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위기의 점프호 선장 심상기씨, 코믹플러스, 2003.07.01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자리 잡은 만화 행정가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이하 SICAF)는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대중의 인식전환과 국내 만화산업의 진흥을 위하여 문화관광부와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단체가 참여해서 95년 1회 행사를 개최했다. 현재까지 5회째 행사가 코엑스에서 열렸고 오는 10월 서울 정동 일대에서 6회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SICAF는 1.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산업화를 앞당기고 2.국제 경쟁력을 높였으며 3.멀티미디어 시대의 강력한 이미지 언어로서 만화의 위치를 확인시켰는가 하면 4.문화와 산업을 연계한 모범적 행사로 평가 받고 있다. 정부 주도하에 열렸던 이 행사는 99년부터 민간으로 이양됐다. 조직위원장인 서울문화사의 심상기 회장은 만화행정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SICAF를 통해 톡톡히 보여줬다. 문화행사 중 돈 남는 행사로 기록되고 있는 SICAF인 탓에 이런저런 이견도 많겠으나 넉넉했던 정부의 지원이 대폭 줄어 든 상황에서 이 큰 행사를 조직하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심씨는 삭감된 정부 예산을 정부관련 단체의 예산과 후원 업체의 참여로 채우고 분산되어 있는 만화관련인 단체의 힘을 이끌어내는 한편, 실무 참여가 가능한 추진위원단과 상설 사무국을 조직화했다. 또 기획전시 이벤트 상품판매로 이뤄졌던 행사 구성을 학술과 투자 부분으로 까지 확대했다. 민간화 되면서 기획전시보다 상품판매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을 학술행사로 일축하고, 창작자와 투자자가 만나는 상업적 무대도 더 넓게 확보한 셈이다. 전담 사무국이 상설로 있으나 일정 기간만 열리는 행사이니만큼 이를 조직화하는 데는 단기간의 집중력과 폭발력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점프왕국 건설한 언론인 출신 만화 사업가


몇 년 전 여성만화잡지 <나인>이 만화관련인들을 설문조사하여 ‘만화계 파워 20인’을 발표했다. 유명만화가 애니메이션감독 평론가 학자 등이 선정된 이 명단에 낯선 이름이 있었다. 꽤 꼼꼼하게 만화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낯선 이름일 수밖에 없는 서울문화사 회장 심상기. 선정된 이들의 유형을 분류하고 보면 심씨는 비만화계 출신으로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국내 최고의 만화출판사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느 만화출판사의 대표처럼 만화가도 아니었고 잔뼈 굵은 만화출판인도 아니었다. 선정 이유는 SICAF 조직위원장이라는 직함과 역할 때문이었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심씨는 6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서 중앙일보 기자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치부장 편집국장 출판담당상무를 역임했고 88년 서울문화사를 설립했다. 90년에는 임명직 경향신문사장으로 1년 간 겸직을 하기도 했다. 심씨는 기획추진력과 심층취재력이 뛰어난 언론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앙일보 퇴사 후 경영인으로 자리바꿈을 한 심씨는 88년에 종합여성지 <우먼센스>를 창간했고 창간호 20만부 판매라는 신화를 이뤘다. 같은 해 국내 최초의 주간만화잡지 <아이큐점프> 역시 창간호 10만부 신화를 이었다. 서울문화사는 현재 7종의 여성 패션 교양지와 5종의 만화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88년 말에는 (주)서울교육을 설립하며 참고서 시장에 뛰어 들었고, 비소설류 단행본 출판사업도 진행했다. 91년 (주)일요신문사를 설립하고 99년에는 시사저널을 인수하여 (주)독립신문사를 설립했다. 여성교양지에서 주간시사지까지 영역 확장을 이룬 셈. 94년에는 종합유선방송 사업자 자격을 취득하고 (주)서서울케이블TV를 설립하면서 서울문화사 내 캐릭터 사업부와 비디오영상팀을 신설했다. 최근 완구 및 애니메이션 투자 전문업체인 (주)손오공과 (주)에스에스애니멘트를 설립하면서 영상캐릭터 사업의 활로도 마련했다. 

