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리, 힘 빠진 스포츠신문의 뒤통수를 치다
‘스포츠서울’의 무용해 대리가 느닷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일간스포츠’에 취직했다. 동종 업체간에 대리 한 명 이직한 것이 무슨 큰 사건이겠냐만은 ‘일간스포츠’는 1면 톱으로 무용해 대리의 입사 소식을 전했고(2004년 5월 21일) 경쟁 스포츠신문들은 ‘무대리 효과 차단’을 위한 ‘새로운 연재만화’ 찾기에 혈안이 됐었다.
‘스포츠서울’은 신문 불황시대에 벌어진 동종업체의 밥그릇 건들기와 떨어지는 주가를 보며 광분했을 것이고 ‘일간스포츠’는 ‘한국일보’와의 결별 이후 놓쳐버린 30%의 정기구독자를 끌어 올릴 수 있는 기회라 자신했를 것이다. 그러나 무대리의 무규칙 이종격투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대리는 ‘일간스포츠’로 옮긴 뒤 한 달 여 만에 무료신문 ‘메트로’에도 등장했다. 무슨 이중간첩도 아니고 경쟁업체라 할 수 있는 곳에 동시 출근부를 찍기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서울’이 얼굴마담으로 키운 무대리
무대리는 99년부터 2004년 5월까지 ‘스포츠서울’에 장기 연재 된 직장인 소재 개그만화 ‘용하다용해’의 주인공이다. 만화편집기획자 출신인 스토리작가 김기정과 아동용 무협만화의 잇단 실패로 만화계에서는 ‘죽작가(대박작가의 반대 개념)’ 리스트에 올랐었던 강주배의 재기작 격인 작품이다. 히로가네 켄시의 ‘시마과장’, 허영만의 ‘세일즈맨’ 등 셀러리맨의 성공신화를 소재로 한 선 굵은 극화풍 만화가 유행하던 시절 ‘실패할랑 말랑한 셀러리맨’을 등장시켜 인기를 모았다.
만년 대리 무용해의 궁상맞은 생활상은 ‘IMF 시대의 직장인’을 대표하며 ‘띠바’ ‘닝기리조또’ 같은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용하다용해’는 단행본은 물론이고 연극, 인터넷시트콤드라마, 플래시애니메이션, 게임, 각종 캐릭터 상품 등으로 출시되어 ‘죽작가’ 강주배를 단숨에 ‘대박작가’의 대열에 올려놨다.
‘스포츠서울’의 공든탑 ‘일간스포츠’가 접수하다
69년 스포츠 연예 신문을 표방하며 창간된 ‘일간스포츠’는 72년 고우영의 ‘임꺽정’을 출발로 성인연재극화라는 새로운 지면전략을 선보이며 신문연재만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강철수의 ‘발바리행진곡’ 이현세의 ‘블루엔젤’ 박봉성의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양영순의 ‘아색기가’ 등 ‘일간스포츠’는 연재만화에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1등 신문임에 분명했다.
반면 85년 스포츠 레저 연예 신문을 표방하며 ‘일간스포츠’의 대항마로 나선 ‘스포츠서울’은 곧바로 업계 최고의 판매율과 열독율을 획득, 현재까지 수위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연재만화에서만큼은 ‘일간스포츠’에 밀렸다. 또한 90년 창간 된 ‘스포츠조선’이 ‘아스팔트 사나이’ ‘미스터Q’ ‘타짜’ ‘사랑해’ 등의 허영만 만화시리즈로, 99년 창간 된 ‘스포츠투데이’가 ‘일상다반사’ ‘애욕전선이상없다’ ‘츄리닝’ 등의 신세대 인터넷만화작가들로, 2001년 창간된 ‘굿데이’가 대본소계 만화출판사의 지원을 통한 화끈한(?) 작품 편성으로 나름의 성과를 올린 것과 달리 ‘스포츠서울’의 연재만화는 색깔도 전략도 없었다(이와 관련 각 스포츠신문사들은 외부영입 또는 자체 육성 등의 방식으로 만화담당기자를 전문 기자화 시키고 있다). 그나마 ‘용하다용해’가 ‘스포츠서울’의 자존심을 지켜줬을 뿐이다.
까닭에 ‘스포츠서울’은 지면을 통해 수 십 차례 이 작품의 성공적인 반응을 과시했고 각종 행사나 기획에서 ‘스포츠서울’을 대신하는 캐릭터 이미지로 무대리를 사용하는 등 작품의 ‘과대평가를 조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2004년 4월30일에는 별 이유없이(1561회를 기념했다) ‘용하다용해’ 특집기사를 수록하는 등, 전략적이지 않은 전략으로 ‘유일한 히트작가’를 모셔왔다.
