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내 나이 서른에 찾은 만화방. 간혹 몇가지 이유 때문에 들른 적이있지만 맘 먹고 `보겠다`고 몇시간을 있기 위해 찾은 것은 딱 10년 만이다.
박봉성의 작품 포스터가 두장 붙어있다. 여전한 그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 만화방의 무협열풍이 느껴지는 포스터가 여럿이다. 하승남 황성 사마달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위줄 오른쪽 포스터는 새롭게 등장한 무협신성 용태성의 작품이다.
만화포스터를 보다가 위층 계단쪽을 보니 익숙한 느낌의 벽보가 화장실을 안내하고 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틀림없이 다시 내려와 주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열쇠는 카운터에 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만화삼매경에 빠져서 오줌 눌 시간이 안까웠던 그 시절에는 얼마나 많은 헛걸음을 했던지...
입구는 이중 문으로 되어 있었다. 철문으로 된 출구와 유리문. 안을 보호하려는 철문과 안을 보여주려는 유리문이 묘한 공상에 빠지게 만든다.
90년 초반부터 권당 요금제에서 시간당 요금제로 바뀐 만화 이용방식은 여전하다. 이 변하지 않는 원칙을 인터넷만화방들이 따라 하고 있다. 시간제로 바뀌면서 달라진 원칙 또 한가지는 24시간 운영이다.
노량진역 주변. 학원 밀집지역의 이 만화방 역시 24시간 운영이 원칙이다. 그러나 동절기 핑계를 대고 09시부터 다음날 02시까지만 운영한단다. 매직으로 쓰인 `알바구함` 문구를 보니 주인 외에 카운터를 볼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주인 혼자 취침 시간을 빼고 `말뚝근무`를 서고 있는 모양이다.
그 옛날에는 카운터에 한번 앉고 싶어 난리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런 청춘들은 없는 모양이다. 만화방 알바자리가 비어있다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카운터가 있다. `19세미만 대여불가` 스티커가 제일 먼저 눈에 띄지만 사실은 카운터 주변을 둘러싼 신간 코너가 가장 눈을 끈다. 그리고 또 하나. 카운터에 펼쳐져 있을 스프링 노트는 보이지 않고 미끈한 액정 모니터와 키보드가 자리했다. 세상도 사람도 만화방 주인도 변했다.
신간만화로 둘러쌓인 매대. 10년 전과 다른 모습이라면 송곳과 철끈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카운터에 앉은 주인은 늘상 책의 접합 부분을 송곳으로 뚫고 철끈을 메고는 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책인 탓에 훼손이 되기 쉬었던 까닭에 미리 책에 상처를 내고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들엔 그런 상처가 없다. 예전보다 제본 상태가 좋아진 까닭일까? 예전보다 손길이 덜 가기 때문일까?
신간코너의 책들이 새책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새책이라는 느낌이다. 매직 글씨에서 컴퓨터 인쇄체로 바뀌었을 뿐 신간 리스트를 공고하는 방식은 여전하다.
사진 하단의 책등을 하늘로 향한 것이 서점용 코믹스들이다. 주인장은 매대의 절반 가량이 1권이었는데 지금은 1/4 정도라고 말한다. 전보다 새롭게 시작되는 작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작품의 후속편을 구매하느라 여유자금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현 운영 상황으로는 무리해서 새롭게 시작되는 작품을 살 수 없다고 한다.
만화책으로 외곽을 쌓은 신간코너가 카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안쪽에서 정겨운 눈빛의 주인아저씨가 고개인사를 해온다.
10년만에 받은 만화방 주인아저씨의 인사는 묘했다.
이제 서른이라는 나이 탓일까? 아저씨는 더 이상 그 시절의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인형님쯤 될까?
내가 만화방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7살 서울로 상경한 그 해였다.
20년이 흘쩍 넘은 그때부터 10 몇 년간을 줄기차게 드나들었으니 만화방의 변천사를 읊을 정도는 될 것 같다.
가령 `지난 20년간 만화방 주인의 인사 및 접객 태도에 따른 만화방 이용층의 변화` 등이 있겠다^^.
이 만화방 주인의 인사를 묘하게 여겨던 것 중 한가지는 이런 이유였다.
지난 시절의 만화방 주인들은 손님이 들어서면 일단 인상부터 쓰고 나왔다. 진짜 장사하기 싫은 듯한 표정이었고 때때로 `만화방에는 뭐하러 왔느냐!`는 투로 면박을 주거나 `너 또 왔냐!`는 식으로 꼴밤을 주기도 했다 --;.
소파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만화책을 차곡차곡 모아서 진열장에 꽂느라 정신이 없는 이 양반들은 때로 무섭게 보이기까지 했다.
