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표시는 있고, 장애인은 없다
십 수년을 학교에서 보내고 군대, 사회생활 등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이 1천 명 쯤은 될 것 같다. 그런데 인구 100명 중 7명이 넘는다는 장애인과의 인연이 없다. 고교시절 클럽의 봉사프로그램에서 지체장애인을 만난정도, 지인과 친척의 자녀가 장애아라는 것을 알고 먼 시선으로 안타까워했던 정도, 다니고 있는 직장의 임시직 근로자 중 2급 장애인이 1명 있었다는 것 정도가 장애인과 내 인연의 전부이다. 100명 중 7명이라면 내가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그들이 내 생활 속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한 학급에서 그들과 공부해야 했고, 함께 사는 방식을 학습한 후에 같이 사회로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장애우와 일정 기간동안 함께 생활하고 정감을 나누지 못했다. 내가 통제를 받았거나 그들이 통제를 받았음에 분명하다. 외관상 정상인인 나를 포함한 보통인의 범주 밖에서 그들은 묶여 있었을 것이다. 학교, 군대, 직장, 문화 공간, 복지시설 심지어는 그들이 속한 가정 내에서도 보통인의 기준으로 아주 적은 공간을 할당받고 이동을 통제 당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과의 특별한 접촉 없이 수 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런 의문을 지니게 된 후로 장애우를 위한 시설물이 자주 눈에 뛴다. 새로 지은 건물의 화장실, 엘리베이터, 대형건물의 에스컬레이터, 지하철, 주차장 등등등. 하루에도 장애인을 상징하는 픽토그램(pictogram)을 수 십 차례씩 확인할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우리사회의 복지수준이 일정수준이상 성장해 있고 이를 위해 내가 낸 세금의 일부가 쓰였다는 것에 작은 자부심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내 생활 속에서 장애우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상징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내게 작은 소명심과 위안을 심어주고 있는데 정작 나는 아직도 그들을 볼 수가 없다. 몇 편의 만화를 통해서 그들의 삶에 감동하고 응원할 뿐.
장애아를 둔 가정은 그들 때문에 웃고 성장 한다
연재만화의 성공 공식 중 하나는 ‘자기극복’이다. 스스로 한계를 지닌 주인공이 이 한계를 극복하고 나름의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학력이든, 신체적 조건이든 무언가 모자란 주인공이 특별한 훈련이나 필연적 만남을 통해 이를 극복한다. 여기에 극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근성’이나 ‘열혈’이라는 코드를 접합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대다수의 연재만화는 정신적 장애나 신체적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과 장애인가정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중 이즈음에 꼭 봐야 할 작품이 오사무 야마모토의 <머나먼 갑자원>(서울문화사)과 <도토리의 집>(한울림)이다.
<머나먼 갑자원>은 농아학교 야구부를 소재로 한 스포츠만화이다. 말할 수 없는 이들이 경기장에 선다. 대사도 함성도 없다. 수화와 얼굴 표정으로 소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이들의 경기장면에서는 붉은악마의 응원소리보다 더 큰 함성을 경험할 수 있다. 파울이라고 소리쳐도 1루까지 내달리는(들을 수 없기에) 농아선수들의 열정과 수화로 교가를 불러주는 응원단의 열의가 고막을 얼얼하게 할 지경이다. 작품 중에 간단한 수화와 의사소통 방식 등이 포함되어 있어서 쉽게 배울 수 있다.
<도토리의 집>은 일본 사이타마 현에 있는 농중복장애인의 가족과 장애인 단체가 힘을 합쳐 건설한 장애인 자구시설 ‘도토리의 집’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청각장애와 지체장애, 성장장애 등이 겹쳐있는 중복장애아들이 가족과 주변의 힘으로 조금씩 성장하면서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과 장애아들이 스스로 살 수 있는 공동작업장을 설립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장애인을 보호 관리해야 할 대상이아니라 학습 환경과 생산 환경을 제공하여 자생력을 지닌 사회일원으로서 살아가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난 97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가 최근 새로운 장정으로 재출판 됐다. 지난해에는 애니메이션이 비디오로 출시되어 장애인 가족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기도 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작가의 만화작품으로는 다운증후군 딸과의 생활일기를 담은 장차현실의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한겨레)와 지체장애자 출신 만화가인 이혜경이 장애인의 성을 소재로 한 단편 <이방인>(계간만화) 등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장애가 불행일 수 있지만 장애인과 그 가정이 결코 불행하지 않음을, 그리고 장애인 가정은 이들 장애인 때문에 웃고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고 있음을 전한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동권리 찾아줘야
매년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1972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재활의 의미가 있는 4월 중에서 통계적으로 비가 오지 않는 날인 20일을 ‘재활의 날’로 재정했다. 1981년 당시 보건사회부는 동년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해 제1회 행사를 가졌다. 현재 등록 장애인 수는 153만 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 2003년 기준)이지만 관련 단체 등에서는 비 등록 장애인을 포함 4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65%가 지체장애인이다. 두 손을 휠체어나 목발 등의 보조기구에 의존해야 하는 장애우들에게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세상과 교류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인 셈이다. 올해로 25년째. 그렇게 세상은 365일 중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하루를 장애우들에게 베려하고 그들의 ‘화려한 외출’을 지정해줬다. 그 화려한 잔칫날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벌인다. 내가 그들의 모습을 내 생활권 안에서 보지 못하는 만큼 그들은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나와야 하고 우리는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도시 곳곳의 벽면에 붙은 장애인 표시 속에서 무표정하게 우리를 내려 보게 둬서는 안 된다. 정상인이 장애인을 위해 베려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부족한 보통인이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그들의 이동권리를 찾아줘야 한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좋은만남, 2005-04-01 게재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