과한 애정공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 ‘나를 키운 건 8할이 스포츠서울이었다’는 투의 인터뷰를 했던 강주배는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용하다용해’를 들고 ‘일간스포츠’로 자리를 옮겼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가 ‘원고료 좀 올려 달라’는데 연재기간 동안 수차례 인상 요구를 들어줬던 매체가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일간스포츠’가 발 빠르게 강주배와 접촉, 원고료를 인상해주고 ‘용하다용해’ 따 먹기에 성공한 것이다. ‘스포츠서울’은 5년 여 넘게 공들인 작품을 다달이 지급되는 원고료 몇 푼 때문에 경쟁사에 빼앗겼다-‘일간스포츠’가 ‘용하다용해’까지 뺏어오며 대부분의 작품을 시트콤 형식의 짧고 경쾌한 코믹극화로 바꾼 것과 달리 ‘스포츠서울’은 ‘일간스포츠’가 유통기한이 다됐다고 판단한 성인액션극화의 오래된 거장 이현세와 박봉성을 투톱으로 배치하는 안일한 지면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유명작가는 감당해도 인기작품은 감당하기 힘든 모양이다. 어찌됐든 ‘일간스포츠’는 만년 무대리의 ‘과장 승진’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대대적인 바람몰이에 들어갔다. ‘일간스포츠’의 인터넷 게시판은 무대리 이직과 승진에 대한 찬반 소동이 벌어지는 등 어느 때보다 높은 열기를 보였다. 이때까지 분위기는 좋았다.
강주배와 무료신문 ‘메트로’가 행한 ‘스포츠신문 싸움의 재구성’
덩실 덩실 춤을 추었을 ‘일간스포츠’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됐다. 강주배가 ‘중앙일보’가 운영하는 인터넷 뉴스사이트 조인스닷컴에(중앙일보의 지분인수 및 전략적 제휴에 따라 일간스포츠 인터넷사이트는 조인스닷컴을 통해 서비스 중이다) ‘용하다용해’를 게재하려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라고 했다. 6월1일 지면연재는 시작했는데 인터넷연재는 못하게 됐다. 급한 대로 인터넷 연재 건은 해결 됐지만 곧이어 스포츠신문 판매고 하락의 ‘주적’으로 꼽히고 있는 무료신문의 선두주자 ‘메트로’가 등장한다.
‘메트로’는 7월부터 강주배 명의로 ‘무대리’라는 제목의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스포츠서울’에 연재했던 ‘용하다용해’를 1회부터 제목만 바꿔서 수록한 것이다. ‘용하다용해’의 단행본 출판권을 지닌 반디출판사가 ‘메트로’와 진행한 일이다. 반디출판사는 계약서에 의거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한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도의적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최근 신문매체의 영향력은 인터넷에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독자적으로 뉴스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불황에 따른 대기업의 광고가 사라졌고 무료신문 등장으로 인해 가판 유통망은 붕괴됐다. ‘굿데이’의 부도 파장은 ‘스포츠투데이’의 임금체불사태, ‘일간스포츠’의 임금삭감, ‘스포츠서울’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스포츠신문 발행인들은 지면을 줄이고 발행부수와 일수를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구조변화로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신통해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총체적 악재가 상반기 중에 겹겹이 터지면서 스포츠신문은 한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붕괴의 터널 앞에 내몰려있다.
무대리 사건은 스포츠신문 붕괴의 신호탄
연재만화를 앞세운 신문 매체간의 싸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889년 미국의 ‘모닝저널’과 ‘뉴욕월드’가 ‘옐로우키드’라는 만화를 동시에 게재하면서 맞대결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상업신문의 선정주의를 일컫는 ‘옐로우 저널리즘’에서 ‘옐로우’는 황색 옷을 입은 이 만화의 주인공을 뜻한다. 연재만화를 앞세운 역사적인 이 싸움은 이후로도 비슷한 형식의 싸움을 양산하면서 신문대중화의 불씨를 당겼으니 ‘용하다용해’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는 현상이 가벼울 것도 우스울 것도 없다. 문제는 ‘옐로우 키드’ 사건이 불러온 ‘옐로우저널리즘’이 신문의 대중화와 부흥기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과 달리 ‘용하다용해’ 사건은 붕괴 위기에 처한 스포츠신문 간의 ‘막판 싸움’이고 비열한 자사 이기주의에 바탕을 뒀다는 점이다.
내부 단속력(작가관리)은 상실했고 동업자 간 결속력(업체간 공조)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진입장벽(무료신문의 도전)도 붕괴됐다. 위기라며 돌아보니 무료신문이 시장의 절반(광고수주)은 삭둑 잘라간 상황이다. 이쯤 되니 무료신문에 대한 방어 전략은 생각할 여력도 없고 동종 매체 간 작아진 파이를 한 입이라 더 먹기 위한 잇속 챙기기 싸움을 준비할 것 아닌가! ‘용하다용해’ 사건이 어느 때보다 아쉬운 것은 서로에게 득 될 것 없는 진흙탕 싸움의 시작점처럼 이해되기 때문이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스피치, 성균관대학교언론정보대학원, 2004-08-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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