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꺼벙이의 길창덕, 만화규장각, 2007.3.11

길창덕(1929년 생, 1930년 생)은 1955년 <<서울신문>>에 '머지않은 장래의 남녀상',  <<야담과 실화>>에 ‘허서방’을 발표하며 만화계에 입문했다. 1968년 <<소년한국>>에 연재를 시작한 <재동이>, 1970년 <<만화왕국>> <<소년중앙>>에 연재한 <꺼벙이>, 1971년 <<여성중앙>>에 연재한 <순악질 여사> 등 연재 기간이 10여 년을 훌쩍 넘는 인기만화와 장수 캐릭터를 여럿 만들어냈다. 길창덕은 아동에서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군을 동시대에 거느렸던 행복한 작가 중 한명이다.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인 길창덕은 15세 때 이른바 ‘이발소그림’으로 불리는 풍경화 등을 그리며 그림과 인연을 맺었고 군 복무 중 신병 훈련 교재를 만화로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코주부’ 김용환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일본만화 등을 구해 습작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 길창덕은 일본만화 표절 의혹을 받기도 했다. 길창덕은 그 흔한 문하생 하나 없이 혼자서 작품 제작 전반을 진행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때 월 20개의 원고를 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고 그 덕에 매일매일 원고와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 전쟁은 하루 다섯 갑씩 피워야 떠오르던 아이디어 탓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일선에서 물러난 1997년 까지 40여 년 간 비속됐다. 

길창덕은 정식 미술수업을 받지 않았던 만큼 그림 자체의 매력은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속사포처럼 쏟아놓는 대사의 재미와 만화적 기호를 듬뿍 적용한 행동선 등을 통해 물 흐르듯이 읽히는 재미는 ‘길창덕표 명랑만화’만이 지닌 매력이다.

이 같은 표현방식에 있어서 일본만화를 참고했다는 부분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길창덕의 만화는 가족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종의 시츄에이션 홈드라마 같은 형식으로 마루나 마당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런 이유로 길창덕 스토리만화에는 자상하고 합리적인 아빠나 엄마 또는 선생님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주인공 꼬맹이들의 믿을만한 안내자가 되어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이 부분은 길창덕 만화와 일반적인 명랑만화의 위치를 다르게 만든다. 길창덕은 작품을 통해 우스개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른 시사적 문제를 다루었고 국가적 덕목을 담아냈다. <꺼벙이>는 교육 또는 계몽의 방식으로 <순악질 여사>는 풍유의 방식으로. 

길창덕 만화에는 국가가 펼치는 캠페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로 국민 정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간주됐던 길창덕의 만화가 관계 당국의 심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까닭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길창덕 만화가 지니는 순응의 정서이고 대중성 확보의 방식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길창덕 팬페이지 http://jh8829.gazio.com/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부천만화정보센터, 20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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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환(만화평론가,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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