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달숙이의 이재석, 만화규장각, 2002

만화작가 이재석은 아동용 개그만화와 성인용 패러디만화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는 독특한 작가 중 한 명이다. 1990년 성인만화잡지 「주간만화」의 공모전에 입상하며 등단했다. 1992년 「소년챔프」 신인공모전에 당선하면서 아동만화로 전향, 1993년 「아이큐점프」에 『엉터리스타열전』 『달숙이』 등을 연재하며 주목을 받았다. 1997년 한 스포츠신문에 『핵폭탄』을 연재하며 성인 취향의 개그만화를 시도했고, 2000년 학산문화사가 창간한 국내 최초의 성인만화웹진 「코믹콜」에 패러디 성인만화 『사건과 실화』를 연재하며 본격적인 성인만화작가로 거듭났다.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할 당시 이재석은 성인극화 창작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창작 기회는 아동만화 쪽에서 열렸고 아동만화 연재를 위해 기존의 작품 스타일을 버려야 했다고 한다. 「아이큐점프」에 연재했던 아동만화 『달숙이』와 『붐붐』의 인기는 이재석 만화를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됐지만 작가로서 지향하는 지점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동만화에서 보여준 이재식의 개그 감각과 깔끔한 펜선, 익숙하게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웃음을 유발시키는 패러디 수법은 성인극화 창작에 그대로 투영된다. 


하이텔 천리안에 이어 뒤늦게 통신사업을 전개한 나우누리는 후발주자로 출발한 만큼 인터넷으로의 서비스 환경 전환도 빠르게 진행했다. 무엇보다 참신한 기획력으로 광대역 통신 환경에 적합한 고용량 콘텐츠 서비스도 의욕적으로 진행했다. 이때 만화계에서는 청소년보호법 등의 여파로 판매가 격감한 성인만화잡지 「미스터블루」 「트웬티세븐」 「빅점프」가 줄줄이 폐간되면서 성인잡지만화 시장이 초토화됐다. 대원의 출자로 출범한 학산문화사는 무주공산 격인 성인만화 시장에 색다른 형식으로 진입하길 기대했고 나우누리가 의욕적으로 구축한 만화채널 우심만보에 성인만화웹진 「코믹콜」 서비스를 시작한다. 10여 편의 작품 중에서 아동만화작가로 알려진 이재석과 그가 작심하고 창작한 성인만화 『사건과 실화』는 단연 주목 받는 작품이었다. 연재 초기 청량리만화를 표방한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과도한 성행위 묘사와 성적 농담이 가득한 이 작품은 오히려 만화 기획자들이 그 표현 수위와 과도한 설정에 제동을 걸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학산문화사는 성인웹진을 출발로 의욕적으로 인터넷 만화 사업을 전개했지만 인터넷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부족과 낮은 수익성으로 웹진 서비스를 중단하고 라이코스에 기존 출간된 일본만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조정했다. 웹진 폐간과 함께 이재석의 성인만화는 모습을 감추는가 싶었으나 「코믹스 투데이」와 「코믹플러스」가 인터넷만화 사이트를 오픈하면서 오히려 본격화된다. 이재석은 두 사이트의 성인 만화 웹진 채널에 『섹스닷컴』과 『엑스등급』을 각각 올 컬러로 동시 연재했다. 이재석 성인만화의 농도 짙은 성애묘사와 재미가 네티즌의 입소문을 탄 까닭이다. 이재석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담패설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창작하는가하면, 익숙한 영화나 드라마를 짬뽕 시켜 완전히 다른 성적 농담으로 만들어냈다. 


이재석 성인만화를 인터넷 시대의 저속성을 대표하는 성적 표현물로 비하하는 세력도 있다. 그러나 이재석 성인만화는 성행위시의 금기영역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모종의 분출구를 찾아보자는 작가의 진지한 농담이고 정보포화 상태의 인터넷 독자에게 제공되는 은밀한 쉼터임에 분명하다. 이재석은 인터넷에서의 구독환경을 철두철미하게 분석하고 인터넷 독자들의 구독성향에 적합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많은 준비와 변화의 노력을 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재석은 최근 아동만화작가로서의 명성과 성인만화작가로서의 입장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만화와 독자 사이를 쉼 없이 탐색하면서 변화에 순응하기보다는 이를 주도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2002-11-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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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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