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웁스` `쥬티` 폐간한 학산문화사
얼마 전 준성인지를 표방한 `웁스`와 아동순정지 `쥬티`가 휴간을 선언했다. 2000년 10월 창간한 `쥬티`가 22개월 만이고 `웁스`는 우렁찬 포부와는 상관없이 7개월 만에 사실상 폐간됐다. 두 잡지의 폐간은 1995년 법인 설립 후 흔들림 없이 업계 장악력을 넓혀왔던 (주)학산문화사(이하 학산) 최대의 위기라 할만하다. 우리 만화계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주)대원씨아이(전 대원동화(주), 이하 대원)와 (주)서울문화사(이하 서울)가 만화사업 이전에 애니메이션 제작과 대중잡지라는 수익사업을 지니고 있었던데 반해 학산은 시작부터 출판만화 사업을 주 업종으로 선택한 업체이다.
내부적으로는 대원의 자본을 통해 분사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외부적으로는 잡지와 단행본을 동시에 발행하는 유일한 출판만화 브랜드 업체이다. 법인 설립 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신 사옥을 건축하는가 하면 5년 만에 5종의 만화잡지를 발행했다. 업계 3위권 쟁탈을 노렸던 업체들(시공사, 세주문화사, 삼양출판사, 대명종, 아선미디어 등)을 멀찌감치 따돌려 논 것. 단기간에 출판만화계의 독보적인 브랜드 업체로 성장한 학산의 뒷걸음질은 만화계 전체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에 앞서 (주)시공사도 준성인지 `기가스`, 소녀순정지 `케이크`를 폐간하면서 만화계의 여름을 땀 반, 눈물 반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만화잡지 질서 잡은 황경태
두 업체의 잡지 폐간이 무엇보다 주목되는 이유는‘기획 만화’‘만화 기획’ ‘작품 기획 편성’등 우리 만화계의 발전적 흐름으로 새롭게 제시됐던 개념들이 실패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연령대별, 성향별로 7종 내외의 잡지를 발행하는 두개의 메이저 업체가 있다. 신생업체는 이 산맥을 넘거나 그 틈새를 파고들어야 한다. 학산과 시공사는 정면승부를 피하고 각 잡지와 단행본 시리즈의 틈새를 보기 좋게 파고들었다. 기존의 관습에 찌들어 있는 작가들을 독려하여 아동지와 소년지의 중간, 소년지와 청소년지의 중간, 청소년지와 성인지의 중간을 찾아냈다. 곧 성공할 듯 달려들었던 시공사의 잡지 전략이 폐간으로 일단락됐고, 기세등등하게 확장을 거듭했던 학산 역시 절반의 실패를 선언해야 했다. 그 선언이 학산의 것이고 학산이 기획자 만화출판을 컨셉으로 했고, 거기에 만화기획자 출신 대표이사인 황경태가 있었다는 것은 주목거리를 지나 불안감의 확대로 이어진다.
미술기자로 출발, 대박신화 낳는 만화 기획자로
학산문화사의 황경태(45) 대표이사는 20여 년 간 만화편집 및 출판사 경영을 통해 우리만화의 현재를 구축한 대표적 인물 중 한명이다. `어께동무`에 미술기자(직접 만화를 그리기도 했고 편집자 역할도 수행했다)로 입사하여 서울, 대원을 거쳐 학산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입지전적 인물. 15 종 이상의 만화잡지 창간에 직접 참여했거나 주도했으며 서울과 대원의 대표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와 `소년챔프`를 성공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 편집장이기도 하다.
황씨는 `아이큐점프`를 담당하면서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를 분리하고 이를 중간에서 조율하여 자신의 의지가 작품에 적용되도록 했다. 5만부 나가던 `아이큐점프`의 판매부수를 25만부까지 올려 논 것. 이 잡지의 인기작 중 하나였던 배금택 작가의 `영심이`에 등장하는 왕경태의 모델이 황씨이다. 대원으로 자리를 옮긴 황씨는 `소년챔프`를 창간하면서 그림보다는 이야기와 작가나 작품 자체의 매력에 치중하는 한편 새로운 시도에 주력했다. 작품 조율이 어려운 기성 작가보다 신인작가의 등용에 열정을 보이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명진 작가를 픽업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으로 만화책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다. 국내 만화 중 최장수 연재작품인 이우영 작가의 `검정고무신`, 이 작품의 소녀만화 판 격인 이빈 작가의 `안녕 자두야`,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졸라맨` 단행본 등은 황씨의 작품 기획력을 돋보이게 하는 대목.
