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작가 이경열(1969년 생)은 1995년 세주문화사의 성인만화잡지 「미스터블루」에 『도사열전』을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에 작가 수업을 시작했고 조운학 문하에서 2년 여 간 수학했다.
「미스터블루」는 일본만화 연재를 배제하고 순수 국내 작가의 작품만을 편성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성인만화잡지였다. 이현세를 비롯해서 그의 동생인 이상세 이무세 등 이씨 일가가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했고, 허영만 안세희 등의 중견작가진과 양영순 윤태호 등 기대 받는 신진작가를 물 위로 끌어내며 메이저 출판사들과의 성인잡지 경쟁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이 잡지를 통해 데뷔한 작가들은 하나같이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특히 이 잡지를 통해 등장한 신인작가들은 익숙한 이야기 거리들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성인 패러디만화의 새로운 흐름을 구축했다. 이경열도 그 중 한명.
데뷔작 『도사열전』은 단기 연재로 기획되었다가 작품의 인기와 함께 장기 연재로 이어질 만큼 탄탄한 구성력과 독특한 인물묘사, 색다른 캐릭터 설정으로 기대를 모았다. 전혀 주인공 같지 않은 엽기적 외모의 인물과 뽀빠이 팔뚝 같은 신체 일부의 과장, 8등신 이상의 체형으로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는 여체 묘사 등은 기존 만화작법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경열은 작가수업 이전에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생활을 1년 여간 했다고 한다. 불쑥 찾아드는 손님을 눈앞에 마주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물묘사를 위한 대상 포착력과 순발력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97년 청소년보호법의 여파로 각종 성인만화잡지가 폐간되면서 이경열은 창작방향을 청소년만화로 전환한다. 국제구제금융(IMF) 시대가 열리면서 명퇴자와 실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소규모 창업 열풍이 불면서 책 대여점 프렌차이즈 업체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만화출판사들은 책 대여점의 도서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전작 단행본(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고 프로덕션 체제에서 생산된 작품)을 발행하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경열은 서울문화사에서 설립한 서울미디어랜드에서 전작 단행본 창작을 시작한다. 연애드라마 성격의 『아무렴 어때』를 시작으로 학원액션물 『너 이리와 봐』 『닥쳐』 등을 창작했다. 이후 세주문화사 야컴 웹진「코믹스투데이」 등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성인만화 창작에서 청소년만화 창작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경열은 개그드라마에서 학원액션으로 작품 컨셉을 바꾸면서 작화 스타일도 대폭 수정했다. 남자 주인공보다 여성의 묘사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의도했던 기존의 작화 스타일에서 남자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과 영웅 만들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청소년 만화의 기본 구성 요소인 영웅형 주인공이 필요했던 것이다. 학원액션물은 만화작품 대량 생산 시대의 대표적 장르 코드 중 하나이다. 이 경우 작가의 의식을 문제 삼기보다는 대량소비를 전제로 하는 창작 여건과 구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같은 시기 동일한 잡지에서 출발해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한 양영순 윤태호에 비한다면 아쉬운 대목. 그러나 이경열은 작품 자체의 질적 담보를 이루기 어려운 창작 여건 하에서도 일정수준을 유지한 작품을 생산해냈다. 또 몇몇 실험적인 노력도 잃지 않았다. 1999년 첫 권을 발행한 『슈퍼땅콩』은 국내 최초의 여자 축구 소재만화. 2001년 첫 권을 발행한 『독각흑비저』에서는 학원액션물의 틀거리를 무협으로 바꿔냈다. 2002년 9월 현재 이경열은 102권의 단행본을 뽑아냈다. 이를 단순히 윤태호(30권) 양영순(14권)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대신 작품 생산력의 차이만큼이나 이경열에게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의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만화규장각, 2002-11-2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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