신망이다. 이를 증명한 이는 대북 경수로 사업을 위해 함경북도에 파견되어 1년 6개월 간 북한에 체류한 한국전력공사 직원이다. 오영진의 작품에는 그 어떤 북한관련 전문서적이나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또는 봤지만 느껴지지 않았던 북한의 생활상과 북한 사람들의 대남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풋풋한 그림체로 펼쳐내는 작가의 북한체류기가 때로는 우습게 때론 눈물겹게 그려졌다. 작가는 일종의 투잡스로 우리만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젊은 만화가 중 한명이다.
<휴머니멀> (박순구, 황매)
모험과 환상,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은 테마파크의 선전문구가 아니라 독자가 만화읽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독자도 만화가도 ‘웃음의 즐거움’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정보 전달의 도구로서 만화가 취하는 방식은 이야기하기이다. 이를 통해 만화는 낯선 정보에 대해 친근감을 주는 한편 독자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신예 만화가 박순구는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 무주택자, 외국인노동자, 고령화 등 우리사회의 각종 사회문제를 이야기한다. 언론기사가 현실의 섬뜩함을 그대로 전하는 탓에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면 박순구가 동물들의 눈물을 통해 전하는 사회문제는 독자의 동감을 넘어 감동을 만들어 낸다. 지식을 더해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만화의 힘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방송대신문, 2005-09-0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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