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 도라에몽의 도라에몽, 씨네버스, 2001.07.17


캐릭터버스7.


내게 이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토토로와 포켓몬스터가 재패니메이션의 세계화와 일본문화산업의 국내 시장 안착을 위한 대표 선수로 올 여름 극장가에서 격돌한다. 남의 나라까지 와서 쌈판을 벌이는 것이 낯설지 않을 정도가 된 재패니메이션의 무게가 새삼스러운 터에 일본만화의 ‘또 다른 신’으로 평가받고 있는 후지토 F. 후지오 원작의 <도라에몽>이 공중파를 탄다. 7월 9일 52회 분량으로 제작됐던 TV판 애니메이션의 첫 회가 MBC에서 방송됐다. 73년 일본 아사히 TV에서 방영을 시작한 이래 <사자에상>과 함께 일본 내 최장수 애니메이션으로 군림하고 있는 도라에몽은 동짜몽이라는 해적판 만화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극장용 장편만 20 여 편이 제작, 6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도라에몽>은 지금도 18세 이상만 출입할 수 있는 일본 내 심야극장의 주요 아이템으로 끝없는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아동 SF만화의 교범 

<도라에몽>은 너구리와 고양이를 절반씩 합쳐 논 듯 한 모습의 22세기형 로봇이다. 마음씨야 비단결이지만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성취욕 부족으로 시험만 봤다하면 빵점인 주인공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도라에몽을 20세기의 선조에게 보낸다. 주인공인 선조를 도와서 ‘좀 쓸만한 인물’로 만들어주면 자신들의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 까닭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건너 와 주인공과 한집 살림을 한다는 <도라에몽>의 설정은 아류작의 난립을 지나 아동용 SF만화의 전형성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급격한 산업화와 기계물질 만능 시대의 도래에 따라 미래사회의 공포가 SF장르의 출현을 불렀다면 이를 공상, 모험, 과학적 상식, 대리 체험 등 유익한 방향으로 접근한 것이 아동용 SF물이다. <도라에몽>은 ‘한 집에서 살게 된 정체 불명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가정 내에 확립된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는 과정을 축으로 매회 하나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 도구를 선보이는 형식을 취한다. ‘한집 살이’, 도라에몽의 가슴에 달린 ‘4차원 포켓’, 매회 마다 등장하는 ‘도구와 사용법’ 등은 김영하의 <펭킹동자>,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등에 차용됐다. 


교육적인, 너무나 교육적인 경쟁력 

<도라에몽>을 대표하는 숫자는 129.3이다. 키와 허리둘레가 129.3cm로 동그랗고 짜리 몽땅한 외형에 몸무게도 129.3kg이다. 129.3은 이 작품이 연재를 시작한 1970년대 일본의 초등학교 5학년생들의 평균키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남을 도와주는 것이 특기인데다가 일본식 팥빵을 좋아한다. 캐릭터의 성격 부여 자체가 주 고객층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고 지극히 교훈적이다.등장인물들의 이름 역시 게으름 피우다(노비타), 거인(자이안), 삐지다(스네오), 조용한(시즈카), 지나치다(데키스기) 등의 일본어에서 따왔다. 모두다 이름 그대로의 외형과 성격을 지녔다. 도라에몽은 극히 일상적인 생활만화의 무대에 존재한다. 생활의 한 복판에서 매우 전형적이고 늘상 주변에 존재하는 이들과 함께 놀이에 빠져든다. 무엇인가 그들에게 만큼은 심각하고 풀기 어려운 숙제가 도라에몽의 도움으로 풀린다. 독자나 관객은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또는 ‘저런 친구가 될 거야!’라고 주문을 하듯, 다짐을 하듯 도라에몽의 세계에 빠져버리고 만다. (끝) 


글/ 박석환(만화평론가, www.parkseokhwan.com)


씨네버스/ 2001-07-17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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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 박석환 홈페이지. 만화 이론과 비평, 웹툰 리뷰, 인터뷰, 보도자료 등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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