만화폭독자였던 내게만 존재하는 감정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만화를 볼까 고민하느라 좁은 통로를 막고 진열장 앞에 서있거나 하는 다른 손님에게도 눈치를 주거나 면박을 줬던 걸로 봐서는 개인적인 기억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만화방 주인의 서비스 마인드 부족 등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 만화방 주인의 접객 태도 그리고 만화방을 메우고 있는 손님들의 연령대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만화방에는 업소의 위치별로 이용층이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었다. 가령 학교 앞에는 학생이 많았고 상가 주변에는 직장인이 많았다. 주택가에는 대여하는 여성층이 많았고 역전 앞에는 뜨네기 손님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이용층의 집중화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10대 중후반의 손님이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 만화방에는 그런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만화방 주인이 친근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때때로 만화독서 습관이나 생활태도까지 가르치고 싶은 그런 10대들이 없는 것이다. 학원가와 고시촌이 많은 이곳이지만 이곳의 손님들은 서른 전후의 사내들뿐이었다.
그런 사내중 하나에게 자칫 너무 친절해보이기까지 하는 인사와 함께 주인이 건넨 것은 입장권이었다.
입장일은 2002년 1월 21일(2003년이었다. 지난해에 인쇄한 것을 다 못 쓴 모양이다). 입장 시간은 4시40분. No 26이 뜻하는 것은 뭘까? 26번이라는 지정좌석일까? 아니면 영업시작 후 26번째 손님이라는 뜻일까? 후자라면... --;
요금의 공란은 나가는 시간을 계산해서 채워질 모양이다. 10번 들어왔다 나갔다하면 1번은 공짜로 출입할 수 있는 제도도 운영중인 모양이다.
카운터 뒤쪽으로 유명 만화가들이 직접 그린 원화와 사인지가 걸려있다. 만화가들이 이 만화방에 들렸을 때 주인이 직접 받은 듯 했다. 짧은 시간에 그려야 하는 사인지 그림의 특성상 머리부분의 먹작업을 하지 않은 이재석의 달숙이 그림이 재밌다.
대다수의 만화가와 열혈 소비자들이 판매용 만화책을 빌려보도록 하는 행위와 유통 시스템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 이 논의에서 대본소 즉 만화방은 빠져있다. 만화책을 빌려주는 유통시스템을 정착시키고 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만화책이 여전히 대규모로 공급되고 있는 곳이 곧 만화방이다. 하지만 이 만화방은 젊은 만화가와 열혈독자들의 대여점 시스템 붕괴를 위한 사이버논쟁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그들도 이곳을 찾아 자취를 남긴다. 추억이 발급한 면죄부 탓일까?
카운터 뒤쪽 책꽂이에 일반적인 만화방이나 대여점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이 있었다. 애니메이션북 정도의 장르로 소개되는 컬러만화 또는 절판만화들이다. 자세히 보니 일본어판 만화도 여러권있었고 만화이론서도 상당 수 있었다.(사진 좌측 하단을 자세히 보면 졸저 <<만화시비탕탕탕>>도 보인다^^) 또 사진 바깥 쪽에는 인문과학서적도 여러권 있었다. 평범한 만화방도 그런 주인도 아닌 것이다.^^
이용안내 공고문을 보니 들어올 때 받은 입장권에 세겨질 요금의 실체에 접근 할 수 있었다. 첫시간은 1천원, 이후 10분당 2백원, 하루종일은 5천원이다. 라면 등은 선불이고 담배는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재떨이가 제공되고 콜라 한잔이 서비스 된다.
사진 좌측 하단의 푸른 병은 주인의 생활발명품. 프라스틱 마개에 동그란 구멍이 뚤려 있다. 재떨이에 넵킨 한 장을 올리고 물총 쏘듯이 쭈욱 짜면 담배재가 날리지도 않고 재청소도 용이하게 해주는 재떨이 서비스 패키지가 완성된다.
이용수칙을 확인한 후 고개를 돌린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뛴 서가는 `19세 구독불가` 푯말이 붙은 쪽이었다. 누가봐도 알 수 있게 성인만화라는 푯말도 붙여뒀다.
청소년보호법에 적힌 방식대로 분리 매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동법에서 지시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매대를 감춰두라는 투의 항목은 잊은 듯 하다. 최근 오픈 한 리브로을지점의 경우도 만화매장 입구쪽에 성인만화 매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브로을지점은 이 매대의 태두리를 온통 빨간 띠로 두르는 노력을 보였다.
영풍문고 강남역 지점의 경우 이 법을 명확하게 지키고 있다. 매대는 청소년물과 분리해서 독립시켰고 그 장소도 안쪽 후미진 곳으로 했다. 그곳에는 반품될 책들이 감춰져 있었고 성인만화책은 그보다 껄렁한 자세로 꽂혀있었다.
