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새로운 재미가 되다, 200만부 판매 초대형 히트 , 그림 흉내낸 아류작 쏟아져
색다른 발상과 신선한 소재, 군침 도는 설정은 모든 스토리텔러가 날밤을 새우면서 찾는 맛이다. 인기가 한번 확인된 맛은 본인이나 다른 작가들에 의해 재탕 삼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속편으로 등장한 작품이 전편의 맛을 빼고 나면 별 것이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아류’라거나 ‘무슨 무슨 스타일’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아주 새롭다고 내놓는 작품이 헌 것 일 때도 많다.
박산하의 1992년 데뷔작 격인 ‘진짜사나이’는 지금 먹어도 맛 나는 새로운 재미의 만화다. 조직 폭력배 소탕 수사를 하던 경찰관 부부가 방화에 의해 살해되고 세 명의 아들은 난데없이 고아가 된다. 첫째는 경찰관으로, 둘째는 조직폭력배 보스로, 막내는 싸움 잘하는 고교생으로 성장한다. 세 사람을 하나로 묶는 코드는 ‘폭력’이다.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가 된 세 사람.
막내 제갈길과 그가 다니는 학교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갈길은 이른바 학원폭력 만화의 전형적인 ‘쌈꾼 토너먼트’ 식 싸움에서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폭력은 ‘시스템화된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으로 귀결된다. 부모를 살해한 방화범은 경찰 내 고위관료와 연계된 폭력조직.
이를 느낌으로만 알았던 큰형은 경찰이 되었고 둘째는 조직폭력배가 된 것이다. 제갈길에게는 이 시스템화된 폭력이 다시 한번 숙제로 놓인다.
강자와 약자, 선후배, 학생 교사 교장 학부모회 등으로 이어지는 서열화된 폭력. 제갈길의 싸움은 강자가 세를 불려 조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의식 있는 개인이 펼쳐가는 올바른 투쟁이었다. 그러나 진급을 노리는 체육 교사는 제갈길의 싸움을 폄훼하고 함정을 꾸며 자퇴 또는 퇴학시키려 한다. 이를 알게 된 학생들은 운동장으로 나가 체육 교사의 퇴진을 요구하고 제갈길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재신임한다.
애니메이션 일을 하던 박산하는 90년대 초반 만화 전문잡지 창간 붐이 일면서 만화계에 입문했다. 만화 전문잡지는 화려한 맛의 일품요리로 그득한 메뉴판과도 같다. 신예 작가의 작품은 메뉴판에도 없는 반찬 격이지만 이 작품은 이런 구도를 깨며 2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운 초대형 히트작이다.
히트작은 곧바로 아류작 또는 부분 표절작을 넘쳐나게 한다. 사실적 폭력 묘사가 두드러진 이 작품의 아류작은 대부분 그림 흉내 내기였다. 타 장르에서는 이야기 구조가 흉내 내기의 주 대상으로 TV드라마, 영화 등에서 이 작품과 유사한 대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그림체 설정 등에서 일본만화 ‘비바블루스‘(원제 ‘로쿠데나시블루스’)와 비교되기도 했다. 서울문화사에서 1부가, 시공사에서 1부 재간본(전11권)과 2부(전31권)가 출간돼 전42권으로 제갈길이 경찰대학 진학 결심을 하는 것으로 완결됐다. 2002년까지 11년간 창작됐고 1부의 히트에 기댄 2부였지만 독자로부터 익숙한 맛이라는 재신임을 얻었다. 독자들은 경찰대생이 된 진짜사나이 제갈길의 등장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 www.parkseokhwan.com)
한국일보, 2003-10-2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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