여성지 하나와 만화잡지 하나로 세웠던 서울문화사를 출판 잡지 신문 방송 영상 캐릭터를 포괄하는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서울문화사의 연혁을 보면 심씨의 치밀한 조직구성력을 느낄 수 있다. 문어발식으로 방대하게 확장한 듯 하지만 개개의 사업단위들은 단 한 땀의 불필요한 바느질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촘촘하게 연계되어 있다. 여성에서 패션 유아 인테리어 요리 교양으로 연결되는 여성교양 부분, 소년만화잡지에서 소녀 청소년 성인 여성과 캐릭터 비디오 영상으로 연결되는 만화미디어 부분, 학부모와 청소년을 연결짓는 참고서 부분, 주간신문과 시사잡지로 이어지는 정치사회 부분, 이들을 엮어내는 방송 영상 라이센싱 부분까지. 만화에 대해서 한줄 읊어내지 못하면 대접받기 힘든 만화동네에서 비만화계 출신인 심씨가 점프만화왕국을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만화계를 하나로 엮어내야 할 최대 행사인 SICAF 조직위원장으로서 만화 파워맨이 되어도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화를 출판에서 멀티미디어 분야의 사용언어로 끌어올리고 조직화 할 수 있는 힘이 곧 심씨가 지닌 능력이다. 


종합미디어 그룹으로 발전, 점프표 만화는?


서울문화사의 성취와 관련 심씨가 황색저널의 대표적 성장 수단을 모두 활용했다는 비판도 있다. <우먼센스>가 성고문 피해자의 피해부분만을 적절하지 못한 사진과 함께 필요이상 상세히 보도하는 등의 이유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고, <일요서울> 역시 컬러 나체사진을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재제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으로 게재하여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충남 부여고 출신으로 14대 총선 때 JP의 후계자로 떠오르면서 정치권 진입 관련 구설도 있었고, 타기업의 비루에 연루 변칙판매가 이뤄졌던 <일요신문>을 자진휴간하기도 했다. 또 EBS 방송교재 선정관련 담당PD에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장로이기도 한 심씨는 <스포츠투데이>에 교회 헌금이 유용됐다는 의혹을 밝히라는 연대서명 활동을 하다가 장로직에서 재명 되는 등 종교계 구설수에도 올랐다. 

심씨의 기획력과 폭넓은 추진력이 서울문화사를 다수의 자회사를 거느린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발전시켰으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점프왕국으로 불렸던 서울문화사 만화사업의 현재는 그리 신통하지 못하다. 최고경영자와 회사의 경영컨셉에 있어서 대원과 서울은 만화영상과 종합출판으로 성격을 달리하지만 만화잡지와 만화단행본 출판에 있어서는 자웅을 다투는 관계에 있다. <아이큐점프>는 <드래곤볼>이 연재될 당시의 탄력으로 돌아가고 있는 정도여서 <소년챔프>만 못하고, 순정만화명가를 구축했던 <윙크>가 자존심을 지켜줄 뿐 많이 쇄약해진 상황이다. <영점프>는 툭하면 폐간설이 돌고 새로 창간한 <슈가>는 경쟁지라고 볼 수 있는 <비쥬>만 못하다는 평이다. 그나마 <고스트 바둑왕> 등의 일본만화 단행본이 선전을 해주고 있는 정도. 

심씨는 89년 제주도에서 열린 직원 연수에 한 강사를 초대했다. 연단에 선 늙은 강사는 전 동아출판사의 창업주였던 김상문 씨. 김씨는 완전정복 동아전과 동아수련장 시리즈로 70년대 학습지 시장을 석권한 출판계의 황제였다. 80년 초 사세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는 한 해 1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직원이 2천4백명이나 됐었다. 그러나 김씨는 동아원색대백과사전의 무리한 기획과 투자로 인한 잇단 부도를 막지 못하고 회사를 다른 출판사에 넘겨주어야 했다. 강사로 설 당시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재기에 몸부림치는 오뚝이 출판인에 지나지 않았다. 심씨는 <우먼센스>와 <아이큐점프>의 창간호 대박과 (주)서울교육 등으로의 사세확장으로 출판이 쉽고 달게만 보였을 직원들과 그 자신 앞에 김씨를 세웠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실패를 몰랐던 노 출판인의 실패담을 서울문화사와 그 스스로에게 들려 준 것이다. 심씨가 성공을 쫓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닥쳐올 위기도 준비하고 관리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서울문화사 만화사업에 심씨의 조직력과 기획력이 다시 한번 발휘 될 때가 된 것 같다. 헛손질 하나 없이 짜여진 그의 사업구도에서 만화의 위치는 매우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점프표 만화에 위기가 온 것이라면 마땅히 심씨의 손길이 필요하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코믹플러스, 2003-07-0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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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eokhwan

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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