성인만화가 꽂힌 서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그 시절 열 몇살 때. 책 속 곳곳에서 뿜어져 나와 내 몸을 어울렀던 이들의 환영이 보이는 듯 했다.
갑자기 상큼한 기운이 솟구쳤다.
성인이 볼 정도의 만화. 성인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일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구축했던 이 장르의 만화는 사실 성애만화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야한 농담 일색이었다.
80년대 후반 성인만화잡지 전성시대가 열리고 <만화광장> <주간만화> <매주만화> 등의 만화잡지가 연속 창간됐다. 이현세의 까치와 그 아류작들이 판을 치던 당시는 스포츠만화 천국이었다. 그 시절 받아든 성인만화는 색다른 긴장과 즐거움을 주었고 만화폭독자였던 나는 탐미적 이미지 습득자로 전환되었다.
만화책을 보는 방식에 있어서 다독성향이었던 것이 정독성향으로 뒤바뀐 것이다.
대사 하나하나 그림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았고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에서 그려지는 무수한 장면들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오줌을 오래 참는 기술과 함께 빨리 해결하는(?) 방법도 배웠다.
만화방은 기본적으로 공개된 공간이다. 그러나 영화관이 조명을 끄는 것으로 영화의 시작과 함께 수많은 관객에게 어둠이라는 독립된 공간을 부여하듯 만화방에도 독립된 공간은 있기마련이다.
만화방을 찾는 사람들은 독자가되는 상황(작품을 읽는 동안)에서의 개별적 판타지를 침해받지 않기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의 증표는 다른이와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주인 외의 다른 이들과 될 수 있으면 눈을 맞추지 않음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이야기도 주고받길 꺼려한다. 가장 구석진 공간이 남아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외부의 소리로 부터도 차단되어지길 원한다.
그렇게 해야 완전하게 독자가 되고 완전하게 주인공의 세상 속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겠다.
그때도 그랬다. 내가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주인공의 세상 속에서 삶을 개척해가고 있을 때, 그때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저편의 세상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실제하는 나는 이편에서 담배냄새를 피하며 내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 작품 속의 등장인물과 함께이고 싶었다.
현실이 나를 불러세우는 따위의 일은 이 공간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간혹 폭독자인 아들을 찾으러 철문을 걷어차고 들어서는 어머니가 있었으나 저편에서 뛰어가는 나를 불러세우지는 못했다.
스스로 에너지가 다해서, 더 이상 코인이 없어서 스스로 멈춰서서 이편으로 돌아오지 않는한...
만화방은 그 위치에 따라 다양한 편의시설을 추가로 제공한다. 가령 터미널 근처의 만화방은 만화읽기와 함께 침식을 제공하는 등이다. 대학가 주변에서는 짜장면 배달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주택가 근처에서는 쥐포 등의 군것질 거리를 제공한다. 이 만화방에서는 온음료와 함께 만화잡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이 사진의 오브제들은 그 시절 나와 만화방의 거리감을 조성한 것이다.
먹어야 한다는 것은... 만화 속에 깊이 진입해있다가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 안에서 먹는 다는 것은 허기를 더욱 부채질 하는 것밖에 되지 못했다. 그리고 만화잡지는 만화방을 찾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만화에 대한 허기를 느끼지 못할 만큼 나를 만족시켰다. 문방구에서 찾아지는 이 종류의 만화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를 유도했다.
TV가 책의 적이라면 영화는 만화의 적쯤 될 듯하다. 물론 이 것을 나누고 쌈 붙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 시절 나는 그랬다. 텔레비전을 멀리하면서 책을 찾았고 영화를 찾으면서 만화를 버렸다.
물론 이 둘을 교묘하게 연결시킨 비디오라는 괴물은 그로부터 한참동안이나 내가 만화로 가는 것을 막았다.
묘한 것은 비디오영화 시장의 출현을 만화방이 도왔다는 점이다.
80년대 말만 하더라도 비디오는 필수가전제품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비디오테잎을 대여해 본다는 것도 일련의 행사와 같은 일이었다. 지금이야 생활 중의 한 장면처럼 비디오를 빌려보지만 그 시절에는 몇몇 곳에서만 비디오영화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영화가 직배되기 전이었고 대다수의 작품들이 영화관에서보다 먼저 복제본으로 돌았던 것도 한 이유였다.
그래서 만화방을 찾는 이유중 하나가 비디오영화를 보는 것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또한 사진에서 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상영하지 않고 만화방의 한쪽 측면에서 남 모르게 상영되는 작품도 있었다.
일명 쪽방이라는 곳에서는 포르노물을 상영하기도 했다.
한때는 만화방으로 사람들을 모았던 재료가 어느순간에 만화방을 떠나게 하는 재료가 된 것이다.
글/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com)
코믹스팸닷컴, 2003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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