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만화콘텐츠, 만화콘텐츠미디어로부터, 스위치, 성균관대학교언론정보대학원, 2005


우왕좌왕, 패러다임시프트 


<패러다임시프트> <디지털캐피탈> 등의 기술결정론(technology determinism)적 미래경영서를 출간하고 ‘N세대’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했던 돈 텝스콧(Don Tapscott)은 2002년 발간 된 <비즈니스 마인드>라는 책에서 ‘미래의 경영자들은 미디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도로(道路)가 그랬듯이 미디어가 기업과 일하는 방식을 동시에 바꾼다는 것이다. 일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소비 방식의 변화를 뜻하고 사회 전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달라지면 인간 의식도 달라지는데 그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산업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언론학자 김정탁은 1999년 중앙일보에서 발행한 [에머지새천년]에 ‘패러다임시프트’라는 제목으로 미디어결정론(media determinism)적 입장의 논고를 연재했다. 10회 분량의 이 논고는 <굿바이 구텐베르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이성중심 사고에 대한 전면적 의식변화를 요구한다. 김정탁이 지적하고 있는 ‘이성’의 핵심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고 결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 대량인쇄술과 책이라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선형적 사고이다. 단일미디어의 메시지전달 방식이 우리의 의사소통방식을 선형적으로 고정시켜왔고 오감을 이용한 인간적 의사소통 방식(모자이크적 사고)을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금기시 해왔다. 그러나 20세기 말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적 의사소통 방식을 그대로 재현함은 물론이고 신체 기능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게 했다. 

이로부터 발생한 디지털미디어는 미디어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경제 사회문화 전반을 둘러싼 기존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그러나 20세기의 사고방식으로 21세기를 맞이한 우리사회의 대다수 층위에서는 이 같은 거시적 입론과 탈근대적 사고의 방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21세기’와 ‘변화’는 ‘새마을 운동 시대’의 정치적 구호나 가시화, 또는 의미 있는 이론쯤으로 받아 넘기고 말았다. 


부하뇌동, 굿바이 구텐베르크 


만화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2004년 이전 만화계는 디지털사회와 경제의 출현을 예견했고, 21세기가 문화의 세기이고 문화콘텐츠산업이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상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 ‘만화콘텐츠’가 있음을 자신했다. 그러나 명백한 시대의 변화를 직감하고 이에 동의하면서도 실제 움직임은 미비했다. 

맘은 가는데 몸은 가지 않았거나 뛰는 다리를 머리가 쫓아가지 못했거나, 작은 시도로 큰 성과를 바라다가 그냥 돌아서거나. 그야말로 우왕좌왕이었다. ‘패러다임을 전환해야겠다는 패러다임’만 유령처럼 떠다녔다. 

1990년대 후반, 인쇄 출판을 대표 매체로 활용했던 만화계는 세기말의 준엄한 경고를 가장 먼저 받았다. 국민의 정부에서 주도했던 인터넷PC 대중화와 문화산업 발전 정책이 급 물살을 타면서 만화계는 변화의 소용돌이 앞까지 내 몰렸다. 기존의 방식대로는 문화산업시대의 거대한 이정표조차 따르지 못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이었다-한편으로는 경고를 받을 만큼 세상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는 성급한 축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학계와 정부에서 제시한 ‘만화문화산업론’, 이른바 원소스멀티유즈 전략은 출판만화를 원재료로 한 다품종 상품화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는 기존의 미디어를 중심으로 개별 콘텐츠의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한 유통 확대정책이었다. 

기존의 출판만화가 제한된 유통 창구를 통해 제한된 소비자를 만났던 것에 비춰 볼 때 이 같은 논리는 우리만화계의 현황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논의는 미디어의 변화, 디지털미디어의 출현을 염두에 두지 못한 것으로 산업화 시대의 마케팅론에 근접해있었다. 이는 대중매체를 성공적으로 이용한 대중소비의 방법론으로는 적합한 모델이지만 디지털미디어 시대의 다양화와 개인성 등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에 따라 출판만화계는 물리적상품의 다변화만 연구했을 뿐 비물리적 상품의 생산과 유통방식, 소비형태 변화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우레소리에 맞추어 만화계의 모든 신경계가 움직이기는 했으나 산업화시대의 마케팅론을 기반으로 ‘콘텐츠 생산’에만 주력했을 뿐, ‘변화하는 미디어에 대응하는 콘텐츠’ 생산에는 실패한 것이다. 

21세기가 그렇게 시작됐고 참여정부가 만화산업에 힘을 쓰겠다고 재차 다짐하고 나섰을 때, 디지털 기반의 문화산업 토대 구축에 열성적이었던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 분야가 만화산업의 앞길을 가고 있었다. 밥상은 만화가 차리고 숟가락은 관련 장르가 든 꼴이다. 현재 만화는 내수시장 축소를 해외시장에서 만회하고 있다며 겉으로만 기세 등등해 있다. 


절차탁마, 만화콘텐츠미디어 그리고 만화콘텐츠 


기존의 미디어이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미디어이든 그 틀은 어찌 보면 유형과 무형의 차이만이 존재할지 모른다. 이것이 담아내는 메시지, 즉 콘텐츠는 여전히 동일한 형식이어도 무방해 보인다. 그러나 미디어의 변화는 소비형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만화잡지와 만화웹진은 미디어만 달리할 뿐 만화작품의 형식은 동일하다. 만화방과 인터넷만화방 역시 종이로 된 만화책을 보는 것과 모니터 화면에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 다를 뿐 메시지는 동일하다. 그러나 소비형식은 달라졌다.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시장의 변화 몇 가지만으로도 전체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어디서 파는지 알 수 도 없는 만화잡지는 판매부수가 최저점으로 치닫고 있고, 만화방은 패업 붐이다. 기존의 유명작가들은 이름값으로 명색을 유지할 뿐이고 듣도 보도 못한 신인작가의 작품이 베스트를 기록한다. 독자들은 출판사가 내는 책이 아니라 독자들이 사고 싶은 책을 내라고 강력하게 주문한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인터넷 검색에 용이한 단어를 제목으로 한 작품의 판매가 상대적으로 높고, 인터넷 화면을 중심으로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구성된 이미지(스토리) 연출이 더 극적으로 이해된다. 새로운 미디어가 콘텐츠를 변화시킨 것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 했다.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이다. 절차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는 수양을 뜻한다. 절차가 기술이어도 좋고 사업이어도 좋다. 감지된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어 또 다시 절차탁마해야 한다. 만화계의 새로운 100년은 2001년부터가 아니라 이를 인지한 날로부터이다. 그 해가 2005년이 되었으면 한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스피치, 성균관대학교언론정보대학원, 200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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