호재를 잡는 감각 경영의 달인
이견의 유무를 떠나 우리 만화출판계의 받침이 됐던 초대형 히트 작품 `드래곤볼`과 `슬램덩크`의 한국어판 출판을 결정한 당사자도 황씨이다. 황씨의 사업가적 기질은 대원의 자본으로 설립한 신생출판사 학산의 대표이사 역할을 하면서 더욱 돋보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매체보다 장르의 법칙이 깊게 인식된 탓에 창작자도 소비자도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만화잡지의 대상 독자층에 맞춘 스토리와 연출. 황씨는 새로운 일터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만화잡지 `찬스`를 통해 소년지의 테마인 꿈과 모험, 청소년지의 테마인 풋풋한 사랑과 열정의 중간지점을 파고들었다. 취미나 레저를 소재로 한 만화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 기획력을 갖춘 편집자를 우선 등용했고, 후속 잡지 `부킹`과 `웁스` 역시 기존 잡지가 형성한 대상 독자의 중간층을 파고들면서 또래의 관심사를 만화화 했다. 청소년보호법, 아이엠에프 한파,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악재를 호기로 삼고 기획력을 내세워 측면 돌파를 강행 한 것.
달랑 회사소개 페이지 하나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까막눈인 인터넷 쪽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황씨의 경영철학은 빛이 난다. 국내 최초로 프로로 구성된 작가진을 갖춰 연재만화 웹진 `코믹콜`과 `해킹`을 만든 쪽도 학산이고, 인터넷 포탈 라이코스와의 제휴로 대규모의 일본만화를 최초로 무료서비스 한 곳도 학산이다. 인터넷업체 D3C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인터넷만화 사업에 불을 지핀 쪽도 황씨의 학산이 먼저였다.
편집자로서 양대 출판사의 요직을 두루 거쳐 튼실한 성과를 만들어냈고, 경영자로서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를 이들과 당당하게 견줄만한 빅3 업체로 성장시킨 황씨. 미술편집, 작가담당, 작품기획, 잡지편성, 매체경영, 조직관리, 사업기획에 이르는 출판만화 산업의 전 영역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였다.
臨戰有退, 후진도 시야가 넓어야
세계 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이 된 일본만화 `북구의 권`과 `씨티헌터`의 속편격인 작품의 한국어판권을 확보하며 창간한 `웁스`. 캐릭터 사업의 본격화를 지원할 계획이었던 `쥬티`. 두 잡지의 폐간은 우리 만화계에 너무 많이 활용됐던 황씨의 능력이 이제 다했음을 시사하는 듯 하여 만화계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그러나 황씨가 만화계 내에서 보여줬던 위기관리 능력과 호재에 맞춰 움직일 줄 아는 순발력은 황씨의 폐간을 전략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웁스`의 준성인지 방침은 `기가스`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듯 예견된 측면이 강했다. 더군다나 학산의 전 잡지가 추구했던 틈새 전략은 여타 잡지의 독자층 업그레이드 전략에 묻혀버렸다. 소년지, 청소년지 등이 기존 독자를 중심으로 독자 대상을 늘려 잡기 위해 표현 수위를 높이면서 양대 출판사의 잡지와 학산의 잡지가 동일한 색깔을 지니게 됐다. 연령대 세분화시기를 등 뒤로 하고 연령대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는 꼴. 순정지도 마찬가지로 아동지가 소녀지 흉내를 내고, 소녀지가 여성지다워지면서 독자층이 두터운 쪽으로 작품기획과 잡지 편성이 기울고 있는 상황이 가속되고 있다. 또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창간된 시공사의 `비쥬`와 서울의 `슈가`는 아동순정지로 `쥬티`와 경쟁 라인에 있다. 양사의 판단과는 별개로 학산의 입장에서는 `쥬티`를 지속시킬 이유가 없어진 격. 결과적으로 학산의 입장에서는 타의 반(업계 흐름) 자의 반(시장현황 및 조직관리)으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기회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로인해 학산은 기존 사업 및 조직을 강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측면의 신규사업 가동에 여유를 지니게 됐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www.comicspam.com)
코믹플러스, 2003-08-01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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