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서평
- 감성적 비난 속에 10만 예비 만화가 양성
더 좋은 것을 판단하는 내 기준과 취향 중에 ‘젊음과 새로움’이 있다
나는 모든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 만화라는 형식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그리고 대중화의 방법 또는 수단으로서 문화산업과 만화의 관계를 응원한다. 만화를 보는 내 입장이 이렇다 보니 중견작가가 지켜온 전통적 작법과 뜨거운 진정성, 세상에 대한 인식과 언급 등에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 대신 새로운 작화도구와 신매체의 활용, 색다른 서술법과 트랜드를 이끌어내는 젊은 작가의 혁신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좋은 것을 보는 기준은 누구나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것 중 더 좋은 것을 판단하는 내 기준과 취향 중에 ‘젊음과 새로움’이 있음을 미리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서 ‘젊음’의 기준에 나이가 개입되는 것은 아니다. 만화계에는 10대에 입문한 작가들이 많아서 데뷔 10년 차의 중견작가를 소개하는 자리에 힙합댄서 차림의 소년(?)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어린 중견작가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 중 몇몇은 옷차림과 열린 사고에서 풍기는 향기가 작품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삶과 여가’의 방식에서는 여전히 젊으면서 10년 이상 작업해 온 ‘일’에서는 무척 연로한 경우이다.
내가 사랑하는 젊은 작가 중에는 김산호(1939년 생) 고유성(1948년 생) 이희재(1952년 생) 등이 있다. 이들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176살이 넘지만 나는 이들을 여전히 젊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들의 작업실에 화판과 화구보다 모니터와 타블렛 등 컴퓨터 장비가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작품 내용과는 별도로 이들이 제작에 있어 국경을 넘고 출판에 있어 판본의 한계를 넘었으며 마케팅에 있어 혁신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메이저는 마이너의 실험에 관심을 기울일 줄 모른다
만화계에 컴퓨터가 도입된 사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위치 역시 크지 못하다. 신문 잡지 도서 출판의 인쇄 전후 단계는 물론이고 배급과 유통 등 인쇄매체의 전 과정이 전산화 된 최근에도 만화작가의 창작과 만화출판사의 편집 작업은 원고지와 대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총판과 대여점을 중심으로 한 배급과 유통에 있어서도 컴퓨터의 자리는 그리 크지 않다. 물론 주류라 불리는 영역에 국한 된 이야기이다.
만화계의 메이저리거들은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사회문화 전반의 혁신적 변화와 소비 트랜드의 이동을 먼저 탐지하지 못했다. ‘물건만 있으면 팔린다’는 식의 생산자 중심 사고와 믿음으로 새로운 환경에 대한 고민보다는 기존 환경을 통한 매출극대화에만 매달렸다. 주류시장의 창작 형식과 제작 유통방식을 벗어난 움직임은 일종의 실험이고 치기어린 도전쯤으로 폄하됐다. 인터넷과 만화가 접합을 시도한 것도 벌써 10년이 넘어가는데 이들은 여전히 인터넷을 마이너리그 정도로 생각하고 자신들만의 리그를 더욱 강권하게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주류 출판만화계는 19세기 식 창작 형식과 20세기 식 제작유통형식으로 21세기를 맞이했다. 인터넷의 상호작용성을 수용자 중심의 상품 생산 패러다임 전환 기회로 맞이하지 못하고 작가와 출판사의 권위를 침해하는 구조 정도로 여겼다. 출판만화계의 제2황금기라 불릴법한 90년대 초반의 호황기에 패키지계 전자책(CD롬 만화)이 등장하고 중후반을 지나면서 초기 형태의 온라인계 전자책(PC통신 및 인터넷만화)이 등장했지만 메이저는 마이너의 실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인터넷만화가는 정보화 시대의 지식인이고 시인이자 웅변가이다
최근 일련의 서적 전문 출판사들은 ‘인터넷만화가’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을 출판해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출판물은 기존 주류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고급 장정과 올 컬러 지면뿐만 아니라 진보적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감수성, 폭넓은 의제 설정 기능 등을 담아내고 있다. 인터넷만화가들은 컴퓨터를 만화의 도구로, JPEG이미지 GIF애니 플래시 웹페이지 등의 속성을 만화의 형식으로, 인터넷을 출판매체 겸 소비유통 구조로 인식한 정보화 시대의 텔런트이자 지식인이고 시인이자 웅변가이다. 이들의 작품을 만화전문출판사들이 모른 척하고 있을 때 책으로 만들어낸 서적류 출판사들은 그들의 본령과도 같이 지식의 변화와 시대의 감수성을 제대로 인식한 미디어였다.
