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이유정의 와일드스트레스, 한국일보, 2003.10.28


`스트레스, 너를 체포한다`, 도착·폭력·비만 등 소재 관음·일탈 사회병리 비판


권력자와 특권층의 스트레스가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주장한 만화가가 이유정이다. 그의 ‘와일드스트레스’는 미래 사회에서 경찰이 해결하지 못한 과도한 스트레스 질환자를 체포 구금 치료하는 기관의 명칭이고 이 기관의 요원인 ‘그녀’의 별칭이다. 

그녀와 함께 활동하는 바람둥이 요원의 이름은 ‘통쾌한씨’. 첫 사건의 범인은 ‘성고자씨’이다. 성고자씨는 잠자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지닌 환자로 옛 여자 친구를 납치했다. 여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고 자신은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것. 범행 과정이 성도착 일색이어서 이를 지켜보는 극중 시민과 독자는 일종의 인간적 수치심과 함께 정서적 자극 때문에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게 마련이다. 


와일드스트레스는 이때 등장해서 범인과 시민 그리고 독자의 스트레스를 싹쓸이해주는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스트레스의 유형도 가지각색이어서 학교 폭력, 비만, 진급, 보신탕, 노처녀, 법률, 종교를 아우르니 스트레스 덩어리인 요즘 세상에 꼭 필요한 영웅이다. 

헌데 이 여자 영웅의 자태 또한 정서적 자극의 대상이다. SF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가죽 옷이나 장신구가 그렇고, 독자의 시선을 엄한 곳에 몰두하게 만드는 포즈가 그렇다. 남성 독자 대상의 만화는 관습적으로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지닌 여자를 등장시키는데 이는 나름대로의 시각적 안정성 적당한 판타지를 준다. 반면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은 삐쩍 말랐다. 

표지에서와는 달리 신경질적이고 불안해 보인다. 마치 소설가 마광수의 탐미적 그녀처럼(작품 속에 마광수를 패러디한 인물이 등장한다) 목 팔 다리가 길고 예쁘지도 않다. 

딱 보면 불편해 보인다. 작품의 불편한 요소는 그뿐이 아니다. 남녀관계의 비정상적 설정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소녀를 밝히는 할아버지가 그렇고 신부를 사랑한 주례, 남학생을 좋아하는 노처녀, 환자를 농락하는 의사, 여학생에 집착하는 선생도 그렇다. 


이유정(31)은 1994년 데뷔작 격인 이 작품 이후에도 ‘헤어’ ‘신인류구원교’ ‘변태가 되자’등을 발표하며 주류에서 소외된 불편한 소재를 탐미적 감수성으로 작품화하고 있다. 욕구 불만과 욕망의 해소를 위한 범죄는 특권 의식을 탐하는 일반인에게서 일어나고 이 사회의 성적 해이 상태는 이미 적정선을 넘었다고 경고한다. 작가는 이를 여자영웅의 총 한방으로 통제하면서 영웅에게마저 독자의 관음 욕구를 반영한다. 

욕구불만과 욕망의 그릇된 해소 과정은 통제돼야 하지만 욕망 자체는 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작가는 ‘걱정의 40%는 현실로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22%는 사소한 일, 그리고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통계치를 제시한다. 원조교제를 넘어 스와핑으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성적 해이, 그리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40% 또는 4% 안에 들지 않을까.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3-10-28 게재

이미지 맵

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Critique/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