1997년 등장해서 1세대 인터넷만화가로 꼽히는 권윤주의 ‘스노우캣’은 혼자 놀기가 특기인 백수의 일상을 철학적 은유와 잔잔한 에피소드로 담아냈다. 스노우캣이 재현한 이미지는 코쿤족(인터넷을 생활무대로 하는)의 일상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이슈는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반하는 ‘느림’의 철학이었다. 곧이어 등장한 김재인의 ‘엽기토끼 마시마로’는 스노우캣의 캐릭터성과 일상을 엽기적으로 승계했다.
마시마로 이후 봇물을 이룬 인터넷만화는 인터넷과 만화의 형식적 특수성을 더욱 강조한 ‘웹툰’이라는 통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웹툰의 전개는 작품 자체의 상품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발전했다. 2000년 이후 등장한 심승현의 ‘파페포포 메모리즈’와 강도영의 ‘지치지않을 물음표(강풀닷컴)’는 웹툰에 비해 출판만화적 형식이 더욱 폭넓게 작용하고 있다. 표현수단으로서 인터넷의 멀티미디어적인 기능을 억제하고 출판물에 근접한 평면적 이미지를 수용함으로서 상품화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보여준 것이다.
새로운 형식은 과학적 비판의 타겟이 되지만 저격수는 대중의 타겟이 된다
‘파페포포~’가 보여준 일러스트를 곁들인 잠언적 이야기 형식은 책이라는 느린 정보 전달 매체를 통해 오히려 더 큰 파급효과를 보여줬다. 그러나 거대한 대중적 성공과 함께 동일 부류의 만화가 급조되면서 웹툰은 이른바 ‘인터넷감성만화’라는 덜 떨어진 장르명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시집과 감성시집을 나누는 것처럼 만화와 감성만화를 분리해야겠다는 편협한 인식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발전과정과 논쟁은 곧 새로운 형식에 대한 ‘비판과 옹호’의 역사로 이어졌다. 대량 인쇄기의 출현과 소설의 등장, 신문 속 만화의 등장은 물론이고 라디오와 TV 그리고 전화와 인터넷 시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콘텐츠가 등장하면 이에 대한 헤게모니 논쟁이 거세게 불어 닥친다. 수차례에 걸친 대중문화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 비판은 매우 설득적이고 과학적인 이론화 과정을 거쳐 축적되는 반면 옹호는 그 시대의 소리를 담아낸 듯 하지만 여전히 논자의 개인적 견해나 주장으로 일단락되어 왔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유독 문화예술계에서는 자본주의적 사고를 ‘대중에 영합하는’ 좋지 않은 행태로 보는 우리사회의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때문에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과 만화의 형식을 이 매체의 특수성에 맞게 조정한 인터넷만화 그리고 그 내용을 대중적 감수성에 의존하고 있는 인터넷감성만화는 대중의 환호와는 별도로 비판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만다.
만화창작의 대중화는 만화매체의 권위보다 소중하다
이 책 임주영의 ‘클로버’는 비하심리가 깊게 깔린 ‘인터넷감성만화’라는 옷에 몸을 맞춘 작품이다. 이전의 인터넷만화가 삶의 한 때를 지탱하는 잠언이나 도발적인 정치발언 그리고 특수한 개인(만화가)의 서간체 형식 산문에 기대고 있었다면 ‘클로버’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처세에 대한 한 개그맨의 발언에 편승했다. 개그맨의 즉흥적인 언술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지만 직설화법 속에서 따옴표를 달고 한 이야기들은 나름의 의미소를 지니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됐고 임주영은 이를 만화화법으로 전환해서 인터넷에 올렸다.
임주영의 작품 소재 설정 과정과 서툰 화법은 만화를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전문작가들이 보기에는 모욕적이겠지만, 만화라는 형식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실생활에서 활용해 보고자하는 대중에게는 가장 싱싱한 사례가 된다. 임주영 만화의 의미는 이 지점에서 가장 빛나게 반짝인다. 스노우캣과 마시마로가 이 장르의 개막을 알렸다면 파페포포와 강풀의 성과는 더 많은 만화전문가들이 인터넷을 매체로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임주영은 이들의 다음 단계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학습자이고 최초의 수혜자가 된다. 상하전달식 교육이 아닌 상호작용식 매체학습을 통해 선배들의 활동(현 프로만화가들에게 인터넷만화가는 아마츄어만화가에 불과하지만 임주영에게 있어 그들은 이미 프로만화가보다 인기 있고 영향력있는 만화가이다)을 흉내 낸 것이다.
만화계에 있어 임주영의 출현은 작가의 권위를 땅 밑으로 밀어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임주영으로 인해 만화계는 인터넷에 접근하고 있는 수 십만 명의 예비 만화창작자들을 얻었다. 이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언더그라운더가 아니라 온더그라운더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만화계가 이들의 다음 행로를 어떻게 설정해 줄 것인가가 문제이다. 앞선 사례와 같이 모른 척으로 일관하면서 기존의 아날로그 출판만화형식을 보호하는데 급급하다면 이들은 만화의 이름으로 더 이상 출사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클로버>, 아침햇살, 서평, 2004-04-23 게재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